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폭력과 가정의 인권

가정폭력의 개념

가정폭력은 "가족구성원 중의 한 사람이 다른 가족에게 의도적으로 물리적인 힘을 사용하거나 정신적 학대를 통하여 고통을 주는 행위"를 말한다. 즉 가정폭력은 동거가족을 포함한 가족구성원간에 발생하는 폭력으로, 배우자, 부모자식, 형제, 동거가족 등에서 주로 발생한다. 특히 가정폭력은 아내, 아동, 노인 등 사회경제적 약자를 대상으로 발생하고 있어 가정폭력이 단순히 물리적 힘이 있고 없음에서 발생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 경제적 제 권력 관계에서 발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가정폭력은 가해자의 계획적이고, 반복적이고, 다분히 의도적인 폭력으로 인해 피해자에게 심각한 신체적, 정신적 손상을 주는 행위다. 그러나 가정폭력을 흔히 단순한 신체적 폭력만을 생각해서는 안 된다. 실체적으로 측정하기는 어려워도 피해자에게 막대한 심리적, 정서적 타격을 입히고 자아존중감을 해치는 언어적 학대, 성적학대와 더불어 방임, 유기 등 넓은 의미로 가정폭력을 개념지어 가정폭력이 심각한 인권침해 행위임을 명백히 하여야 한다.

가정폭력의 실태와 현황

1) 아내에 대한 폭력

가정폭력 중에서도 아내폭력은 전체 가정폭력 피해의 95%를 차지 할 만큼 가장 많은 피해 대상이 되고 있다. 또한 아내 폭력은 가족해체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며 다른 가족구성원에게 장기적이고도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는 특성을 갖고 있다. 아내폭력에 대한 통계는 연구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매맞는 아내에 대한 최초의 조사인 한국여성의 전화 연구(1983)에서 결혼후 한 번이라도 남편에게 구타당한 경험이 있는 여성은 조사대상의 42.2%를 차지했고, 형사정책연구원1992년의 조사의 경우는 여성응답자(640명)의 45.8%가 남편으로부터 폭력을 경험했다고 답변하였다. 1998년도 연세대학교 사회복지학과에서 발표된 '한국 가정폭력의 실태에 관한 연구' 보고에 따르면 우리 나라 남편의 3명중 1명 즉 27.9%가 지난 한 해 동안 적어도 1회 이상의 폭력을 행사했으며, 심각한 폭력의 경우는 한국 가정의 아내 100중 8명 이상이 지난 한 해 동안 남편에 의해 구타를 당했다는 결과를 얻었다. 이 비율에 따르면, 지난 한 해 동안 약 360만명의 아내가 남편에게 한 번, 또는 그 이상의 신체적 폭력행위를 당했으며, 103만명의 한국 여성들은 남편에 의해 심하게 구타당했다고 추정할 수 있다.

아내에 대한 폭력의 심각성은 광범위하게 많은 여성들이 폭력을 당하고 있다는 것 뿐아니라 그 폭력의 정도 역시 심각하다는 데 있다. 여성의 전화가 1993년부터 1994년까지 2년간 구타 면접 상담자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보면 구타방법으로 목을 조르거나 닥치는 대로 때리는 경우가 37.48%를 차지하고 있고, 가두어 놓고 옷을 벗기고 때리는 경우가 7.07%, 칼이나 흉기로 찌르거나 때리고 담배 불로 지지는 경우가 15.98%를 차지하고 있으며 흉기를 직접 사용하지 않아도 흉기로 위협하여 극도의 공포분위기를 조성하는 경우도 10.61%로 차지하고 있다. 위 통계에서 보듯이 직접 흉기를 사용하거나 위협하는 경우를 합산해 볼때 21.89%로 매우 높게 나타나고 있어 가정폭력의 심각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외에도 온몸에 화상을 입는 경우나 2층에서 떨어져서 하반신이 마비되거나 불구가 되는 경우도 많이 있다.

