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분업의 경과와 쟁점

서론

1999년 7월 1일 실시를 목표로 추진되던 의약분업이 그 실시 시기를 1년 연기하기로 한 국회 본회의 결정에 따라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다. 이 연기의 조건으로 의사회와 약사회는 시민·소비자 단체와 함께 새로운 의약분업 안을 2개월 이내에 작성하기로 국민들 앞에 약속하였다. 보건의료단체와 시민·소비자단체는 이미 오래 전부터 의약분업을 중요 과제로 삼아 적극 추진하고 있었고, 따라서 이 새로운 국면에서 주도적 역할을 할 의향을 가지고 있다.

이는 의약분업의 추진 과정에 새로운 전기가 될 것이다. 이제 의약분업에 대한 정책 수립의 주체는 정부, 국회, 의약전문단체, 보건의료정책 전문가의 범위를 넘어서서 시민사회로 확산되게 되었다. 이러한 시도가 성공을 거둔다면 우리 나라 보건정책 결정에서 전례 없는 새로운 방식으로 기록을 남기게 될 것이다.

이 글은 이 새로운 논의의 출발점으로 쓰이기 위해 지금까지 의약분업이 논의된 경과와 아직 남아 있는 쟁점들을 정리해 보고, 앞으로의 논의 방향을 간략히 검토해 보고자 하는 것이다.

의약분업의 추진경과

새정부 출범 이전의 의약분업 추진 경과

의약분업이 처음 법제화된 것은 1963년으로 약사법을 전문개정하면서 의약분업을 명기하였다. 그러나 1965년과 1966년 의약분업을 추진하기 위해 구성된 각종 위원회가 유야무야된 것을 시발로 하여, 의약분업은 그 당위성에 대해서는 누구나 공감하면서도 여러 가지 이유로 빛을 보지 못했다. 이 상태에서 36년이 지나갔다. 1982-5년에 목포시 시범사업이 실시되고, 1988년 '국민의료정책심의위원회'가 3단계 실시방안을 마련하는 등, 1980년대에도 여러 차례 시도되었으나, 약사와 의사 등 관련 전문직의 반대가 있었다. 그 상태에서 1989년 7월의 전국민의료보험과 함께 약국의료보험이 실시되었다.

한약분쟁을 정리하면서 1994년 1월 개정된 약사법에 '이 법 시행 후 3∼5년의 범위(1997년 7월 -1999년 7월) 내에 대통령령이 정한 날로부터 의약분업을 시행'하도록 부칙에 명시함으로써 다시 한번 의약분업이 현실화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김영삼 정권 말기 국무총리 자문기구로 설치된 의료개혁위원회에서 의약분업이 주요 안건으로 다루어졌다. 1997년 12월 단계적 실시를 위한 제도모형이 마련되었고(표 1. 참조),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의약품분류 시안을 작성하였다. 그러나, 보건복지부는 지난 해 2월 새 정부가 출범할 때까지 구체적인 실시준비 작업은 전혀 하지 않고 있었다.

보건복지부 – 새정부 출범 이후

의약분업은 새정치국민회의의 대통령선거 공약사항이었고, 법정 시한이 다가옴에 따라 국민의 정부 출범 후에야 추진이 비로소 본격화되었다. 1998년 5월 21일 의약분업추진협의회(이하 '분추협')와 의약품분류위원회가 출범하였다. 분추협은 8월 24일 제4차 회의에서 의약분업의 실시시기를 1999년 7월 1일로 하는 등의 기본원칙과 외래처방전, 일반명/상품명, 병원급 의료기관 의약분업 포함문제를 포함한 세부사항 등에 대해 합의문 형식의 결론을 내었다(표 1. 참조). 의약품분류위원회는 12월 18일 제8차 회의에서 분류안을 결정하였다.

10월 9일 분추협 제5차 회의에서는 4차 회의에서 관련 건의사항으로 되어 있던 문제에 대한 방안이 보건복지부로부터 제시되었다. 약가마진 최소화 방안으로 의약품 유통개혁 방안을 내놓았다. 원외처방전 발행을 유도하기 위한 수가제도 개선과 관련하여, 병원 외래 환자에 대하여 일정금액까지의 진료비용은 본인이 전액 부담하도록 하는 환자본인부담정액제도와 모든 외래 환자의 약제비는 전액 본인이 부담하고 원외처방전을 이용한 경우에 한해 일정 금액을 보험자단체에서 상환하는 약제비 본인부담제도를 제안하였다. 의료전달체계와 관련해서는 의료기관 종별을 나누는 의료법 개정과 1/2/3차 의료기관 수가차등화 방안을 제시하였다.

