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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복지동향 200호 발행
  • 1998
  • 1998.10.10
  • 1291

의료보장 기능의 확대


지난 8월 8일 현행 조합방식 의료보험을 통합방식으로 전환하는 ‘국민건강보험법(안)’이 입법 예고되어 구체적인 모습을 드러냈다. 건강보험법안은 지난 20여년간 누적되어 온 조합방식 의료보험의 구조적 문제점을 일소함으로써 새로운 의료보장제도의 틀을 형성시키는 데 일대 전환기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건강보험법안은 사회시민, 노동, 농민 등 이른바 ‘밑으로부터의 운동’에 의해 법안이 제정된 최초의 사회보장법이며, 법안의 골격을 짜는 과정에서도 시민사회의 주도권이 관철된 최초의 사례라는 점에서도 상당한 의미가 담겨져 있다.

건강보험법안의 제정은 적어도 부담의 형평성과 의료의 보장이라는 측면에서 다음과 같은 효과가 예상된다.

첫째, 계층간, 지역간 보험료 부담의 형평성이 제고될 것이다. 건강보험법안에서는 지역의보에서 부과되는 세대, 가족수 보험료 등 정액의 기본보험료를 폐지하고 보험료 산정기준을 소득으로 일원화함으로써(69조) ‘능력비례 보험료 부담’원칙에 성큼 다가섰다. 물론 자영자의 소득비례 보험료의 가능성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되나 1998년 10월부터 시행되는 소득·재산기준의 국민의료보험 보험료 부과체계가 형평성의 측면에서 상당한 진전을 이루었고, 시행과정에서 제기된 문제점이 수정, 보완된다면 사회보험적 수준에서의 소득비례보험료 개발과 적용이 가능해질 것이며, 이는 보험료 부담의 계층간, 지역간 형평성 확보에 획기적 전기가 될 것이다.

둘째, 재정 통합으로 의료보험의 시대적 과제인 ‘적정부담·적정급여’체계로 연착륙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기존의 조합방식 의보에서는 급여수준이 재정이 열악한 지역의보에 맞추어졌기 때문에 수조 원의 적립금이 남아 있음에도 급여의 하향평준화 현상이 나타났고, 보험급여 확대정책도 추진하기가 어려웠다. 재정이 통합되는 건강보험법안은 저보험료 → 조합간 재정 격차 → 저급여·저수가 → 높은 비급여부담이라는 악순환의 연관관계를 차단하여 적정보험료 → 적정급여·적정수가 → 적정 본인부담이라는 내실 있는 의료보험을 구축하는 데 조합방식보다 훨씬 유리한 제도적 기반을 제공하게 된 것이다.

셋째, 건강보험이라는 명칭의 변화에서 알 수 있듯이 예방관련 급여가 대폭 늘어남으로써 포괄적 의료서비스 제공의 틀이 마련되었다. 건강보험법안에서는 예방·재활이 진료급여의 하나로 명문화되었고(40조), 건강검진이 법정 급여로 규정되었으며, 장애인 보장구 지급과 상병수당도 실시 근거가 마련되었다(48조∼50조). 즉, 전반적으로 기존의 의료보험보다 보험급여 확대 의지가 강하게 나타나 있어 포괄적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의료보장제도로의 발전에 큰 진전을 이루게 된 것이다.

이 외에도 건강보험법안이 시행되면 조합방식의 문제점으로 지적되어 온 관리운영비의 낭비, 2백만 명으로 추산되는 보험 누락자 발생, 자격상실·취득과정에서의 국민의 불편 등의 문제가 상당부분 해결될 것이다. 그리고 의료공급자의 대표적 불만사항이었던 진료비 심사업무가 ‘심사평가원’으로 독립됨으로써 심사의 공정성과 진료의 질적 적정성, 그리고 전문성의 확보라는 측면에서 상당한 진전을 이룬 것도 건강보험법안의 의의라 할 수 있다. 결국 건강보험법안으로 내실 있는 의료보장제도의 기능을 확보하는 데 획기적 계기와 제도적 기반을 마련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한계:제도와 기금운용의 가입자 참여 문제


건강보험법안은 제도운영과 의료보험기금의 운영에 기존 제도보다 다소 진전된 부분이 있으나 최근에 사회보장제도의 중요한 쟁점으로 부상하고 있는 가입자의 참여 문제는 근본적으로 개선하지 못하였다.

