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의 본질은 나눔의 장치 구축에 있다

신창원이 구속되던 바로 그 날, IMF의 구제금융과 관련하여 세인의 이목을 집중시킨 임창렬 경기도지사도 아내와 함께 구속되었다. 신창원을 의적 로빈후드에 견준 영국 언론의 보도에 우리 경찰청은 발끈했지만, 오죽했으면 영국 언론조차 잘 사는 자의 집만 골라 절도한 것으로 오인하여 신창원에게 일말의 인간적 정을 표현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임창렬 도지사 부부의 구속에 대해서는 당연하다는 여론이 지배적이다. 그만큼 우리 사회에서 가진 자와 갖지 못한 자의 간격이 벌어지고 있으며, 상호관계가 단절되어 가고 있음을 보여 준다고 하겠다.

개혁은 이제 우리에게 새삼스럽게 다가오는 용어가 아니다. 오히려 너무 많이 회자됨으로써 개혁의 주객이 뒤바뀔 정도로 혼란스럽다. 30여 년간의 군사정권이 붕괴된 후 개혁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소리는 요란했지만 실제로 얼마나 많은 개혁이 이루어졌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민주화가 일정 부분 이루어져 오고 있고, 자유권적 시민권이 신장되고 있으며, 이권옹호적 규제장치가 풀리고는 있지만 근본적인 개혁의 본질에 다가서는 것이 결코 아님은 신창원과 임창렬의 사례에서도 여실히 나타나는 바다.

흔히들 개혁의 본질에 다가서지 못하는 요인을 개혁의 철학 빈곤, 방향성 빈곤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개혁을 왜 하려고 하며, 반드시 바꾸지 않으면 안 될 것은 무엇들이며, 우선 순위는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것이다. 즉 개혁하고자 하는 목적이 분명하지 않다는 것이다.

우리는 왜 개혁을 하려고 하는가에 대한 답은 매우 간단하다. 개혁은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만족감을 주기 위해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모든 사람들에게 만족감을 줄 수 있는 방법을 과연 인간 세상에서 구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인데, 결코 쉬운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초보적인 방법의 일단은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공리주의에서 찾을 수 있다. 모든 사람은 아니지만 최대 다수를 위한 만족은 구성원의 총효용 극대화라는 총합의 원리에서 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총합의 원리가 갖는 문제는 다수를 위해 소수의 희생을 정당화하는 데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한 방법이 바로 사회정의론이다. 자유, 기회, 소득과 부, 자기존경의 기초 등 모든 종류의 사회적 기본 재화를 구성원 모두에게 균등히 나누는 게 정의인데, 이렇게 함으로써 모든 구성원에게 만족감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적어도 구성원의 만족은 서로 나누어 가지는 데 있음을 알 수 있다. 개혁은 바로 이러한 만족을 주기 위한 나눔의 장치를 구축하는데서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 나눔의 장치 구축과 관련하여 국민의 정부가 꽤 고심하고 있음을 최근 '생산적 복지'를 새로운 제3의 국정지표로까지 대통령이 언급한 데서 잘 알 수 있다.

생산적 복지에 대한 구체적 내용 제시가 없어 그 실체를 분명히 이해하기는 힘들지만 노동능력이 있는 자들에 대한 노동유인을 목적으로 하는, 소위 서구 복지병에 대한 대응으로 도출된 미국의 '노동을 통한 복지(workfare)'를 뜻하는 것이라면 대단히 실망스런 것이다. 왜냐하면 노동을 통한 복지는 복지병을 치유하자는 고용정책의 일환으로서 나눔의 장치라기보다 생산의 장치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그렇게 노동을 강조하며 신성시한다면 땅 투기, 임대, 이자놀이, 골동품 매매 등 불로소득을 갖고서 '오락을 통한 복지(leisurefare)'를 최대한 만끽하며 흥청망청하는 놀고먹는 병(有閑病)에 대한 치유책은 왜 나오지 않는가? 결국 개혁하자는 것은 오직 높은 생산을 통한 이윤추구를 기치로 하는 성장제일주의의 병폐인 빈부 격차문제를 해결하면서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통합의 길로 나가자는 게 아닌가.

한편, 생산적 복지라는 용어를 볼 때 생산적이라고 하는 수식어는 사실상 필요 없다. 왜냐하면 사회복지가 단순구호나 시혜라기보다 미래를 위한 적극적인 인적자원투자로서 사회참여를 통한 개인의 복지증진뿐만 아니라 지속적인 사회발전을 동시에 도모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미 생산과 밀접한 관련이 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자칫 생산을 위한 것이 아니면 복지가 될 수 없다는 억지가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복지를 위한 나눔의 장치 구축을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나누어 줄 수 있는 분량을 확보하기 위한 공평과세제도를 구축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누진적 과세 효율을 위한 직접세 비중이 높아야 하며, 자영업자를 비롯한 전국민의 개별 가구 소득조사가 이루어지도록 하는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둘째, 소득보장, 건강보장, 고용보장, 주거보장, 교육보장, 사회복지서비스보장 등 영역에서의 국민복지기본선이 보장되는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하루빨리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제정을 통하여 국민의 기본적인 삶의 질을 보장하도록 해야 한다. 20대 80 사회로 치닫고 있는 시점에서 국민복지기본선 보장이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못한다면 당장 사회통합뿐만 아니라 지속적인 생산을 통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발달에도 악영향을 주게 됨을 우리는 여러 나라의 역사적 경험을 통해 알 수 있다.

나눔이 침묵하는 곳에 행복은 없다.

조흥식 /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참여연대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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