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20 2020-05-01   1367

[복지칼럼] 사회서비스는 일자리를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다

사회서비스는 일자리를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다

 

김보영 영남대학교 교수

 

코로나19의 상황은 우리의 바람과는 다르게 더욱 암울한 전망으로 이어지고 있다. “세계적인 팬데믹을 일으키기에 최적화된 특성을 골고루 갖춘 바이러스”는 반복적인 재유행이 예상되고 있고, 최소 18개월이 걸린다는 백신개발 전까지 완전 종식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1년 이상 국내외로 위축될 수밖에 없는 경제활동의 여파는 전례 없는 경제와 고용위기에 대한 전망으로 이어지고 있다. 정부에서도 고용안정을 위해 ‘한국판 뉴딜’ 등 대대적인 정책대응을 준비하고 있다.

 

이와 같은 상황은 또다시 사회서비스에 ‘일자리’의 바람을 예고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상대적으로 고용비중이 낮은 산업분야가 사회서비스이고, 게다가 고용창출 효과가 큰 영역이니 일자리 문제가 나올 때마다 단골로 등장하는 대책이 사회서비스이다. 또한 이번 코로나19 상황에서 요양시설이나 정신병원과 같은 집단생활시설의 문제가 불거졌으니 그 필요성에 있어서도 충분한 공감을 살 수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고용위기 대책으로 사회서비스 동원에 대한 우려

하지만 이러한 흐름에 우려가 먼저 드는 것은 이러한 사회서비스 정책에 대한 접근방식이 제도적 발전을 가져오기보다는 왜곡을 가져온 측면이 컸기 때문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우리나라보다도 다른 복지국가에서 사회서비스 고용 비중이 큰 것은 그만큼 이 분야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투입이 컸기 때문이다. 즉 사회서비스를 위해서 일자리가 확대되어온 것이다. 그런데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서 사회서비스가 필요하다는 것은 순서가 완전히 뒤바뀐 얘기다.

 

이와 같이 사회서비스에 대한 왜곡된 접근은 이번 정부가 처음은 아니다. 이전 정부까지 사회서비스는 ‘고부가가치 산업화’를 위한 도구였다. 그래서 사회서비스가 도입되고 확대되는 과정에서 경쟁을 촉진해야 한다며 민간업자들을 대대적으로 유입시키고 이를 위해서 사회적인 서비스 공급자로서 갖추어야 할 요건은 대폭 완화하거나 없애버렸다. 당연히 자격부터 의심되는 사람들도 걸러지지 않고, 서비스의 질 문제가 심각하게 제기되었다.

 

그래서 이번 정부에서는 ‘공공성’을 내세웠다. 산업화를 추구한 지난 정부의 사회서비스에서 공적 서비스로서의 의미를 다시 살리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산업화 논리의 빈자리를 꿰찬 것은 ‘일자리’였다. 그래서 그 ‘공공성’의 의미는 안정된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으로 치환되었다. 물론 사회서비스 종사자에게 좋은 근로조건을 보장하는 것이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또한 노동조합이나 노동단체에서 이 같은 주장을 우선적으로 내세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지난 정부에선 산업화, 이번 정부에선 일자리로 왜곡되는 사회서비스 정책

하지만 정책적으로 사회서비스의 궁극적 목적은 노인, 장애인, 아동 등 당사자에게 일상생활을 보장하고, 건강한 성장과 발달을 보장하는 것이다. 종사자의 문제 역시 이를 위한 맥락에서 다루어져야 하는 것이 당연한 순서일 것이다. 이 두 가지가 서로 상충되지 않을 수 있지만 실제 정책에서 일자리 문제가 궁극적인 목적보다 우선할 때 정책 자체가 왜곡되는 것을 피하기는 어렵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이번 정부에서 사회서비스 분야 핵심 공약으로 내세우고 추진하였던 사회서비스원이다. 사회서비스의 공공성을 확보한다는 명분으로 우선 서울, 경기, 대구, 경남에서 시범사업이 작년부터 추진되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민간 기관 일변도의 시장에서 공적 공급을 늘리고, 종사자를 직접 고용하는 등 안정된 일자리를 제공한다는 목적 이외에 정책방향은 모호했다. 

 

이 때문에 사회서비스를 모두 장악하려고 한다는 등 불필요한 오해로 기존 민간 기관들의 반발이 극심했다. 이에 대해 정부는 사회서비스원도 민간과 다를 것 없이 똑같이 경쟁을 할 것이라고 달랬다. 공적 역할을 위해서는 공공 의료원처럼 추가적인 재정투입이 불가피함에도 자체 수익으로만 운영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니, 당연히 민간의 서비스와 차별화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수백 명 규모의 이용자를 확보하려는 목표로 사회서비스원 산하 서비스 제공기관으로 종합재가센터를 개소를 했지만 십여 명의 이용자를 확보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결국 일부 사회서비스원에서는 종사자를 뽑아놓고 급여조차 제대로 못 주는 상황까지 발생했다.

 

자체 수익 운영 원칙을 벗어나서야 활로를 찾는 사회서비스원

그나마 활로를 찾고 있는 사례는 자체적인 대규모 예산 투입을 감수하고 ‘돌봄SOS’라는 자체 사업에 결합하고 있는 서울시나 이번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국민성금이라도 투입하여 긴급돌봄 서비스를 시행하는 대구시에서 나타나고 있다. 자체 수익으로만 운영하라는 원래 원칙에서 벗어나서야 역할을 찾아가는 기가 막힌 상황이다.

 

고령화와 가족구조의 변화, 여성의 노동시장 진출 등으로 점차 사회서비스에 대한 사회적 요구와 수요는 증가하고 있지만 기본적인 정책방향조차 제자리를 잡지 못하는 이유는 한편으로 가장 배제되어 왔던 사람들을 위한 정책인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노인, 장애인, 아동이라는 당사자의 권리보다는 산업화나 일자리 같은 부수적 목적이나 보호자나 종사자의 목소리가 더 우선하는 모순적 상황은 계속되고 있다.

 

그래서 노인 돌봄만 해도 장기요양보험과 건강보험 등에서 요양병원에 나가는 지출만 추정해봐도 거의 국내총생산(GDP)의 1%에 가까운 규모로, 다른 나라에 비교해도 결코 작지 않다. 하지만 이로 인해 당사자들의 삶의 질이 향상되고 있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현대판 고려장이라는 표현이 공감을 얻는다. 제도가 당사자가 아니라 보호자에 초점을 두고 발달하고 활용되어 왔기 때문이다. 

 

가장 취약한 당사자를 위한 사회서비스 정책 재설계와 투자가 먼저

하지만 이번 코로나19 사태에서 드러나듯이 가장 위험에 내몰리고, 가장 치명적인 영향을 받는 것은 바로 당사자들이다. 그래서 사회서비스는 또다시 일자리를 만들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당사자들에게 인간다운 삶에 대한 권리와 안전과 건강을 보장하기 위한 정책으로 다시 설계되고 투자가 이루어지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다시 강조하건대 사회서비스는 일자리를 위해 있는 것이 아니다. 당사자를 위한 제대로 된 사회서비스를 만들어가기 위해 일자리가 필요해져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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