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품'판매자가격표시제도'

지난 1월 20일 정부는 그 동안 계속 문제를 일으켜 왔던 의약품 가격 혼란(약국마다 가격 차이가 많아서 생기는 소비자 불편)을 없애고, 소비자가 경쟁에 따른 의약품 가격 인하 혜택을 누릴 수 있게 하기 위한 수단으로 의약품 판매자 가격 표시 제도를 도입했다. 의약품 판매자 가격 표시 제도는 예전에 의약품 제조업자 또는 수입자(이하 "제조업자 등")가 의약품에 표준소매가격을 표시하던 것을 일반 소비자에게 의약품을 판매하는 약국 등 개설자가 실제 판매가격을 표시하는 제도이다.

의약품 판매자 가격표시는 시기를 구분하여 단계적으로 적용한다. 제조업자 등이 표준소매가격을 표시하지 않고 출하한 제품에 대하여는 '99.1.20일부터 판매가격을 표시하고, 표준 소매 가격이 표시되어 약국 등 개설자가 보유하고 있는 기존 의약품은 2.28일까지 판매가격을 표시하여 진열 또는 판매하여야 한다. 즉, 3월 1일부터는 약국 등에서 판매하는 모든 의약품에 판매자가 가격을 직접 표시하여야 한다. 가격 표시는 원칙적으로 의약품 개별 포장이나 용기에 부착하여야 하나 다량으로 소비되는 의약품에 대하여는 종합가격표를 약국에 게첨하고 별도 표시를 하지 않을 수 있다. 이 종합 가격표는 약국 외부나 창문 등이 아닌 장소로 반드시 약국내부에 소비자가 잘 볼 수 있는 곳에 부착하여야 한다. 가격 표시를 하지 않거나 표시한 가격을 지키지 않는 경우는 행정 처분 대상이 된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이전보다 싸게 약을 구입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주위 약국이 담합을 하거나 제약회사가 가격을 올려 공급할 경우 오히려 구입 가격이 비싸질 수도 있다. 실제 1월 이후 약국은 반회 등을 통하여 가격을 맞추려는 움직임이 있고, 제약회사도 자사가 생산하는 유명 품목의 공급 가격을 대폭 인상하여 공급하는 등 제도 취지에 역행하는 사례가 많이 발생하고 있다. 한 일간지 조사결과 제약회사들이 가격결정의 주도권을 잡고 제품가격을 무차별적으로 올릴 기미를 보이고 있으나 전문지식과 가격정보가 부족한 소비자들은 따라갈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으로 드러났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새 제도 실시에 따른 약값인하 효과는 나타나지 않고 있으며, 오히려 제약사들이 유명품목에 대한 가격관리를 강화하여 대부분 유명 의약품의 가격이 올랐다고 한다. 한 약국은 지난해말 8백원 정도에 구입했던 소화제(10알)를 1천2백원에 들여놓아 판매가를 1천 원에서 1천2백∼1천3백원으로 올렸다. 또 두통약(10알)은 7백원에서 9백50원, 드링크(1박스)는 2천5백원에서 2천8백원, 위장약(4포)은 1천1백원에서 1천5백원까지 납품가격이 올라 원가 혹은 최소 마진만 받고 팔아도 가격은 더 오를 수밖에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제약회사뿐 아니라 약국도 만만치 않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소비자문제를 연구하는 시민의 모임에 따르면 서울지역의 약국 대부분이 판매자가격을 표시하지 않고 지역약사회의 지침 등을 기다리고는 등 가격 담합을 위한 집단행동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약국가의 이러한 움직임에 대하여 공정거래위원회가 약국들이 의약품의 판매가격을 스스로 결정 표시하지 않고, 지역 약사회의 가격지침 등에 따라 판매 가격을 결정하는 경우 담합행위로 간주해 제재를 가할 방침이라고 하지만 2만개가 넘는 약국에 대해 일일이 가격 조사를 하지 않는 한 담합을 밝히기 어려운 문제가 있어 얼마나 실효를 거둘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정부는 규제개혁차원에서 약국판매 약값은 어디까지나 시장의 경쟁원리에 맡긴다는 입장이다. 행정적으로 약국이 실구입가 미만으로 덤핑 판매하는 것이 드러나면 약사법 시행규칙에 따라 해당약국에 영업정지 처분을 내리고 약값 담합은 공정거래법을 통해 다스린다는 방침이다. 또 시민단체가 가격 정보 제공에 나설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의약품 가격정보가 제한된 소비자들에게 시민단체 등이 조사한 지역별 주요의약품 가격정보를 반상회보나 지역신문을 통해 주민들에게 제공함으로써 약값에 대한 불신을 해소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의 여러 조처에도 불구하고 소비자를 보호하고 의약품 가격에 대한 소비자의 신뢰를 확보하겠다는 목적으로 도입한 새 가격제도가 실제 시행단계에서는 제약회사와 약국의 이익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진행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실제 정부는 사입가(약국의 구입가) 이하 판매라는 덤핑 행위는 철저히 단속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이에 따라 제약회사는 약국에 공급하는 의약품 가격을 올리고 있다. 반면 의약품 가격이 지나치게 비싸게 판매되는 행위에 대해서는 아무런 제어 장치가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의약품의 상한을 규제할 아무런 장치가 없기 때문에 잘 알려지지 않은 의약품은 폭리를 취할 수도 있는 구조이다. 얼마 전에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예천 중앙약국의 경우처럼 약국이 폭리를 취한다 하더라도 아무런 제제 수단이 없다.

시행 한 달만에 여러 문제점을 노출하고 있는 새 가격 제도의 성패는 소비자에게 얼마만큼 정확한 가격 정보를 전달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대한약사회에서도 지적하고 있듯이 2만여 종이 넘는 의약품에 대한 가격정보가 없는 소비자들이 불이익을 당할 우려가 있다. 품목이 다양하고 소량씩 생산하는 제약산업의 특성상 특정 의약품의 경우는 터무니없는 가격으로 구입할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은 타당하다 하겠다. 그 동안 표준소매가격이 소비자들에게 의약품 가격정보를 제공하는 구실을 해왔으나, 이제 이런 정보가 없이 약국의 판매가만 접하게된 소비자들은 약값이 적정한지 의혹을 갖게 될 수밖에 없다.

표준소매가 제도가 실패한 것도 정부가 이에 대한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결국 의약품 판매자 가격 표시라는 새 가격제도가 애초의 취지대로 소비자에게 이익을 주는 방향으로 갈 것인지, 표준소매가 제도처럼 유명무실한 제도가 될 것인지는 정부가 가격 정보 제공 등의 후속조처를 얼마나 잘 시행하느냐에 달려 있다.

홍춘택/건약(정식명칙으로)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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