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20 2020-11-01   578

[동향2] 제2회 한국반빈곤영화제를 마치며

제2회 한국반빈곤영화제를 마치며

 

이재임 빈곤사회연대 활동가, 제2회 한국반빈곤영화제 기획단

 

10월 17일은 UN이 지정한 세계 빈곤 퇴치의 날이다. 노점상·홈리스·철거민·임차상인·장애인·등 빈민 단위는 매년 10월 17일 빈곤철폐의 날을 맞아 빈곤없는 세상을 위해서는 빈민에 대한 시혜, 동정이 아니라 빈곤을 양산하는 사회구조에 문제제기 해야함을 선언해 왔다. 이를 위한 빈민들의 연대와 행동은 빈곤 해결의 씨앗이다. 올해는 코로나19에도 계속되는 불평등과 차별을 마주했다. 정부는 수입이 끊긴 임차상인의 임대료부담을 임대인의 선의에 기댄 ‘착한임대인 운동’으로 돌파하겠다고 하였지만 이에 참여한 점포는 4만개, 작년기준 전체 점포수에 비교하면 1.04%에 불과하다고 한다. 한편 IMF보다 더 하다는 실업률 속 노동자들은 여전히 바늘구멍같은 복지제도에 포함되지 못한다. 같은 재난의 시대를 지나고 있음에도 ‘합법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재난지원금 지급 대상에서 배제된 노점상, 집에 머무르란 방역지침을 이행할 수 없는 홈리스. 그리고 머무를 집마저 부숴지는 철거민들은 코로나19와 그에 따른 방역 지침 속에 최소한의 생존의 조건 마저 위협받았다. 코로나19는 가난한 이들의 삶과 목소리를 가렸다.

 

이런 자장 속에 제2회 한국반빈곤영화제 기획단이 꾸려졌다. 제1회 영화제 이후 4년만이었다. ‘행동하는 빈민들의 목소리를 담는다’는 제1회 영화제의 방향을 이어 받으며, 2회 영화제의 구체적인 상은 코로나19를 지나오며 더 명확해졌다. 코로나19로 드러난 불평등한 재난의 현장들 속에서 가난한 이들은 각각의 공간에 고립되어 각개전투로 생존의 조건을 요구했다. 기획단은 바로 지금이 어느때보다 가난한 이들의 목소리를 모을 공간이 필요한 때라고 의견을 모았다.

 

빈민들이 주인공이 되고, 빈민이 직접 찍은 영화를 우선한다는 것은 반빈곤영화제의 주요한 원칙이다. 기획단은 극장이라는 공간, 영화라는 매체를 빈민의 삶과 더 가까운 자리로 끌어오기 위해 고심했다. 자연스레 상영작 선정에 대한 고민도 이어졌다. 영화를 비롯한 매체 속 빈민들은 ‘선하고 무해’한 모습으로만, 감동이나 이야기를 위해 왜곡되어 소비되곤 한다. 영화제는 ‘그림’이 되는 장면만으로 도려내진 빈민의 삶을 다룬 영화가 아닌, 빈민 스스로가 주인공이 되어 삶과 투쟁의 궤적을 이야기 할 수 있는 영화제를 만들고자 노력했다. 이에 올해는 ‘땅값’이 오르는 자리에서 지워지는 가난한 이들의 삶, 상품으로서의 집이 아닌 주거권 쟁취를 위한 논의와 운동, 소수의 이윤을 위해 작동하는 도시에 반기를 드는 목소리 등을 담은 작품을 우선 선정했다. 영화제는 도시에서 배제되어 온 가난한 이들의 존재와 모습을 드러내는 것에서 나아가, ‘도시의 개발은 누구를 위한 것이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빈민들의 목소리로 던지고자 했다. <누가 집값을 올리는가> 라는 영화제 슬로건이 그렇게 결정됐다.

 

<사진 2-1> 제2회 한국반빈곤영화제 포스터, 출처=제2회 한국반빈곤영화제 기획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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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섹션2 시간에는 <도시목격자>, <끝나지 않은 편지>, <노량진수산시장투쟁영상>이 차례로 상영됐다. <끝나지 않은 편지>는 과거 민주화 운동으로 수감된 이와 그 가족이 나눈 옥중편지를 현시점의 콜트콜텍 노동자, 궁중족발 투쟁 현장, 스타케미컬 노동자의 입으로 낭독하는 다큐멘터리다. 영화 속 부인의 옥바라지 편지가 낭독되자 상영관 곳곳에서 작은 흐느낌들이 들려왔다. 이어진 <노량진수산시장투쟁영상>에서 용역과 수협에 의해 노량진수산시장 상인들의 농성장이 있는 육교가 끊어지고, 환호하는 용역들의 모습을 담은 대목에 이르자 상영관에서 울음 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해당 섹션 객석의 상당수는 노량진 수산시장 구시장 상인들이 자리했다. 수협의 ‘현대화’ 투기 사업으로 구시장에서 내몰린 뒤, 인근의 육교 위에서 1년 넘게 공간을 되찾기 위한 투쟁 중인 이들이었다. 지난 19년 5월, 고지 절차 없이 진행된 명도집행 과정에서 상가 집기를 들어내는 용역과 수협직원을 저지하고자 옆에 있던 해장국을 뿌린 한 상인은 부동산강제집행효용 침해·특수상해 혐의로 구속되었고, 술에 취해 해머를 휘둘렀던 수협직원은 구속이 기각됐다. 그로부터 1년 5개월간 옥바라지를 했던 노량진 수산시장 상인들은 동지이자 남편의 출소를 사흘 앞둔 날 함께 영화제에 모였다.

 

GV에 함께했던 <끝나지 않은 편지>의 박은선 감독은 <노량진수산시장투쟁영상> 속 용역들의 환호 장면을 언급하다 목이 메어 잠시 말을 중단했다. 옥바라지 골목 개발 반대 투쟁에 함께 했던 그는 해당 장면을 보며, 옥바라지 골목이 철거될 당시 손뼉치며 후련해하는 조합원들의 얼굴이 겹쳐보였다 전했다. 권리쟁취를 위해 싸우는 이들을 향한 수많은 탄압이 공공과 합법의 이름으로 벌어진다. 이런 도시의 풍경은 비단 해당 섹션 작품 속 이야기만은 아니었다. 2011년 서울역 노숙인 강제퇴거와 그에 반대하는 홈리스 단체의 운동을 다룬 <머물 수밖에, 떠날 수밖에>, 월드컵 난개발에 대항하는 브라질 선주민의 투쟁을 다룬 <예외상태>등의 작품을 통해 영화제를 찾은 관객들은 서로 다르지만 많은 부분이 교차되는 삶을 나눴다.

 

<사진 2-2> 제2회 한국반빈곤영화제 현장, 출처=제2회 한국반빈곤영화제 기획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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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제를 찾은 한 관객은 GV 시간들이 작은 집회처럼 느껴졌단 감상을 전했다. 영화를 둘러싼 현장의 증언과 고민, 서로를 향한 위로와 격려를 나누며 서로 다른듯 보이지만 많은 부분들이 연결된 삶의 자리를 가늠하는 시간이었다. 많은 이들이 코로나19로 붕뜬 1년을 보냈다. 불확실한 미래 너머를 내다보기 힘든 시간들이 이어진다. 이런 시기일수록 빈민들이 도시에 남겨온 뚜렷한 발자취를 되돌아보며, 함께 목소리 낼 수 있는 공간을 더 끊임없이 펼쳐내는 것이 한국반빈곤영화제가 할 수 있는 역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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