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20 2020-09-01   979

[기획4] 노동 없는 ‘한국판 뉴딜’, 뉴딜이 아닌 역주행 가능성이 높다

노동 없는 ‘한국판 뉴딜’, 뉴딜이 아닌 역주행 가능성이 높다

 

박용석 민주노총 부설 민주노동연구원장

 

7월 14일 정부는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디지털 뉴딜(경제 전반의 디지털 혁신과 역동성 촉진 확산) △그린 뉴딜(경제 기반의 친환경·저탄소 전환 가속화) △안전망 강화(사람 중심의 포용국가 기반) 등을 통해 2025년까지 일자리 190.1만 개 일자리 창출을 목표로 하는 「‘한국판’ 뉴딜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이날 대통령은 “튼튼한 고용-사회안전망을 토대로 디지털 뉴딜과 그린 뉴딜을 두 축으로 세계사적 흐름을 앞서가는 선도국가로 나아가겠다”는 기조연설을 덧붙였다. 아울러,“추격형 경제에서 선도형 경제로, 불평등 사회에서 포용 사회로, 대한민국을 근본적으로 바꾸겠다는 정부의 강력한 의지”라며 20세기 자본주의의 새로운 발전 모델을 제시했던 미국의 뉴딜 정책에 버금가는 국가 발전 전략이라고 규정하기까지 했다. 미국 뉴딜정책에서 제시된 3R(Relief·Recovery·Reform) 경로를 벤치마킹하여 별도의 추진 경로(버티기→일어서기→개혁)도 아울러 제시했다.

 

이날 국민보고 형식으로 대통령이 직접 참여하고 기조연설까지 하며 포스트 코로나 및 문재인 정부 후반기 국가 발전 전략이라고 제시했던 ‘한국판 뉴딜’정책은 결론부터 얘기하면 ‘뉴딜’이라는 수식어를 달기에는 내용적으로 매우 미흡하다. 특히, 이날 정부 대책에서는 일자리 창출 목표만 제시되었고, 뉴딜의 핵심이랄 수 있는 세부 노동 정책은 거의 포함되지 않았다. 실제, 이에 앞서 정부가 발표한 「2020년 하반기 경제정책방향」(2020.6.1.)을 보면, 포스트 코로나 시대 개척을 위한 선도형 경제기반 구축 목표 아래 한국판 뉴딜 정책을 추진하겠다는 것이었다. 소위 경제활력 제고의 취지가 주된 것이었다. 정작 노동존중을 임기 초 국정방향으로 설정했던 문재인 정부의 2020년 ‘한국판 뉴딜’은 일단‘노동없는 뉴딜’에서 출발하고 있는 셈이다. 노동에서 자본으로, 소득에서 이윤으로 정책이 후퇴하는 문재인 정부 후반기 정책 방향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적어도 뉴딜 정책이라는 타이틀을 붙였다면, 과거 1930년대에 미국에서 구체화되었던 뉴딜 정책의 뿌리를 더듬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미국 루스벨트 정부는 당시 세계적 공황 국면에서 실업·빈곤 등으로 불안에 가득 찬 사회 취약계층(‘잊혀진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한 신정책을 발표하기에 이른다. “잊혀진 사람들을 위한 뉴딜”(New Deal for the Forgotten) 정책으로 출발한 뉴딜 정책의 핵심은 경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성장 정책 추진 과정에서 성장의 혜택을 사회 취약계층인 노동자·농민·빈민 등이 골고루 누려야 한다는 것에서 출발했다.

 

그 중에서도 백미는 노동정책이었다. △최저임금제도 △공정 노동기준제 및 노조활동 보호(부당노동행위 규제) △실업보험 및 연금 제도 △8시간 노동 등 20세기 전 세계적으로 제도화되었던 주요한 노동정책 과제들은 대부분 이 뉴딜을 통해 제시되었다. 이 정책들 대부분이 2차 세계대전 이후 복지국가의 국가 발전 전략 하에 유럽 선진 각국에서 구체화되었다.