첫째, 국민건강보헙법 제5조에 의해 24인으로 구성되는 ‘건강보험심의위원회’는 기존의 ‘의료보험심의위원회’(21인)보다 복지부에서 추천하는 공익위원이 3인이 늘어나고, 시행령에서 규정된 위원구성 방식이 법률에 규정되었으며, 회의개최가 연 2회 이상으로 규정된 것 외에는 근본적인 변화가 없다. 따라서 가입자의 실질적 참여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① 건강보험심의위원회의 기능을 ‘심의’ 기능에서 ‘의결’ 기능으로 법률에 명문화함으로써 가입자가 정책 결정에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② 또한 제5조의 ‘주요 사항을 심의하기 위하여’라는 애매한 규정도 ‘국민건강보험법의 시행령과 시행규칙 및 하위 관련 규정의 제정 및 변경시’라는 표현으로 구체화시켜 기금운용을 제외한 의료보험과 관련된 모든 제도의 변경시 가입자의 의견이 제도적으로 반영되도록 해야 한다. ③ 법률에 규정된 회의 개최 횟수도 연 2회 이상에서 연 4회 이상으로 늘리고, 회의록의 열람·비치 등 회의 내용 공개에 관한 구체적 절차와 과정, 위원의 회의소집 및 의제설정에서 가입자의 권한 등을 법률에 명시하여야 한다. 예를 들어 위원 1/4이상의 발의에 의한 회의 소집, 가입자 대표의 의제 설정권 보장, 회의록의 비치 및 열람 의무화 등의 규정이 신설되어야 한다. ④ 가입자들의 이해관계와 상대적으로 독립되어 있는 공익위원의 수를 더 늘이고 공익위원 추천도 시민단체의 추천을 받도록 하는 것도 추가되어야 할 과제이다.

둘째, 건강보험법안에는 공단이 보유·관리하는 정보의 공개의무를 규정하는 의미 있는 조항(12조 4항)이 신설되었다. 그러나 공단운영에 대한 전반적인 가입자의 참여 보장에서는 기존의 운영 방식에서 달라진 것이 없다. 공단운영에 대한 가입자의 민주적 통제권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가입자 대표가 공단의 이사로 참여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가입자 대표의 이사 참여는 비상임이사와 상임이사 두 가지 종류가 있으나 상임이사로 참여하는 것이 공단운영에 대한 민주적 통제에 훨씬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 따라서 공단에 상임이사 3인과 상임감사 1인을 두도록 한 규정(19조 5항)을 상임이사 6인으로 변경하고 3명의 상임이사와 상임감사는 가입자 단체가 추천하는 이사 및 감사가 공단에 임명, 배치되도록 19조의 관련 조항이 수정되어야 한다.

셋째, 건강보험법안에 신설된 ‘재정운영위원회’는 심의·의결 기능을 확보하고 있고, 위원 구성도 가입자 대표가 2/3이상을 차지하고 있어, 가입자 참여에서는 상당히 획기적인 형태의 위원회이다. 그러나 문제는 재정위원회가 보험요율 조정, 기타 보험재정과 관련된 주요 사항을 심의·의결할 수 있으나(30조) 가장 중요한 ‘준비금’(기존의 적립금)에 대한 통제권이 없다는 것이다. 동법안 35조 3항에서는 준비금의 관리·운영은 복지부장관이 정한다고 규정하여 사실상 준비금에 대한 통제권은 복지부에 주어졌다. 이런 규정은 ‘준비금’에 대한 통제권을 복지부가 갖고, 보험요율 조정 등 민감하고 곤란한 사안은 재정운영위원회로 떠넘겨 버린 기형적인 재정운영 형태이다. 따라서 효율적인 재정운용을 위해서는 재정위원회가 준비금에 대한 통제권을 갖고, 준비금의 관리운영에 관한 세부 사항도 재정위원회에서 정하도록 관련 규정이 수정되어야 한다.

