국민기초생활보장법 제정 추진운동

서론: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제정의 필요성

1997년말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받은 이후로, 우리 경제는 심각한 경제위기를 경험하고 있다. 지난 30년간 연평균 8%의 고도성장과 거의 완전고용(실업률 2-3%)을 유지하면서 개발도상국의 성공사례로 칭송받던 우리 경제는, 1998년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였고, 실업률도 급상승해서 1999년 1월 현재 8.5%에 실업자의 수는 약 176만명에 이르는 저성장 고실업의 사회로 전락하였다. 더욱이 현 실업통계에 실업자로 분류되지 않는 실망실업자나 무급가족종사자 그리고 불완전취업자까지 포함하게 되면 약 400만명 정도가 현 경제위기에서 생활상의 곤란을 겪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이들과 부양가족까지 포함하게되면 우리 사회에서는 최소한 1/4이상이 현재 아무런 생계대책 없이 살아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러한 전반적인 경제위기의 여파가 한계계층에 집중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최근 통계청에서 발표한 소득조사에 의하면 우리 나라 최상위계층의 소득감소폭은 미미한 반면에, 최하위계층의 소득은 큰 폭으로 떨어져 계급의 양극화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그 결과로 한계계층에서 가족해체가 가속화되어, 결식아동과 노숙자의 수가 급증하고 있으며, 생계형 범죄가 창궐하고 있다. 최근 보건사회연구원과 노동연구원의 실업실태 조사결과에 따르면, 조사대상 가구 중 상당수가 경제적 이유로 부모를 시설이나 친지에게 위탁하거나, 아동을 시설이나 친지에게 위탁하고 있는데, 실업이 장기화될 경우 가정분리→ 해체→ 노숙의 과정을 거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통합에 궁극적 책임이 있는 정부는 경제위기에 따른 사회해체 현상에 대한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한 채, 임시방편적이고 미봉적인 실업대책만으로 일관하고 있다. 즉 실업계층별로 종합적인 생활안정사업을 실시하여야 할 책무가 있는 정부는 현 사태에 대한 안일한 현실인식과 더불어 고질적인 부처이기주의로 인하여, 실업대책이 체계적이고 효과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특히 1999년도 1조5천억원을 투입하여, 실업자 생활안정대책의 핵심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는 공공근로사업의 경우, 실제 과반수 이상이 저소득 실업자보다는 무자격자가 참여한 것으로 드러나 소득역진성의 위험을 안고 있으며, 사업의 내용 역시 부처이기주의로 인하여 불요불급한 사업으로 구성되어 있고, 무엇보다도 공공근로사업을 통해서는 저소득 실업자의 안정적인 생계유지를 보장할 수 없다.

이러한 점에서 기존의 생활보호제도를 전면적으로 개정한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을 제정하여, 현 경제위기의 고통을 가장 강하게 받고 있는 저소득층에게 기초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길만이 현 경제위기에서 사회적 안정을 이룩하는 첫걸음이라고 할 수 있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제정추진 연대회의 발족경과와 사업계획

