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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위원회    시혜가 아닌 권리로서의 복지를 만들어갑니다

월간 복지동향 200호 발행
  • 1999
  • 1999.02.10
  • 527
최근 사회단체에서 보건의료에 대한 이해와 관심도가 부쩍 커진 것을 볼 수 있다. 의료보험 통합, 의약분업, 의료보험 약가 정상화 등을 추진하는 활동에서 시민단체는 주도적인 역할을 해 왔다. 소비자 단체들이 금년도 활동 계획을 수립하면서 보건의료 문제에 전례 없이 높은 우선 순위를 부여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리고, 1월 20일부터 시행된 약국의 공급자 가격표시제 모니터링 등에 적극 나서기 시작했다. 최근의 추세는 여러 사회단체의 보건의료 분야 활동이 하나 하나의 사안별 접근을 넘어서서 국민건강권 옹호라는 큰 틀로 상향되는 단계에 들어서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겠다. 이것은 앞으로 보건의료 운동에 큰 의미를 가지게 될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보건의료운동은 대부분 건약, 건치, 인의협 등 진보적 보건의료 전문인 단체와 병원노련, 의보노조 등 보건복지 분야 노동단체를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다. 문송면 사건, 원진레이온 등에 노동자들이 주도적으로 참여하였고, 1988년부터 1990년까지의 의료보험통합 운동이 농민단체를 모체로 하여 전개되었던 전례가 있었지만, 그 운동의 중심에는 언제나 보건의료단체가 있었다. 1994년 이후의 의료보험통합 운동은 노동, 농민, 시민, 여성 등의 사회단체들이 전면에 나서는 양상으로 전개되었고, 작년의 의약분업 추진 및 의보약가 정상화에는 참여연대와 경실련 등 시민단체들이 앞장서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물론 보건의료단체, 병원노련, 의보노조 등이 여전히 주체로 활동하였지만, 중심성의 문제에서 분명히 한 걸음 진전된 것이었다.

보건의료단체들은 1987년 이후 국민건강권을 옹호하고, 보건의료계에 새바람을 불어넣는 데 큰 기여를 해 왔다. 그러나 보건의료인 중심의 보건의료운동으로는 국민들 속으로 널리 파고드는 데 한계가 있었고, 또 한국 사회에서 가장 보수적이라고 할 보건의료인 집단을 변화시키는 데에는 더욱 명확한 한계가 있었다. 지난 12년간의 보건의료운동이 안고 있던 제약을 깨뜨리고 더 높은 단계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민중 주체 또는 시민 주체의 강도가 훨씬 진전되어야 한다. 민중운동, 시민운동, 정치운동이 국민들을 대상으로 보건의료운동을 전개할 때만 건강과 보건의료에 대한 국민적 인식을 큰 폭으로 전환시키는 것이 가능하다. 민중·시민의 보건의료에 대한 감시가 강화되어야 보건의료인 집단의 강고한 보수성도 깨뜨릴 수 있다. 의식화되고 조직화된 민중·시민의 변화가 보편적 국민 대중의 변화를 일으킬 때에 '건강할 권리'는 우리 사회의 확고한 담론으로 자리 잡을 것이고, 보건의료인 집단의 변화도 가능해질 것이다. 보건의료운동의 주체를 확대하여야 한다는 생각은 이미 운동의 초창기부터 있었던 것이지만, 실현 가능성이 없었다. 최근의 양상은 이것이 비로소 가능해 질 단계에 도달한 것 같고 보건의료운동의 조직적, 인적 기반을 대폭 확대하여, 새로운 돌파구를 열어 줄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게 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사회단체의 보건의료에 대한 전문성 부족이 상당히 큰 장애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제반 사회운동의 영역 중 보건의료 분야에서 전문성 문제가 가장 심각한 것 같다. 노동, 문

화, 여성, 사회복지보다는 훨씬 더 어려울 것이고, 아마 환경, 교통보다도 어려울 것이다. 이 때문에 시민·사회단체들은 보건의료에 관한 한, 운동의 내용 구성을 진보적 보건의료단체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었다. 노동운동에서도 그것은 항상 병원노련이나, 의보노조의 몫으로 돌려져 왔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능동적으로 대응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겪는 곤란이 크다. 예를 들어 보건의료에 관련되어 열리는 각종 위원회, 공청회 등에서 국민의 이익을 옹호해야 할 사회단체의 대표들이 제 역할을 다 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일도 많이 경험할 수 있다.

사회단체는 이제 보건의료 문제에 대한 전문성을 대폭 강화해서 이런 상황을 넘어서야 한다. 비록 의·약학 기술적인 부분에서는 난점이 많다고 해도, 보건의료 정책적인 부분에서 전문성을 획득하는 일은 다른 분야와 다를 것이 없다. 기술적인 부분에서는 보건의료단체가 지원할 수 있다. 일정한 전문성을 얻지 않고는 국민들을 위한 보건의료운동의 한 주체로서 사회단체의 자생력은 생기지 않을 것이다. 사회단체들이 보건의료단체들의 도움을 받아 학습을 위한 공동 세미나 등을 개최하는 것도 방법이 되겠고, 소비자 단체의 일부가 보건의료에 대해서 특화하는 것도 가능한 방법일 수 있겠다. 물론 진보적 보건의료인 단체는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보건의료단체와 사회단체는 운동의 양 주체로 이해되어야 한다.

또한 지금까지 사회단체의 보건의료 프로그램은 대부분 정부, 의료보험단체, 병의원 등 보건의료 제공자들이 제시한 정책과 이미 전개되고 있는 사업들에 대해 문제점을 지적하고 수정을 요구하는 '대응'의 방식으로만 진행되어 왔다. 그러나 진보적 보건의료체계는 대부분이 현재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것들로 구성되어야 한다. 의료보험의 보장성 부족이 실직과 함께 가정 경제를 파탄시키는 최대의 함정으로 남아있는 바, 의료보험 급여의 확충이 필수적이지만 사회단체는 그 대안을 찾지 못하고 있다. 아동과 여성의 건강은 여전히 담보되고 있지 않은데, 노인과 장애인은 날로 증가하고 있다. 아동, 여성, 노인, 장애인의 보건프로그램은 대부분 새로 구성되어야 한다. 학생들은 과중한 학습부담을 견디지 못해 일탈하고 있으며, 노동자들의 환경은 악화되고 있다. 학교보건은 운동의 과제로 선정조차 되지 못한 상태이고, 산업보건은 원진레이온 이후 이렇다 할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보건의료에 대한 잠재적 요구는 매우 높으나, 국민들은 '무엇이 없는지', '무엇을 어떻게 하면 되는지' 그 자체를 모르고 있다. 모르는 것은 요구되지 않고 영원히 쟁취되지 않는다.

21세기 초반부에 우리가 기필코 수립해야 할 복지사회에서 보건의료는 중요한 일부분이 되어야 한다. 수동적 대응에서 능동적 제안으로 운동 방식을 전환하고, 이를 뒷받침한 전문성을 획득하지 못하면 사회운동은 이것을 성취할 수가 없다.

1999년 2월

김용익 / 서울의대 교수, 참여연대 집행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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