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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복지동향 200호 발행
  • 1999
  • 1999.01.10
  • 550
98년과 99년 : 보건의료 개혁과 구조조정

98년은 그 동안 잠복했던 보건의료분야 개혁과제가 '국민의 정부' 집권과 더불어 다시 전면으로 떠오른 시기라고 요약할 수 있다. 보건의료 개혁은 지난 한 해 동안 대통령 선거공약 → 정권인수위의 100대 과제 → 정부와 여당의 보건의료 개혁정책 수립이라는 길을 밟아 왔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통하여 개혁의 내용과 논리를 가다듬어 왔고, 98년 말까지 중요한 과제들에 대하여 대체적인 방향을 잡아 놓은 상태이다. 언뜻 의료보험 통합과 의약분업 등 큼지막한 과제들 때문에 아직까지 보건의료 개혁이 논의의 한복판에 진입한 것은 아닌 듯도 싶다. 그러나 새로운 차원의 보건의료 개혁을 준비하였다는 차원에서, 그 성과의 많고 적음을 불문하고 98년 한 해가 중요한 자리로 매겨질 것은 틀림없다.

한편, 98년 보건의료 분야 흐름을 정리하면서 빼 놓을 수 없는 것이 공공 보건의료기관에 불어닥친 이른바 '구조조정'의 바람이었다. 크게 보아 정부개혁, 혹은 공공부문 개혁의 한 가닥에 불과했으나, 보건소 등 정부조직은 물론이고 지방공사의료원, 특수법인, 국립대학교병원 등 공공 의료기관도 기관의 존립과 기능 재정립을 둘러싸고 한바탕 홍역을 치를 수밖에 없었다. 결과적으로는 공공 보건의료체계에 대한 구조변화가 완결된 것은 아니지만, 아직까지는 기본적인 틀에 큰 변화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기본 틀이 크게 변화하지 않았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공공 보건의료가 여전히 소극적인 역할에 머물러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결국 개혁과 '구조조정'이라는 보건의료 분야의 큰 흐름은 98년을 넘어 99년으로 고스란히 이어질 전망이다. 보건의료 개혁은 98년 1년의 준비 시기를 거쳐 99년 본격적인 전개를 앞두고 있다. 또한 구조조정 역시 미완의 상태로 정부의 2차 지방조직 개편 등 주변 여건에 따라 바로 현실적인 문제가 될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보건의료 개혁과 3중의 장애

현재 보건의료 개혁이라는 이름 아래 논의되거나 의제가 되는 과제들은 의료보험 통합과 의약분업을 제외하더라도 양적으로 결코 적다고 할 수 없다. 중요한 것만 해도 공공보건의료체계의 정비, 가정의 중심의 의사인력 양성, 주치의 제도 도입, 의료제공 단계별 수가차등화를 통한 의료제공체계 정비, 중소병원 기능 전환과 요양병원 확충, 보건의료기본법 제정 등 법률 정비, 진료비 지불제도의 개편 등 매우 폭넓은 과제가 제기되어 있다.

이러한 과제들의 구체적인 내용을 여기에서 상세하게 설명할 여유는 없지만, 이들은 한결같이 현재 난맥상을 보이고 있는 우리나라 보건의료체계에 대해 최소한의 '질서'를 부여하고자 하는 것이다. 각급 의료기관과 의료인이 제 역할을 하고, 소비자의 의료이용이 필요(need)에 따라 효과적으로 이루어지도록 유도하고자 하는 것이 개혁과제들의 핵심 중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각 단계별로 수가를 차등화함으로써 의원-중소병원-대병원이 각기 제 역할을 하고자 하는 것이라든지(수가차등화), 지나치게 많은 단과 전문의의 비중을 차츰 줄이고 일차진료를 맡은 가정의를 중점적으로 육성하는 정책 등이 대표적인 개혁과제라 할 수 있다.

