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공동체 ‘아름다운 세탁나라’의 출발과 과제

생산사업의 최대관건은 공간확보!!!

‘아름다운 세탁나라’는 마포자활지원센터가 만든 공동작업장 1호로서 사업장 상호이다.

쇼핑백의 끈끼우기나 봉제, 문구용품의 포장정도로 공동작업영역이 제한되었던 사회복지관의 경험상 직접적인 물품의 생산과 판매라는 기업형의 업체를 만들어 내기란 참으로 어려운 것이었다.

1996년 6월에 30평 정도의 공간 임대비 4천만 원이 사업비로 주어졌지만 월세를 내기 전에는 적정한 규모의 공간확보도 어려웠다.

또한 인근지역은 자동차정비단지로 지정되어 있어 관련사업이 아닌 경우에는 임대조차도 불가능했다. 결국 인근의 유휴지를 활용한 신축을 결심하게 되었고, 시유지에 30평을 신축하게 되었다. 설계, 건축허가, 업자선정, 완성에 이르기까지 4개월이라는 시간이 소요되었다. 건축이 추진되는 동안 우리 직원들은 사업아이템을 확보하고자 다각도로 노력하였다.

사업아이템은 가까운 데서 찾아라.

사업경험이 전무한 상태에서 아이템을 결정한다는 것은 많은 모험을 요구한다.

결국 철저하게 소비자인 주부의 입장으로 돌아서서 여러 가지를 검토했다.

집주변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상행위를 살폈다. 음식만들기, 옷만들기 … 아! 그중에서 골목길에 3∼4개가 운집해 있으면서도 별다른 서비스경쟁도 없이 1벌에 7,000원씩이나 받고 있는 세탁소를 놓칠 수가 없었다.

중요한 것은 신도시나 대형회사의 직원매장에는 1벌에 3,500원이면 세탁을 할 수 있어서 이는 곧 마진율이 높은, 그야말로 꽤 괜찮은(?) 업종으로 보여졌다.

초기자본금 확보와 안정적인 판매망 구축이 최우선 검토되어야 한다.

제품의 직접생산, 직접판매 경험이 없는 사회복지관으로서 협동조합방식의 사업체 운영을 아무리 홍보하여도 “내 돈 여기 있소” 하면서 투자할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일할 사람을 주축으로 조금씩 사업을 키워가는 것은 너무도 요원해 보였고, 거듭된 회의를 통해 어느 정도 사업기반을 마련해 놓고 구성원을 모으기로 했다.

이후 세탁소 관계자 여러 곳을 방문해서 시장조사를 하였고, 초기자본금은 자활지원센터 사업비에서 마련하고, 판매망은 우리가 갖고 있는 최대의 자원 이화여대를 타깃으로 하여 일을 추진하였다.

96년도 사업비 2,500만 원으로 기본적인 기계를 구입해 설치했고, 담당은 2개월간 세탁소에서 세탁법을 습득했다. 직원들의 옷은 시험용이 되었고, 급기야는 한 번밖에 안 입은 아동티셔츠(미국 엠파이어빌딩에서 기념으로 구입)와 예물로 받은 여성정장 25만 원 짜리가 서로 물들어 버린 실수도 있었다. 이후 홍보문안을 만들어 이화여대 전 교직원에게 우송하였다.

나아가 사회복지사 12명이 동원되어 봉원동, 신촌동 일대의 가정집마다 일일이 전단을 배포하는 등으로 홍보에 역점을 두었다.

주변 경쟁업체와의 관계를 원만하게 해결하라(?)

틈새시장을 공략하라는 말이 있긴 하지만 사실 그런 곳은 쉽지 않은 것 같다.

동일 시장을 놓고 경쟁업체와의 싸움, 화해, 타협 … . 이 과정은 초기사업가에게 있어서 참으로 많은 시련을 요구한다. 아름다운 세탁나라도 예외는 아니어서 독점권을 쥐고 폭리를 행사하던 기존 업자와의 마찰이 매우 심했다. “일을 분배하겠다”, “홍보를 적극적으로 안하겠다”, “전단을 다시는 뿌리지 않겠다”라는 타협안을 제시하면서 점포 수가 늘 때마다 고초를 겪었다. 심지어는 사흘이 멀다하고 복지관에 와서 고함을 질러대는 사업자 때문에 경찰이 와서 중재를 하기도 했다.