넷째, 법안 35조의 ‘준비금’의 명칭을 ‘의료보험기금’으로 바꾸어 정부관리기금으로 편입시키고 기금관리기본법의 규정을 받도록 해야 하며, 재정운영위원회의 명칭도 ‘의료보험기금운용위원회’로 바꾸어야 한다. 의료보험처럼 단기보험이면서 2조 원 정도의 규모를 갖고 있는 산업재해보상기금이 기금관리기본법에 의해 기금의 운용계획, 세부 내역, 결산 등이 국회에 보고되고 심사를 받는데 비해 연간 10조 원에 달하는 의료보험재정이 국회의 공적 통제를 받지 않는 것은 비상식적인 일이다(기존의 적립금도 정부의 통합재정수지에서 제외되어 있다).

현재처럼 준비금이란 명칭을 고수할 경우 공적 통제가 휠씬 약화되며, 정치적·행정적 필요성에 따라 기금운용이 왜곡될 가능성은 상존해 있다. 따라서 제35조의 준비금을 ‘의료보험기금’으로 바꾸고 재정위원회의 명칭도 ‘의료보험기금운용위원회’로 바꾸어 기금운용위원회에서 의료보험기금의 관리·운영, 보험요율의 조정, 기타 보험재정과 관련된 주요 사항을 심의, 의결할 수 있어야 한다. 의료보험을 제외한 3대 사회보험법에는 모두 기금 및 기금운용위원회가 설치되어 있고, 기금관리기본법에 의해 공적 통제를 받고 있음을 유의해야 한다. 기금운용에서 의료보험이 예외가 되어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향후의 주요과제

 

국민건강보험법안이 조합방식에서 파생된 의료보험제도의 비효율성과 불공평성을 극복하고 연대(solidarity)의 원리가 작용하는 의료보장제도의 ‘가능성’을 열었다는 점은 의문의 여지가 없으나 의보통합이 난맥상을 보이는 의료공급구조 및 진료비 지불제도와 상호작용하면서 계층·지역간 의료 접근도의 양상, 의보 재정의 지속가능성, 그리고 소득재분배에 미칠 영향은 여전히 불투명하다는 점을 냉정히 인식해야 한다. 따라서 이러한 불투명성을 극복하기 위한 보험 내부의 제도적 장치를 광범위하고 정밀하게 검토하여 실행 가능한 세부적 정책 대안을 만들어 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라 할 수 있다.