 

이전 권위주의 정부와는 차별화된 국정 전략(포용적 성장국가)을 제시했던 문재인 정부가 한국판 뉴딜이라는 선도적 국가 발전 전략을 야심차게 제시하려 했다면, 적어도 현재 코로나경제 위기 상황에서 이러한 뉴딜의 정책 모델에 버금가는 노동정책을 분명하게 설정했어야 했다. 이러한 측면에서‘한국판’ 뉴딜 정책에서 나타난 결함, 즉 ‘노동없는 뉴딜’은 크게 네 가지 점에서 지적될 수 있다.

 

먼저, 디지털·그린 뉴딜로의 전환에 따른 산업구조 변화로 인한 일자리 창출 목표를 제시하면서 소멸하거나 퇴조하는 일자리(고용)정책이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최근 4차 산업혁명 등 기술혁신으로 인해 새로운 디지털 산업의 일자리 증가 전망이 나타나는 반면, 제조업은 전 업종에 걸친 구조조정(휴·폐업) 및 해외 이전 등으로 인해 고용은 계속 감소 추세에 있고, 이들 제조업에 대한 일자리 대책이 매우 시급한 상황이다. 정부 스스로도 4차 산업혁명 효과에 따라 산업구조 조정 및 이에 따른 고용 변화가 예상된다는 진단을 이미 내린 바 있다(2018.3. 고용노동부). 그런데, 이러한 고용 동향에 대한 최소한의 진단조차 없이 △디지털 뉴딜(90.3만 개) △그린 뉴딜(65.9만 개 ) △안전망 강화(33.9만 개) 분야의 일자리 창출 목표만 적시되어 있다.

 

각 정책의 세부 내용을 들여다봐도 구체적으로 무슨 일자리를 어떻게 창출할 것인가에 대한 세부 계획은 전혀 나타나 있지 않다. ‘안전망 강화’부분 중 ‘고용시장 신규 진입 및 전환 지원’ 일자리(11.8만 개)가 거의 유일하게 정책과제와 일자리 창출 목표로 제시되고 있다. 그러나 이것도 4월 22일 발표된 고용안정대책에서 이미 저임금·단시간 논란(월 180만 원, 최대 6개월)이 제기된 것이었다. 전국민 고용보험 등의 실업 대책을 제시하고 있지만, 이는 일자리 상실 이후의 대책으로서, 대통령이 발표한 “일자리가 필요한 국민들에게 한국판 뉴딜이 새로운 기회가 되길 희망”한다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었다. 게다가, 전국민 고용보험 또한 ‘전국민’보호라는 수식어에 걸맞지 않은 채 여전히 결정적인 한계(특수고용노동자 보호 등)가 극복되지도 않고 있다.

 

둘째로, 이러한 디지털·그린 뉴딜로의 산업구조 전환으로 인한 불안정한 노동에 대한 대책이 전혀 없다는 점이다. 최근 신기술 개발(인공지능·디지털화 등) 및 벤처·창업 등이 확산되는 과장에서 플랫폼 노동 등 지금까지의 전통적인 표준 노동과는 전혀 다른 불안정한 일자리가 사회문제화 되고 있으나, 한국판 뉴딜 정책에서는 이에 대한 최소한의 문제의식조차 설정되어 있지 못하다. 어쩌면, 디지털·그린 뉴딜이 안고 있는 속성으로 인해 이러한 불안정한 일자리는 당연하다는 전제가 깔려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불안정 노동의 대한 최소한의 문제의식조차 없다보니 이러한 문제에 접근하기 위한 노동정책이 있을 리 만무하다. 결국, 이 정책에서 제시된 안전망 강화라는 것 역시 불안정 노동에 기반에 기반한 안전망을 구축하겠다는 것으로밖에 이해되지 않는다. 양질의 일자리가 아닌 현재의 불안정한 일자리를 계속 확산시키면서 코로나 위기 국면에서 나타난 한국 사회의 불평등·양극화의 문제를 부분적인 사회안전망(전국민고용보험 등)으로 보완하겠다는 제한된 수준의 정책 방향을 제시하고 있을 뿐이다.

