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사회보장과 국민복지 기본선’ 연구에 대한 소고찰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1998년 12월에 마무리한 이 연구는 무엇보다도 우리 나라에서는 처음으로 국민복지기본선을 규정하려는 시도를 하였다는 데 의의가 있다. 그 동안 생활보호를 둘러싸고 있었던 논쟁 중에서 가장 논의가 많이 되었던 것 중의 하나는 제공되는 생계비의 수준이었다. 특히 현재는 최저생계비의 100%를 지급하고 있다고 보건복지부에서는 주장하고 있으나, 반면에 학계에서는 아직도 현실에 맞지 않는 최저생계비라고 주장해 왔다. 결국, 이 논쟁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최저생계비를 어떻게 책정할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국민복지기본선” 연구는 소득, 건강, 고용, 주거, 사회복지서비스에서 포괄적으로 모든 국민이 일정 수준 이상의 생활을 유지해야 한다는 과제를 설정하고, 과연 그 일정 수준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제시하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구체적인 수준이 제시되지 않으면 실제로 정책을 운영하면서 많은 부분이 단지 말의 잔치로만 끝날 위험이 많다. 따라서, 헌법이 보장하는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실질적으로 보장하고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수준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할 것이다.

“국민복지기본선” 연구에서는 국민복지기본선을 ‘한 사회가 ① 공적 제도를 통해 개별 사회구성원에게 ② 경제·사회적 발전 수준에 부합되게 ③ 제공하는 제반 사회복지의 수준’으로 정의하였다. 더 나아가 국민복지기본선을 국민복지최저선(Minimum Level)과 국민복지적정선(Adequate Level)의 두 가지 유형으로 구분하였다.

이 연구에서는 국민복지최저선과 국민복지적정선을 여섯 가지 측면에서 비교를 하고 있다. 첫째, 기본선의 수준에 있어서, 최저선에서는 ‘우리의 경제력 수준에서 최소한으로 제공되어야 할 수준’이라고 밝힌 반면, ‘적정선’은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않은 채 ‘적정급여로의 발전이 필요하다’라고 언급하고 있다. 둘째, 보장의 책임 주체에서 최저수준의 보장 책임은 국가에게 있으며, 적정수준의 책임 주체는 국가, 기업, 기관, 개인으로 보고 있다. 셋째, 재원의 부담 방식에서 최저선은 국가재정에서, 적정선은 책임 주체별로 재원을 분담하여야 하는 것으로 보았다. 넷째, 주요 적용 대상에서 최저선의 주요 대상은 사회적 위험에 스스로 대처하기 어렵거나 불가능한 계층이며, 적정선의 주요 대상은 노동시장에서 시장임금을 통해 어느 정도 사회적 위험을 대처할 수 있는 저소득 이상의 계층 혹은 위험을 사회적으로 해결하는 방식이 훨씬 효율적인 경우이다. 다섯째, 권리의 성격에서 최저선은 구체적 권리이며 적정선은 추상적 권리의 성격을 갖는다고 보았다. 여섯째, 제도의 운영 원칙에서는 최저선과 적정선 모두에 수혜자와 가입자가 참여해야 한다고 보았다. “국민복지기본선” 연구에서는 이상과 같은 측면을 이론적 틀로 하여 소득, 건강, 고용, 주거, 사회복지서비스의 국민복지최저선과 국민복지적정선을 제시하고자 하였다.

이 연구가 갖고 있는 특징 중의 하나는 생존권 보장에 대한 철학적 논의를 역사적으로 전개하고, 이를 바탕으로 위에서 제시한 5 분야를 전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 분석틀을 제시하고자 하였다. 위에서 제시한 국민복지최저선과 국민복지적정선의 여섯 가지 측면에서의 비교는 바로 그 분석틀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연구가 이론과 실제를 연결시키고자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불구하고 연결은 제대로 되어 있지 못하다. 우선, 국민복지기본선의 이론적 고찰에서는 주로 일본의 생존권에 대한 철학의 발전 역사를 중심으로 서술하고 있다. 반면에, 국민복지기본선의 분석틀을 제시하는 것으로 볼 수 있는 국민복지기본선의 유형과 원리에서는 주로 서구 복지국가의 발달사를 서술한 후에 분석틀을 제시하고 있다. 이에 따라, 본 연구의 이론적 바탕이라고 할 수 있는 두 부분의 유기적 통합이 전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아쉬움이 크다. 그나마 국민복지기본선의 유형과 원리에서 전체적인 틀을 제시하고 있지만, 분석틀과 각 개별부분의 통일성은 떨어지고 있다.

각 장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보면, 각 장의 저자들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그 체제의 면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음을 간과할 수 없다. 그러나, 전반적으로는 각 장이 개념 정의, 현 제도의 특징과 문제, 국민복지최저선 및 국민복지적정선의 제시 및 이를 달성할 수 있는 정책 대안으로 이루어져 있다. 여기에서 문제는 본 연구의 목적이 국민복지기본선을 제시하고자 하는 것인지, 아니면 국민복지기본선을 달성하는 정책을 제안하고자 하는 것인지 불분명하다는 것이다. 서론에서 “본 연구의 목적은 현재의 한국사회에서 공적제도를 통해 제공할 수 있는 사회복지의 일정한 수준을 제시”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물론, 사회복지의 일정 수준을 제시하는 것이 그 일정 수준을 달성하는 방법과 반드시 연결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 연구의 내용에서 상당한 부분이 정책 대안의 제시에 할애되었음이 사실이다. 본 연구의 목적이 국민복지기본선을 설정하려는 것임을 인식하여야 한다.

