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회복지시설을 인권의 보루로

1990년대에도 사회복지시설에서 인권 문제가 계속 발생했다. 우리의 기억에 아직도 아프게 남아 있는 사회복지시설 문제는 형제복지원 사건이다. 대규모의 부랑인 수용시설에서 수용자들을 강제노동시키고 가혹행위를 가하고 심지어 사망 사건을 감추기도 하였다. 게다가 정부보조금이나 수용자의 임금을 횡령하는 등의 비리도 발생했다.

이 사건은 사회복지시설을 도저히 사회복지시설로 생각할 수 없게 만들었으며 부랑인과 사회복지시설에 대한 여러 가지 대책을 새로 만들게 하였다.

그러나 형제복지원 사건에도 불구하고 사회복지시설에서의 불법행위는 근절되지 않고 1990년대에도 유사한 문제가 반복해서 발생했다. 경기여자기술학원, 소쩍새 마을, 양지마을, 구생원, 에바다농아원 등. 사회복지 시설에서의 문제는 공립이건 민간시설이건, 인가시설이건 비인가시설이건 시설의 유형에 관계없이 발생하였다.

이들 시설에서의 문제는 몇 가지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첫째는 대개 시설에 수용되어 있던 사람들이 부랑인이나 정신장애인 등 자신을 지킬 능력이 부족한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둘째는 가혹행위나 강제노동, 성폭행 등 시설에서 생활하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인권 침해가 있었다.

셋째 이와 동시에 공금횡령 등 시설운영에서 비리가 같이 발생하였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들에 대한 법적 처벌도 미약했다는 점도 공통점으로 지적할 수 있다.

형제복지원에 관련되었던 사람이 양지마을에도 관여하고 있었으며, 에바다농아원의 경우에도 사건에 관여되었던 사람이 계속해서 시설의 운영에 관여하고 있었다. 또 정부의 지도감독도 부실하였다. 사회적으로나 법적으로 문제가 되기 전에는 시설에 대해 엄격한 책임을 요구하지 않았다. 이러한 현상은 시설과 지방 관료의 유착에 대한 의혹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사회복지시설에서 위와 같은 문제가 발생하였을 경우에 대개는 시설의 비리에 초점이 맞추어졌다. 물론 사회적 후원에 대한 사회복지 시설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점에서 공금횡령 등과 같은 비리를 해결하는 것도 중요하다.그러나 시설의 문제를 비리만으로 한정하는 것은 문제의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동안 불우이웃을 돌보는 데 기여한 바가 있는 것으로 인정되어 비리에 대한 처벌이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다.

다시 말해 사회복지 시설에서 문제가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행정적으로나 법적으로 충분한 제재가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같은 문제가 반복해서 발생할 가능성이 항상 존재하게 된다.

우리나라의 사회복지 시설들이 시설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의 복지를 향상시키지 못하고 여러 가지 문제를 일으키는 원인은 우선 이들 시설들이 지역사회로부터 괴리되어 있기 때문이다. 대개의 사회복지시설들은 지리적으로 지역사회로부터 떨어져 있으면서 지역사회와의 관계가 밀접하지 못하다. 지역사회도 사회복지 시설이나 시설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을 자신이 도와주어야 하는 불우이웃 정도로만 생각하고 시설에 대한 관심을 가지지는 않는다. 그 결과 시설들은 지역사회로부터 단절된 채 운영되고 있다.

또 다른 시설 문제의 원인으로는 시설의 폐쇄적 운영을 들 수 있다. 대개 문제가 일어났던 시설들은 운영방식이 이사장이나 시설장의 사유재산화되어 전권을 행사하는 실정이었으며 이사나 주요 임원들은 친인척이나 특별한 관계가 있는 사람들로 구성되고 직원들도 폐쇄적으로 충원하는 방식이었다.

결국 사회복지 시설 중에서 지역사회로부터 적절한 지원과 감독을 받지 않는 상태에서 폐쇄적으로 운영되던 시설들에서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하였던 것이다.