구타횟수 역시 월 1회 이상 4회 미만인 경우가 33.71%, 주 1회 이상 6회 미만이 23.86%를 차지하고 있다. 언제 어느 때 발생할지 모르는 폭력때문에 매맞는 아내들은 항상 불안과 공포에 시달리게 된다. 매맞는 아내들은 지속적인 폭력으로 인해 사회적 지지체계로부터 소외감을 느끼며 자신의 고통에 대한 수치심, 고립감, 우울증, 공포 등 다양한 감정을 경험한다. 폭력을 당하는 여성들은 사고력과 에너지를 모두 소모시킬 정도의 공포를 경험하며, 낮은 자아 존중감과 상황에 대한 양가 감정을 가지게 되고, 학습된 무기력에 시달릴 뿐 아니라 원조자를 포함하여 모든 타인에 대해 의심하게 되며, 자기를 비난하고, 현실을 왜곡하게 된다. 결국 폭력을 당하는 여성들은 남편의 구타로 인해 목숨을 잃는 경우, 혹은 계속되는 남편의 폭력으로 인해 우울증, 학습된 무기력 등에 시달리다 결국 정신분열에 이르는 등 아내구타는 한 인간의 인생을 완전히 황폐화시키는 심각하고 끔찍한 범죄 행위이다. 최근 들어 매맞는 남편이 늘고 있다는 보고가 있으나 많은 경우 매맞는 남편에 대한 논의는 아내구타나 가정폭력의 심각성을 희석시키거나 논점을 흐리려 제기 되는 경우가 많아 이 논의에서는 제외하고자 한다.

2) 아동에 대한 폭력

아동폭력을 다루는 데 있어서 어려운 점은 우리 나라의 전통적인 유교사상의 영향으로 부모에 대한 효도와 스승에 대한 존경이 문화 관습적인 덕목으로 강조되어 왔으며 아동에 대한 부모의 훈육권과 학생에 대한 교사의 징계권에 비해 아동은 보호대상으로 간주되어 왔을 뿐 아동을 권리의 주체로서 인식하는 데는 매우 미약한 것이 우리의 실정이다. 헌법이나 어린이헌장 등에서는 아동의 존엄성과 아동학대의 금지를 선언하고 있으나 현실적으로 아동의 인권에 대한 미약한 국민적 인식은 체벌이 훈육과 혼용되어 아동에 대한 폭력을 당연시하거나 확대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 아동폭력과 체벌의 구분이 상당히 모호한 것은 사실이지만 선진국의 사례를 보면 체벌을 허용하고 있는 나라에서 체벌을 허용하고 있지 않은 나라에 비해서 아동폭력이 많이 일어나고 있다는 연구결과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 나라에서 아동에 대한 폭력 방지에 대한 유일한 법적 근거인 아동복지법 18조 제 9항은 "자신의 보호 또는 감독을 받는 아동을 학대하는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된다." 라고 되어 있으나 구체적인 규정과 범위가 모호하여 법적 구속력을 갖기에는 미흡한 점이 많다. 우리 나라 아동학대의 실태를 보면 초등학교 3, 4학년을 대상으로 한 한 연구에 따르면, 지난 1년간 전혀 매맞은 경험이 없는 아동이 33.3%, 매맞은 경험이 있는 아동이 66.2% 이고 그중 중간집단이 58.0%, 1년 동안 12번 이상 심하게 매를 맞은 아동이 8.2%로 나타났다. 중간 집단은 팔, 다리, 온 몸 그리고 엉덩이가 주로 매맞는 부위였으나 심하게 매맞은 집단은 중간집단 보다 온 몸, 머리, 가슴이나 배, 얼굴을 맞은 경우가 더 많았다. 따라서 조사대상의 아동의 70%에 가까운 아동이 매맞은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1987, 김광일·고복자). 또한 가정학회회원 및 소아과 전문의를 대상으로 설문한 조사(1987, 안동현.홍강의) 에서 응답자 490명 가운데 228명이 아동학대를 경험한 것으로 보고되었다. 이 조사에서 구타로 죽은 아이가 6명이나 있었다는 보고도 있었다. 1993년 전국 17개 시도의 부모 168명, 아동 170명 도합 338명을 대상으로 한 신체적 학대 조사의 결과에서 보면(1993, 이배근) 97.6%의 부모가 자녀를 체벌한 경험이 있으며 이들 중 82.7%가 상황에 따라 체벌이 허용되어야 할 것을 11.3%가 부모가 해서는 안될 것을 주장하였다. 조사대상의 부모 중에 어린시절 학대를 경험한 부모는 75%였고 이들 부모들은 거의 자녀를 학대한 부모로 나타났다. 그리고 자녀를 구타하는 부모들의 경우 부부폭력이 나타난 경우가 47.2%로 부부폭력과 아동구타가 매우 상관성이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아동폭력의 심각성은 다른 가정폭력과 마찬가지로 구타의 결과가 치명적이라는 사실에 있다. 아이를 구타하는 부모의 경우 닥치는 대로 구타하기 때문에 가볍게 멍이 드는 것은 물론, 화상, 전기자극 흔적, 찢긴 상처 등 피부의 손상과 복부를 발로 채여 장파열을 일으키기도 하고 갈비뼈 골절, 두개골 골절, 허리 뼈 골절 등이 흔히 일어나고 심지어는 이러한 폭력으로 인하여 신체적 불구자가 되는 경우도 상당히 있을 뿐 아니라 아내폭력과 마찬가지로 구타로 인하여 사망하는 수도 많은데 이것은 분명히 살인행위에 해당하는 것이다. 폭력을 당하는 아이의 정신상황도 매우 심각하다. 이들 아동들은 두통, 복통, 말더듬, 야뇨증 같은 정신신체 증상이나 우울증, 자살행동, 공포증상, 불면증, 정신병 같은 정신증상을 나타내기도 한다. 그리고 학습지진, 등교거부, 도둑질, 성적문란 같은 행동장애도 나타난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들 아동들이 주의집중력이 산만하고 공격적, 파괴적이며 대인관계가 원만치 못하고 자아개념이 형성되지 않으며, 더욱 큰 문제는 폭력을 당하며 자란 이들이 자녀를 학대하는 부모가 되기 쉽다는 것이다. 결국 아동폭력은 간접살인 행위이며 정신적 살인행위라고 할 수 있다.

