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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복지동향 200호 발행
  • 2019
  • 2019.09.06
  • 987

서울형 유급병가 지원제도 시행의 의의와 향후 발전방향

 

정혜주 고려대학교 보건정책관리학부 교수

 

서울형 유급병가 지원제도

서울형 유급병가 지원제도가 2019년 6월 1일부터 시행되어 8월 중순 현재 신청자 수 100명을 돌파하였다. 이 제도는 상병소득보장제도의 일종으로 가구 중위소득 100% 이하의 근로 혹은 사업소득이 있는 건강보험 지역가입자가 입원으로 인해 근로하지 못하게 되는 경우 서울시 생활임금을 최대 10일까지, 여기에 건강검진을 위한 1일을 추가하여 총 11일의 유급병가를 지원한다. 우리나라에서 상병소득보장제도는 주로 (공무원) 유급병가로만 존재하고, 일반 정규직 노동자들은 근로기준법상 제공되는 연차휴가를 사용해야 하는 상황이지만, 그것조차 지원되지 않는 건강보험 지역가입자 중 상대적으로 취약한 계층에게 유급병가를 지원하는 것이다.

 

이때 건강보험 지역가입자 중 근로 혹은 사업소득이 있는 가구 중위소득 100% 이하의 근로자는 누구일까? 해당 소득수준의 자영업자, 임시직, 일용직, 특수형태근로자, 비공식부문 노동자 등이다. 즉, 90년대 말 이후 한국 사회에서 진행된 노동유연화의 결과로 양산된 노동의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는 근로자의 대부분이 이에 해당된다. 즉, 취약노동자이기 때문만이 아니라 노동시장정책의 변화로 인해 노동권과 사회보장의 사각지대로 밀려나고 있는 노동자들이기 때문에 더욱 적극적으로 정책을 만들어 보호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 제도의 의의는 크게 세 가지 차원에서 논의될 수 있다. 첫 번째는 원론적 차원의 보편적 건강보장, 두 번째는 국내외적인 노동시장의 변화 흐름, 마지막으로 한국 사회에서 상병수당제도 도입의 필요성과 역사이다. 이후 향후 발전방향에 대해서 간략히 논의하며 이 글을 마치도록 한다.

 

건강보험을 넘어서는 보편적 건강보장의 필요성

보편적 건강보장(Universal health coverage, UHC)은 모든 사람과 공동체가 그들이 필요로 하는 증진적, 예방적, 치료적, 재활적, 완화적 건강서비스를 적절한 질과 효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한편, 이러한 서비스의 사용 때문에 경제적 고난에 빠지지 않도록 보장하는 것이다.(WHO 2019) 이러한 보편적 건강보장의 정의는 세 가지의 목표와 관련된다.

 

1. 건강서비스에 대한 접근에 있어서의 형평성 – 지불능력이 있는 사람뿐 아니라 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사람은 누구나

2. 서비스를 제공받는 사람의 건강이 개선될 정도로 건강서비스의 질이 충분히 좋아야 함

3. 재정적 - 위험으로부터 보호하여 서비스의 사용 비용이 경제적 위해를 가하지 않아야 함

 

보편적 건강보장의 대표적 정책은 건강보험이지만, 그 내용을 보면 의료보험에 가깝다. 일례로, 맞벌이 집안에서 돈을 버는 엄마나 아빠 중 한 명이 암으로 입원했다. 입원한 사람의 치료비는 건강보험으로 보장되지만, 그 치료기간 동안 가족의 생계는 모아둔 돈을 쓰거나, 재산을 처분하거나, 빚을 내는 식으로 융통해야 한다. 이 상황은 암에 걸린 사람이 집으로 돌아온 후에도 지속되어 보편적 건강보장의 1번뿐 아니라 3번 목표에도 위배되는 상황이 된다. 이 사람이 입원해 있거나 요양하고 있는 동안 간병인에 대한 비용도 지원되어야 하고(유광하 외, 2017 참고), 병원을 다니는 것이 경제적으로 부담이 되는 계층에게는 교통비도 지급되어야 한다(정혜주 외, 2013 참고). 가장의 질병으로 수입이 끊어져 가족들의 생계가 막막해지는 일이 없도록 그동안의 생활비도 지급되어야 한다(Ardeshir Sepehri et al, 2003; 송은철, 신영전, 2010; 이용갑, 2011 참고). 이 사람이 다시 일터로 복귀할 수 있을 때까지 걱정 없이 건강을 회복할 수 있도록 보장을 해주어야 진정한 ‘건강’보험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비용들을 우리 의료비에서는 ‘기타 손실’이라 부르고 있지만 진정한 건강보장을 위해서 이들을 보장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그림 1-1] 의료비의 구조

