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건강보험법! 무엇을 담고 있나

1999년 1월 6일은 완전 통합의료보험법안인 국민건강보험법이 통과되던 날이다. 이날 저녁 필자는 문득 한순간 아련한 과거의 기억 한 줄기를 떠올리게 되었다. 꼭 무엇을 기억해 내겠다는 의도는 전혀 없었다. 그냥 아물아물 떠오른 것이다. 사당의원 4층 옥상에 마련된 작은 회의실에서 의료보험 통합과 관련된 회의를 하는데, 당시 필자가 의과대학 학생의 신분으로 참관을 했던 기억이 난다. 자세한 내용을 잘 알지는 못했지만 농민운동의 차원에서, 도시빈민운동의 차원에서 나름대로 의료보험통합운동의 의미를 이해하려고 애쓰던 필자의 모습이 떠오른다. 아마도 그것은 '의료보험 통합 공동대책위원회'(의보공대위)의 회의였을 것이다. 기억이 아련하긴 하나 약 11년 전의 일이다. 그리고 1989년 여야 3당의 합의로 국회를 통과한 의료보험통합법안이 당시 노태우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무산되었던 사실, 1992년 대선 당시 의료보험 통합이 각 당의 공약으로 채택되도록 하기 위해 분주히 뛰어다니시던 보건의료단체 간부들과 여러 선생님들의 모습, 그리고 68개 시민사회단체가 망라된 의보연대회의가 출범한 1994년, 그 후에 벌어진 수많은 논쟁들이 어지럽게 스쳐지나 간다.

국민건강보험법안의 통과로 지루했던 보건계의 20년 논쟁이 마침내 종결된 것이다. 이는 보건사의 일대 사건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이렇게 한 시기가 매듭지어졌다. 그리고 새로운 출발이 우리 앞에 놓여 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우리나라 보건의료제도가 한 단계 도약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것은 통합 주체 세력뿐만 아니라 우리 국민 모두의 몫이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서 국민건강보험법의 주요내용과 의미를 살펴보자.

① 보건복지부에 건강보험심의조정위원회를 설치하여 요양급여의 기준 및 요양급여비용 등 건강보험에 관한 주요사항을 심의하도록 함(안 제 4 조) : 이는 보건복지부내에 현 의료보험심의위원회를 건강보험심의조정위원회로 개칭하고 의사결정 권한을 강화한 것으로 건강보험에 관한 최고 정책심의기구이다. 여기서 돋보이는 것은 농어민, 노동계, 시민단체 등이 이 기구에 참여하게 됨으로써 민주성이 확보되었다는 점이다.

② 국내에 거주하는 국민은 의료보호대상자 등을 제외하고는 모두 건강보험의 가입대상이 되며, 그 가입대상자는 직장가입자 및 그 피부양자, 지역가입자로 구분함(안 제 5 조 및 제 6 조) : 금번 법안에서 의료보호가 국민건강보험에 통합되지 못한 점은 다소 아쉬우나, 이는 의료보호를 더 강화하여 실제적으로 건강보험에 통합되는 것보다 더 많은 혜택이 주어지도록 정책 방향이 구체화된다면 이 아쉬움은 해소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직장가입자는 현재 직장의료보험과 공교의료보험에 속한 자이며, 지역가입자는 현재 지역의료보험에 속한 자를 말한다.

③ 건강보험의 보험자는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 하고, 공단의 이사장은 보건복지부장관의 제청에 의하여 대통령이 임명하며, 이사는 보건복지부장관이 임명하도록 함(안 제 12 조 및 제 19 조 제 2 항·제 3항).

④ 국민건강보험공단에 가입자대표·공익대표 등으로 구성되는 재정운영위원회를 설치하여 보험료의 조정 등 보험재정에 관한 주요사항을 심의·의결하도록 함(안 제 31 조 및 제 32 조) : 재정운영위원회의 위원은 직장가입자를 대표하는 10인, 지역가입자를 대표하는 10인, 공익을 대표하는 10인으로 구성되며, 국민건강보험제도의 재정안정을 위한 보험료 조정 등 재정 전반에 관한 사항을 결정하는 중요한 기능을 수행하게 된다. 이 위원회 역시 노동계, 농어민, 소비자단체 등이 참여하게 되어 민주적 참여기전이 확보된 것으로 평가할 수 있겠다.

⑤ 건강보험 가입자 및 피부양자의 질병·부상·출산 등에 대하여 진찰·약제지급·치료·예방 등의 요양급여를 요양기관에서 실시하고, 기타 장제비와 상병수당 등의 임의급여를 대통령령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실시할 수 있도록 함(안 제 39 조 제1 항·제 40 조 제 1 항 및 제 45 조) : 현재도 장제비 등의 임의급여는 실시하고 있으나, 상병수당을 급여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 있다는 점에서 진일보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다만 상병수당제도를 실제로 도입하기에는 더 많은 사회적 논의와 합의 그리고 여건조성이 필요할 것이다.