3) 노인에 대한 폭력

노인에 대한 폭력은 다른 가정폭력과 마찬가지로 발견이 매우 어렵다. 그것은 피해 노인들이 폭력을 당해도 폭력 사실 자체를 창피하게 생각해 대부분 문제를 감추려고 하는데 있다. 또한 사회 내에서도 동방예의지국인 우리 나라에서 노부모에 대한 폭력, 혹은 노인에 대한 학대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통념이 팽배해 있어 피해자들이 주변의 도움을 요청하기가 쉽지 않다.

1995년 현재 우리 나라 60세 이상의 노인이 전체 인구의 14%를 차지하고 있고 노인에 대한 폭력 역시 외국의 경우와 만찬가지로 점차 늘어간다고 보여진다. 그러나 우리 나라의 경우, 노인 폭력에 대한 자료가 거의 없는 형편이다. 노인들에 대한 학대는 신체적인 직접적인 폭력, 폭행은 물론 감금, 살인, 부양거부 이밖에도 식사제공, 신경안정제 강제주입, 재산 상속문제 등 다양하게 일어나고 있다. 1994년 한국형사정책연구소가 서울시에 거주하는 60세 이상의 노인 593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조사대상의 17%가 '나는 나를 돕거나 보호해 주는 사람으로부터 폭언이나 모욕을 받은 적이 있다.'고 응답하였다. 그외에 '혼자 집에 내버려두었다.' '부양할 사람이 꺼려 거처를 여러 번 옮겼다.' 등 조사대상의 약 65%가 학대를 당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노인에 대한 폭력은 가정 내 사회경제적인 약자인 여성, 아동에게 나타나는 폭력의 성격과 비슷하며 이러한 노인에 대한 폭력은 그들의 인권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범죄행위인 것이다.

가정폭력의 영향

가정폭력의 영향은 여러가지 사회 현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가정폭력은 사회의 기초 단위인 가정의 건강성을 심각하게 해치고 있다.