우리 경제가 IMF의 구제금융을 신청한 이후로, 여러 경제 전문가들이 다양한 방법을 통하여 그 원인을 분석하고 또 나름대로의 처방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너무나 명백한 사실은 현 경제위기의 책임을 져야할 이들은 경제한파의 안전지대에 머물러 있는 반면에, 현 경제위기의 고통이 그 당시나 지금이나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온 우리 사회의 한계계층에게 집중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에게 최소한도의 생활을 유지할 수 있도록 사회적 배려를 하는 것은 정부의 기본 책무일 뿐만 아니라 사회정의의 문제이고 더 나아가서는 우리 사회의 인권의 문제인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한계계층에게 기초적인 삶을 누릴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여 헌법에서 보장하는 인간다운 생활을 누릴 수 있는 가장 기초적인 제도적 틀이라고 할 수 있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의 필요성이 시민사회단체에서 먼저 제기되었다는 것은 우리 시민사회의 역량을 보여주는 매우 고무적인 일이라고 할 수 있다. 1998년 7월 23일 민주노총, 경실련, 참여연대, 의보연대, 여연 등 19개 노동시민사회 단체는 공동으로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을 청원하였고, 여야 정책위의장과의 면담을 통하여 이 법안에 대한 노동시민사회단체의 의지를 확인시킨 바 있다. 이어 1998년 11월 11일에는 민주노총과 참여연대가 공동으로 "고실업사회의 최우선적 과제,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을 즉각 제정하라"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하였으며, 같은 해 11월 26일에는 "IMF 1년: 개혁을 위한 시민행동"에 참가하는 18개 단체가 중심이 되어 "국민복지 권리선언"을 발표하고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의 제정을 촉구하였다. 이러한 노동시민사회단체의 노력의 결과로, 1998년 12월 28일에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를 통과하여, 기초생활보장법 제정에 성큼 다가섰으며, 이제는 우리 나라도 국민들이 어떠한 경우라도 기초적인 생활은 유지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된 문명국의 대열에 들어선다는 희망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어떠한 사회개혁에도 그러하듯이, 개혁에 반대하는 보수세력의 저항 또한 만만치 않게 전개되었다. 지난해말 국무총리실의 국무조정실장은 국정협의과정에서 예산상의 이유를 들어 심의보류를 요청한 바 있다. 또한 기획예산위원회의 한 고위관계자는 "실업대책에 투입되는 예산은 도로 건설처럼 언젠가 회수되는 투자가 아닌데다 소득이전적 공적부조는 망국병을 초래한다"라고 발언하여, 현재 우리 사회의 근저에서 벌어지고 있는 가족해체와 이에 따른 사회적 불안에 대한 정부의 무감각성과 무책임성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다시 말해서 현 정부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 통과될 경우, 일할 의지와 능력을 갖춘 실업자의 근로의욕 저하는 물론, 복지체계가 제대로 구축된 선진국에서 만연된 이른바 '복지병'이 번질 우려가 짙다는 점을 들어, 반대의사를 분명히 하고 있다.

이렇듯 정부의 완강한 반대에 부딪혀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의 제정이 매우 불투명해지자, 올해 초 노동시민사회단체에서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제정추진 연대회의(준)"를 구성하여, 전국적인 연대기구를 발족하기로 합의하였다. 연대회의(준)에서는 송경용 성공회 신부를 준비위원장으로 위촉하고, 여러 차례 준비실무자 회의를 거쳐 드디어 올해 3월 4일에는 총 28개단체로 구성된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제정추진 연대회의(이하 연대회의)"의 발족식 및 기자회견을 가졌으며, 같은 해 3월 17일에는 "저소득 실직자 생계문제 대책마련을 위한 시민 공청회"를 개최하여 본격적으로 제정추진 운동을 벌이고 있다.

이 공청회에서 현 정부에게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을 제정하려는 의지가 없음을 다시 한번 확인한 연대회의는, 이 법의 직접적 대상자인 한계계층과 더불어 정부를 설득하고 압박을 가하는 방향으로 운동을 추진할 계획이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올 4월에 주민기초생활보장 조례 제정안을 전국적으로 동시에 입법청원을 할 계획이고, 이어 전국실업자 거리대행진, '인간 안전망 잇기'운동, 그리고 국민서명운동 등을 보다 적극적으로 전개할 예정이다. 또한 일반 시민들의 이해와 협조를 얻기 위하여, 대국민 홍보용 소책자를 제작하여 전국적으로 배포할 예정이고, 각 지하철 역사에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제정의 필요성과 역할을 소개하는 포스터를 부착할 예정이다.