[그림 1-1] 의료비의 구조

자료: 정혜주 외, 2018

 

국내외 노동시장의 변화와 노동권 및 사회보험 사각지대의 증가

한편, 의존적 자영업(dependent self-employed) 혹은 위장된 자영업(disguised self-employment)은 겉으로 보기엔 자영업자이지만 사실은 어떤 고용관계에 있는 것과 비슷한 업무를 수행하는 자영업자 그룹을 지칭하는 말이다. 자영업자는 다음의 모든 조건에 부합한다. (1) 고객이 한 명 이상, (2) 점원을 고용할 권리(authority)를 가짐; (3) 경영에 있어서 중요한 전략적 결정을 할 권리를 가짐. 이 중 하나 이상의 조건에 부합하지 않으면 완전히 자유로운 자영업자로 보기는 힘들다는 것이다. 이러한 정의에 따르면 현재 특수형태근로자로 돼 있는 골프장 캐디나 우체국 택배노동자, 방문학습지교사뿐 아니라 프랜차이즈 본점과 긴밀한 관계를 갖고 경영적 자율성이 상대적으로 매우 적은 프랜차이즈 점주 또한 의존적 자영업으로 분류될 수 있다.

 

유럽이나 세계노동기구에서 이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는 이유는 이들이 노동자일 때 가질 수 있는 권리, 즉 단체교섭이나 노동법(최저임금, 노동시간 규제 등)에 의한 보호로부터 배제되고 있기 때문이며, 이들을 고용할 때 고용주가 준수해야 하는 고용에 관련된 세금, 고용주의 책임 등으로부터 고용주 또한 면제되기 때문이다. 최근 ‘긱’ 또는 ‘플랫폼’ 노동의 급속한 발전은 이러한 경향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급격히 증가하는 ‘배달 산업’에 종사하는 청장년 노동자들은 노동법의 보호 없이 무한경쟁에 내몰리고 있다. 이에 더해 임시직, 일용직뿐 아니라 비공식 분야에서 광범위하게 노동하는 가사 노동자나 무급가족종사자와 같이 노동자임에도 정규직 노동자의 권리를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고려가 더욱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의존적 자영업자나 비정규노동자들의 일터는 위험하고, 그 속에서 장시간 노동에 시달린다. 몸이 아파도 일을 쉬지 않는 출근주의(presenteeism)가 상대적으로 높은 우리나라에서 노동자들이 작은 통증이나 신체적 불편함을 무시하다 보면 더 큰 건강상의 문제로 이어지기 마련이다(정혜주 외, 2018). 길 위에서 낮밤이 바뀐 상태로 일하는 대리기사는 교통사고뿐 아니라 다양한 심혈관계 질환과 정신적 문제에 시달리고, 밥맛이 없어 영양상태도 좋지 않으며, 사회적 네트워크도 거의 끊어져 경제적으로 필요할 때 융통할 만한 인맥도 없다. 4대보험은커녕 100%에 가까운 운입율을 자랑하는 건강보험마저 없다. 그러다 보니 과로가 일상이라 ‘대리기사는 죽어야 쉰다’는 말까지 있는데 실제로 집에서 일터에서 심정지나 뇌졸중 등으로 사망하는 예도 최근에 있었다.