99년 초반에는 의료보험 통합과 의약분업이 어떤 형태로든 마무리되면서, 이와 같은 다양한 개혁과제가 실제적인 논의와 정책화 과정에 진입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2000년 초반에 예정되어 있는 국회의원 총선거로 말미암아 99년이 개혁의 틀을 어느 정도 완성하여야 할 '짧은 기회'라는 부담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개혁 성공의 핵심적인 당사자인 정부·여당이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한 의지를 가지고 있고 시민사회의 여론이나 정책환경도 매우 우호적인 것이 사실이다. 그만큼 보건의료 개혁의 여러 과제가 부분적으로나마 성취될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지난 정부 시기의 '의료보장 개혁'과 '의료개혁'에서 이미 여러 차례 경험하였듯이 보건의료 개혁은 만만찮은 장애물을 가지고 있다. 보건의료 개혁에 대한 저항의 원천은 사실 한국 보건의료의 구조이다. 우리나라 보건의료의 고질적인 문제인 '고비용 저효율 구조'가 보건의료 개혁의 대상이 되는 모든 문제에 공통적으로 작용되고 있거니와, 개혁의 현상적인 장애물도 따지고 보면 보건의료 구조와 무관하지 않다. 개혁의 장애물로 한정해서 보자면 3중(三重)의 장애물이 보건의료 개혁을 가로막고 있는데, 이는 바로 (1) 정부의 개혁 역량 취약 (2) 보건의료 전문직의 저항 (3) 국민대중의 왜곡된 인식과 행동을 말한다.

정부는 공식적으로는 보건의료 개혁의 필요성을 말하면서도 실제 행동으로는 여전히 구태의연한 자세를 견지하고 있을 뿐 아니라, 실천을 결심하는 경우에는 심각한 역량 부족을 드러내고 있다. 민간위주의 보건의료 체계는 심각한 문제점을 빚어내는 경우에도 정부에게 직접적인 부담을 주지 않고 있는 형편이어서 개혁에 대한 압력의 강도가 그만큼 약한 것이다. 한편, (민간 위주의 보건의료체계에서 '상업적 이윤'을 찾아 행동하기를 강요받는) 보건의료 전문직에게는 개혁의 이해관계가 곧 사활과 생존의 문제이므로 본질적으로 개혁에 저항하는 경향이 있다. 의약분업 정책에서 나타나고 있듯이 국민 보건을 위한 대의에도 불구하고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더 강하게 표출되는 것이 현실이다. 국민대중의 인식과 행동도 현재로서는 개혁을 뒷받침하기보다는 기왕의 민간위주, 첨단지향, 시장적 경쟁 선호라는 틀을 온존·강화하는 데에 기여하고 있다.

새해에 보건의료 개혁을 한 걸음이라도 진전시키기 위해서는 이와 같은 3중의 장애를 극복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런데 여기에서 유념할 것은 이러한 3중의 장애가 기술적으로 극복할 수 있는 문제라기보다는 각 행위주체의 행동을 어떻게 통제할 것인가, 즉 넓은 의미의 '정치적 통제력'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와 관련된 문제라는 점이다.

그렇다면 문제제기의 복잡성에 비하면 해답은 비교적 간결하다. 보건의료 개혁을 중심 목표로 하여 정부와 전문인, 그리고 국민 대중의 인식과 행동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건전한 시민세력의 형성, 그리고 이를 통한 개혁의 추진이 보건의료 개혁의 핵심적인 과제이자 추진전략이라 할 것이다. 물론 이것이 가능하려면 기존의 시민운동이 보건의료 개혁 과제와 긴밀하게 결합하여야 할 것이며, 좀더 넓은 범위의 연결망(network)이 형성되어야 할 것이다.

보건의료의 공공성에 대한 사회적 논의

한풀 꺾이기는 했지만 공공의료기관의 '구조조정'은 새해에도 여러 가지 형태로 진행될 전망이다. 두말할 것도 없이 공공의료기관의 구조조정은 신자유주의적 시장구조의 수립을 가장 중요한 목표로 한다. 구체적으로는 민영화 및 민간위탁, 조직개편과 조직의 경량화, 외부용역과 계약제 등의 새로운 고용관계 수립, 성과급제 도입 등이 예외 없는 차림표이다.

이러한 내용들은 여전히 그럴싸한 것처럼 보인다. 특히 관료주의적 불친절, 비효율, 무능력 같은 것을 생각하면 국민 대중에게는 어느 정도 속 시원한 '개혁' 조치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일부에서나마 지방공사 의료원이나 보건소의 민영화 조치를 주장하는 이유도 이러한 인식에서 연유하는 것이다.

