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과 의료보험은 개인의 재산을 강탈하는 사회주의제도?

지난 4월 28일 '헌법을 생각하는 변호사 모임'(약칭 '헌변') 창립 1주년 기념 토론회가 있었다. 이들은 비교적 보수주의적 입장을 취하는 논객들과 더불어 토론을 가졌는데, 그 날의 토론주제는 "국민연금·의료보험제도와 헌법원칙"이었다. 일군의 변호사들이 자신들 단체의 창립 1주년을 맞이하여 사회보장제도에 집중적인 관심을 보여줬다는 데 대해 매우 이례적이라 판단되며 동시에 환영할 만한 일이라고 생각된다.

우선 결론부터 소개하자면, "헌법원칙과 연금 및 의료보험제도"라는 제하의 글을 발표한 임광규 변호사에 따르면, 국민연금법과 국민의료보험법은 국민의 재산권을 보상없이 빼앗아 가고 또한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에 반대되는 것으로 사회주의적인 법으로서 위헌이라는 것이다. 아마도 임변호사는 우리나라 헌법이 복지국가를 반대하고 있거나 세계의 복지국가들이 모두 사회주의국가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 같다. 이것은 일고의 가치도 없는 주장이라고 판단되지만 그들이 헌법소원을 준비하고 있어 이에 대응하기 위해서 몇 가지 대꾸를 해 보고자 한다.

사회보장에 관한 이들의 기본적인 견해부터 살펴보자. 이 토론회에 토론자로서 발제자와 거의 견해를 같이 한 김정호(자유기업센터 법제실장) 씨의 사회보장관을 우선 소개한다. 그에 따르면 자본주 사회에서 소득이나 부는 남들에게 봉사한 대가라는 것이다. 따라서 소득이나 재산이 없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봉사를 제대로 하지 못했거나 또는 봉사할 능력이 없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회정의와 같은 개념에 의해 소득의 재분배를 도모하는 것은 논리의 비약이라고 본다. 정부는 모든 사람이 돕고 싶어 하는 장애인, 소년소녀가장, 무의탁노인 등만을 도와주어야 하고 강제적인 보험제도는 정부가 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와 유사하게 임광규 변호사는 "자기 힘으로 스스로 먹고 입고 거처하지 못하는 딱한 사람들"에 대해서만 문명사회의 의무로서 국민세금이 책임져야 하며 국민연금법상 소득재분배의 논리는 헌법 제23조의 재산권을 침식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여기에서 소득재분배란 가진 자의 구매력을 강제로 빼앗아 다른 사람에게 이전시키는 것이란다. 이것은 헌법 제23조 제3항에 따라 정당한 보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국민들은 마치 소액주주와 같아 소액을 희생당하면서 절차상의 미비로 정당한 보상을 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또한 국민연금의 보험료는 곧 조세와 같은 것인데 이는 헌법 제49조의 조세법률주의에 위배된다고 보며, 국민연금관리공단은 불필요한 조직으로서 헌법 제119조 제1항에 따라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해치는 것이란다. 또한 한 세대가 자기들끼리 법을 만들어 다음 세대를 약탈하려는 것이 국민연금이라고 주장한다. 한편 의료보험 역시 통합주의는 지역조합원들의 마이너스 재산까지 직장조합원들이 갚아주도록 한 것은 뼈빠지게 일해 쌓은 구매력 지분을 빼앗는 것이라고 주장하며 사회주의적 도덕적 해이에 빠지게 될 것이라는 경고를 하고 있다. 결론은 국민연금제도와 의료보험제도 모두 사회주의적인 제도로서 국민의 재산권, 자유와 창의를 침해하는 위헌적인 제도이기 때문에 고쳐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의 주장은 자본주의사회의 고전적인 시민권인 사유재산권을 옹호하려는 의도로 보이는데, 이를 위한 그들의 논리는 너무 천박하다. 자본주의사회에서 소득과 재산이 타인에 대한 봉사이 대가라는 인식은 그야말로 허황된 망언이다. 봉사라 함은 무보수로 타인을 위해 희생하는 이타적인 행위를 말하는 것으로서 그로 인해 소득과 재산이 축적된다는 것은 대꾸할 가치도 없는 얘기다. 그들의 기본적인 전제가 이러하기 때문에 소득재분배를 위한 소득이전은 재산권을 강탈하는 것으로 주장되는 것이다.

사회보장제도는 자본주의사회로 인해 붕괴된 인간의 공동체성을 현대적인 제도적 장치로 부활시키는 것이다. 특히 사회보험은 나의 기여를 통해 내가 모르는 타인을 돕고 또한 그 역도 가능하도록 제도적으로 설계된 안전망 장치인 것이다. 자본주의사회가 만들어 내는 각종 사회문제와 실업, 은퇴, 질병, 사망, 재해, 출산 등의 사회적 위험이 노동력, 소득능력 및 직업능력을 감퇴시키거나 특별한 지출을 요하게 하여 개인의 생존을 취약케 하기 때문에 능력에 따른 기여를 통해 각종 문제와 위험에 공동으로 연대하여 대처하고자 하는 것이 사회보장제도의 취지이다. 18세기의 자선사업이 19세기 말 20세기 초를 거치면서 국가의 사회복지, 사회보장제도로 정착되는 세계사를 알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조세와 사회보험은 엄연히 다른 것이다. 불특정 다수를 위해 지출되는 조세와 특정화된 대상자들에게 수급권에 따라 제공되는 사회보험은 목적과 방법이 다른 것이며, 보험을 강제가입으로 하는 것은 보험제도를 통해 사회적 위험을 분산시키기 위해 보험집단을 극대화할 필요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모든 국가의 사회보험이 갖는 특징이다. 그들의 주장대로라면 선진 복지국가들은 모두 강제보험을 실시하기 때문에 사회주의국가이며 우리 헌법체제로는 용납할 수 없는 국가들인 것이다. 또한 그들의 논리대로라면 결국 조세제도 자체가 사회주의적인 제도가 되어버린다. 그리고 사회보장을 거부하는 논리를 그대로 적용해 보면, 그들은 결국 국가의 존재 자체를 싫어하고 있는 것이다.

현대국가가 존재하는 그 정당성은 국민의 기본권과 인권을 보장하는 데서 나오는 것이다. 국가가 국민의 권리보다 자본의 권리를 옹호한다면 그것은 곧 폭력적 국가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정치권력과 시장권력으로부터 인간을 지켜주는 합법적 수단이 곧 인권이요 기본권이기 때문이다. 헌법상 국민의 평등권이나 자유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기 위해서 국가는 불평등한 현실에 대해 조정자 역할을 해야 한다. 이에 따라 소득의 재분배는 국가가 취하는 사회보장제도의 핵심적인 것이다. 우리 헌법은 전문(前文), 제10조의 인간존엄과 행복추구권, 제34조의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정점으로 하는 사회적 기본권, 제119조 제2항의 경제민주화 등을 망라해 볼 때 복지국가의 이념을 표방하고 있다.

그들은 가진 자의 편에 서서 그들만을 위해 법조항을 편파적으로 협소하게 적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파렴치하게도 지나치게 노골적으로 자신들의 주장을 전개하고 있다. 타인에 대한 배려 없이 지나칠 정도로 솔직하게 자기를 드러내는 것은 곧 상대방에게 폭력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윤 찬 영 / 전주대학교 사회과학부 교수,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


참여연대 NOW

실시간 활동 SNS

텔레그램 채널에 가장 빠르게 게시되고,

더 많은 채널로 소통합니다. 지금 팔로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