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녕 대한민국은 아동의 천국인가 ㅣ 정부의 '국제아동권리협약 제2차 보고서(안)을 평가한다

주지하다시피 우리나라가 UN의 [아동의 권리에 관한 국제조약]에 가입한 것은 1991년이다. 1989년에 발표된 이 조약에 미국과 소말리아만 제외하고 세계 191개국이 가입하였고 이 조약에 가입한 국가들은 매5년마다 한 번씩 조약의 준수와 관련된 정부보고서를 제출하도록 요구되고 있다.

1994년 이미 제1차 보고서를 제출한 바있는 우리나라 정부는 그로부터 5년차인 올해 제2차보고서를 제출할 시점에 와있다. 정부는 지난 8월 13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주최하는 공청회형식을 통하여 지금까지 준비한 보고서안을 발표하였다. 최종확정된 형태는 아닌 안(案)의 형태이므로 향후 수정보완의 여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접한 대다수의 아동계인사들은 매우 유감임을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미 우리나라 정부는 제1차보고서를 낼 때에도 정부보고서의 내용에 이의를 제기하는 NGO보고서와 현격한 시각차를 보여 UN의 {아동권리위원회(Committee on the Rights of the Child)}에서 많은 논란을 빚은 적이 있다. 그 결과 1996년 1월 전달된 동위원회 명의의 한국정부에 대한 권고안에서는 모두 13개 항목에 대한 권고사항이 들어있었다. 그 중 대표적인 것 몇가지를 예로 하면,

▷ 조약 제9조 3항등 3개조항에 대해 유보한 것의 철회

▷ 국가기구성격의 아동권리위원회 설치

▷ 어린이 등에 대한 차별철폐를 위한 공공캠페인 전개 및 그 효과의 평가

▷ 조약의 이익에 대한 전국적 및 지역적 감시기구의 발족

▷ 아동관련의 통계자료 수집 및 정리

▷ 가족에 대한 불충분한 지원체계의 개선

▷ 가정폭력과 어린이 학대에 대한 보호대책의 마련

등을 열거할 수 있다.

이번 정부보고서안에서 가장 먼저 실망스러움을 금치못했던 부분은, 바로 위에서 말한 권고사항들에 대하여 과연 우리나라 정부가 지난 5년동안 어떤 노력을 보였으며, 그 결과 어떠한 측면이 변화되었는 지를 자세히 언급하는 것으로 보고서안이 시작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동안 범부처적인 차원에서 이 조약내용과 권고사항을 적극 추진하려는 의지나 노력이 그다지 없었다는 점에서 이러한 식으로 서두를 시작한다는 것이 애초에 기대난망한 것이지만, 아동에 대한 정부의 관심이 크게 도약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이러한 기대를 쉽게 포기할 수 없게 한다.

이러한 보고서구성상의 실망은 그 내용에 있어서도 계속된다.

보고서의 서술체계는 일반원칙, 시민적 권리와 자유, 가정환경과 대리보호, 기초보건 및 복지, 교육·여가 및 문화적 활동, 특별보호조치 등의 장으로 나뉘어 있는데, 각 장안에서 조약의 구체적인 조문에 해당되는 우리나라의 법적, 제도적 현실을 나열하는 상태로 이어진다. 그런데 그 내용들을 종합해보면, 전체적으로 조약의 모든 조문에 있어서 한국은 분명한 대응장치들을 지니고 있다는 자부심(?)으로 가득차 있다.

그렇다면 그동안 우리나라의 아동권리 및 제반 지원체계가 매우 부실하다고 수많은 이들이 지적한 것은 모두 사치스런 지적이었고, 진실은 국제적인 비교준거로서의 UN 아동권리조약이란 잣대로 보면 우리나라는 아동의 천국으로 평가되어야 마땅하다는 것인가?

좀더 구체적인 표현들을 몇가지 인용하며 논의를 연장하여 보면 이렇다. 보고서안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아동이익 최우선의 원칙【조약 제3조】은 아동과 관련된 정책의 수립에서 우선적으로 고려(p.12)"되고 있고, 대한민국 헌법 제1조, 아동복지법 제1조, 청소년보호법 제1조에서 아동의 생명과 생존 및 발달권【조약 제6조】은 철저히 "보장" 또는 "명시"되고 있으며(p.13), "대한민국은 아동양육의 책임수행을 위하여 모자복지법, 모자보건법, 아동복지법, 영유아보육법, 생활보호법 등 국가의 지원을 규정한 법률 등을 제정하여(p.19)" 부모의 지도와 책임【조약 제5조; 제18조 1항 및 2항】을 다하도록 하게 하고 있다.

