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째 아이부터는 분만급여를 받을수 없다!?

자녀가 많으면 원시인?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셋째 아이부터는 출산시 의료보험 혜택을 받지 못했다. 그래서 세 명 이상의 아이를 낳은 사람들은, 더구나 수술로 아이를 낳은 사람들은 많은 진료비를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96년, 김영삼 정부가 35년 이상 계속된 "둘만 나아 잘 기르자"는 정책을 폐기한 후, 분만급여는 아무런 제한 없이 지급되고 있다.

가족계획과 산아제한이 극성을 부리던 시절에는 자녀가 많은 사람들은 마치 원시인 또는 무식한 사람으로 취급받기도 했다. 사실은 가난한 나라들일수록 산아제한을 했는데도 말이다. 산아제한정책에 대하여는 찬반양론이 있을 수 있다. 너무나 가난한 시절, 별다른 대안이 없어 써 온 야박하고 반인권적인 그리고 전근대적인 정책이었다는 비판에서부터, 빵을 나눠 먹으려면 불가피했다는 변명론에 이르기까지 …

97년 12월 24일. 헌법재판소는 분만급여 2자녀 제한의 거의 마지막 희생자 중 하나인 A씨의 헌법소원에 대해 지금부터 보게 될 결정을 내렸다(97. 12. 24. 95헌마390). 오늘 우리는 아무리 많은 자녀를 낳아도 분만급여를 받고 있다. 그래서 혹자는 헌법재판소의 위 결정을 과거지사로 돌려버리겠지만, 과연 그럴까?

분만급여 제한에 맞서 헌법소원을 제기하다.

A씨의 아내는 제왕절개수술 끝에 셋째 아이를 출산하였다. A씨는 의료보험 덕분에 진료비 500만원 중 200만 원만을 부담하면 되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A씨는 의료보험조합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내용의 통지문을 받게 되었다. "두 자녀까지만 분만급여를 받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귀하는 부당이득금 300만 원을 납부하여야 합니다." A씨는 급히 의료보험법의 관련 조항을 뒤져보았다.

의료보험법 제31조(분만급여)

① 피보험자 또는 피부양자가 요양기관에서 분만하는 때에는 분만급여를 실시한다.

② 제29조 제3항의 규정은 제1항의 경우에 이를 준용한다.

제29조(요양급여)

③ 제1항의 규정에 의한 요양급여의 방법·절차·범위·상한기준 등 요양급여의 기준은 보건복지부장관이 정한다.

한편, 보건복지부장관이 마련한 '분만급여기준'은 "분만급여 대상은 2자녀에 한한다"는 제한규정을 두고 있었다. 의료보험조합은 이러한 근거에서 A씨에게 분만급여의 환급을 통지한 것이었다.

A씨는 의료보험법에서 분만급여의 범위와 상한기준을 보건복지부장관이 정하도록 위임한 결과 보건복지부장관이 위와 같은 분만급여기준을 정하게 되었고, 이는 헌법상의 행복추구권, 평등권, 모성보호 및 보건의 보호규정에 위배된다는 이유로 헌법소원을 제기하였다.

이 사건에서는 두 가지가 쟁점으로 등장했다.

첫째, 분만급여의 범위와 상한기준을 보건복지부장관이 정하도록 위임한 의료보험법 제31조 제2항이 위임입법의 한계를 벗어난 것은 아닌지?

둘째, 위 법률조항이 행복추구권, 평등권, 모성보호 및 보건의 보호규정에 위배되는 것은 아닌지?

복지행정입법에서는 포괄적 위임도 허용된다?

법률이 어떠한 사항을 행정부의 명령 등에 위임할 때에는 "구체적으로 범위를 정하여" 위임하여야 한다(헌법 제75조, 제95조). 그래서 포괄적으로 위임하는 것은 헌법 위반이다. 다시 말해 법률이 어떤 사항을 행정입법에 위임하더라도 구체성, 명확성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의료보험법 제31조 제1항은 "분만하는 때에는 분만급여를 실시한다"고 하여 분만급여를 지급하지 않을 수 있는 예외를 허용하지 않는 것처럼 규정하고 있는데, 보건복지부장관이 분만급여 기준을 만들면서 분만급여를 주지 않는 예외를 만든 것이다. 그리고 보건복지부장관이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분만급여의 방법·절차·범위·상한기준 등 분만급여의 기준은 보건복지부장관이 정한다"는 위임규정 덕분이었다.

