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위원회 칼럼(sw) 2006-01-26   706

<안국동窓> 두번째 기회, 두가지 다짐

어린이집에 다니던 우리집 꼬마가 어느덧 졸업을 앞두고 있다. 어린이집에 다니는 동안 푼돈이나마 일주일에 한번 정기적으로 넣어두던 예금을 찾기 위해 함께 은행에 들렀더니, 창구에 있던 직원이 좋은 상품이 나왔다며 적금 가입을 권유했다. 그가 권한 것은 ‘2006년 새해맞이 새해결심 적금’이다. 금연이나 다이어트 등을 결심한 고객에게 축하 금리를 제공하고, 소정의 요건(?)을 충족한 경우 성공 고객으로 인정하여 0.3%의 축하금리를 추가로 제공하는 상품이다. 오죽 많은 사람들이 신년 결심을 굳혔다 허물었다 하면 이런 금융 상품까지 나왔을까 싶어 피식 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곧 웃음을 그쳐야 했다. 나 역시 ‘새해결심 적금’을 만들어 내도록 한 이들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게으름 혹은 쿨하게 살자는 요즘 시류에 맞게 신년 설계를 하는 일조차 내팽겨친지 오래지만, 마흔을 맞는 올해는 몇 가지 다짐을 해보았다. 그러나 작심삼일이란 말도 무색하게 어떤 결심을 했는지조차 가물가물하다.

올해 나의 다짐은 ‘가계부를 쓰자’, ‘몸무게를 줄이자’ 등의 신변에 관한 것 외에도 사회적(?)으로 의미있는 것도 있었는데, 2006년 달력의 첫 장을 넘기기도 전에 남의 일이 되어 버린 것이 적지 않다. 다짐을 다른 누군가에게 펼쳐 내보인 적은 없어도 스스로 부끄러운지 자꾸 머리 뒤통수에 손이 올라갔다.

다행스럽게 올해는 1월 말미에 음력설이 있다. 그나마 늦지 않게 신년에 세운 새해 다짐을 뒤돌아 볼 기회가 있는 것이다. 2006년 올해 나에게는 설령 가계부는 못쓰더라도, 체중은 못 줄이더라도 꼭 지키고 싶은 두 가지 다짐이 있다.

하나는 아이들에 관한 것이다. 나는 새해에 굶어 죽는 아이들의 수를 조금이라도 줄여보기로 했다. 내가 애쓴다고 해결될 일은 아니지만, 언제까지 한숨만 쉴 수는 없지 않은가. 지난 연말 참여연대 국제연대위원회가 발간하는 버마뉴스레터를 읽다가 울음을 삼키느라 한 고생을 했다. 인권활동가들이 버마의 파안마을을 방문해서 그곳에 사는 어린이들을 만나고 온 기사였다. 하루 두 끼만 챙겨먹던 활동가들은 그 마저도 ‘가난한 자의 밥그릇을 빼앗은 듯한 기분으로 내 몫으로 차려진 밥상을 받아들 때면 기도라는 것을 하지 않곤 배길 수가 없었다’며 토로하고 있었다.

UN에서 「아동권리선언」이 채택된 해가 1959년, 우리나라에서 「대한민국 어린이헌장」이 선포된 것이 1957년이다. ‘어린이는 몸과 마음이 튼튼하게 자라도록 필요한 영양을 공급하고.’ 어쩌고 하는 내용은 당연하고 또 당연하건만, 아직 매일 2만4천명, 매년 1천여 만 명의 어린이들이 죽어 나가고 있다. 가난과 재해, 전쟁으로 7초 마다 한 명의 어린이들이 죽어 나가고 있는 것이다. 특히 개발도상국의 어린이들은 약 10%가 만 5세를 넘기지 못하고 사망하고 있다. 지금 태어나는 잠비아 어린이들의 예상 수명은 겨우 33세에 불과하다니, 우리집 꼬마가 OECD가입국 중 하나인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것에 안도해야 하는 것인지 난감하고 답답할 뿐이다.

그동안 나는 눈앞에 펼쳐진 가혹한 현실 때문에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었다. 조간신문이며, 뉴스레터에 실린 굶어죽기 하루 직전의 아이 사진을 보며 먹먹한 가슴을 달래느라 애쓰기 보다는 그 아이들의 수를 한 명이라도 줄이기 위한 실제적인 노력일 하기로 했다. 비록 그것이 작은 노력일지라도 말이다. “아이들이 굶고 있어요” 라고 주변에 떠들어대는 것부터 시작해, 경건한 마음으로 식사하기, 잔돈 모으기, 전쟁반대캠페인에 참여하기 등등이 다짐을 실천할 수 있는 방법들이다.

