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복지부장관 고발의 변

절박한 사회보장체계 :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제정 필요

IMF의 구제금융으로 경제위기를 연명하는 신세가 된 지 어느덧 1년 반이 지나고 있다. 사회 전반적으로 행해지고 있는 구조조정과 정리해고, 기업 간 빅딜 등은 많은 노동자들을 노동시장으로부터 퇴출시키고 있으며, 비공식부문 노동자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개인과 가정의 차원에서는 실직, 소득의 급격한 감소로 가정해체가 이루어져, 이혼이 증가하고 노숙자가 증가하고 있다. 이에 밥을 굶는 어린이와 노인, 요보호대상이 된 아동들이 대폭 증가하고 있으며 생계유지를 위한 반인륜적 범죄행위도 급증하고 있다.

그 동안 경제성장 이데올로기와 분단상황에 밀려 등한시되어 오던 사회보장체계로는 쏟아지는 실직자와 그 가정을 돌볼 수 없는 지경이다. 그리하여 정부는 부랴부랴 고용보험을 손질하고 공공근로사업, 한시적 생활보호 등을 도입하고 있지만 전달체계도 갖추지 못하고 정확한 실태파악도 하지 못한 채 전시행정으로 흐르다 보니 실질적인 실업대책으로 기능하지 못하고 있다.

급여대상이나 수준이 취약한 고용보험과 19세기 구빈법 수준의 생활보호제도로 실업대란을 어떻게 견뎌낼 것인가? 이에 지난 해 6월 참여연대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을 입법청원하였다. 이것은 기존의 생활보호법을 대체하여 그야말로 국민최저생활수준을 국가가 책임지는 공공부조제도를 확립하기 위해서였다. 다행히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몇몇 의원들이 법안을 발의하여 소위원회까지 통과된 단계에 이르렀다. 그러나 재경부와 국무조정실 등에서 예산을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 현재는 취로구호인지 소득보장인지 엉성하고도 모호한 성격을 띠는 공공근로사업이 실업대책의 대명사로 군림하고 있을 뿐 사회보장체계의 확립은 지체되고 있는 것이다.

사회 전반적으로 사회적 안전망의 필요성이 제기되었지만 실업에 대한 안전망은 매우 취약한 상태이며, 따라서 실직자의 빈민화는 시간이 갈수록 급진전될 것이다. 급여 수급에 일정한 지위와 기간이 요구되는 사회보험 형태의 안전망도 시급하지만 당장의 생계를 위협받는 계층에 대한 부조적 안전망의 설치가 무엇보다도 시급하다.

생활보호법이라도 제대로 시행해 야

그렇다면 생활보호법이라도 제대로 시행해서 실직상태에서 더 나아 가 빈민으로 전락하게 된 개인과 가정들을 보호해야 할 절실한 필요가 있다고 하겠다. 생활보호법은 영국의 구빈법을 닮은 일본의 휼구규칙(1874), 공황이후 제정된 구호법(1929), 이것을 우리 나라에 적용하였던 조선구호령(1944) 체제를 해방 이후에도 계속 유지해 왔었다. 그러다가 지난 `95년 참여연대에서 생활보호법 개정안을 입법청원하였고, 이것이 국회에서 여야 협상을 거쳐 `97년 8월에 개정되었고, 법 시행은 `98년 7월 1일부터 이루어졌다.

■ 생활보호법의 치명적인 문제

당시 생활보호법의 가장 독소적 규정은 제3조의 적용대상자 기준이었다. 이는 65세 이상 18세 미만 등 인구학적 범주를 기준으로 하여 노동무능력자로서 부양의무자가 없는 자를 대상으로 한다. 이 규정은 조선구호령 당시부터 존재했던 것으로서 19세기 영국의 개정 구빈법의 취지에 부합한다. 즉, 빈곤의 원인을 개인의 인구학적 변수로 규정하기 때문에 일정한 조건을 가진 사람만을 보호의 대상으로 하는 것이다. 이러한 대상자 조건으로는 현대 자본주의의 구조적 피해자라 할 수 있는 빈민들을 보호하지 못하는 결함을 가지고 있었다.

영국에서도 19세기말에 공황을 겪고 나서 빈곤의 원인에 대해 재고하게 되었으며, 1909년 왕립위원회의 다수파보고서와 소수파보고서에 의해 구빈법의 정당성이 상실되고 결국 공공부조제도를 도입하게 되었던 것이다. 미국 역시 대공황 이후 사회보장법 제정에 따라 공공부조제도를 도입하였다. 이것은 빈곤문제가 더 이상 개인적 책임의 문제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자산조사 내지 자격심사를 통하여 일정한 기준 미만의 자는 부조의 대상이 되도록 하는 것이다.

따라서 생활보호법 제3조의 규정은 존재의 의미가 없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생활보호대상자를 선정하는 자산조사의 합리적 기준을 설정하는 것이다. 생활보호법 개정 당시 이 조항에 대한 철폐를 요구하였으나 이후 개정된 법에서조차 약간 완화된 채 여전히 존속하게 되었다. 즉, 부양의무자가 있어도 부양능력이 없거나 부양을 받을 수 없는 경우에 대해서(법 제3조 제3항) 동 시행령 제2조에서 몇 가지 경우를 적시하는 정도로 미봉되었다.

그러므로 생활보호법은 아직 완전한 공공부조제도로 인정되기 어려운 측면이 있는 것이다.