 

빈곤과 건강의 악순환, 즉 빈곤한 사람들이 더 많이 아프고, 그 아픈 것 때문에 다시 빈곤해지는 이러한 상황 자체는 새로운 것이 아니지만, 서울형 유급병가 지원사업은 이에 대한 새로운 대답이다. 문재인케어 등으로 의료보장성이 강화되고 있는 지금, 높은 의료비보다는 일을 못 해서 잃어버리는 생계비 때문에 가난해지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김대환 외, 2015) 특히 2008년 세계금융위기 이후 만성적 빈곤이 고착화되고 양극화가 심해지는 이 때(문다슬×정혜주 2018) 빈곤과 건강의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것은 시민들의 행복과 삶의 질을 높이는 데에 매우 중요한 함의를 갖는다고 할 것이다. 고용주를 가진 노동자의 권리, 특히 한국 사회에서는 공무원과 일부 정규직만의 권리인 유급병가를, 고용주가 없거나 일정하지 않은 노동계층에게 확대하는 제도이다. 고용주를 가진 노동자의 경우에는 고용주가 그 권리를 보장하도록 해야 한다.

 

국내 상병수당의 현황과 논의, 도입의 필요성

상해나 질병으로 인해 근로활동을 하지 못하게 되었을 때, 근로활동 중단으로 인한 소득상실을 보전해주는 목적을 가진 모든 제도를 통칭하여 상병소득보장제도라고 한다(신기철, 2011). 자동차보험과 산재보험의 휴업급여, 고용보험의 상병급여, 공무원 및 기업복지의 유급병가 등이 모두 상병 소득보장제도에 포함된다고 볼 수 있다. 노동자가 업무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질병 이외의 상병으로 인해 근로활동을 하지 못하게 되었을 때 소득을 보장해주는 제도는 대표적으로 유급병가와 상병수당이 있다.

 

유급병가는 근로기준법 78조에서 요양보상이라는 이름으로 ‘근로자가 업무상 부상 또는 질병에 걸리면 사용자는 그 비용으로 필요한 요양을 행하거나 필요한 요양비를 부담하여야 한다.‛라고 병가의 내용을 규정하고 있으나, 유급병가라는 명칭과 개념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명시하고 있는 법령이 없고 유사하게 존재하고 있는 법들도 ‘업무상’의 부상 또는 질병과 공무원이라는 신분에 국한되어 있는 실정이다.

 

상병수당은 ‘상병으로 인한 소득 상실 부분을 공적 사회보장제도가 보장해주는 제도’로 정의할 수 있으며, 유급병가와 달리 이미 제도적 개념의 형태를 갖추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2000년 국민건강보험법 개정을 통해 제50조(부가급여)에‚ 공단은 이 법에서 정한 요양급여 외에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임신, 출산진료비, 장제비, 상병수당, 그 밖의 급여를 실시할 수 있다.‛로 명시되어 있다. 그러나 법령에 ‘실시할 수 있다.’는 표현으로 인해 법적강제성이 떨어질 뿐만 아니라, 그 시행령(국민건강보험법시행령제23조)에서 임신·출산진료비만을 명시하고 있기 때문에 실질적인 제도 도입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그림 1-2] 업무상 및 업무 외 상병 및 장해 보상급여의 구조

[그림 1-2] 업무상 및 업무 외 상병 및 장해 보상급여의 구조

 

[그림 1-2]에서 노동자의 업무상 상병은 산재보험 등으로 보장되고 있지만, 업무 외 상병의 경우 공무원과 민간부문의 일부 정규직 노동자를 제외하면 아무런 보장체계가 없는 것을 알 수 있다. 산재보험 불승인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우리나라의 상황에서 업무외상병에 대한 보장체계가 없는 것은 노동자들의 건강한 삶에 큰 걸림돌이 될 수 있다.

 

그러한 이유에서 한국 사회에서도 꽤나 오랫동안 상병수당 도입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어 왔으며, 이 정책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도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다. 상병수당 제도가 언론에서 처음 언급된 것은 25년 전인 1994년 5월인데, 그때부터 2017년 10월 17일까지 실린 총 191편의 기사 중 대다수인 123편은 2016년 8월부터 2017년 5월 사이에 게시되어 최근의 폭발적 관심을 반영한다. 대선기간인 2017년 2-4월 사이 83편이 실렸는데, 한국환자단체연합회, 건강세상네트워크 등의 시민사회단체, 박원순, 양승조, 천정배, 이재명, 심상정 등이 상병수당에 대해 적극 찬성하거나 긍정적으로 언급하였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참여연대와 ‘공공의창’이 함께 한 여론조사인데, 응답한 전국 만 19세 이상 남녀 1,003명 중 76.1%가 상병수당 지급에 찬성하여 최저임금 1만원 찬성, 노인기초연금 인상, 청년수당 등에 비해 훨씬 높은 찬성도를 보였다.

