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강보건법 제정의 필요성과 경과 및 추진방향

지난날 우리나라에서 국가차원의 구강보건정책은 전무했다고 할 수 있다. 굳이 정책이라고 한다면, 치과대학을 많이 만들어서 치의사를 많이 배출하면 시장원리에 의해서 구강진료기관의 문턱이 낮아져 국민의 구강건강수준이 향상되지 않겠느냐 하는 식의 원시적 수준의 정책이 전부였다. 결과적으로, 80년 이후에 치과대학의 수는 3개에서 10개로 증가하였고, 이에 따라 치의사 수는 70년대에 비해 10배 이상 늘어났으며, 구강진료기관의 수도 이에 비례하여 증가하는 등 구강진료자원은 급격히 증가하였다. 정부의 구강보건정책(?)이 충실히 수행된 셈이다.

그러나 정책이 기대한 목표에 따라 국민의 구강건강수준이 증진되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12세 아동에서 충치(치아우식증)에 걸린 치아의 수는 75년에 비해 95년에는 오히려 5배나 늘어났고, 5세 유아에서 충치가 있는 유아는 82%에 이르고 있다. 65세를 넘는 노인 세 명 가운데 두 명은 틀니가 필요한 상태이고, 잇몸병(치주질환)의 치료가 필요한 사람은 97%에 이르며, 97년 서울시 조사자료에 의하면 서울시민이 앓고 있는 만성질환 1위가 충치로 나타나고 있다. 의료비 중 구강진료비가 차지하는 비중도 의료보험연합회통계에 따르면 89년에 1.7%에서 95년에 16.7%로 10배 증가하였고, 지금도 증가하고 있다.

이처럼 구강진료자원의 증가와 구강진료비, 구강진료기관 이용의 증가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구강건강수준이 오히려 악화되고 있는 현상은 설탕섭취증가 등 식습관 변화에도 원인이 있겠지만, 보다 근본적 원인은 구강병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구강보건교육과 예방사업 등 국가차원의 구강보건정책과 제도가 부재했기 때문이다. 민간진료기관의 수가 늘어나도 이들 기관의 주업무는 내원환자 위주이며 진료위주일 수밖에 없다.

충치와 잇몸병은 다른 질병에 비하여 원인이 뚜렷하고, 경제성 있는 예방법이 잘 발달되어 있어서 국가차원의 정책목표와 수단을 가지고 접근한다면 얼마든지 국민의 구강건강수준을 향상시킬 수 있다. 미국이나 유럽 등의 선진국들은 이러한 실례를 보여주고 있다.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에서는 국가차원의 구강보건 정책 수립과 구강보건 사업 실시를 오래 전부터 주장하여 왔고, 이들을 수행할 주체로서 보건복지부내 구강보건전담 행정부서의 설치와 이들 사업을 뒷받침 할 제도로서 구강보건법 제정을 추진하여 왔다. 그러한 노력의 결실로 97년에 보건복지부내에 구강보건과가 설치되었다. 구강보건법은 93년부터 추진하여 94년에 가칭〈공중구강보건법〉안을 작성하여 공청회를 개최한 바 있고 이것이 95년 제정된 국민건강증진법 18조에 수돗물 불소화 등의 일부조항으로 반영되었다. 그러나 국민건강증진법에는 구강보건사업이 보건교육과 금연, 영양개선 등 다양한 사업내용의 일부로 포함되어 있어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는 독자적인 법안인 구강보건법 제정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왔다. 97년 구강보건법 제정 추진팀에서 법안을 작성하여 국회에서 공청회를 개최하였다. 이후 민주노총, 전국연합 등의 시민사회단체를 비롯한 3만여 명의 입법청원서명을 구강보건법안과 함께 98년 정기국회에 제출하여 보건복지위원회에서 수정된 법안이 통과되었으나, 이 법안은 현재 법사위에 계류되어 있다.

구강보건법과 관련하여 법사위에서 제기한 문제는 학교구강보건은 교육부, 산업구강보건은 노동부 등 사업의 주체가 복지부와 상충되고, 수돗물 불소화 사업은 환경부 소관이니 이들 관련부처들과 조율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진보적 보건학자들은 현재 진행되고 있는 정부조직개편과 관련하여 보건사업은 보건관련부서로 일원화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구강보건사업도 효율적이고 일관된 추진을 위해서는 사업의 주체로 보건복지부와 지방자치단체가 되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한편, 구강보건법의 국회심의과정에서 일부 수돗물 불소화사업 반대론자들이 법안통과를 반대하며, 법안의 취지를 왜곡하여 이 법이 치과의사단체나 불소생산기업 등의 이익을 위해 추진되고 있다는 등의 선전을 함으로써 법통과를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 구강보건법은 특정 집단이나 계층의 이익법안이 아니라 구강보건의 전문성과 구강보건의 효율성을 높여 국민의 생애주기별 평생 구강건강관리를 실현하기 위한 공익법안임을 뚜렷이 인식해야 할 것이다. 경제적 손해의 반대급부로 직업의 사회적 존재의미 구현을 통한 자긍심을 얻는 것이 직업이익을 위한 일이라고 한다면 이들의 말을 수긍할 수 있으나, 이러한 이유가 법안통과 저지의 이유가 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비록 구강보건법안에 부정적인 일부 국회의원과 수돗물 불소화사업 반대론자들의 견해가 오해에서 비롯되었다고 할지라도,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는 이들의 견해도 경청하여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부분은 수정보완하여 공람후 통과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자 한다. 구강보건법제정의 목적은 국민의 건강권 확보임을 다시 한번 강조하며 시민의 권익과 복지향상을 위해 노력하는 시민단체의 관심을 부탁드린다.

신동근 /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 집행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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