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건강을 위한 의료보험제도의 개혁방안

의료보험제도의 커다란 변화

1997년 이후 의료보험제도가 급격히 변화하고 있다. 1997년 지역의료보험조합과 공무원사립학교교직원의료보험공단의 조직 통합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국민의료보험법>의 국회 통과가 이런 변화의 출발점이라면, 1999년 1월 <국민건강보험법>의 제정은 이런 변화를 본격화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국민건강보험법>에 따르면 2000년 1월부터 모든 의료보험조합의 관리운영을 국민건강보험관리공단으로 단일화할 예정이며, 2002년 1월부터는 관리운영체계뿐만 아니라 보험재정도 통합일원화 하여 명실공히 단일보험자 체제가 출범하게 된다. 이는 우리 나라가 1977년 사회보험으로서의 의료보험제도를 도입한 이후 12년이라는 최단시일 내에 전국민의료보험을 달성한 것 못지 않은 커다란 전환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러나 <국민건강보험법>의 제정이 장밋빛 미래를 보장해줄 수 없으며 의료보장제도를 안정적으로 정착시켜 사회안전망 구축의 주요한 축으로 만들어 내는 것이 큰 과제가 되고 있다. <국민건강보험법> 제정의 의의는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국민건강보험법> 제정의 의의

<국민건강보험법> 제정은 단순히 보험자를 단일화하는 정도의 의미를 뛰어넘어, 의료보험제도 전반에 관한 새로운 사고를 요구한다. <국민건강보험법>의 시행은 보험료 부과의 형평성에 대한 국민적 요구를 높이는 계기가 될 것이다. <국민건강보험법>은 2002년 1월부터 직장, 지역, 공교의보의 재정을 통합하고 보험료 부과체계를 소득으로 단일화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는 과거 조합방식 의료보험이 조합간, 지역간 보험료 부과의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을 개선한 것으로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이 실효를 거두려면 소득파악, 특히 소위 자영자의 소득을 얼마나 정확하게 파악하느냐가 관건이다. 자영자 소득파악문제를 놓고 현재 두 가지 흐름의 운동이 있다. 민주노총과 시민단체는 의료보험이나 국민연금의 재정은 통합한 채로, 자영자 소득 파악을 위해 정부가 노력하도록 강제하는 것이 현 시점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고, 한국노총과 직장의보노조 등은 자영자의 소득 파악이 단기간에 가능하지 않으므로 자영자와 피용자간 재정을 분리하자는 주장을 하고 있다. 의료보험의 통합일원화와 전국민 국민연금의 재정 통합은 우리 사회의 가장 핵심적 문제의 하나인 자영자의 소득파악 문제와 조세의 형평성 문제를 제기하는 계기가 되었고, 재정 통합 문제가 어떤 방식으로 일단락 되든 간에 이에 관한 문제제기는 계속될 것이다.

<국민건강보험법> 시행으로 보험급여가 확대될 가능성이 열렸다. 과거 '의료보험'이 질병진단과 치료중심이었다면 '건강보험'은 이를 질병예방, 건강증진과 재활을 포함하는 포괄적인 의료서비스의 제공이 가능하도록 급여 내용을 확대 여지를 명시하고 있다. 이는 질병예방과 건강증진 서비스가 치료서비스에 비해 장기적으로 비용/효과적이라는 인식을 반영한 것이다. 아울러 상병수당을 임의급여의 형태로나마 포함한 것도 의미가 없지 않다. 그러나 이런 규정이 자동적으로 급여 확대를 보장하지 못한다는데 문제가 있다. 왜냐하면 급여 확대의 자세한 내용을 상당부분 시행령에 위임해두고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급여 확대를 위해서는 이에 상응한 재정 확보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에 관해서는 향후 개혁과제를 논의하면서 자세히 언급하겠다.

<국민건강보험법>의 성립은 보험자와 의료제공자간 새로운 관계 수립을 요구한다. <국민건강보험법>에는 보험자와 의료제공자간 보험수가를 계약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는 정부가 의료보험수가를 일방적으로 고시하던 과거방식과는 큰 차이가 있다. 새 제도에서는 의료제공자를 수가계약의 한 당사자로 인정함으로써 수가결정과정에서 의료제공자의 영향력을 높여주는 동시에 다른 한편에서는 의료제공자에게 이에 상응하는 책임을 요구하고 있다. 의료제공자는 자신들이 요구하는 수가수준을 합리화적으로 설명해서 정부와 국민을 설득해야 하며 이 과정에서 자신들이 제공하는 의료서비스가 적절하며, 비용/효과적이라는 사실을 국민에게 납득시키고, 아울러 의료기관 경영내용을 투명하게 정부와 국민에게 보여줄 책임을 가지게 될 것이다. 따라서 이제는 정부와 의료제공자가 대립적 관계가 아니라 상호 동반자 관계가 될 필요가 있으며, 이 과정에서 국민적 동의를 얻을 필요가 생겨나게 되었다.