 

셋째로, 일자리 창출의 모든 정책과제가 민간의 투자·경영환경 개선 중심으로 설정되어 있고, 정부가 모범적 사용자(model employer)로서 책임있게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계획이 거의 나타나 있지 않다는 점이다. 민간의 투자·경영환경 개선 중심의 정책에 집중하다보니 디지털 정보 활용 및 원격의료 등에서 규제 완화 논란과 함께, 이 정부의 정책 방향(소득 주도 성장, 포용적 성장)과는 전혀 다른 자본의 이윤 우선(이윤 주도 성장) 정책 방향에 대한 논란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대신 코로나 위기 국면에서 정작 필요한 보건의료·사회서비스 등의 일자리 확대 요구가 제기되지만 정부 스스로 제시한 국정과제(공공부문 81만개 일자리 창출)조차 실종되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정부가 일자리 창출의 책임이 있는 공공부문에서 이 같은 실종 흐름이 계속되는데, 이윤을 중시하는 민간 부분이 정부 재정·세제 혜택 수준을 뛰어넘어 적극적으로 일자리 창출을 선도하리라는 보장은 거의 없다. 신기술 투자 등을 앞세워 우리 경제를 주도하는 30대 주요 기업의 지난 5년간 정규직의 고용 증가율이 1%대에 머물고 있는 현실은 이를 잘 말해준다. 정부의 책임 있는 공공부문 일자리 창출 계획이 실종된 상태에서 제시된 한국판 뉴딜의 일자리 창출 전망은 현재로서는 고용 상황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연목구어(椽木救漁)적 발상일 뿐이다.

 

넷째로, 산업구조 전환에 따른 고용 대책, 불안정 노동 대책 등을 지속적으로 협의하고 점검할 수 있는 노동조합의 정책 개입이나 초기업단위 교섭구조 등에 대한 정책방향이 전혀 없다는 점이다. 디지털 뉴딜이나 그린 뉴딜로의 산업구조 전환은 필연적으로 구조조정, 직업 전환 및 새로운 작업 환경 등의 노동시장 변화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그러나 이번 대책에는, “개인의 인적역량 획기적 제고”만이 언급될 뿐 이러한 노동시장 변화에 따른 기업 단위 또는 초기업 단위 노동관계 대책이 전혀 반영되어 있지 않다.

 

실제, 우리나라는 경영권 우선(노동 배제) 기조 하에 기업의 구조조정 등에 노동자가 참여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이 매우 취약하기 때문에, 이러한 정책 개입 및 교섭구조에 대한 적극적이고 명시적인 조치 없이는 결과적으로 디지털·그린을 위한 산업구조 전환과 관련한 구조조정에 대해서는 사실상 방치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기업 단위 내 배치 전환 및 신기술 적응을 위한 노사간 교섭·협의 또는 노동조건 결정 공동 체계, 그리고 초기업 단위의 구조조정 예방 및 노동조건 조정 등을 위한 교섭구조 등을 이번 정책에서는 처음부터 검토조차 않고 있는 것이다. 정부의 적극적인 책임은 밝히지 않은채“모든 것은 사회적 대화로!”만 접근하면서 노동권을 제한하려는 후진적 발상이 연상될 뿐이다. 1930년대 뉴딜 정책의 핵심이 경제상황의 급변에 대비한 노동관계 법제도 개선(일명 Wagner법)에 있었다는 역사적 사실조차 망각하고 있다.

