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09 2009-09-01   1107

[동향1] 비닐하우스촌 주소지찾기 소송의 의미


[동향] 비닐하우스촌 주소지찾기 소송의 의미






김영수
공익변호사그룹 공감


주택보급율이 100%를 넘는 시대를 살고 있지만, 최저주거기준에도 훨씬 못 미치는 열악한 주거환경에서 삶의 둥지를 틀고 있는 주거빈곤층의 한 형태가 비닐하우스촌이라 불리는 ‘신발생(미등재) 무허가 주거지’이다. 1970년 이후 진행된 급격한 공업화 과정에서 형성된 도시지역 빈민들의 전형적인 주거지역을 흔히 ‘달동네’ 혹은 ‘산동네’라 한다면, 1980년대 접어들어 이 달동네는 다시 재개발의 주된 대상이 되었고, 가난한 달동네 주민들이 더욱 외곽으로 이주하거나 새로운 형태의 주거불량촌을 형성하게 되었는데, 이처럼 새롭게 형성된 주거빈곤층의 형태가 비닐하우스촌이다.



현재 수도권에만 47개 마을, 10,000여세대, 35,000명 정도의 주민이 살고 있는 비닐하우스촌은 개발사업으로 인해 철거될 위기에 처하거나, 오염된 지하수 등 열악한 주거환경, 화재로 인해 보금자리를 잃어버렸을 때, 온정의 시각에서 언론을 통해 주목받기도 하였으나, 한편으론 투기꾼들의 집결지인 것처럼 부정적인 이미지로 그려지기도 한다.




그곳에는 사람이 살고 있지 않다



지금까지 지방자치단체들의 공식적인 입장은 “비닐하우스촌에는 사람이 살고 있지 않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지방자치단체는 비닐하우스촌에 거주하는 것 자체가 불법이기 때문에 공식적으로 비닐하우스촌을 사람이 거주하는 주택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그에 따라 주민등록 등재를 계속 거부해 왔음이 지금까지의 실정이다. 그 결과 비닐하우스촌 주민들은 분명 시, 군, 구 등 행정구역 안에 명백히 생활을 해오고 있음에도 주민으로는 인정받을 수 없는, 유령과도 같은 존재로 취급되어온 셈이다.



우리나라에서 주소지가 갖는 의미는 매우 크다. 주소지 등재가 이뤄지지 않음으로, 생활에 꼭 필요한 전기․상수도 등 기반시설의 공급이 불안정하거나 비정상적인 방법을 통해 이뤄질 수밖에 없고, 자녀들은 인근에 학교가 있는데도 학교배정을 받지 못해 먼 거리에 있는 학교를 통학해야 하며,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의 각종 복지정책에서도 소외되거나 차별받을 수 있으며, 위장전입을 할 수 밖에 없는 등 주민들의 불편과 경제생활의 불이익은 가히 심각한 형편이다. 또 주민등록의 등재 여부는 개발사업으로 철거될 때 공공임대주택 제공 등 주거대책의 존재여부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어, 주민들의 주거권 및 생존권과 직결되는 문제이기도 하다. 결국 주소가 없다는 것은 살고 있는 지역의 주민으로 인정되지 않는 것이고, 이는 관할 지자체의 정책 대상에서 제외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주소지찾기 운동



비닐하우스촌 주민들의 주소지찾기운동은 2000년에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당시 송파지역 비닐하우스촌인 화훼마을과 개미마을의 주민들이 참여연대와 함께 공익소송을 진행하였고, 항소심까지 승소하자 송파구에서 상고를 포기함으로써, 2001년 송파지역 비닐하우스촌들이 주소지를 획득하게 되었다. 이후 2004년에는 빈곤격차차별시정위원회의 요청으로 행정자치부(현 행안부)가 주민등록 신고 거부로 인한 비닐하우스촌 주민들의 권리 침해를 해소하기 위해 각 지자체에 비닐하우스촌 주민들의 주민등록 전입신고를 적극 수리하라는 지침을 내린 바 있으며, 2006년에는 국가인권위에서도 이와 같은 내용을 권고한 바 있다.



그러나 지방자치단체들은 이와 같은 법원의 판결, 행정부 지침 및 권고는 어디까지나 권고일 뿐이라는 입장으로 지금까지 일관하고 있었으며, 이러한 지방자치단체들의 태도는 기존 법원의 판단도 중요한 원인이 되었다. 즉 법원은 아래에서 보는 바와 같이 비닐하우스촌의 전입신고가 실제 거주를 목적으로 한 것인지, 아니면 그 외의 다른 목적에 의한 것인지 여부를 판단하여 전자의 경우에만 전입신고 수리거부 처분이 위법한 것이라 판단한 것이다.(위 송파구 화훼마을 건을 제외하고는 강남구 구룡마을 등 다른 소송에서 법원은 실제 실질적인 거주요건을 갖지 못하였음을 이유로 전입신고 수리거부처분이 정당한 것으로 판단하였다).



『주민등록법 제6조 제1항이 규정하는 주민등록 대상자의 요건인 ‘30일 이상 거주할 목적으로 그 관할구역 안에 주소 또는 거소를 가질 것’이라 함은 단순히 외형상 그러한 요건을 갖춘 경우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앞서 본 주민등록법의 입법목적과 주민등록의 법률상 효과 및 지방자치의 이념에 부합하는 실질적 의미에서의 거주지를 갖춘 경우를 의미하는 것이고, 주민등록을 담당하는 행정청으로서는 주민등록 대상자가 이러한 실질적 요건을 갖추지 못하였다고 볼 만한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그 등록을 거부할 수 있다고 보아야 한다.(대법원 2002. 7. 9. 선고 2002두1748 판결)』




최근 대법원의 판결



이러한 상황에서 강남구 잔디마을, 서초구 수정마을, 과천시 꿀벌마을의 비닐하우스촌 주민들은 주민등록의 등재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누려야 할 당연한 권리라는 전제하에 다시 전입신고 수리거부처분을 한 행정청을 상대로 소송을 하였고, 이에 대해 대법원은 최근 다음과 같이 기존의 판례를 변경하여 투기나 이주대책 요구 등을 방지할 목적으로 주민등록전입신고를 거부하는 것은 주민등록법의 입법 목적과 취지 등에 비추어 허용될 수 없다는 취지의 의미 있는 판결을 하였다.