헌법재판소의 다수의견은 위 법률조항이 포괄위임은 아니어서, 합헌이라고 판단하였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우선 사회적 기본권의 실현은 결국 국가가 자원을 배분하는 것인데, 자원은 한정되어 있다. 따라서 한정된 자원의 분배는 민주적 정당성을 가진 입법자(국회)의 과제이다. 다만 이 경우에도 그와 같은 권리를 축소할 때 반드시 법률 그 자체에 의하여야 하는 것은 아니고 행정입법에 위임할 수도 있다.

또한 위임입법에서 요구되는 구체성과 명확성의 정도도 규제대상의 종류와 성격에 따라 달라진다. 즉 사회복지행정과 같은 급부행정의 영역에서는 기본권 침해의 영역보다는 구체성, 명확성의 요건이 완화된다는 것이다.

더욱이 의료보험제도에서는 한정된 재원으로 최적의 의료보험급여를 하기 위해 많은 것을 고려하여야 하기 때문에 분만급여의 방법·절차·범위·상한기준 등을 미리 법률에 상세하게 규정하는 것은 입법기술상 매우 어렵고, 또한 반드시 법률로써 정하여야 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한편 세 명의 재판관(김용준, 고중석, 이영모)은 다수의견에 반대하여 이 사건 법률조항이 위헌이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의료보험법에서 분만급여를 실시한다고 규정하여 피보험자 등에게 분만급여청구권을 부여하면서 분만급여청구권의 본질적인 내용인 분만급여의 범위·상한기준에 관하여 아무런 정함이 없이 그것을 전적으로 보건복지부장관에게 위임하였고, 다수의견이 주장하고 있는 바와 같이 분만급여청구권의 범위나 상한기준 등의 대강을 미리 법에 정하는 것이 입법기술상 어려운 일이라고 할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이 법의 체계나 구체적인 규정을 검토해 보아도 위임의 범위나 한계를 확정할 수 있는 근거가 없으므로 결국 이 사건 법률조항은 포괄적인 위임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위임입법의 한계를 규정한 헌법 제 75 조에 위반된다(필자가 일부 발췌함).

분만급여 제한과 행복추구권, 평등권 등과의

함수관계

이 사건 법률조항이 행복추구권, 평등권, 모성보호 및 보건의 보호규정에 위배되는지에 대하여 다수의견은 "보건복지부장관이 정한 분만급여기준에 대한 평가는 별론으로 하더라도, 보건복지부장관에게 분만급여의 범위와 기준을 위임한 법률규정이 바로 청구인의 행복추구권 등을 침해하였다고는 볼 수 없다"는 입장을 취하였다. 만일 A씨가 분만급여기준을 위헌이라고 다투었다면(A씨는 의료보험법의 법률조항만을 위헌이라고 다툰 것 같다), 헌법재판소가 어떤 결론을 내렸을지 자못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결국 헌법재판소는 6 : 3으로 A씨의 헌법소원을 기각하였다.

헌법재판소의 판단 중 법률이 보장한 사회적 기본권마저도 보건복지부장관이 축소할 수 있다는 대목과 사회복지행정 분야에서는 위임입법의 대원칙인 구체성·명확성의 원칙이 완화될 수 있다는 대목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부분이다. '둘만 나아 잘 기르자'는 정책에 맞서 많은 자녀를 둔 당시의 피해자들에게 심심한 위로의 말을 전하고 싶다.

임성택 / 변호사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


참여연대 NOW

실시간 활동 SNS

텔레그램 채널에 가장 빠르게 게시되고,

더 많은 채널로 소통합니다. 지금 팔로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