■ 유일한 대항무기 최저생계비의 결정과 공표

생활보호법의 현실이 이러하지만 보호대상자의 입장에서 자신의 생존권 실현을 위해 의지할 수 있는 장치가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보건복지부장관이 최저생계비를 결정하여 매년 공표하도록 한 것이다. `95년에 제정된 사회보장기본법은 국가로 하여금 관계법령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최저생활비를 공표하도록 규정하였으며(제10조 제2항), 이것과 최저임금법에 의한 최저임금을 참작하여 사회보장급여의 수준을 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같은 조 제3항).

이에 따라 사회보장기본법의 하위법인 생활보호법의 개정에서 최저생계비에 관한 규정(제5조의 2)이 받아들여 져 법개정의 수확이라 할 수 있었다. 즉, 생활보호법이 실질적인 공공부조법으로 기능할 수 있도록 보건복지부장관은 매년 다음 연도의 최저생계비를 중앙생활보호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12월 1일까지 공표하도록 규정한 것이다. 이것이 보호대상자의 선정과 급여수준의 기준이 되도록 한 것이다. 최저생계비가 현실적으로 합리적인 수준에서 결정되고 공표된다면, 이것은 헌법 제34조 제1항의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충족시킬 수 있는 하나의 기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 동안 생활보호행정이 예산부터 할당해 놓고 대상자 수를 꿰맞추는 식으로 이루어져 온 것에 대해 개정된 법률안은 최저생계비수준을 계측한 다음에 이를 토대로 대상자의 규모를 파악하여 합리적인 예산을 책정할 수 있도록 도입한 방식이다.

따라서 고실업시대를 맞이하여 장기실업자들이 증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의 제정이 지체되고 있더라도 생활보호법이나마 제대로 실현한다면 실직자나 저소득층 국민들의 최저생활수준을 과거보다는 더 잘 보장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법적 조치대신에 옥상옥과 같은 한시적 생활보호를 도입하였고, 생활보호는 빈민이 된 실직자에 대해 실질적인 보장체계가 되지 못하고 있다.

보건복지부장관의 책임을 묻는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의 제정에도 미온적이고 그나마 마련되어 있는 생활보호법의 중요한 규정도 지키지 않는 보건복지부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사실, 국가적 위기상황 속에서 생활이 어려운 국민들이 늘어나고 있다면, 국가의 고용대책은 노동부가 주도하더라도 실업대책은 보건복지부가 주도적으로 수행해야 할 것이다. 현재 실업대책은 여러 부서가 난립하여 시행하고 있고 그 과정에서 보건복지부는 중심적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고 평가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건복지부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제정에 소극적인 자세를 버리지 못하고 있다. 이처럼 중요한 시기에 보건복지부장관은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의 제정을 위해 노력하고, 또한 기존의 생활보호제도나마 법적으로 주어진 제도를 잘 활용하여 저소득층의 생활안정을 위해 노력해야 할 법적, 도의적 책임을 지고 있는 것이다.

현재의 보건복지부장관은 지난 `98년 4월에 임명되었다. 실업대란기에 보건복지부장관을 맡았다면 당연히 실직자와 그 가정을 돌보는 정책에 주력해야 했고, 따라서 사회보장기본법 및 생활보호법상 부과된 장관의 법적 의무 이행에 주의를 기울였어야 한다. 그리하여 지난 `98년 12월 1일까지는 `99년도 생활보호행정에 적용될 최저생계비를 공표했어야 한다. 기존에 보건사회연구원 등에서 계측한 수치를 활용하여 물가상승률 등을 고려했다면 정책적인 최저생계비는 충분히 공표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이전에 정부의 예산안이 준비되는 동안 기존에 계측된 최저생계비를 고려하여 생활보호예산 확보에 주력했어야 한다.

실업대책의 주도권도 노동부에 넘겨주고, 하물며 중앙생활보호위원회조차 구성하지도 않고 최저생계비의 결정 및 공표를 무시해버리는 등 기본적인 행정적 조치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보건복지부장관에 대해서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이는 법으로 규정한 장관의 직무를 유기한 것이므로 이에 참여연대는 보건복지부장관에 대해서 직무유기죄로 고발을 하게 된 것이다.

고발에 거는 기대

명목상의 사회보장제도를 유지해 오다가 진정으로 사회보장제도의 도움이 필요한 현재 사회보장제도의 체계를 확립하기 위한 노력보다 임시방편적인 공공근로사업이나 한시적 생활보호로 일관하고 있는 우리의 실업대책은 그 효과성이나 효율성 모든 면에서 문제가 많다.

현재 전달체계망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상황에서 주먹구구식으로 이루어지는 공공근로사업 등을 통해 누수되고 있는 돈이면 기초생활보장제도를 충분히 운영할 수 있다고 본다. 국민의 최저생활수준의 가늠자가 되는 최저생계비를 정부가 공표하는 것은 진정한 공공부조를 통해 국민을 생활상의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겠다는 최소한의 의지를 표명하는 것이다.

이에 책임당국인 보건복지부장관 고발을 계기로 다음과 같은 진전을 기대해 본다. 우선, 무책임한 복지행정에 매몰되어 있는 보건복지부에 자성의 계기가 마련되고, 실업대책의 중심부서로 보건복지부의 위상을 강화하고,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제정에 보건복지부가 적극적으로 노력하며, 그리하여 도탄에 빠진 기층 민중의 삶을 위한 총체적 제도적 개선이 이루어질 수 있기를 절실하게 바라는 바이다. 아울러 법이 보장하고 있는 복지권의 실현을 위해 사회적 법치주의의 확립을 촉구한다.

윤찬영 /전주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


참여연대 NOW

실시간 활동 SNS

텔레그램 채널에 가장 빠르게 게시되고,

더 많은 채널로 소통합니다. 지금 팔로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