의약품유통개혁안은 지난 해 9월 19일 대통령에게 보고되었고, 10월 7일 의약품 유통개혁기획단이 구성되었으며, 4개 실무위원회가 구성되어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금년도에 150억원의 예산을 확보하여 두고 있다. 내년 초 '한국의약품 물류협동조합'을 설립한다는 계획이다. 근거 규정이 국민건강보험법에 마련되었다. 참여연대가 작년 11월 12일 발표한 의보약가차액 문제와 관련하여 보건복지부는 조만간 의보약가 인하와 그에 상응하는 의보수가 인상을 단행할 예정으로 있으며, 더 나가서 의보약가를 실거래로 상환하는 방법도 강구하고 있는 중이다. 그 시기는 관계부처와 논의 중이다. 1/2/3차 의료기관 수가차등화 방안은 현재 연구용역이 진행 중이며 금년 6월 말 보고서가 나올 예정이다.

새정치국민회의 정책위원회

새정치국민회의는 작년 8월 '보건의료 선진화와 효율화를 위한 정책기획단'을 구성하여 당의 보건의료 개혁정책을 만들었으며, 12월 발간된 보고서에 의약분업에 대한 정책도 제시하였다. 그 이후 새정치국민회의 정책위원회는 의사와 약사간에 보다 진전된 합의를 만들어 내기 위해서 위의 방안을 수정보완해 가면서 새로운 제도모형과 의약품 분류안을 작성했다. 이 과정에서 의사회, 약사회 뿐 아니라, 시민단체 및 건약, 인의협 등 보건의료단체의 의견이 수렴되고 반영되었다(표 1. 참조). 보건복지부는 의사회, 약사회, 병원협회, 시민단체들이 합의할 경우 새 합의안을 수용하기로 하고 정부안으로 추진하는 과정을 일시 중단하고 있었다. 1999년 2월 9일 최종안이 의사회와 약사회에 제시되었다. 약사회는 회장에게 결정을 위임하는 방식으로 수용을 하였으나, 의사회는 수용을 거부하여 최종적인 합의에는 도달하지 못했다. 병원협회는 이 협의 과정에 참여하지 않았다.

의약분업의 연기 결정

국민회의 중재안이 합의에 실패함에 따라 정부는 금년 7월 실시를 위한 추진 작업을 다시 시작하였으나,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약사법과 의료법의 일부 조항을 조속히 개정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가 법안을 심의하는 과정에서 준비상황의 미흡함을 이유로 연기가 불가피하다는 견해가 다시 대두되었다. 새정치국민회의 보건복지위원회 간사인 김명섭 의원의 개입으로 의사회와 약사회가 몇 가지 조건을 받아들이면 실시를 일정기간 연기하여 주기로 하는 방안이 마련되었다. 그 내용은 의약분업이 반드시 실시되도록 양단체가 노력하겠다는 것을 국민 앞에 확약하고, 시민소비자단체와 같이 국민회의 의약분업 중재안의 미비점을 보완하여 2개월 이내에 의약분업 모형을 도출하겠으며, 만일 합의 도출에 실패하면 의료법 및 약사법개정안에 따라 정부의 의약분업정책에 협력한다는 것이었다. 이를 2월 25일 의사회와 약사회가 합의하였으며, 내용을 일부 보완하기 위해 3월 2일 합의문이 다시 작성되었다.

이에 따라 3월 9일 국회에서 약사법이 개정안이 통과되었다. 그 주요 내용은 ① 제21조 제2항중 '약국'을 '약국 또는 의료기관의 조제실'로 개정, ② 제22조에 제3항으로 의료기관의 조제실에 종사하는 약사 또는 한약사가 의약품을 조제할 때에는 보건복지부령이 정하는 사항을 준수한다는 조항의 신설, ③ 제23조에 제3항으로 처방의 변경 및 수정의 방법과 절차등 세부적인 사항은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한다는 조항을 신설, ④ 현 약사법 부칙 제1조 단서를 '2000년 7월 1일부터 시행한다'로 개정하는 것 등이다.