 

대선시기 기본소득제도가 가장 큰 이슈로 부상하면서, 박원순 서울시장도 ‘한국형 기본소득제’의 예시로 “아동 양육을 위한 아동수당, 구직기의 청년수당, 성년의 실직·질병에 대비한 실업부조제와 상병수당제, 장애수당, 노인 기초연금을 들었다. 대선 초기 상병수당을 구체적인 공약에 포함시킨 후보는 박원순 대표가 유일했고, 12월 한 달 동안 상병수당과 관련된 기사들은 대부분 박원순 대표의 공약에 포함된 하나의 안으로써 언급되었다. 이후 박원순 서울시장은 대선레이스를 포기하였으나 상병수당은 서울형 유급병가 지원제도로 서울시 내에 안착하게 된다.

 

서울형 유급병가 지원제도의 향후 발전방향

한국에서 노동자의 업무외상병에 대해서 휴가를 지원하는, 공무원을 제외하면, 최초의 공적 상병소득보장제도로서 지방정부의 건강정책의 지평을 넓혔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서울형 유급병가. 시작은 했지만 갈 길은 멀다. 원래 이 제도는 보편적 제도로서, 근로 및 사업소득이 있고 일정한 고용주가 없는 모든 서울시민을 대상으로 하고자 하였다. 몸이 불편할 때 쉴 수 있고, 충분히 회복된 후 일할 권리는 취약계층만의 권리가 아니라 일하는 사람들 모두의 권리여야 하기 때문이다. 경제적 여력이 되는 사람은 자신의 경제적 여력을 사용하고 여력이 없는 사람들에게만 이러한 제도를 시행해주겠다는 것은 잔여적인 시각이며, 시민의 권리라는 차원에서도 제한적이다. 노동시장의 변화와 사회보장의 사각지대라는 시대의 흐름을 적극적으로 사고하여 서울형 유급병가의 범위를 확장해나갈 필요가 있을 것이다.

 

또한 사각지대에 대한 우려가 있다. 특히 건강보험 직장가입자 중 상대적으로 취약한 상태에 있는 노동자들이 방치된다는 지적이 있으나, 이 부분은 근로기준법 등 노동법과 관련된 부분이므로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하다. 그러나 특히 여성들이 광범위하게 종사하고 있는 가사노동 등 비공식 부문과 무급가족종사자 등은 공식적인 노동계약이 존재하지 않아 실제로 경제활동에 종사하고 있어도 수혜에서 배제될 가능성이 높다. 이들에 대한 전향적인 조치가 필요할 것이다.

 

 

한국 최초의 공적 상병소득보장제도다보니 당연히 상병수당과 연관 지어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보통의 상병수당제도는 기업에서 제공하는 유급병가를 다 소진한 후 국가에 의해 보조되는 경우가 많고, 본 정책은 전자, 즉, 기업에서 제공하는 유급병가를, 고용주가 명확지 않은 시민들에게 보장하는 형태로 디자인된 정책이다. 비록 유급병가는 법적 근거가 명확지 않지만, 근로기준법상 정해져있는 년 15일의 연가를 고용주가 명확지 않은 시민들도 받을 수 있도록 함으로써 향후 중앙정부수준의 상병수당이 도입될 때 건강보험 직장가입자 및 지역가입자 중 근로자성이 있는 가입자를 같은 수혜기간으로 포괄할 수 있도록 디자인한 것이다. 따라서 현재 서울형 유급병가 지원제도의 기준을 근로기준법상 휴가의 기준과 맞추는 작업도 이어져야할 것이다. 정규직뿐 아니라 고용주가 일정한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단체협약 등을 통해 유급병가의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정책적 지원이 이루어져야 하는 것도 당연하다. 그리고 이 유급병가를 가족이 돌봄이 필요할 때 사용할 수 있도록 하거나, 병가 대신 돌봄노동자를 파견해주는 등의 확장이 이후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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