그때마다 하는 말 ― “소비자는 결코 가격이 싸다고 해서 업체를 바꾸지는 않습니다. 사장님도 이번 기회에 경쟁력을 키우십시오. 장기적으로 당신의 적은 우리가 아니라 대형독점자본입니다”

좋은 인적구성은 시간이 해결해 준다.

대부분의 참가자는 본 센터에서 운영하는 무료취업알선창구에 구직신청을 한 사람들이다.

기술자만 동종업종 관계자의 도움으로 확보하였다. 세탁업과는 무관한 사람들이었지만 기술자를 중심으로 사업장내에서 재교육을 받으면서 일을 배웠다. 일이 진행되면서 각자의 품행은 서서히 노출되었고, 그 중 협동적인 마인드가 없는 분들은 자연적으로 배제되었다. 몇 번의 직원변동으로 인적자원은 서서히 안정되었고, 이제는 오랜 터줏대감들의 성실성과 책임성 등으로 인해 신규사원들도 쉽게 일체감을 보이고 있다. 외부 기술자 1명, 전 의류업체 종사자 3명, 장애인 2명, 기타 2명으로 현재 8명이 상시고용되어 있고, 일감이 많거나 야간작업이 있을 때는 수시로 일용직을 활용한다.

일용직 근무기간은 시험무대로서 근무상태에 따라 상시고용때 반영하고 있다.

IMF라는 도전에 대한 응전은 어떻게 하고 있는가?

IMF로 중차대한 문제가 발생하였다.

첫째는 소비자의 숫자가 급감소한 점이다.

둘째는 세탁가격의 경쟁적 하락 현상이다. 경쟁업체가 살아남기 위하여 너도나도 모두 가격을 하락시킨 것이다. 종전에 6,000원에서 7,000원을 받던 세탁소들이 4,000원∼2,900원을 받고 있어 ‘아름다운 세탁나라’가 내세우는 가격경쟁력이 극도로 약화되고 있다(아름다운세탁나라 1벌 3,500원).

더불어 최대고객이었던 한 호텔이 계약을 깨어 버려 매출이 급감소하였다.

그래서 우리는 고정적인 일감확보를 위해 다각적인 자원 검색을 한 결과 적은 돈으로 매장 2곳을 신설하였다.

다음으로 목돈이 들어가는 시설이나 비품 구입을 최대로 억제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일하는 분들의 책임감을 더욱 더 돋운 점이다.

의료보험, 산재보험, 고용보험, 국민연금 등을 가입하여 사업장의 면모를 더욱 강화하였고, 이러한 점은 일하는 분들의 자긍심을 높이게 하며, 일터의 주인이 되게 하였다.

현재는 이윤이 별로 없어 월급을 안정적으로 받는 것만도 다행이라 여기지만, 점차 이곳이 나의 마지막 삶의 터전이길 바라며, 이윤발생에 대한 분배가 이루어지는 시점을 앞당기고자 더욱 노력하게 되었다.

사소한 착오와 실수가 중대한 결과를 낳는다.

기존업자와의 싸움, 인화가 안 되는 직원간의 실랑이, 불안정한 판매망 확보 등 어려운 고비를 넘기고 나서 아주 사소한 문제로 인해 우리는 큰 손실을 보았다.

첫째는 자동화설비를 강화하려고 세탁기계를 구입하는 과정에서 계약상의 잘못으로 2년이 다 되어가는 이 시점까지 1,500만원을 떼인 것이다. 업자가 가지고 온 계약서에 물건도착기일이 문서화되지 않았음을 간파하지 못하고 구두로만 이야기하였다. 차일피일 인수일이 늦어지더니 급기야 달러가 2배로 오르면서 기계값도 올랐다며 업자가 납품을 하지 않고 더 많은 돈을 요구해 와 이를 인수하지 못한 것이다.

이후 우리는 소액재판을 요청하였고, 1년 반만에 1심에서 승소하였지만 피고가 2심을 청구하여 아직 원금도 물건도 받지 못하고 있다. 그간 재판비용과 대출이자(생업자금융자금)만으로도 400여만 원이 지출되었다.