 

결국, 노동정책이 결여된‘한국판 뉴딜’은 단순히 정책 결함의 문제를 넘고 있다. 코로나 위기 상황에서 정치적 자신감(4·15 총선 승리 등)을 얻은 문재인 정부가 ‘촛불정신’을 내던지며 과거로 회귀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까지 제기된다. 문 정부는 이미 2019년부터 주요 정책 방향에서 노동존중의 국정 과제(△최저임금 △노동시간 단축 △비정규직 정규직화 △일자리 창출 등)를 대부분 포기하는 상황에 이르렀고, 이러한 경향이 고스란히 이번 ‘한국판 뉴딜’에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노동존중의 국정 과제가 사라진 공간에는 과거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정책 방향이 되살아나고 있다. 디지털 뉴딜은 박근혜 정부의 정책이, 그린 뉴딜은 이명박 정부의 그림자가 짙게 배어있다.

 

이명박 정부가 350만 개 일자리 창출의 목표 하에 발표했던 ‘저탄소 녹색성장 선언’(2008.8), 박근혜 정부가 238만 개 일자리 창출(고용률 70% 달성) 목표 하에 발표했던 ‘창조경제를 통한 창업·서비스 활성화 방안’(2013.7)과 이번 문재인 정부의 ‘한국판 뉴딜’ 정책은 유사한 경제 패러다임을 담고 있다. 일자리 창출을 목표로 하면서 ‘노동없는 일자리’ 정책을 제시한다는 점이다. ‘한국판 뉴딜’의 전제로 작용한 ‘한국판’이 지난 시절 노동배제·억압·기피가 지배질서로 작용한 우리 사회의 흐름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라면, 이는 분명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노동없는 한국판 뉴딜에서 다른 정책 요소가 어느 정도 갖추었는지 정확히 진단하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이러한 국가 전략이 이전의 창조경제 및 녹색성장의 종합판이라는 점 역시 부정하기 어렵다. 디지털 뉴딜은 △D·N·A 생태계 강화 △교육 인프라 디지털 전환 △비대면 산업 육성 △SOC 디지털화 등으로 집약되고 있는데, 이는 김대중 정부 및 박근혜 정부로까지 이어진 기존의 ICT산업정책을 가속화시키는 것으로, 철저히 시장과 자본 위주의 정책을 지향한다는 점이다. 그린 뉴딜은 이전 이명박 정부에서 구체화된 △도시·생활 인프라의 녹색 전환 △저탄소·분산형 에너지 확산 △녹색산업 생태계 구축 등의 과제에 그린 리모델링 정도 추가한 수준에 크게 벗어나 있지 않다. 최근 정책을 주도하고 있는 시장주의 경제관료들의 정치적 득세 경향과 이러한 시장주의 정책의 ‘일관성’은 분명 상관관계가 있는 듯하다.

 

이러한 정책으로는 과거 1930년대 뉴딜 정책이 담보했던 핵심 요소(△금융 규제 △농업 보호 △공공일자리 확대 △사회보장 확대 △노동권 보호 등)의 대부분이 결여될 수밖에 없다. 사회보장·시장규제(공정경제)·농업보호·노동권보호 등의 가치가 실종된 것은 물론이고, 이는 지금까지 성장의 혜택을 독점해온 집단의 경제적 기반을 오히려 강화할 뿐이다. 과거 뉴딜 정책이 표방한 “잊혀진 사람들을 위한 정책”과는 전혀 연관성도 없고 근본적으로 거리가 멀다는 얘기다. 결국, 이는 뉴딜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올드딜(Old Deal) 수준의 정책으로 선진국가 수준의 국가 발전 전략이라고 자화자찬할 수는 더더욱 없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한국판 뉴딜 정책은 문재인 정부가 코로나 위기 국면에서 과거 촛불정부의 개혁성을 포기한 과거 디지털·그린 성장 정책의 시즌2 수준일 뿐이다. 여기에 뉴딜이니, 새로운 국가발전전략이니 갖은 미사여구를 붙일 수준의 정책이 아니다. 말의 성찬과 자화자찬식 정책 발상들이 계속되는 문재인 정부의 잘못된 국정 운영, 그리고 이 속에서 과거 역주행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는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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