가칭 "의약분업 실현을 위한 시민대책위원회"의 출범 예정

보건의료단체와 시민소비자단체는 이미 오래 전부터 의약분업의 실현을 위해 노력해 왔다. 보건의료단체들은 1987년 결성된 이래 의약분업을 주장해 왔으며, 1992년에는 구체적 대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지난해부터는 시민·소비자단체도 이에 참여하여 의약분업을 반대하거나 연기하려는 세력에 대해 강하게 저항해 왔다. 참여연대가 보건의료단체와 협력하여 의보약가와 표준소비자 가격의 문제를 제기한 것도 의약분업을 실현하려는 노력의 하나였다.

이번 연기 결정에 대해 시민·소비자단체들이 강한 반대 의견을 제시하였고, 의사·약사 단체의 의약분업 실시 의지에 대한 의구심이 커지게 되었다. 의사회와 약사회가 약속한 시민·소비자단체와의 공동노력을 전개하기 위해서 주요 시민·소비자단체들이 가칭 '의약분업 실현을 위한 시민대책위원회'를 곧 출범시킬 예정에 있다. 이 조직에는 경실련, 참여연대, YMCA, 한국소비자연맹, 녹색소비자연대 등 주요 시민·소비자단체가 참여하고 있으며, 건약, 인의협 등 보건의료단체와 긴밀히 협조할 예정이다. 이것은 지난 10년간의 의약분업 실현을 위한 운동의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진 일이다.

이 대책위원회는 앞으로 의·약 단체, 병원협회 등과 정기적인 모임을 가지면서 의견을 충분히 듣고 자체적으로 마련한 새 대안을 4월 후반에 제시할 예정으로 있으며, 5월초 최종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의약분업 제도 모형이나 의약품 분류안 뿐 아니라, 의약분업의 실시를 준비하기 위한 일정별 추진 사항까지 대안에 포함시키고 이 준비 사항이 일정대로 추진되어 가는 지를 정기적으로 점검할 것이다. 정부와 국회는 합의가 이루어진다면 시민대책위원회가 제시하는 대안을 채택할 의사를 적극 밝히고 있다.

많은 쟁점들이 있으나 국민회의 중재안에 대해 의사회, 약사회 또는 병원협회가 이의를 제기하고 있는 것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쟁점 1 : 분업대상 기관

1차기관(의원), 2차기관(병원 및 종합병원 중 2차병원), 3차기관(종합병원 중 3차병원) 중 어느 범위까지 실시할 것인가? 병원급까지 포함할 경우, 이들에 대해서 일정기간 유예조치를 할 것인가?

쟁점 2 : 분업대상 의약품

국민회의 중재안에 제시된 전문/일반 의약품의 분류를 다시 또 조정할 것인가? 전문의약품이라도 주사제는 예외로 할 것인가? 주사제를 포함할 경우, 이에 대해서 일정기간 유예조치를 할 것인가?

쟁점 3 : 처방 및 조제 방식

일반명 처방과 상품명 처방을 병용하는 데 대해서는 합의가 있다. 상품명 처방에 대한 의사의 '대체불가' 표시를 인정할 것인가? 인정한다면 어떤 경우에 인정할 것인가? 대체조제는 어느 범위로 할 것인가? 일반명 처방이나 대체조제 허용은 약효동등성이 전제되어야 하는데, 이는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

쟁점 4 : 약사들의 일반의약품 투약

일반의약품을 약사가 직접 투약하는 경우, 임의조제 행위를 어떻게 방지할 것인가? PTP 및 foil 포장을 포장으로 볼 것인가?

향후의 논의를 위한 제언

의약분업 추진의 목표는 물론 국민을 위한 의약분업의 최적 모형을 도출하여 이를 실현시키는 것이다. 즉, 의약분업 제도와 의약품 분류에서 국민과 의사·약사에게 가장 이익이 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그러나 이 제도는 의사·약사가 적극 참여하고 협조하지 않으면 국민들을 몹시 불편하게 할 우려가 있다. 국민들이 새 제도에 빨리 익숙해지기 위해서는 의사와 약사의 '교육' 활동이 매우 중요하며 이 제도가 초창기부터 국민들에게 좋은 모습으로 나타나기 위해서는 순탄한 추진 과정을 거친 연착륙(soft landing)이 필요하다. 의사회, 약사회, 병원협회 등이 합의를 도출하는 '과정'이 결과에 못지 않게 중요하다. 법정 기일내에 실시가 되느냐, 안되느냐 뿐 아니라, 어떤 내용으로 어떤 과정을 거쳐 실시가 되느냐 하는 것이 성공의 관건이 될 것이다. 갈등 관계 속에서 부실한 내용으로 실시되면 큰 혼란이 야기되어 국민들에게 피해만 주고 제도는 좌초될 위험이 있다.

