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06 2006-08-11   815

[동서남북] 지역을 치유하는 언니들의 수다


지역을 치유하는 언니들의 수다





최영선
위례시민연대 사무국장
skngo6112@hanmail.net








장대비 속을 걷는데 어느 아가씨가 말을 건다.



“저, 아주머니 oo쇼핑이 어디에 있나요?”



‘뭐라고라고라, 아주머니라고라’



언니도 아니고 아줌마도 아니고, 아주머니라니. 아주머니라 함은 흡사 할머니라 부르기에 쪼매 거시기 할때 높여서 부르는 호칭이 아니던가. 난 고작 시퍼런 30대 중반밖에 안 됐는데 불쾌감이 나를 휘감았으나 사회적 지위(?)도 있고 해서 가까스로 표정 관리 후 원하는 목적지를 알려주었다.



아주머니라…. 난 아직도 아주머니라는 용어가 낯설지만 아무리 그 호칭으로부터 발버둥쳐 벗어나고자 해도 어쩔 수 없는일. 난 누가 보아도 아줌마인 것이다. 아마도 나의 아줌마다운 면모는 최근 들어 언니들과의 인적네트워크 확대 때문이라고-머리털 숭숭 빠지고 완벽한 6자 라인이 자리잡았지만 애써 부인하고-잡아떼 본다.




처음에 우리는 지역사회문제를 해결하자는 거창한 목표 아래 의기투합 했다. 과격한 투쟁의 현장에서 막 도착한 삭발녀에, 성소수자운동 한다고 세상의 온통 불합리한 편견에 뾰족뾰족 곤두서 있는 언니, 순진녀들이 듣기에 좀 거시기한 열린 성을 솔직 담백하게 이야기하는 칼럼니스트, 정말이지 애만 키운 죄밖에 없는 언니들, 그리고 지역운동한답시고 좀 난체하면서 표정 관리하는 나, 이렇게 우린 모였다. 재작년 말의 일이다.




지역내 장애인 접근권을 확보해 보겠다고 편의증진법을 공부해서 조사를 시작한게 첫 활동이다. 조사 후 사례를 나누는 자리에서 시시콜콜 담당자가 어떻느니, 장애인 화장실이 의리 번쩍해도 휠체어가 갈 수 없으니 빛좋은 개살구라느니, 엄격한 기승전결에 의한 회의보다 우왕좌왕 경험을 나누기에 바빴다. 회의자료를 읽고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시각에 의한 논리정연한 반박 등 100분토론과 흡사한 회의를 기대했지만 여지없이 그 기대는 무너졌다. 실은 나 조차도 논리정연함을 갖추지 못한데 콤플렉스가 있던 터였다(이 말 해도 될지 모르지만 운동권이라 불리우는 이들은 어찌 이렇게 하는 말마다 주옥같단 말인가. 쩝). 여하튼, 우린 수다 속에서 꽃피는 회의 결과를 실천하고 책자를 내고야 말았다. 그리고 얼마 안가서 장애인 이용시설의 비리문제가 터졌다. 시보조금 횡령에도 관할구청은 나몰라라 하고 있었다. 우린 또 모였다. 내부고발 후 정신적 물질적 고통을 겪고 있던 그 시설 선생님들의 뒷심이 되어주고, 장애아를 팔아 뱃속을 배불리는 복지 마피아들을 몰아내고자 시위, 행진, 서명운동, 구청장실 점거(점거는 오버, 면담이 이뤄지지 않아 몇 시간을 그곳서 버티다 왔다)등 그날 그날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했다. 무엇보다 장애아를 둔 언니들의 가슴을 박박긁은 이 사건. 그 시설은 폐쇄되었다. 우린 슬슬 공부가 하고 싶어졌다. 일련의 사건들을 접하면서 대안의 열쇠는 지역사회 주민이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우리가 깨어 있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생겼다. 물론 문제의식이 어떻고 저떻다고 논의된 건 없다. 그냥, “구청장의 권한은 도대체 어디까지야?” “복지시설을 보건복지부가 아니라 구청장이 행정처분하는거야?” “예산서, 눈 돌아가서 못보겠다” 등의 말 들이 오가면서 우리도 공부하고 지역주민도 공부하는 기회를 갖자고 한 것이 강동지역서 첫 번째로 탄생한 ‘1회 강동지방자치아카데미’이다. 6주과정으로 진행되었고 우리 언니들은 각자 1회분의 강의진행을 맡고 강사를 수소문해 섭외했다. 시스템이 잘 짜여진 시민단체나 아니면 전문가의 면모를 갖춘 활동가가 상차려줘서 시간있을 때 듣는 그런 강좌와는 질이 달랐다. 공문을 보내고, 장소를 빌리고, 수강생을 모집하고 강좌를 진행하고 뒤풀이까지 이어지는 그 과정에서 우리는 조금씩 성장해갔다.




한해를 넘기고 우린 장애인편의시설실태조사를 또 했다. 물론 같은 장소를 말이다. 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물귀신 작전이라고나 할까. 우리끼리 보고회를 했지만 정작 정책수반할 구청에서는 일언반구의 말도 없었기에 우린 10년동안 계속할거라고 엄포를 놓으며 또 했다. 아예 이번 보고대회는 구청 앞마당에서 했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선거철을 앞두고(420장애인의 날이 공교롭게도 선거열기가 시작된 시기임) 발표해서인지 몰라도 관련부서에서 전화가 왔다. 예산을 확보해서 보고서에 나온 것을 참조하여 공사를 하겠다는 것이다. 어귀야 어강도리, 아흐 동동다리.




길게 같이 한 활동들을 자랑삼아 늘어놓았지만 실은 어느 지역 어느단체서나 다 해온 활동일지 모른다. 너무 잘하는 곳도 많다는 걸 안다. 실제로 우리가 전문성이 떨어지는 점도 있다(인정). 그저 이 자랑은 언니들의 수다가 낳은 활동이 지역사회를 변화하는 힘이 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을 뿐이다.




우린 오가다 만난다. 보고 싶어서도 만난다. 가정사가 복잡하면 한강이 내려다 보이는 카페에 모여서 한풀이도 한다. 스타일이 저마다 달라 서로 타박할 때도 있다. 그럴 때 시니컬한 그녀가 판사처럼 한마디 날린다 “그래서? 뭐 어쩌자는 건데? 걔는 모 그러고 싶어서 그러냐?” 우리 큰 언니의 말이다. 우린 피가 댕겨서 만난것도 아니고 대업을 이루겠다고 독립투사처럼 목적 의식적으로 의기투합한 것도 아니었다. 어쩌다보니 이슬비에 젖듯 점도 높은 관계가 되어버렸다. 같은 동네에 산다는게 행복할 정도로. 근 10년 가까이 활동해 오면서 요즘 ‘행복하다’라고 자주 말한다. 언니들과 함께 하기 때문인거 같다. 사건이 터져도 걱정이 덜 된다. 언니들의 수다가 활동의 골격을 만들어 줄 것이오, 함께 실천해나갈 힘이 되어줄 것이기에.




아줌마, 아주머니, 아줌마, 아주머니. 나이들어 좋은건 언니들을 아줌마라 하지 않고 언니라 부를 수 있어서다. 결론이 뭔지 모르겠다. 복지동향을 정말이지 한 3년만에 만나는 것 같다.




요즘은 어떤내용들이 실리는지도 모르겠는데 그냥 수다좀 떨어봤다. 독자들께 죄송^^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


참여연대 NOW

실시간 활동 SNS

텔레그램 채널에 가장 빠르게 게시되고,

더 많은 채널로 소통합니다. 지금 팔로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