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02 2002-09-10   935

최선책이 된 최후의 수단

부랑인복지시설설치·운영규칙 개정안의 문제점

보건복지부는 지난 8월 2일 부랑인복지시설 설치·운영규칙 중개정령(안)(이하 개정령안)을 입법예고 했다. 이번 개정령안은 노숙인복지에 종사하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커다란 충격과 함께 상처를 주었다. 개정령안의 문제조항 삭제를 위한 다양한 활동으로 정신 없이 지내다 보니 벌써 여름이 다 지나고 가을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부랑인 = 노숙하는 자?

개정령안의 주요골자 (가)는 법적근거 규정이 없는 노숙인을 부랑인의 개념에 포함시켜 관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규칙 제2조 제1호인 부랑인의 정의를 개정한다고 한다. 이것은 너무나 웃긴 얘기다. 마치 사람은 누구나 노인이 되니 청소년을 노인의 개념에 포함하여 노인복지에 관한 규칙을 개정하겠다는 것과 다름없다. 98년 노숙인복지가 시작된 이래 많은 연구서들이 나와 있다. 모든 연구서에는 노숙인을 상위개념으로 노숙인 부랑인 행려자로 정의하고 있다. 이러한 연구성과를 무시하고 개정령안을 고수한다면 그것은 국가적 망신을 자초하는 일이 될 것이다.

뒤늦게나마 보건복지부가 문제조항을 삭제하겠다고 밝힌 것은 천만다행이다. 물론 이번 개정령안은 보건복지부에서 지난 6월부터 시행하고 있는 “미신고 복지시설 양성화 추진계획”의 후속작업의 일환이었으며 부랑인복지시설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회복지 생활시설에 관한 규칙 개정령안도 입법예고 되었다.

노숙인복지에 종사하다보니 노숙인 관련 조항에 보다 많은 힘을 실어 반대했으나 개인적으로는 “미신고 복지시설 양성화 추진계획”의 후속작업으로 진행되는 각종 사회복지시설 개정령안들이 갖고 있는 문제점이 더욱 크다고 생각한다.

미신고복지시설 양성화방안의 문제점

이번에 입법예고 된 각종 사회복지생활시설 개정령안들의 내용을 요약해보면 “시설설치기준에 대한 완화, 종사자자격기준완화 및 행정의 간편화” 이다. 물론 현재 “미신고 복지시설”의 국가복지체계에 편입하고자 하는 의도는 선의로 보아야 할 것이다. 또한 현행 법령으로는 “미신고 복지시설”의 신고를 받을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노숙인쉼터, 부랑인복지시설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회복지 생활시설에서 생활하고 있는 분들은 사회적 약자들로서 그들은 자신의 의견을 잘 밝히지 못하고, 주장을 잘 표출하지 못한다. 현재의 개정령안이 그대로 통과 된다면 사회복지 생활시설 입소인들에 대한 서비스는 오히려 약화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커다란 문제이다.

사회복지에 대한 예산투자가 우선

대부분의 사회복지 학자들과 각종 사회복지 생활시설에 종사하는 사회복지노동자들은 열악한 근무조건과 환경으로 시설 생활자들에게 제대로 된 사회복지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다는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국가가 국가의 의무인 사회복지에 보다 많은 예산을 투여하는 등의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현재 입법예고된 개정령안들을 보면 오히려 역행하고 있는 듯하다.

8월 19일자 한겨레신문의 고희범 논설위원이 쓴 글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영국의 대처 전 수상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일이다. 정부 인사가 외국을 방문할 경우 반드시 그 나라 소외계층을 돌아보도록 하는 영국의 관례에 따라 아동복지단체를 방문하게 돼 있었다. 단체 방문에 앞서 한국의 아동복지 현황에 대한 설명을 듣던 대처가 ‘아니, 이 나라에 고아원이 있다는 말인가!’ 하며 깜짝 놀라더라는 것이다. 한국의 관계자들은 영국에서는 이미 70여년 전에 보육원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확인하고서야 그 이유를 알았다.”

이 일화는 한국 사회복지의 후진성을 보여주는 일화이다. 86년 5월의 일이었다. 1979년 5월 수상직에 올라 흔히 “영국병”을 치유하는 등 철의 수상 불린 대처 전 수상은 다양한 평가가 공존하는 정치인이다. 여러 평가 중 영국의 사회복지를 후퇴시켰다는 평가는 별 이견이 없는 듯하다. 그러한 사람이 한국의 사회복지 현장을 방문하고 놀라움을 표시했다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적지 않은 한국의 자유주의자들이 대처 전 수상이 영국의 체질을 변화시켜 국가발전을 이루었다고 칭송하며 복지의 축소를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대처 전 수상이 2002년 현재 한국의 사회복지의 현실을 와서 본다면 어떤 이야기를 할지 궁금하다.

부랑인 정책, 복지 후진성의 상징

IMF 외환위기로 인해 실직노숙인이 등장하기 전까지 일정한 주거가 없이 거리에서 생활하는 이들에게 적용된 부랑인 정책은 복지정책이었다고 보기 어려웠다. 1987년 이전까지 부랑인은 강제수용의 대상이었다. 필요에 따라 언제든 강제로 수용할 수 있고, 그들의 인권은 무시되었다. 1981년 정권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사회정화사업이나 국제적인 체육행사는 이들을 대거 수용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당시 일반 국민의 인권도 존중을 받지는 못했지만, 스스로 주장을 할 수 없었던 부랑인의 인권은 거의 고려가 되지 않았다. 1987년 부랑인 시설의 인권 참상이 사회에 알려지면서 정부는 강제수용을 포기하지만, 부랑인 정책은 현재까지 저예산으로 많은 인원을 수용하는 정책으로 한국 사회복지의 후진성을 상징하고 있는 상황이다.

노숙인 복지, 복지계의 3D업종

대부분 한국 사회복지 생활시설은 최후의 수단이다. 그러나 한국사회에서 살아가는 사회적 약자들은 중간과정 없이 최후의 수단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IMF 외환위기로 촉발된 “사회안전망”에 관한 논의도 뚜렷한 결론을 내지 못한 채 잦아들고 있는 듯하다. 99년 본격화 된 노숙인 복지는 이제 만 4년을 맞이하고 있다. 지난 4년간 노숙인 복지를 위해 많은 사람들이 혼신의 노력을 다했다. 열악한 근무환경과 과중한 업무부담으로 인해 많은 이들이 노숙인 복지 현장을 떠났다. 그러나 “공인된 사회복지 3D 업종”의 1순위를 차지하고 있는 노숙인 복지를 위해 자신의 삶을 투신하고 있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이미 최후의 선택을 한 한국사회의 사회적 약자들을 생각해 보면 이번 개정령안들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사회복지계의 관심은 예상보다는 낮다. 마지막 더위가 쉽게 물러나지 않듯이 답답한 마음이 쉬이 사라지지 않는다.

조성준 / 전국실직노숙자대책 종교시민단체협의회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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