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에게도 인권이 있다

아동 인권은 천부적인가?

국제사회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아동의 인권'은 '아동의 권리에 관한 국제협약'에서 찾을 수 있다. 이 협약에 따르면, 아동은 18세 미만이므로 대부분의 중고등학생도 포함될 수 있다.

"전세계 아동의 마그나카르타"라고 불리는 '아동의 권리에 관한 국제협약'이 UN총회에서 만장일치로 채택된 것은 1989년이었지만, 아동의 인권사상은 상당히 긴 역사를 가지고 있다.

시민의 인권이 확인/선언된 것은 18세기 후반이었지만, 당시에 아동과 청소년은 일반적으로 시민의 한 사람으로 인식되지는 않았다. 당시 시민은 납세의 의무를 가질 수 있는 일정한 소득이 있는 성인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에 성인 여성조차 오랫동안 참정권을 가지지 못하였다. 참정권이 없는 아동과 청소년이 권리의 주체로 인식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인권사상의 발전에 힘입어 아동의 권리가 국제적 문서로 된 것은 1924년 국제연맹 총회에서 '아동의 권리에 관한 제네바 선언'을 채택함으로써 공식화되었다. 아동에게 최선의 것을 주는 것은 인류의 의무라는 정신은 '아동의 권리 선언'(1959년), '아동의 권리에 관한 국제협약'으로 계승되었다.

그런데, 아동의 권리가 도덕적 구속력만 있는 '선언'에서 법적 구속력을 갖춘 '협약'으로 바뀌고, 그 협약을 세계 190여개 국가가 비준하였다고 하더라도, 한국사회에서 아동의 권리가 잘 보장되고 있는가는 별개의 문제이다. 왜냐하면 우리 사회는 '장유유서'를 미풍양속으로 존중하는 연령차별적인 생활양식이 굳어있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남녀유별을 '성차별'로 인식하는 사람들이 늘어남에도 불구하고, 장유유서를 '연령차별'로 인식하는 사람이 별로 많지 않은 것은 아동 인권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남녀유별과 장유유서와 같은 전통적인 생활양식이 가정에서 사회화된다는 점에서 볼 때, 인권이 천부적일지라도 실생활에서 구현되기 위해서는 끝임 없는 각성과 도전이 필요함을 알 수 있다.

국제적으로 인정된 아동 권리의 내용은?

우리 나라에서 처음 아동의 권리를 선언한 것은 '제네바선언'보다 한 해 앞선 1923년이었다. 당시 우리는 주권을 일본에게 빼앗긴 가운데에서도 민족의 새싹인 어린이를 사랑하고 씩씩하게 키우기 위하여 '어린이날'을 제정하였다. 바로 그해 어린이날 기념식장에서 '소년운동협회'가 '아동의 권리 공약 3장'을 선포하였다. 그 내용은 어린이에게 완전한 인격적 예우를 하고, 14세 이하의 어린이에게 무상 또는 유상 노동을 폐지하며, 어린이에게 배우고 놀 수 있는 가정 또는 사회적 시설을 행하도록 역설한 것이다. 아동을 부모의 부속물이나 무능력자로 인식하지 않고, 하나의 인격체로 보려는 시각은 이후 '어린이헌장'과 '청소년헌장'으로 이어졌다.

아동의 권리에 관한 국제협약에 규정된 아동 권리의 내용을 보면, 아동은 인간이기 때문에 생명과 생존에 관한 권리가 있고, 배우는 시기이기에 학습 및 문화에 관한 권리를 보장받아야 하며, 아동이 시민으로서 생활할 수 있도록 시민적 권리와 자유를 보장받아야 한다. 또한, 아동은 가족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양육과 보호에 관한 권리, 그리고 전통적으로 아동에게 경시되어 온 적법절차에 관한 권리를 보장받아야 한다(한국청소년개발원, 청소년인권보고서, 1997).

한국 정부는 이 협약을 1990년에 서명하고 1991년에 비준하였는데, 비준과정에서 3개 조항을 유보하였다. 협약의 내용 중에서 부모와의 면접교섭권, 입양허가, 상소권보장 등에 관한 조항들은 국내법과 배치되기 때문이었다. 다시 말해서 우리 정부는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아동의 권리 중에서 위의 세 가지 사항을 제외하고 모두 보장하겠다는 조약을 비준한 것이다. 국제법은 국내법과 동일한 효과를 가진다는 헌법을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국제화를 지향하는 사회에서 국제적으로 인정된 아동의 권리를 존중하지 않는다면 '야만국가'란 오명을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아동 인권은 얼마나 보장되고 있는가?