지난 연말부터 팔자에 없는 공부를 하러 일주일에 한번씩 성공회대에 가야 했다. 안국동 사무실에서 항동의 학교까지 가려면 종로3가에서 1호선으로 갈아타야 하는데, 그때마다 인상이 찌푸려지곤 했다. 탑골공원에 나들이 오신 노인들 때문이다. 날씨가 추운 탓인지 역사 안으로 내려와 삼삼오오 모여 있는데, 대부분 추레한 차림이다. 제일 마음에 걸리는 장면은 계단참에 그저 망연히 앉아 있는 그들의 모습이다. 차라리 신문이라도 깔고 소주라도 마시며 고성을 지르는 모습이 더 나아보일 정도로 못 마땅하다. ‘집에서 손자라도 보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요새는 아파트 단지마다 노인정들이 많던데 왜 성치도 않은 몸으로 굳이 여기에 오시는 걸까?’ 갖가지 생각이 다 든다. 내가 헤아릴 수 없는 다양한 사정들이 있겠지만, ‘노인들이 갈 곳이 없고, 할 일이 없다’는 것은 현재 부인할 수 없는 우리 사회의 현실이다.

한국 평균수명(2005~2010)이 78.2세이다. 출산율이 세계 최저수준으로 가파르게 치닫고 있는 것처럼 평균수명도 급격하게 오르고 있다. 장수를 누리는 것은 마땅히 바람직한 일인데도 평균 수명 증가를 다룬 뉴스를 접할 때마다 개운치 않은 것은 노년의 삶이 그다지 낙관적이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대통령이 신년연설에서 “저출산 고령화 문제는 우리 미래를 불안하게 만드는 새로운 도전”이라 역설하며 2450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노인요양시설을 확대하고 2008년부터 노인수발보험제를 도입하는 등 노인복지재정을 확대하고 더불어 노인일자리 창출을 위한 계획에 돌입해 2009년까지는 30만개까지 일자리를 늘리겠다고 공언하고 있지만, 종로 3가역을 걷는 내 마음의 불안은 가시지 않는다.

맨 처음 종로3가에서 그런 장면을 목격했을 때는 난 우습게도 종로3가에서 환승을 하지 않는 방법을 찾았다. 좀 돌아가지만 7호선을 타고 가는 방법, 시청역까지 가서 바로 1호선을 타는 방법 등등. 하지만 병점행 전철을 기다리는 어떤 할머니의 ‘젊은이들 귀찮지 않게 노인들은 되도록 밖에 나다니지 말아야 한다’는 얘기를 듣고 적극적으로 노인들을 대면하기로 맘을 바꾸었다.

무엇 때문에 노인은 바깥에 나오면 안되는가? 지난 여름 미국에 잠깐 갔을 때 방문한 노인유권자단체가 떠오른다. 그 조직은 사소하게는 (노인 입장에서는 절대 사소하지 않을 것이다) 횡단보도의 보행등 신호시간을 늘이는 문제부터 크게는 의회에 노인권익법안을 제출하고 로비하는 일까지 노인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활동을 한다. 누구에게 의지하지 않고 노인들의 이해를 위해 스스로 조직을 만들어 활기차게 일하는 6-70세의 현장 스텝의 표정은 한결같이 즐거워 보였다. 그이들의 표정에서는 오래 사는 게 불행한 일이 아니며 사회의 다른 사람들에게 불편을 끼치는 것은 더더욱 아니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두 번째 다짐을 하게 된 배경 설명이 길었다. 새해 나의 두 번째 다짐은 노인들과 즐겁게 사는 법을 익히는 것이다. 훈련이란 말이 더 적당할지도 모르겠다. 노인들이 왜 자꾸 종로3가에 오는지는 젊은 청춘들이 괜히 명동이나 대학로를 두리번거리는 것이나 특별히 살 물건이 없는데도 백화점을 기웃거리는 아줌마들과 다를 바 없다. 노인들 목청이 높은 것은 난청 때문이라고 이해하는 것만큼 쉽지 않은가. 일찍 찾아 온 노안 때문에 나이 드는 것에 잔뜩 긴장하고 있는 내게 종로3가의 노인들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는 것은 나의 노년을 준비하는 길이기도 할 것이다.

아무리 언론에서 빈곤을 방치하는 것은 사회적 죄악이니 노령화 사회에 대비해 복지 재정을 확충해야 한다고 떠들어 댄다고 하더라도, 우리 스스로가 그 문제를 해결할 주인이란 생각이 없고 실천할 준비를 갖추고 있지 않다면 모두 남의 일일 뿐이다. 우리 사회의 약자들을 위한 사회적 실천이 남의 일인지, 자신의 일인지 꼼꼼히 챙겨 봐야 한다. 그리고 나면 세상은 달라 보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에 걸맞는 작은 다짐을 굳혀 본다면 더 좋을 것이다. 물실호기(勿失好機)란 말이 있지 않은가. 결심이나 다짐은 언제든 할 수 있지만, 기왕 기회가 왔다면 적극 활용해 볼 일이다. 며칠 앞으로 다가온 두 번째 기회를 놓치지 말자.

박영선 (참여연대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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