또다른 사건(?)은 산재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급한 물건을 빨리 처리하겠다며 종사자 한 분이 돌아가고 있는 가정용 세탁기 탈수조에 손을 넣어 손가락 한마디가 잘려 나가면서 엄청난 비용이 들었다(약 600만 원).

이 모두 운이 나빠서만은 아니고 사업경험이 없는 데서 오는 시행착오였다.

생산자협동조합은 단계적으로 이루어진다.

일도, 사람도, 공간도 불명확한 상태에서 협동조합방식의 사업체 구성은 어렵다.

센터 설립초기에는 이 모든 것이 다 불분명하여 첫발을 내 딛기가 더욱 어렵다.

그러나 사업아이템이 좋으면 홍보를 통해 그에 걸맞는 인적 자원을 발굴하는 방법이 있다.

다음으로 다양한 능력을 갖고 있는 인적자원이 있다면 중심인물을 주축으로 사업을 전개해 나가는 방법도 좋을 것이다.

하나의 사업이 협동조합체로의 성장 또는 그 가능성을 인정받아야만 그 다음 사업은 쉽게 전개할 수 있다. 그러한 경험이 없는 우리로선 ‘아름다운 세탁나라’가 표본이고 선례였다.

처음은 4명의 주민이 그저 집 가까이 있는 일거리를 잡은 정도로 시작되었다. 사업자등록도 ‘과세특례자’로 하였다. 사업주 명의도 본인의 명의로 낼 수밖에 없었다.

사업초기에 인건비도 안 나오는 고비가 있었다. 복지관으로부터 차용도 하고, 복지관의 이름을 빌려 안정적인 일감을 수주하면서 그 터널을 빠져 나오자 일하는 분들은 이 사업장을 신뢰하게 되었고, 생업자금융자를 받아 투자를 하기에 이르렀다(3명 2,500만 원).

사업 1년 만에 매출액이 신장되어 일반과세자로 전환하였고, 근무자도 8명이 되었다.

사업시작 2년 만에 매장은 3곳으로 확대되었고, 드디어 명의도 일하는 분들에게로 전환했다.

그 대가로 센터에서의 투자분 약 4,000여만원(공간비 제외)에 대한 환원형태로 99년 5월부터 월 30만 원씩 자활지원센터를 후원하기로 하였다.

일하는 태도가 달라졌다. 더욱 자발적으로 열심히 일한다. 월급에 대한 불평도 안한다. 이제 내가 사장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러나 … 중요한 것은 매출액 신장이 주춤거리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물리적인 외부환경 탓이다. 즉 업체의 출혈 가격경쟁 때문이다. 사실 현재로선 이번 여름을 어떻게 넘길 지 걱정스럽다.

그만큼 세탁업이라고 하는 것은 마진율이 매우 적어 수익률이 낮은 업종이다.

매장수의 증가가 결코 매출액과 대비해 증가하지 않는다. 증가한 만큼 고정인원을 채용하고 유류비와 운영비를 제한다면 이윤이 거의 없다. 올해 신설한 2개의 매장(99년 2월: 주택가내, 99년 3월 :이화여대 기숙사내)은 현재로선 이윤이 거의 없는 것으로 평가된다.

‘아름다운 세탁나라’의 비전은 무엇인가 ?

가정용 드라이크리닝만 하고 지낼 수는 없다.

고정적인 업체의 지속적인 세탁과, 대형 물빨래, 기업체의 카페트 청소 등 영업범위를 계속 확대해 나갈 것이다. 최종적으로는 외국의 대형독점자본과 대응할 수 있는 경쟁력을 키워 나갈 것이다.

현재 특별취로사업을 통해 젊은 지역청년들에게 기술전수룰 하고 있다. 이들에게는 기술 뿐만이 아니라 지역문제를 함께 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몇 번의 인원 교체 후 그들이 주축이 될 때 그야말로 아름다운 세탁나라는 “아름다움”이라는 철학을 내재화한 멋진 곳이 될 것이다. 자세한 문의는 302-9021. 011-414-9021로.


이현선 / 마포자활지원센터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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