아동의 인권은 선언서나 조약만으로 잘 지켜지지 않기 때문에 국제사회는 한 나라가 이를 잘 지키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 두고 있다. 협약에 가입한 나라는 해당 국가의 아동 인권 상황을 주기적으로 '유엔 아동권리위원회'에 보고하여야 하고, 이 위원회는 해당 국가에 인권상황을 개선하도록 권고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에 따라서 한국 정부는 아동권리위원회에 보고서를 제출하였고, 또한 아동 인권에 관심 있는 21개 비정부기구와 전문가들이 연대해서 만든 민간단체보고서를 같은 위원회에 제출하였다. 유엔 아동권리위원회는 토론을 거쳐서 한국정부에 긍정적 측면과 함께 조약의 이행을 위해서 14개항의 제안과 권고를 하였다. 이중에는 정부가 유보한 협약의 조항을 철회하고, 전문가 집단에 대한 협약의 교육 및 교과과정에 인권교육 포함, 차별금지와 아동의 최선이익을 보장하기 위해서 국내법의 개정, 인권자료의 수집체계 확립 등이 포함되어있다(어린이/청소년의 권리 연대회의, 1997).

다시 말해서 한국 정부가 유보하고 있는 <부모와의 면접교섭권>등을 조속히 비준하고, 아동의 최선의 이익을 위해서 법률과 관행을 바꿔야 한다고 권고한 것이다. 현행 민법은 자녀가 있는 부부가 이혼을 한 후에, 부모는 자녀를 면접할 수 있는 권리가 있지만, 자녀에게는 부모를 면접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지 않고 있다. 부모가 이혼하여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는 아들이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서는 반드시 어머니의 동의를 얻어서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또한, 아동권리협약은 <아동의 입양은 관계당국의 허가>를 받도록 되어있지만, 우리 나라에서는 관계당국의 허가를 받지 않고도 입양할 수 있고, 관계당국의 허가를 받은 입양도 대부분 '친생자'로 입적되고 있다. 또한, 입양 후에는 양부모가 자의로 '친생자부존재확인소송'을 거쳐서 '파양'할 수 있는데, 이러한 법률과 관행은 아동을 부모의 부속물로 보는 시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알려준다.

이밖에도 가정과 학교에서 일상화된 체벌, 체벌의 수준을 넘어선 신체적 학대와 성적 학대는 성폭력특별법과 가정폭력방지법의 시행 이후에도 별로 감소되지 않았다. 핵가족화, 자녀수의 감소, 가치관의 변화 등에 따라서 가정 내에서 자녀의 삶의 질이 높아지는 경향이 있지만, 자녀의 이익을 부모가 대신할 수 있다는 전통적인 인식은 크게 변화되지 않았다. 아동 인권에 대한 옹호가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아동 인권을 어떻게 옹호할 것인가?

아동의 권리가 부모의 권리와 다를 수 있고, 경우에 따라서 보호자인 부모도 아동의 권리를 침해할 수도 있으므로 이에 대한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될 때 '아동 인권'이 보장될 수 있다.

아동의 인권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아동 자신이 불가침의 인권을 지니고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아동의 발달단계에 맞게 다양한 방식으로 권리교육을 시키고, 전형적인 인권침해 사례와 대응방안을 알려주어야 한다. 또한, 아동 인권에 관심 있는 부모와 시민들이 아동에 대한 인권침해사례연구, 평화가족 모임, 다양한 연대활동 등을 통해서 인권옹호 운동을 펼쳐야 할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참여연대사회복지위원회(1997), 아이들에게도 인권이 있다 참조).

인권침해사례연구로 '어린이 사건에 대한 공표'를 예시하면 다음과 같다.

어린이와 관련된 사건에 대해서 수사기관은 '무죄추정의 원칙'을 잘 지키지 않고 언론은 선정적으로 보도하는 경향이 있다. 어린이가 범죄의 피해자이거나 가해자이거나 인권을 최대한 보호받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어린이는 범죄의 희생양이 되고 대중매체에 노출되기 쉽다. 비록, 범죄 혐의가 있더라도 유죄가 확정되기 전에는 무죄추정의 원칙이 지켜져야 함에도, 경찰과 검찰은 피의사실을 공표하고, 언론은 추측기사로서 범죄사실을 부풀린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소년범죄 중에는 '만들어지는 범죄'가 적지 않다. 12세미만의 형사미성년자는 범죄를 저질러도 형사책임이 면제되기 때문에 미제사건의 피의자로 만들어지기 쉽다. 이러한 일이 가능한 것은 혐의사실에 대한 경찰과 검찰의 발표와 언론의 보도만으로도 죄인이 되는 낙인효과 때문이다.