가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아동【조약 제20조】을 위해서도 "아동복지시설에 수용하여 필요한 조치를 하게"(p.21)되며 시설보호에 대한 대안으로 "가정위탁제도"나 "그룹홈" 등이 도입되고 있어(p.22) 별다른 문제점이 있지는 않아 보인다. 장애아동【조약 제23조】에 대한 복지도 "장애아동복지의 궁극적인 목표인 완전한 사회참여와 평등의 보장을 위한 법으로는 장애인복지법, 장애인·노인·임산부등의편의증진보장에관한법률, 장애인고용촉진등에관한법률, 특수교육진흥법 등"(p.29)이 있으므로 그들에 대한 복지가 구비되어 있는 셈이고, 아동학대, 유기 및 신체적, 심리적 회복과 사회복귀【조약 제19조 및 제39조】도 "한국의 아동학대 및 방임에 관한 전문적인 개입을 위한 법적 장치의 강화를 위하여 정부가 적극적인 입장을 취하고"(p. 24) 있으므로 걱정할 것 없어 보인다. 여가, 오락활동 및 문화적 활동【조약 제31조】측면에서 볼 때도 "입시위주의 교육과 저급한 대중문화의 범람에 대처하여 올바른 청소년 문화의 정립을 위해 다양한 여가, 오락 및 문화적 활동 프로그램을 개발, 실시하고"(p. 42) 있는 문화관광부와 교육부 덕분에 전국적으로 769개의 청소년수련시설과 13,512개의 아동을 위한 문화시설(도서관, 박물관 등)이 존재하고 있다(pp.42-43).

물론 이런 식으로 대한민국이 아동의 천국임을 입증하는 많은 법규나 제도명, 통계수치들은 분명 완전 허구적인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들로 수식된 보고서가 현재 이 시간, 이 땅에서 살고 있는 약 1천250만명의 아동들이 마주하고 있는 열악한 실상의 실체적 진실을 나타내는 것이라고는 도저히 받아 들일 수 없다. 존재하는 법률과 제도에 대한 단순 열거에 그칠 뿐, 실제 그러한 것이 단지 선언적인 의미만을 지닌 것에 불과하다는 것과 나아가 실제 존재하는 아동의 문제를 다루는 데에 있어 질적·양적으로 턱없이 부족한 대응 또는 부적절한 대응이라는 것을 적시하지 않을 때 이는 마치 대한민국 아동은 그들만의 천국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다는 인상을 자아내게 되는 것이며 어쩌면 이것이 정부가 노린 미필적 고의가 아니라고 장담할 수 있겠는가?

물론 혹자는 국제사회에 한국의 체면과 위신이 있으므로, 그리고 국제적인 압력에 밀려 정책을 추진한다는 것은 국가적 자존심에 상처를 주는 것이라고 말하며 이 정도의 보고서로 만족하자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아동권리위원회]에 제출하는 보고서는 우리의 형식적인 체면과 위신, 자존심의 차원에서 볼 것이 아니다. 이를 통하여 한국의 아동권리수준을 점검하는 계기로 삼아야 하는 동시에, 국제사회에 통용되는 기준을 목표로 현재의 저급한 아동권리 및 복지수준을 발전·추동시키는 고리를 만들어야 하는 한편, 결국 한국의 아동권리의 신장을 이루겠다는 정부의 국제적인 약속으로 자리매김되어야 한다.

특히 우리의 정부정책입안자들이나 정치인들, 심지어 한국사회전체가 아동에 대한 권리 및 복지의 증진에 대해 적극적인 관심을 갖지 않는 부끄러운 현실을 인식할 때, 그래서 1981년 전문개정된 아동복지법을 20년 남짓되서야 현실에 맞게 전문개정하겠다고 움직이고 있지만 아직도 개정법안이 1년동안이나 국회에서 표류하고 있는 이 가혹한 현실을 바라볼 때, UN의 권고라도 지렛대를 삼을 수밖에 없는 절박함을 인정해야 한다.

따라서 결론적으로 정부당국은 권리에 대한 보고서안을 현실에 맞게 대폭 수정하여야 하며, 이를 위하여 보건복지부가 주도하기 보다는 범부처적인 위상의 기구를 만들어 이를 작성해야 한다.

만일 정부가 정부스스로 혹독한 자기부정의 보고서를 쓸 수 없다는 정부보고서의 태생적인 한계를 근본적으로 벗어나기 힘든다면 적어도 "현재 우리의 법과 제도는 이러이러하지만, 이것이 현실에서 갖는 부족한 또는 부적절한 면은 이러한 것들이 있고 향후 이의 개선을 위하여 대한민국정부는 이러한 점들을 더 노력할 계획이다"는 정도의 성의표시라도 해야 한다.

만일 이 정도의 노력도 기울이지 않겠다면, 불행하게도 정부당국자는 우리나라의 아동에 대해 이러한 안이한 어처구니 없는 현실인식을 하고 있다는 부끄러운 고백을 하는 셈이며, 추후 아동관련 NGO들이 동위원회에 NGO보고서를 제시하게 되면 한국의 아동현실에 대한 너무나 시각이 다른 두 개의 보고서가 등장함으로써 국제사회에게 괜한 파장과 논란거리를 던져주는 비생산적인 결과를 낳고 말 것이다.

정부의 후속 수정보완 작업에 그래도 기대를 걸어본다.

이태수 / 꽃동네현도사회복지대학교 교수,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


참여연대 NOW

실시간 활동 SNS

텔레그램 채널에 가장 빠르게 게시되고,

더 많은 채널로 소통합니다. 지금 팔로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