문제는 이와 같은 신자유주의적 경향이 아무런 견제 없이 무정부적 권력을 행사할 가능성이 더욱 짙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압도적인 민간위주의 보건의료 구조, 복지와 보건에 대한 정부의 무책임, 국민대중의 민간의료에 대한 선호와 공공의료에 대한 혐오 등을 고려하면, 이것이 다만 가능성에 지나지 않는다고 누가 자신할 수 있겠는가. 결국 99년에 공공의료와 보건의료의 공공성은 다시 유례없는 위기를 맞이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이런 가능성 앞에서 보건의료의 과제는 무엇이 될 것인가. 여기에서는 이러한 공공의료와 공공성의 위기에 대해 구체적인 과제를 제시하는 것은 (그것이 매우 중요하기는 하지만) 생략한다. 이미 여러 차례 비슷한 논의가 이루어졌다는 점도 있지만, 이러한 위기 역시 좀 더 큰 사회적 환경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현단계 보건의료의 공공성 위기는 한 마디로 보건의료에 대한 '사회적 인식'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공공성 혹은 공공의료의 위기는 그 자체로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기보다는 사회 전체적으로 보건의료의 공공성에 대한 새로운 인식틀, 그리고 그것을 위한 논의를 필요로 한다는 의미이다.

보건의료에 대한 한국 사회의 일반적인 '사회적 인식'은 이것을 매우 사적이고(private) 개인적인(individual) 영역에 존재하는 것으로 본다는 것이다. 민간의료를 중요한 경험으로 가지고 있는 일반 국민은 물론이고, 정부의 정책담당자, 보건의료 전문가, 일반 지식인에게까지 이러한 인식은 매우 강고하게 뿌리를 박고 있다. 심지어는 일반 분야에서는 공공의 의의와 가치를 말하는 진보적인 시민운동 단체와 그 구성원에서도 이러한 경향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잘 알려진 대로 이러한 종류의 인식은 전세계적인 보편성의 관점에서 보면 매우 예외적인 것이다. 보건의료는 원론적으로 말하자면 질병 때문에 그 구성원을 한 사회로부터 배제(exclusion)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사회적 형평성과 연대를 달성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요소의 하나이다. 따라서 현재 지극히 개인화된 서비스로 인식되고 있는 보건의료는 사회적 통합성을 유지, 발전시키기 위한 불가결한 한 요소로 재정립될 필요가 있다.

보건의료의 공공성을 정립하기 위한 이러한 과제는 다소간 추상적이고도 폭넓은 접근을 필요로 한다. 보건의료와 건강의 의미에 대한 새로운 사회적 논의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새로운 논의'의 과제는 99년 한 해 만에 완결될 단기적인 것은 아니다. 이론과 실천 모두에서 보건의료의 사회적 성격을 정립하기 위한 끈질긴 노력이 시작되는 시점이 되어야 할 것이다.

새로운 연대를 위하여

보건의료 개혁과 공공보건 의료에 대한 새로운 논의의 바탕이 되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 보건의료의 사회적 가치와 의의를 어떻게 보는가 하는 문제와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 중요한 것은 보건의료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비단 이 분야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보건의료를 포함하는 넓은 의미의 사회복지 전반에 대해 보편적인 것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사회적 연대와 통합성을 지향하는 핵심요소로서 자리매김 하기 위한 새로운 논의도 보건의료에 한정되는 과제는 아니다. 범위의 측면에서는 보건과 복지는 물론이고 친(親)복지적인 여러 분야를, 그리고 접근방법으로는 이론-실천-문화를 아우르는 '범복지 연대'의 구축은 이러한 점에서도 더 늦출 수 없는 과제라 아니할 수 없다.

경제위기 상황에서 이러한 연대의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높은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이를 현실화하기 위한 시도는 아직도 초보단계에 있는 것도 부인하기 어렵다. 99년에는 보건의료와 사회복지가 한 단계 진전된 연대의 틀 안에서 새로운 도약의 계기를 맞기를 기대한다.

김창엽/서울대 의대 의료관리학교실.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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