사회복지 시설이 가지는 사회적 책임은 두 가지 요소로 구성된다. 하나는 사회적 후원을 합리적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사회적 후원에 따른 적절한 사회복지서비스를 생산,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사회복지시설의 문제는 이 양 측면 모두에서 접근해야 한다. 즉 시설의 비리문제와 함께 서비스를 이용하게 되는 시설생활자의 문제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

최근까지 사회복지시설 생활자들은 단순한 보호대상으로만 생각되었다. 이에 따라 사회의 질서유지와 시설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의 신체적 안전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생활과 권리에 다소간의 통제가 가해지는 것은 불가피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하였다. 그러나 개인의 권리와 사회복지시설에서의 보호는 서로 별개의 것으로 보아서는 안된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서비스의 하나인 사회복지시설보호는 시설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의 인권이라는 측면에서 평가되어야 한다.

인권에 관한 국제협약은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와 사회, 경제, 문화적 권리의 두 가지 내용으로 구성된다. 시민권이라는 관점에서도 개인의 권리는 공민권과 참정권, 그리고 사회권의 3단계로 발전해왔다.

현재의 사회복지시설보호는 기본적으로 개인의 신체적 자유와 거주이전, 이동의 자유를 제한한다는 점에서 자유권이라는 시민적, 정치적 권리를 침범하고 있다. 다시 말해 시설에 입소하는 과정에서 본인의 자유의지나 법적인 절차에 의하지 않고 행정적인 절차에 의해 입소절차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퇴소도 자유롭지 못하다.

사회복지 시설에서 보호를 받고 있는 사람들이 신체적으로 또는 경제적으로 스스로를 부양할 수 있는 능력이 없는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이들의 자유권을 제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시설의 입퇴소나 시설내에서의 생활이 보호대상자의 권리를 보장할 수 있는 방향으로 사회복지시설보호가 개선되어야 한다.

또한 사회복지 시설에서 제공되는 보호의 수준은 시설에서 생활해야 하는 사람들의 사회권을 보장할 수 있는 수준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협약에 의하면 누구나 상당한 생활수준을 유지하고, 또한 부단히 생활조건을 향상시킬 권리, 굶주림에서 벗어날 권리(제11조), 누구에게나 성취할 수 있는 최고 수준의 신체적 및 정신적 건강을 누릴 권리(제12조), 교육받을 권리(제13조), 문화적인 생활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제15조) 등을 명시하고 있다.

지금의 사회복지시설에서의 보호수준이 이러한 권리를 충분히 보장할 수 있는 수준인지 아닌지는 구체적으로 살펴보지 않아도 충분히 알 수 있다. 그리고 보호수준 미달문제는 개별 시설의 문제라기보다는 우리나라 복지정책 전반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이제 2000년대를 맞이하면서 사회복지 시설의 문제를 해결하고 넘어가야 한다. 현대의 사회복지가 탈시설화, 지역사회보호를 강조하는 추세지만 우리의 실정은 사회복지시설을 완전히 탈피할 수 없다. 그렇다면 변화의 방향은 시설에서 생활해야 하는 사람들의 인권을 충실히 보장할 수 있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폐쇄적인 사회복지시설을 개방체계로 전환시켜야 하며, 시설의 서비스수준을 생활자들의 권리를 충족할 수 있도록 상향조정해야 하고 시설의 이용이 이용자들의 자유의지에 따를 수 있어야 한다.

사회복지사업법의 개정으로 모든 사회복지시설은 주기적으로 평가를 받아야 한다. 이에 따라 사회복지 전분야에서 시설에 대한 평가가 이루어지고 있고 평가를 위한 준비가 진행되고 있다. 평가는 현재의 상태를 확인하는 의미도 있지만 평가의 내용은 미래의 발전방향을 제시하는 기능도 같이 수행해야 한다. 지난 1990년대에 발생한 사회복지시설의 문제와 유사한 문제가 반복해서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할 수 있는 내용이 평가에 포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사회복지 시설에 대한 정부와 사회의 책임도 강화되어야 할 것이다. 그럼으로써 사회복지 시설이 인권을 침해하는 장소가 아닌 스스로를 보호할 수 없는 사회적 취약계층의 인권의 보루로서 기능할 수 있도록 변화시켜야 한다.

김종해(가톨릭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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