<국민건강보험법>은 의료제공자에 대한 평가와 책임(evaluation and accountability)을 강화하게 될 것이다. <국민건강보험법>에는 보험자로부터 완전히 독립된 보험심사기구인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하 심사평가원)를 두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는 그간 의료제공자가 보험자에게 가졌던 피해의식을 감소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다. 그러나 심사기구의 독립이 의료제공자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것만은 아니다. 심사평가원은 종전의 심사기능에 추가하여 "요양급여의 적정성에 대한 평가" 기능을 가지고, 또한 평가 결과에 따라 진료비를 차등 지급할 수 있도록 하는 기능을 가질 수 있도록 규정되어 있다. 이러 법 규정이 어떤 방식으로 구체화될 것인가는 확실하지 않지만, 의료제공자가 제공하는 의료서비스에 대한 평가가 이루어지고 이 평가 결과에 따라 진료비를 차등지급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의료제공자의 책임을 강화할 수 있는 기전은 마련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내용적 측면과는 별도로 <국민건강보험법>의 제정 과정은 향후 의료보장 정책결정과정에 많은 시사점을 준다. 의료보험 통합은 현 정부의 대선 공약이기는 했지만, 보험제도를 실질적으로 운영하는 보건복지부와 보험자단체 등이 이에 조직적으로 반대하였기 때문에 통합 실현이 매우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런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고 이를 실현해낸 주요 동력은 바로 노동자, 농민, 시민, 보건의료인 등 사회운동세력이었다. 사회운동세력이 지속적인 문제제기와 활동이 국회로 하여금 <국민건강보험법>을 제정하도록 하는 압력수단이 된 것이다. 이는 향후 의료보장 정책결정과정의 근본적인 변화를 초래할 것이다. 이제 의료보장 정책결정은 정부가 이를 독점할 수 없게 되었으며, 더구나 정부와 의료인단체간 밀실협상으로 이루어지기가 어려워질 것이다. 정책결정과정에서 시민사회의 동의를 받는 과정이 필요할 것이며, 때로는 정부가 원하지 않는 정책도 시행해야 할 것이다.

우리 나라 의료보장제도의 개혁과제와 개혁방안

<국민건강보험법>이 우리 나라 의료보장 역사에서 여러 가지 큰 의의를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현재 우리에게 필요한 의료보장제도의 개혁방안으로 충분한가에 관해서는 검토가 필요하다. 현 단계에서 해결이 필요한 의료보장제도의 개혁과제를 살펴보고 이를 성취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해본다.

1) <국민건강보험법>의 긍정적인 점을 지켜내는 것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국민건강보험법>에는 중요하고 진보적인 내용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재정의 통합일원화이다. 이를 끝까지 지켜낼 필요가 있다. 국민연금 파동을 계기로 <국민건강보험법>에 대한 반대 활동이 활발해지고 있다. 이들이 목표는 피용자와 자영자간 재정 통합을 저지하려는 것이다. 재정 통합은 전 국민간 보험료 부담의 형평성 확보를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조치이며, 이는 양보할 수 없는 사회보험의 중요한 원칙 중의 하나이다. 피용자와 자영자간 재정을 분리하는 순간 보험료 형평성, 또는 조세의 형평성에 대한 문제제기는 그 동력을 잃게될 것이다. 따라서 재정 통합을 유지하면서 보험료 부과의 형평성에 대한 문제제기를 계기로 과세의 공평성 확보, 불로소득 자영자의 소득파악 개선 등 진보적인 사회정책의 시행의 토대를 만들어내기 위한 운동을 계속해나가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현재의 <국민건강보험법>의 틀을 개혁 반대세력으로부터 지켜내는 것이 우리 나라 의료보장제도 개혁을 위한 최소한도의 필요조건이다.

2) 보험급여 확대와 보험재정의 안정적 확보

보험급여의 확대는 건강보험의 가장 큰 과제의 하나이다. 우리 나라 보험급여수준이 개발도상국에 비해서도 낮고, 사회안전망 구축에 대한 국민적 요구가 증가하고 있기 때문에 급여확대는 피할 수 없는 대세이며, <국민건강보험법>은 이런 국민적 요구를 원칙적으로 수용하고 있다. 건강보험에서는 과거의 저부담-저급여 구조를 적정부담-적정급여 체계로 변화시켜야 할 과제를 가지고 있다. <국민건강보험법>으로 포괄적인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법률적 근거를 마련했지만 이것이 급여확대를 자동적으로 담보해주지는 못한다. 보험급여의 확대를 위해서는 급여 확대의 구체적인 내용과 우선순위를 확정을 위한 노력과 더불어 보험급여의 확대를 위한 재원 확보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보험재정의 확충은 보험료의 인상, 국고지원의 확대, 보험재정 운용의 효율화 등을 통해 이루어질 수 있다. 급여확대를 위해 어느 정도의 보험료 인상은 불가피할 것이다. 그러나 IMF 관리체제 이후 전반적인 소득감소는 보험료 인상을 어렵게 한다. 더구나 일정 정도 이상의 보험료 인상은 사회적 합의를 필요로 하며, 국민이 낸 보험료가 효율적으로 이용되고 있다는 확신을 국민에게 주어야 하는 과제도 있어 이 문제의 해결이 손쉬운 과제가 아님을 보여준다. 국고 지원율은 오히려 감소하고 있다. 최근 5년간 지역의보의 보험료 인상율은 연 평균 15%인데 비해 국고 부담은 11% 증가에 그치고 있다. 따라서 처음 정부의 지역의보 재정 50% 지원 약속과 달리 현재 국고지원수준은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25% 수준에 머물고 있다. 최근 정부가 2000년에는 정부 지원분을 50% 수준으로 대폭 상향조정하겠다는 약속을 하기는 했지만, 정부 재정 적자가 증가하고 재정 소요가 급증하는 상황에서 이런 약속을 지속적으로 지켜낼 것인가는 의문이다.