정부의 복지병 논리에 대한 연대회의의 입장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정부가 '복지병'의 논리를 들어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의 제정을 반대하는 것은, 우선 논리적 근거가 미약할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낮은 복지수준의 현실을 도외시한 처사로서 그 허구성을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정부에서 주장하고 있는 복지병의 논리는 "복지제도를 확충할수록 근로의욕을 감퇴시켜, 장기적으로 경제발전의 잠재력을 훼손한다"라는 가정에 기초하여 있다. 하지만 이러한 복지국가의 근본을 훼손하는 가정은 학문적으로 검증된 바가 없이 아직까지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데, 이와 같이 검증되지도 않은 가정을 기초로 국가정책의 방향을 정한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발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만약 이러한 가정을 부분적으로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아래의 <표 1>와 같이, 우리 나라의 복지예산의 수준은 저소득자의 근로의욕을 감퇴시킬 정도로 높은 수준은 결코 아니다.

<표 1> 주요국의 GDP 대비 사회보장 지출비의 비중 (1993)

호주* 16.38 일본* 12.44
뉴질랜드* 22.51 영국 23.42
프랑스 28.73 미국 15.64
독일 28.27 스웨덴 38.03
이탈리아 25.00 한국 4.42

주 *: 1992년

출처: OECD, Social Expenditure of OECD Members Countries, 1996; 한국 자료는 고경환,계훈방, , 한국보건사회연구원, 1998

더욱이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을 실시할 경우, 총 공공부조 비용은 2조7천억원( 현재 정부에서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을 제정할 경우 예상되는 추가소요예산을 약 1조 6천억원으로 파악하고 있다. 하지만 이 액수는 배정인원과 실제인원의 차이를 무시하였고, 자가소유자와 무료임대주택 거주자에게도 주거급여를 제공하는 것으로 계산되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수정이 필요하다. 연대회의에서 잠정적으로 집계한 추가소요예산은 약 1조 2천억으로, 현재 생활보호예산인 1조5천억을 합할 경우,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소요될 총 예산의 규모는 약 2조7천억원으로 예상된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예산의 자세한 산출내역은 문진영(1999),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제정의 쟁점과 전망」, 『저소득실직자 생계문제 대책마련을 위한 시민 공청회 발표자료』를 참조하시오. )정도로 우리 나라 GDP(1997년 기준)의 약 0.6% 정도인데, 아래의 <표 2>에 나타나듯이, 주요국의 GDP대비 사회부조 지출비의 비중에 비하여 결코 높은 수준이 아님을 알 수 있다.

<표2> 주요국의 GDP 대비 공공부조 지출비의 비중 (1992)

호주 6.8 일본 0.3
뉴질랜드 2.5 영국 4.1
프랑스 2.0 미국 3.7
독일 2.0 스웨덴 1.5
이탈리아 3.3    

출처: Department of Social Security(U.K), Social Assistance in OECD Countries Volume 1: Synthesis Peport, London: HMSO. 1996, p.35

둘째, 정부가 저소득자의 기초생활을 보장할 경우, 근로의욕을 감퇴할 수 있다는 가정은 노동시장의 진입이 상대적으로 자유로웠던 고성장 저실업 사회에서는 부분적으로 타당할 수도 있으나, 현재와 같이 일할 의사와 능력이 있어도 일자리가 없어서 일하지 못하는 저성장 고실업의 현실에서는 전혀 설득력이 없다. 특히 건설일용직 근로자의 한달 평균 근로일수가 5-6일에 지나지 않은데다가 노임단가가 계속 하향조정되고 있는 현실에서 정부가 계속 복지병 논리를 강변하며,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의 제정에 반대하는 것은 정부의 안일한 현실인식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셋째,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급여의 수준은 결코 근로의욕을 감퇴할 정도로 넉넉한 정도가 아니라, 그야말로 최저생계만을 보장하는 최소한도의 수준이다. 따라서 이 정도의 급여수준 때문에 근로할 능력과 의사가 있는 사람이 근로를 포기한다는 것은 지나친 기우일 뿐만 아니라, 이는 결국 현 정부가 헌법에서 부여한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전면적으로 부정하고 있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