⑥ 요양급여비용은 공단의 이사장과 대통령령이 정하는 의약계를 대표하는 자와의 계약으로 정함(안 제 42 조 제 1 항) : 그 동안 의료보험수가(의료인이 제공하는 의료서비스의 대가)는 복지부장관이 고시하여 왔으나, 이번에 의료계의 의견을 반영하여 수가계약제를 도입하게 된 것이다. 이 제도는 공단과 의약계간에 수가계약이 이루어지지 못할 경우 있게 될 갈등과 혼란에 대한 우려로 애초 정부안에는 포함되지 않았으나, 한나라당 황성균 의원이 제출한 법안과 절충하는 과정에서 여당과 정부가 이를 수용함으로써 도입된 것이다. 계약 만료일 전 3월 이내에 계약이 체결되지 아니하는 경우 보건복지부장관이 수가를 정하여 고시하도록 함으로써 수가결정을 둘러싼 혼선을 방지할 장치를 두고 있어 별 문제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⑦ 요양급여비용을 심사하고 요양급여의 질적 적정성을 평가하기 위하여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을 국민건강보험공단과 별도로 설립하며, 원장은 보건복지부장관이 임명하도록 함(안 제 55 조 및 제 58 조 제 2 항). : 이 조문은 의료계가 오랫동안 요구해 온 것이기도 하지만 보건학계의 뜻이 관철된 것이기도 하다. 의료기관이 진료비를 공단으로부터 상환받기 위해서는 먼저 진료비 심사가 이루어져야 하는데, 현재는 진료비 심사를 보험자인 의료보험연합회가 실시하고 있어 진료비 심사의 공정성 시비가 문제로 되고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심사기구를 독립시킨 것이다. 의료계는 심사기구의 독립은 간절히 원해 왔으나 급여의 질적 적정성 평가는 반대해 왔다. 이 부분은 보건학계가 희망했던 것으로, 의료기관의 과잉진료와 저질진료에 불이익을 줌으로써 적정한 양질의 진료를 유도하기 위한 획기적 기제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⑧ 직장 가입자의 보험료는 그 가입자의 등급별 표준보수월액에 보험료율을 곱하여 산정하도록 함(안 제 62 조 제 3 항 및 제63 조).

⑨ 지역가입자의 보험료는 그 세대의 등급별 표준소득월액에 보험료율을 곱하여 산정하도록 함(안 제 62 조 제 4 항 및 제 64조) : 의료보험통합의 핵심은 보험료 부과의 형평성 달성에 있다. 지역의보와 공교의보의 통합으로 탄생되어 1998년 10월부터 운영되고 있는 국민의료보험관리공단이 지역조합의 보험료 부과체계를 통합하여 보험료 부담의 형평성을 제고한 바 있다. 향후 지역과 직장에 단일하게 적용될 새로운 보험료 부과체계의 개발이 결정적으로 중요한 사안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여기서도 직장, 지역 할 것 없이 소득이 적은 사람은 보험료를 적게 내고 소득이 많은 사람은 많이 내는 형평성 원칙의 강화가 요구된다 하겠다.

⑩ 국민건강보험공단 및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처분에 불복이 있는 자는 국민건강보험공단 또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등에 이의신청을 제기할 수 있으며, 그 이의신청에 대한 결정에 불복이 있는 자는 보건복지부에 설치되어 있는 건강보험분쟁조정위원회에 심사청구를 할 수 있도록 함(안 제 76 조 및 제 77 조).

⑪ 국민의료보험관리공단을 이 법에 의하여 설립된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 하고, 의료보험조합·의료보험연합회의 권리·의무는 국민건강보험공단이 포괄 승계하되, 의료보험연합회의 심사업무와 관련된 권리·의무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승계하도록 함(안 부칙 제 3 조 및 제 7 조 제 1 항) : 애초 정부안에는 현재의 공단과 연합회를 모두 해소하고 국민건강보험공단을 새롭게 설립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으나, 황성균 의원의 안을 정부와 여당이 수용하여 이는 공단으로의 흡수통합을 의미한다.

덧붙여, 이 법의 부칙 제 1 조에서 시행시기를 2000년 1월 1일로 하고 있으나, 부칙 제 10 조에서 재정통합에 대해서는 경과조치를 두고 있다. 즉 "공단은 2002년 1월 1일 이전까지의 기간 내에서 대통령령이 정하는 날까지는 직장가입자 및 지역가입자의 재정을 각각 구분하여 계리할 수 있다"로 되어 있다. 그러나 재정통합이야 말로 의료보험통합의 핵심적 요소인 점을 고려해 볼 때 가급적 빠른 시일 안에 형평적 보험료 부과체계를 개발하여 재정통합을 이룰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 보건의료행정은 마땅한 정책적 수단을 갖고 있지 못하다. 의료자원의 대부분이 민간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 유일하게 정부가 보유하고 있는 정책수단이 의료보험급여를 통한 제반 정책이다. 국민건강보험법의 통과로 단일 보험자 시대를 열게 되었다. 이로써 우리나라 보건의료제도가 후진성을 탈피하여 선진화의 길로 나아갈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된 것이다. 다음의 과제는 건강보험재정의 건전화다. 현재 의료보험재정은 년간 약 10조 원에 이른다. 이 중 약 2조 원 가량이 잘못된 정책으로 인하여 누수되고 있다. 이것을 바로잡아야 한다. 보험재정의 건전화란 재정수입과 지출이 국민의료의 필요에 제대로 부응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는 제반 개혁조치의 추진을 의미한다. 2000년 1월 이전에, 즉 금년 한해 동안 이 작업을 완료해야 한다. 이를 통해 국민으로부터 필요성을 인정받고 신뢰받는 건강보험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그래야만 현재의 보험료 저부담 대신 적정부담을 국민에게 설득할 수 있고, 그 만큼 포괄적이며 적정한 급여를 제공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상이 / 새정치국민회의 보건의료정책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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