3) 본인부담금 인하

우리 나라 의료보험의 본인부담금 수준이 높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세계은행 구조조정 차관(SAL-II)의 계약조건에 본인부담 수준을 낮추라는 요구가 들어있을 정도이다. 본인부담금 수준은 법정 본인부담금과 비급여진료비로 구성되기 때문에, 본인부담금 수준을 낮추기 위해서는 급여확대가 필수적이다. 이런 급여확대 노력과 함께 본인부담금으로 인해서 가정이 경제적으로 해체되는 것을 막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즉, 개인이 부담할 수 있는 본인부담금의 상한을 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현재 본인부담금 보상금 제도가 운영되어 한달에 보험진료비가 50만원을 넘는 경우에 이를 보상해주고 있으나, 비보험진료비의 비중이 높기 때문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 1996년 직장의료보험 조합비 지출금액은 18,788억원인데 비해 본인부담금 보상금 지급액은 0.55%인 105억원에 불과하다. 본인부담금 상한제 도입에 재원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의료보험의 일차적인 목적이 질병으로 인한 경제적 파탄으로부터 가정을 보호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 제도의 도입은 시급한 과제이다.

4) 보험재정의 효율적 운용을 위한 의료제도의 개혁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보험급여 확대를 위해서는 보험재정의 확보가 필수적이다. 최근 수년간 보험진료비 인상이 보험료 인상을 크게 웃돌고 있으며 이런 경향은 IMF 관리체제 이후에도 계속되고 있어 보험재정의 안정적 운용에 적신호를 던져주고 있다. 보험료 인상이나 국고 지원 확대가 필요한 것은 사실이나, 우선적으로 현재 의료보험재정이 과연 효율적으로 운용되고 있는가를 시급히 검토해 보아야 한다. 의료보험재정의 효율적 운영은 일차적으로 진료비 지출을 줄임으로써 해결할 수 있다. 본인부담금의 인상, 보험적용 급여범위제한, 진료내용에 대한 심사강화 등의 정책이 도입되어 왔으나 큰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진료비 증가는 계속되고 있다. 결국 보험재정의 효율적 운용은 의료공급제도의 개혁을 통해서만 달성할 수 있다. 최근 논의되고 있는 의료기관 종별 수가차등제(자기 수준에 맞는 질환을 치료할 때에는 적절한 수가를 보상하지만, 수준에 맞지 않는 질환치료에 대해서는 수가를 차등해서 낮게 지불하여 의료기관 이용을 적정화하려는 정책방안), 주치의제도(국민으로 하여금 주치의를 선정하도록 하고 주치의를 통해서 의료이용을 하도록 하는 방안) 등은 중장기적으로 보험재정의 효율화에 공헌할 것이다. 제도개혁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진료비 지불제도를 바꾸는 것이다. 현재 일부 병원에서 시행되고 있는 포괄수가제(DRG)의 확대, 총괄계약제의 도입, 의원급 진료기관에 대한 인두제 도입 등의 제도 정비가 필요하다.

5) 의료보호제도의 개혁-의료보험과의 통합

의료보호제도가 의료보험제도에 비해 급여내용, 이용 가능한 의료기관의 범위, 무능력자라는 낙인감의 문제 등, 여러 측면에서 의료보험과 차별을 받고 있기 때문에 이를 의료보험과 통합해야 한다는 지적이 있다. 의료보호에 대한 차별 정도가 과거에 비해 많이 개선된 것은 사실이지만 서로 수준이 다른 두 개의 제도가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근본적인 문제점이기 때문이다.따라서 의료보호대상자를 국가부담피보험자로 하고 의료보호제도와 의료보험제도를 통합하는 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

결론에 대신해서

개혁과제에 대한 논의와 함께 개혁방안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의료보장 정책결정과정에 누가 어떤 방식으로 개입해서 어떤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가를 함께 고민하는 것이 무엇을 개혁할 것인가를 논의하는 것만큼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국민건강보험법> 제정 과정을 다시 한번 검토해보고 향후 의료보장 개혁의 교훈을 얻어야 한다.

조홍준 / 울산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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