넷째, 아래의 <표 3>에서도 나타나듯이, 실업자의 대다수(77.3%)가 근로조건이 실직전보다 못한 일자리라도 구해서 생계를 이끌어 가겠다는 적극적 의지를 표명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우리 국민의 정서상, 저소득자 중에서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생계급여 때문에 근로의욕이 감소하는 사람은 그야말로 극소수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표 3> 실업자가 취할 행동

(단위 %)

  아니다 그렇다
전망이 밝은 직종의 직업훈련을 받을 것이다 38.9 50.0
예전과 보수가 비슷한 일자리를 구할수 있을 것이다 42.5 37.4
예전보다 못한 일거리라도 어떻게든 구해야 한다 12.0 77.3
실업자의 시위가 있으면 참여하겠다 72.9 17.8
열심히 노력하면 예전의 생활수준을 조만간 회복할수 있을 것이다 17.7 63.4

주: "그저 그렇다"라고 응답한 사람을 제외한 비율임

출처: 한국보건사회연구원, 한국노동연구원, <실업실태 및 복지욕구조사>, 1998.11 (미간행 보고서)

결론: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정책과제

현재 정부에서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대해서 반대 입장을 고수하는 이유에는 예산상의 부담도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근로할 수 있는 연령의 저소득자에게 생계급여를 제공함으로써 나타날 수 있는 도덕적 해이를 우려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정부의 우려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법에서는 분명히 급여대상자의 자활능력을 고려하여 이들에게 자활의욕을 고취시키는 조항을 두고 있다. 예를 들어, 법 제4조제1항에서는 "이 법에 의한 보장은 급여대상자가 자신의 생활의 유지 향상을 위하여 그 자산 근로능력을 활용하여 최대한 노력하는 것을 전제로 이를 보충발전시키는 것을 기본원칙으로 한다"라고 적시하고 있으며, 법 제7조제2항에서는 "생계급여는 대통령령이 정하는 바에 따라 수급자의 생계유지 능력을 감안하여 달리 행할 수 있다"라고 명시하여 자발적 실업 저소득자에게 생계급여를 제한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두고 있다. 또한 법 제15조(자활급여), 제16조(자활후견기관), 그리고 제17조(자활공동체) 등에서는 급여대상자의 자활을 촉진하는 내용을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다. 따라서 이 법이 추구하는 근본 목적이 결코 자발적 저소득 실업자에게 무한정으로 급여를 제공하는데 있지 않으며, 또한 근로의욕을 고취 유지시킬 수 있는 여러 제도적 방안을 적시하고 있기 때문에 정부관계자의 우려는 그야말로 기우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정부의 할 일은 저소득자에게 기초적인 생계를 보장받을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을 제정하되, 제도의 효율적 운영을 위한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정부는 급여대상자, 사회복지전문요원, 사회복지 전문가 그리고 시민사회단체와 머리를 맞대고, 이 제도를 통해서 저소득자의 기초생계를 보장하는 일방으로 근로의 기회와 능력을 제고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선진 각국에서도 저소득 실직자에게 기초적인 생계를 보장하는 한편으로, 이를 기초로 근로를 유인할 수 있는 효과적인 사회안전망 구축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예를 들어, 영국 정부는 기존의 사회보험 성격의 실업급여(Unemployment Benefit)와 공공부조 성격의 소득보조(Income Support)를 하나의 급여제도로 연결시키는 구직급여(Jobseeker's Allowance)를 1996년 10월부터 실시하고 있고, 이러한 급여통합을 기반으로, 1998년 4월부터 복지와 근로를 연계시키는 신고용협정(New Deal)(월간[복지동향] 창간호 참조)을 실시하여 상당한 효과를 거두고 있다. 따라서 현재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는 공공부조 성격의 기초생활보장제도와 고용보험제도를 포함한 고용서비스 제도를 효율적으로 연계시킬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문진영/서강대학교 수도자대학원 사회복지학과 교수,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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