의사와 약사는 의약분업 제도가 일시에 완벽하게 만들어질 수 없다는 점과 향후 지속적으로 개선 발전시켜야 할 제도라는 점에 인식을 같이 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상호협조, 상호발전의 정신으로 노력해야 한다. 의사는 조제, 처방의 검토, 복약지도 등이 약사의 고유한 직능이라는 점을 인식하고 이를 존중해야 한다. 약사는 환자 진료의 책임자가 의사라는 점을 인식하고 의사가 원하는 투약이 정확히 이루어지도록 협조해야 한다. 현재는 의사와 약사의 역할이 너무 중복되어 있으며, 이것을 역할 분화하려면 고통이 없을 수 없다. 의사와 약사, 병의원과 약국이 이러한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 현재로서 최선의 안을 가지고 시작하면 의사와 약사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은 바뀌게 될 것이며, 스스로의 인식도 바뀔 것이고, 바뀐 상태에서 다시 적절히 조정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국민들과 시민·소비자단체 및 언론은 의사와 약사, 제약회사들이 겪을 경제적, 심리적 부담을 덜어 주어야 한다는 점을 이해해야 하며, 이 부담을 더는 데 협조해 주어야 할 것이다. 2000년 7월 1일 실시될 때까지의 추진 일정에서 시민·소비자 단체는 사회적 감시를 게을리하지 않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제도의 시행이 다시 불가능해질 수 있다.

의료개혁위원회, 의약분업추진협의회 및 새정치국민회의 정책위원회의 의약분업 제도 모형 비교

항목 의료개혁위원회(97/12) 의약분업추진협의회(98/8) 국민회의 정책위원회 (99/02)
실시시기 1999, 2002, 2005년(3단계 추진) 1999년 7월 1일 2000년 7월 1일
대상기관 기본방향 – 전임약사와 조제실을 갖추지 않은 의료기관(의원도 원내 조제실을 갖추면 예외로 된다는 뜻) – 의원급 의료기관 및 약국 – 모든 병의원 및 약국(의료기관 외래조제실 폐쇄)
보완조치 – 외래 환자의 원내외 조제 선택을 환자에게 일임

–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 외래환자의 경우 원내외 조제의 선택을 환자에 일임

– 원외처방전 발행 유리토록 의료보험수가제도 보완

– 병원, 종합병원, 치과병원의 외래조제실 1년간 폐쇄조치 유예

– 본인부담금 차별 적용

– 원내조제료 최소 설정

  기본 – 제한적 전문의약품(항생제, 스테로이드제제, 습관성 의약품) → 주사제를 제외한 전문의약품 → 전문의약품 – 주사제를 제외한 전문의약품

– 주사제를 포함한 모든 전문의약품
보완     – 주사제에 대해 1년간 적용 유예

– 의료보험 진료비 심사기준 변경 통한 경구제 우선 처방 유도

  기본 상품명 처방과 일반명 처방 병용

상품명 처방과 일반명 처방 병용

– 소분판매 금지. PTP 포장 및 foil 포장 판매 허용
보완 – 상품명 처방시, 의사가 처방전에 '대체불가'를 명기하면 약사는 대체조제 불가

– 상품명 처방시,

① 대체불가 표시(-)

→ 대체조제 가능

② 대체불가 표시(+), 생물학적 동등성 검사(+)

→ 대체조제 가능

③ 대체불가 표시(+), 생물학적 동등성 검사(-)

→ 대체조제 불가

– 지역의약분업협의체에서 상품명 투약리스트 작성

– 소분판매 금지조항 1년간 유예
  기본     전문 1,808처방(57.7%)

일반 1,326처방(42.3%)

보완     – 스테로이드제제 51개 처방은 역가(potency)에 따라 중앙약사심의위원회가 분류
  기본 전문 1,572처방(49.4%)

일반 1,613처방(50.6%)

전문 1,622처방(50.9%)

일반 1,563처방(49.1%)

전문 1,808처방(57.7%)

일반 1,326처방(42.3%)

보완     – 스테로이드제제 51개 처방은 역가(potency)에 따라 중앙약사심의위원회가 분류
김용익/서울대학교 의대 교수,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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