가정폭력의 악영향은 첫째 가족해체의 주범이 되고 있다는데 있다. 1995년 현재 한 해 동안 한국가정법률상담소에서 상담한 총 4006건 중 여자의 경우, 남편의 부정과 같이 혼인을 계속할 수 없는 중대한 사유로 이혼을 원하는 경우가 44.3%였으며 그 다음으로 남편의 폭행, 구타가 28.1%를 차지해 아내에 대한 남편의 폭력이 심각한 이혼 사유가 됨을 알 수 있다.

둘째 가정폭력은 비행청소년을 양산하고 있다. 형사정책연구원의 1991년 '청소년 범죄행동 유발요인에 대한 심리학적 연구'는 문제 있는 아버지와 청소년 범죄가 상당한 상관 관계가 있음을 밝혀낸 바 있다. 연구에 따르면 적응상의 문제를 갖고 있는 아버지를 가진 경우가 일반집단에서 10%를 차지하는 반면 범죄집단에는 36.4%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버지의 문제의 종류를 살펴볼 때 알코올중독이 21.4%, 폭력문제가 3.6%로 나타나 아버지의 가정 내 폭력과 비행청소년과의 연관성에 대한 유의미한 시사점을 던지고 있다. 셋째 가정폭력은 강력범죄의 온상이 되고 있다. 지난 20년간 신문에 발표된 가족관련 범죄의 사례들을 살펴보면 1970년대는 91건, 1980년대는 123건, 1990년대는 5년 동안만 80건으로 집계되어 가족관련 범죄가 증가 추세에 있음을 알 수 있다.

결론

가정폭력은 사회의 기초단위인 가정의 평화와 안정을 깨트리는 직접적인 원인으로 사회의 안전성에 심각한 위험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더욱이 피해자들에게는 생명의 위협을 느끼게 하고 인생을 파탄 지경에까지 이르게 하는 심각한 인권유린 행위이며 범죄행위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대로 가정폭력은 사회 경제적 약자인 여성, 아동, 노인에게 많이 발생하고 있으며 그 발생 범위가 매우 광범위하고 피해 정도 역시 매우 심각함을 알 수 있었다. 이러한 가정폭력은 외부에 발견되기 매우 어려우며 외부의 개입이 시작될 정도가 되었을 때는 이미 가정폭력이 상당히 심각한 정도에 이른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가정폭력은 은폐되고, 세대간 지속되며,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특성이 있다.

따라서 가정폭력을 근절시키기 위해서는 우리사회의 끈질기고 적극적인 개입이 필수적이다. 여성의 전화와 가정폭력 관련 단체들은 1994년부터 1997년까지 가정폭력 관련법들을 제정하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했다. 1997년 제정된 가정폭력 관련법제정은 우리사회가 이제 가정폭력문제를 사회문제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는 중요한 변화이다. 가부장적이고 유교적인 전통이 뿌리깊은 한국사회에서 가정폭력 관련법의 제정은 가히 혁명적인 상황이라고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법이 제정되었다고 해서 우리사회의 가정폭력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볼 수는 없다. 아직도 경찰은 가정폭력 문제에 미온적으로 대처하고 있고 가정폭력 행위자 교정, 교화 프로그램에는 아무런 예산 지원도 없는 실정이다. 법 제정은 가정폭력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는 단초를 마련했다고 보여지며 가정폭력에 대한 인식과 관행을 바꾸는 더욱 어려운 작업이 우리 앞에 남아 있는 것이다.

< 참고문헌 >

@ 김광일 편저(1988). 가정폭력. 탐구당

@ 한국여성개발원(1993). 가정폭력의 예방과 대책에 관한 연구

@ 한국형사정책연구원(1992). 가정폭력의 실태와 대책에 관한 연구

-서울시 남편의 아내폭력 현황을 중심으로

@ 한국여성의 전화 역음(1992). 쉼터이야기. 도서출판 그린비

@ 한국여성의 전화(1992). 매맞는 아내, 깨어진 삶

@ 한국여성단체연합 성폭력특별법 제정추진 특별위원회(1992). 성폭력없는 사회를 위하여

@ 한국여성의 전화(1994). 아내구타, 아동학대, 깨어진 가족 공동체

@ 한국여성의 전화(1995). 가정폭력방지법 전문가 워크숍

정춘숙/서울여성의 전화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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