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장애아가 의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한 사건

장애인으로 태어난 것은 태어나지 않은 것만 못하다?!

당신이 아이가 장애인이라면? 그리고 당신이 그 사실을 임신 중에 알게 되었다면,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하였을까?

얼마 전, 장애를 가진 아이를 갖게 된 어느 부부가 어렵사리 그 아이를 낳기로 결심하고 출산할 때까지의 이야기를 방영한 다큐멘터리 프로를 본 일이 있었다. 그리고 얼마 후, 정신지체장애인을 수용하고 있는 시설에서 강제로 불임수술을 해왔다는 충격적인 보도도 보았다. 이 두 가지 이야기를 접하면서, 떠오른 판례가 지금부터 소개하는 판례이다(대법원 1999. 6. 11. 선고 98다22857 판결). '장애인으로 태어나는 것은 태어나지 않은 것만 못하다'는 말 – 사실 우리의 열악한 복지현실에서는 수긍할 수 있는 말이기도 하다 – 에 대하여 곱씹어볼 수 있는 사례이다.

갓난아기가 소송을 제기하게 된 사연

이 사건의 원고는 '다운증후군'이라는 기형을 가지고 태어난 갓난아기였다. 물론 소송은 부모들이 아이를 대리하여 제기하였다. 원고의 엄마는 서른 셋에 둘째 딸인 원고를 임신하였고, 11주쯤 된 때부터 출산할 때까지 어느 종합병원의 산부인과에서 정기적으로 진찰을 받았다. 그리고 이 사건의 피고는 그 종합병원과 원고의 엄마를 계속 진찰한 산부인과 의사였다.

원고의 엄마는 첫딸을 가졌을 때 '선천성 뇌수종'이라는 진단을 받고 놀란 일이 있었다. 그렇지만 첫딸은 다른 병원에서 '선천성 뇌수종'이 아닌 것으로 판명되었고 정상아로 출생하여 잘 자랐다. 또 엄마의 사촌 중에는 장애를 가진 언니와 오빠가 있었다. 이러한 사정 때문에 엄마는 자신이 임신한 둘째 아이가 정상아인지에 대하여 특별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나중에 피고가 된 의사에게 이러한 사정을 말하면서 기형아 검사를 해줄 것을 부탁하였다. 의사는 초음파 검사에 의하여 태아가 정상이라고 판단하였고, 서울에 있는 기형아 전문검사기관에 기형아 검사를 의뢰하여 정상수치라는 판정도 나왔다. 그런데도 엄마는 계속 태아의 크기가 작다느니, 태동이 없다느니 하면서 의사에게 진찰을 받았는데, 그 때마다 의사는 태아가 정상이라고 진단하였다. 그런데 그 아이는 다운증후군의 기형아로 태어나고 말았다.

기형아로 태어나게 한 손해의 배상을 청구하다.

태아가 기형인지를 진단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고 한다. 그리고 여러 검사를 동시에 하는 경우(이를 '트리플마커 검사'라고 한다)에는 다운증후군을 검출할 확률을 60% 이상으로 높일 수도 있었다. 그런데 의사는 이러한 검사방법에 관하여 설명하지 아니하였고, 결국 원고의 엄마는 이러한 검사를 받지 못한 채 다운증후군에 걸린 원고를 출산한 것이었다.

원고는 의사의 이러한 잘못으로 인하여 엄마로 하여금 '확실한 검사방법을 택해 태아가 기형아인지의 여부를 확인하고, 만일 그 태아가 기형아라면 낙태할 수 있는 기회'를 상실하게 함으로써, 기형아인 원고 자신을 태어났다고 주장하면서, 원고 자신의 향후 치료비 및 양육비 상당의 손해를 청구하였다.

한편 모자보건법에는 인공임신중절수술을 할 수 있는 경우를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다운증후군은 유전성 질환이 아니므로, 인공임신중절수술을 할 수 있는 경우가 아니었다. 우리 대법원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원고의 청구를 기각하였다.

엄마라도 낙태할 결정권이 없다.

"다운증후군은 인공임신중절사유에 해당하지 않음이 명백하여 원고의 부모가 원고가 다운증후군에 걸려 있음을 알았다고 하더라도, 원고를 적법하게 낙태할 결정권을 가지고 있었다고 보기 어려우므로, 원고의 부모의 적법한 낙태결정권이 침해되었음을 전제로 하는 원고의 이 사건 청구는 받아들이기 어렵다."

장애를 갖고 태어난 것을 낙태로 출생하지 않은 것과 비교해서 법률적으로 손해라고 할 수 없다.

"원고는 자신이 출생하지 않았어야 함에도 장애를 가지고 출생한 것이 손해라는 점도 이 사건 청구원인 사실로 삼고 있으나, 인간 생명의 존엄성과 그 가치의 무한함(헌법 제10조)에 비추어 볼 때, 어떠한 인간 또는 인간이 되려고 하는 존재가 타인에 대하여 자신의 출생을 막아 줄 것을 요구할 권리를 가진다고 보기 어렵고, 장애를 갖고 출생한 것 자체를 인공임신중절로 출생하지 않은 것과 비교해서 법률적으로 손해라고 단정할 수도 없으며, 그로 인하여 치료비 등 여러 가지 비용이 정상인에 비하여 더 소요된다고 하더라도 그 장애 자체가 의사나 다른 누구의 과실로 말미암은 것이 아닌 이상 이를 선천적으로 장애를 지닌 채 태어난 아이 자신이 청구할 수 있는 손해라고 할 수는 없다."

팔다리가 없지만, 귀여운 우리 아기

"오체불만족"이란 책으로 유명해진 일본의 오토다케는 팔다리가 없이 태어났다. 그런데 그런 아들의 모습을, 태어난 지 1달만에 처음으로 본 엄마의 첫마디는, "어머, 귀여운 우리 아기!"였다고 한다. 장애인을 임신하였다고 해서 쉽게 낙태를 결정하고, 장애인에게 불임수술을 강요하며, 장애인으로 태어난 것에 대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밖에 없는 우리 현실은 '장애인들이 자신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비장애인들 또한 장애인을 이상한 눈초리로 쳐다보지 않는 사회', '장애인복지가 잘 되어있는 사회'를 앞당기지 않고서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임성택 /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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