첫째, 포괄적 의료서비스 제공과 행위별 수가제는 장기적으로 ‘양립불가능’하다는 점을 철저히 재인식하고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건강보험법안은 분명히 포괄적 의료를 제공한다는 목적 하에 설계되었고, 보험급여 확대에도 제도적 진전을 이룩하였으나 진료비지불방식은 여전히 행위별 수가제를 고수하고 있다. 포괄적 보건의료서비스의 제공에 행위별 수가제가 결합된 의료보장제도는(comprehensive benefit guarantee with fee-for-service payments) 급여비 통제불가능 문제 때문에 여러 가지 제도의 조합(combination) 중 가장 최악의 조합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김영삼 정권하에서 행위별 수가제와 조합방식체제를 고수하면서 1995년부터 시행된 보험급여 확대와 수가인상 정책이 지역의보의 재정 불안정과 걷잡을 수 없는 급여비 팽창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을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따라서 진료비 지불방식의 개편이 중장기적으로는 포괄적 의료서비스 제공을 목적으로 하는 건강보험법안의 성패를 좌우하게 될 핵심 사안이기 때문에 실행 가능한 진료비 지불방식의 대안을 마련하고 이를 강도 있게 추진해야 한다. 당장 1999년부터 기획단을 구성하여 종합적인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둘째, 재정안정화 및 재정운영방식에 대한 총체적인 재점검이 필요한데 두 가지 측면으로 살펴볼 수 있다. 한 측면은 급여일수 제한 폐지와 건강검진 등 국민건강보험법상의 각종 급여가 시행될 경우 재정 수요를 예측해야 하며, 1999년 중에 실시예정인 의약분업이 의보재정에 미칠 영향을 추정해야 한다. 다른 측면은 재정통합으로 발생할 보험료 이전(소득분배) 메커니즘의 양상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의료보험에서 소득재분배 효과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은 문제가 있지만 최소한 역진적 분배현상이 발생하지 않아야 한다. 재정의 완전 통합시 고소득자와 도시지역주민에게 진료기회가 유리하게 배분됨으로써 소득역진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는 조합론의 지적은 논리적으로는 유효하다. 따라서 지역, 직장의 재정을 ‘한시적으로’ 분리 계정하는 방안, 혹은 총 의료보장재원을 시도단위 등 지역별로 할당하는 방식 등 모든 가능성을 열어 두고 세밀한 검토와 대안이 마련되어야 한다.

셋째, 추상적으로 언급되던 ‘적정 급여’에 대한 구체화된 기준이 설정되어야 한다. 이미 국민의 기대치는 저급여 수준에서 탈피했으나 우리의 경제적 수준에서 의료보험이 제공해야 하는 적정급여 수준은 사회적 합의를 얻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보험료 수준이 선진국의 1/3∼1/4 수준에 불과하기 때문에 적정급여로 이행하기 위한 적정한 보험료 부담에는 융통성이 있는 상황이다. 저부담 → 저수가 → 저급여 → 높은 본인부담금이라는 연결고리를 차단하기 위해서는 일단 적정급여 범위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정하고 부담 수준을 조정해 나가는 청사진이 제시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향후 5년내에 급여수준을 어느 정도로 늘이고, 이에 따라 부담수준이 어느 정도 높아지며, 본인부담금 수준은 어느 정도 낮아질 것인가에 대한 청사진이 국민들에게 제시되어야 한다.

넷째, 사회적으로 납득할 만한 수준의 보험료 부과체계가 개발되어야 한다. 10월 1일부터 시행된 국민의료보험법의 보험료 부과체계는 이전보다 부담의 형평성의 확보하는 데 상당한 진전을 이룩했으나 여전히 보완되어야 할 과제가 남아 있다. 합리적 부과체계를 개발하기 위해 의보뿐만 아니라 연금, 고용보험 등의 관련 조직과 국세청 합동으로 1999년내에 ‘자영자 보험료부과체계’를 개발하는 프로젝트를 진행시켜야 한다.

이외에도 4대보험 통합에 따른 의보관리운영기구의 개편 문제, 지역의보에 대한 국고지원 확보 문제 등 건강보험법안의 앞에는 많은 난제가 도사리고 있다. 따라서 국민건강보험법안은 통합의 끝이 아닌 ‘통합의 시작’이다. 1988년 농어민의료보험이 실시된 이후 근 10여 년 동안 의료보험의 통합과 보험급여 확대를 위해 노동자, 농민, 보건의료인을 비롯한 사회 각계 각층이 노력해 왔다. 그리고 그런 운동의 성과로 의료보험 통합이라는 소중한 결실을 맺게 된 것이다. 의보통합의 시행을 목전에 두고 있는 지금, 국민건강보험법이 경제위기 이후 더욱 위협받고 있는 국민의 건강을 지키는 파수꾼으로 이 땅에 깊은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통합을 요구할 때 가졌던 관심보다 더 큰 관심으로 건강보험의 앞길을 예의 주시하여야 한다.

 

 

김연명/상지대 사회복지학과교수, 참여연대 사회복지특별위원회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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