예컨대, 1991년 9월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대흥동 어린이 살해/방화사건'은 "오빠가 폭력 비디오물을 모방해 여동생을 살해하고 집에 불을 냈다"고 경찰은 발표했지만, 대법원에서는 국민학생인 오빠에게 혐의사실이 없다고 확정판결을 내고, 자백만 믿고 혐의를 발표한 경찰과 국가는 피의자에게 명예훼손에 대해서 손해배상을 지급하도록 판결했다. 수사관의 강압에 못이겨 거짓으로 자백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경찰관의 수사발표는 신문과 방송에 크게 보도되고 그것이 거짓이었다는 법원의 판결은 토막기사로 다루어질 뿐이었다.

또한, 아동의 권리에 관한 국제협약 알기, 아동권리에 대해서 낱말 맞추기 등을 게임식으로 진행해서 '권리교육'을 시도할 수 있다. 아동권리협약의 내용을 문제로 만들어서, 온 가족이 함께 의논하면서 푸는 가운데 잘 알지 못했던 아동의 권리를 알게 될 것이다. 몇 가지 문제를 예시하면, "한국인 어머니와 외국인 아버지사이에서 아이가 한국에서 태어날 때, 한국 국적을 취득하지 못한 것은 협약의 무엇을 위반한 것인가?(답: 제7조 성명 및 국적권)", "이혼한 부모중 친권을 가진 부(또는 모)가 자녀에게 모(또는 부)를 만나는 것을 금지한다면 협약의 무엇을 위반한 것인가?(답: 제9조 부모로부터의 분리제한)", "가정법원에서 이혼한 부부의 자녀친권을 정할 때, 자녀에게 의사를 묻지 않았다면 협약의 무엇을 위반한 것인가?(답: 제12조 의사표현권)" 등과 같이 실생활에서 아동의 인권을 심각하게 침해하면서도 이에 둔감했던 것들을 각성시킬 필요가 있다.

아동과 청소년의 인권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당사자와 관련 집단의 연대활동이 절실하다. 관심집단이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그 해결책을 찾으면 많은 가능성이 열린다. 아동과 청소년은 대부분 학생이기 때문에 학교내외에서의 자치모임을 통해서 권리를 신장시킬 수도 있다.

전통적인 방법으로 학급회의나 학생회의 활동을 통해서 자신들의 권리를 침해하는 제반사항을 토론하고 그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또한 입시위주의 교육환경 때문에 쉽지는 않지만, 학생의 인권과 복지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동아리를 만들어서 활동할 수 있다. 참신한 방법은 컴퓨터통신이란 가상공간을 통해서 권리운동을 시도하는 것이다. 컴퓨터세대인 어린이와 청소년이 '언제나, 어디서나,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컴퓨터통신을 통해서 연대하는 것은 청소년 자신들이 이미 개척하였다. 일부 중고등학생들은 청소년을 위한 많은 단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청소년에 의한 인권단체의 필요성을 제기하였고, 학생복지회를 만들어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선진외국에서는 학교교육에서 권리교육과 함께 다양한 비정부기구가 어린이와 청소년의 권리 실현을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 비정부기구는 정부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영역을 다루는 보완적인 역할과 함께 정부의 인권정책을 비판하고 대안을 모색한다. 한국에서 어린이의 인권을 위해서 노력하는 대표적인 비정부기구는 유니세프 한국위원회,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참교육학부모회, 인권운동 사랑방 등이다. 비정부기구는 다른 나라의 비정부기구들과 연대해서 아동인권에 관한 정보를 교류하고, 인권교육의 기법을 배우며, 인권활동가의 교류를 꾀할 수 있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아동 인권의 상황은 여전히 좋지 못하지만, 아동과 청소년의 인권의식의 각성, 학교교육에서 권리교육의 강조, 입시위주의 교육환경의 개선, 평화가족 만들기와 같은 새로운 가족문화운동의 모색 등을 통하여 점차 나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이럴 때일수록 관심 있는 시민들이 연령차별적인 생활양식을 스스로 바꾸도록 노력하고, 나아가 성차별과 연령차별을 정당화시킨 법과 관습을 개혁해야 할 것이다.

이용교/광주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복지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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