먼저, 소득보장에서는, 1994년의 최저생계비조사에 기초하여 1998년의 최저생계비를 789,040원으로 제시하였으며, 장애인과 노인에 대해서는 특별한 욕구를 감안하여 추가 비용을 산정하였다. 이를 최저소득보장기준으로 보고, 이를 생활보호법의 최저생계비로 책정하는 한편, 국민연금의 균등부분의 기준으로 제시하였다. 한편, 적정소득보장수준에 대해서는 소득대체율의 개념을 도입하여 노령급여수준을 40~55% 수준으로 결정하여야 한다고 보았다.

소득보장에서 최저선은 대단히 구체적으로, 적정선도 상당히 구체적으로 제시되어 있는 반면에 건강보장에서는 기본선을 구체적으로는 제시하지 못하고 있으며, 주로 암묵적으로 동의(?)하고 있는 기본선을 확보하는 방법을 주로 열거하고 있다. 예를 들어, 국민의료비를 국내총생산의 7% 내외로 증가시키고, 보건에 대한 정부의 재정지출을 획기적으로 늘릴 필요가 있으며, 국민의료비의 효율적 관리가 중요하다고 밝히고 있다.

의료보장에 있어서 적정 보험료를 부담하고 형평성을 확보하며, 의학적으로 필요한 모든 예방서비스, 질병과 상병에 대한 처치, 재활, 분만 등에 대하여 급여를 실시하여야 한다고 제시하였다. 의료 서비스의 질에 있어서도 필요한 경우에는 지리적 여건과 경제적 부담 능력에 관계없이 적정수준의 의료 서비스를 제한 없이 제공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보았다. 보건사업에서는 전염병 관리, 예방접종, 지역 정신보건, 지역사회 건강증진 등의 영역에서는 국가가 전적으로 책임을 져야 하며, 가족계획, 모자보건, 영유아관리, 방문보건 등에서도 공공부문이 주된 역할을 하여야 한다고 보았다. 이와 같이 건강보장에서는 최저선과 적정선의 구분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으며, 그 내용도 구체성이 부족하다고 할 수 있다. 물론, 건강보장은 소득보장과는 성격이 다르다는 것도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실제로 건강을 구체적인 수치로 제시하기는 어려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예를 들어 국가가 지역 정신보건, 지역사회 건강증진에 어느 정도 개입해야 하는 것인지 구체적으로 제시할 필요는 있을 것이다.

고용보장의 경우는 소득보장이나 건강보장과는 또 다른 문제를 안고 있다. 고용보장의 내용을 보면 실질적인 최저선 또는 적정선의 제시가 아니라 ‘어떻게 고용보험을 확대하고, 어떻게 고령자, 장애인, 여성의 고용을 확대하는가?’라는 문제에 대한 개괄적인 해답을 주로 제시하고 있다. 실제로 고용보장의 경우 최저선과 적정선을 구분하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일일 수 있다. 다시 말해서, 고용보장의 최저선과 적정선은 단순히 ‘취업’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와 같은 문제는 이 연구에서 유지하고자 하는 분석틀에 따라 고용보장을 보려고 무리한 데서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고용보장에서는 고용보험의 개선책, 고령자, 장애인, 여성의 취업정책 등을 제시하고 있다.

주거보장에서도 기본선과 기본선을 확보하는 방법이 혼재되어 제시되고 있다. 예를 들어, 충분한 주택의 확보, 대책 없는 강제철거의 금지, 임차권의 법적인 보호 강화, 최저(적정) 주거기준의 설정, 주거비 보조제도의 확충, 특수욕구 집단의 주거보장 등을 기본선으로 제시함으로써 기본선과 그것을 확보하는 정책 제안이 뒤섞여 있다. 또한, 최저주거기준을 필수설비, 주택보급률 등으로 제시하고 있으나, 최저선과 적정선의 구분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상태이다.

이와 같이 기본선과 기본선을 확보하는 정책 제안이 혼재하여 나타나는 것은 아동복지, 장애인복지, 여성복지 등의 사회복지서비스 분야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나고 있다. 또한, 최저선과 적정선의 구분 역시 제대로 되어 있지 않다. 이렇게 볼 때, 본 연구의 이론 부분에서 추구하였던 최저선과 적정선의 구분이 제대로 되어 있는 분야는 소득보장 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선 최저선과 적정선으로 기본적인 틀을 채택할 필요가 있었는지 의문이다. 또한, 더 나아가 국민복지기본선이 필요한 분야를 소득, 건강, 고용, 주거, 사회복지서비스라는 방식으로 나눌 수 있는가 하는 문제도 다시 고려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몇 가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이 연구가 우리 사회의 복지선진화를 달성해 나가는데 중요한 기여를 하고 있다는 데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각 부분의 연구자들은 가능한 한 구체적인 기본선을 전체 이론적인 틀 안에서 제시하고자 노력하였다. 앞에서도 언급하였듯이 이 연구는 우리 나라에서 국민복지기본선을 제시하려는 최초의 시도였으며, 우리 사회가 복지의 기준으로 삼을 수 있는 표준을 제시하였다는 것은 큰 성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선우 /한국보건사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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