『주민등록법에 의하면, 주민등록지는 각종의 공법관계에서 주소로 되고, 주민등록전입신고를 한 때에는 병역법, 민방위기본법, 인감증명법, 국민기초생활 보장법, 국민건강보험법 및 장애인복지법에 의한 거주지 이동의 전출신고와 전입신고를 한 것으로 간주되어 주민등록지는 공법관계뿐만 아니라 주민의 일상생활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치므로, 이는 전입신고자의 실제 거주지와 일치되어야 할 필요성이 있다. 뿐만 아니라, 주민등록은 이중등록이 금지되는 점과 아울러 시장․군수 또는 구청장은 전입신고 후라도 허위 신고 여부를 조사하여 사실과 다른 것을 확인한 때에는 일정한 절차를 거쳐 주민등록을 정정 또는 말소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는 점 등을 종합하여 보면, 시장 등은 주민등록전입신고의 수리 여부를 심사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고 봄이 상당하다.


그런데 헌법 제14조는 모든 국민이 거주ㆍ이전의 자유를 가지고 있음을 규정하고 있고, 헌법 제37조 제2항은 그러한 자유를 국가안전보장ㆍ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으나 그 경우에도 자유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할 수는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헌법 규정들의 취지에 비추어 보면, 비록 주민들의 거주지 이동에 따른 주민등록 전입신고에 대하여 행정청이 이를 심사하여 그 수리를 거부할 수는 있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행위는 자칫 헌법상 보장된 국민의 거주ㆍ이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으므로, 시장 등의 주민등록전입신고 수리 여부에 대한 심사는 주민등록법의 입법 목적의 범위 내에서 제한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한편 주민등록법은 시ㆍ군 또는 구의 주민을 등록하게 함으로써 주민의 거주관계 등 인구의 동태를 상시로 명확히 파악하여 주민생활의 편익을 증진시키고 행정사무의 적정한 처리를 도모하는 데에 그 목적이 있고, 시장 등은 30일 이상 거주할 목적으로 그 관할 구역에 주소나 거소를 가진 자를 등록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해 보면, 전입신고를 받은 시장 등의 심사 대상은 전입신고자가 30일 이상 생활의 근거로서 거주할 목적으로 거주지를 옮기는지 여부만으로 제한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따라서 전입신고자가 거주의 목적 이외에 다른 이해관계에 관한 의도를 가지고 있는지 여부, 무허가건축물의 관리, 전입신고를 수리함으로써 당해 지방자치단체에 미치는 영향 등과 같은 사유는 주민등록법이 아닌 다른 법률에 의하여 규율되어야 할 것이고, 주민등록전입신고의 수리 여부를 심사하는 단계에서는 고려 대상이 될 수 없다.


그러므로 주민등록의 대상이 되는 실질적 의미에서의 거주지인지 여부를 심사하기 위하여 주민등록법의 입법 목적과 주민등록의 법률상 효과 이외에 지방자치법 및 지방자치의 이념까지도 고려하여야 한다고 판시하였던 대법원 2002. 7. 9. 선고 2002두1748 판결은 이 판결의 견해에 배치되는 범위 내에서 변경하기로 한다.(대법원 2009. 6. 18. 선고 2008두10997 전원합의체 판결)』



기존의 판결이 ‘주민등록법의 입법목적과 주민등록의 법률상 효과 및 지방자치의 이념에 부합하는 실질적 의미에서의 거주지’란 요건을 들어, 행정기관들이 주민등록 전입신고를 거부할 여지를 남겨둔 반면, 이번 대법원 판결은 “전입신고자가 거주의 목적 이외에 다른 이해관계에 관한 의도를 가지고 있는지 여부, 무허가건축물의 관리, 전입신고를 수리함으로써 당해 지방자치단체에 미치는 영향 등과 같은 사유는 주민등록법이 아닌 다른 법률에 의하여 규율되어야 할 것이고, 주민등록전입신고의 수리 여부를 심사하는 단계에서는 고려 대상이 될 수 없다”고 판단하여, 이로써 더 이상 행정기관들이 실질적 거주요건이나 거주목적 등을 이유로 주민등록 전입신고를 거부할 명분은 사라지게 되었다. 따라서 향후 모든 지자체는 30일 이상 거주할 목적만 확인된다면 비닐하우스촌 주민들의 주민등록을 등재하여야만 할 것이다.



남겨진 과제



이번 대법원 판결의 의미는 비닐하우스촌 역시 사람이 살아가는 마을임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이는 겨우 비닐하우스촌이란 미등재 무허가 거주지 형태의 주거문제를 풀기 위한 시작에 불과하고, 여전히 적절한 주거권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풀어야 할 문제들은 산적해 있다.



강남구와 서초구 비닐하우스촌은 시유지인 체비지에 있는데, 여기에 부과되는 벌과금의 형태로 ‘체비지 변상금’이 매겨진다. 강남 수정마을의 경우 60가구가 사는데 총 약 70억 원, 서초구 잔디마을은 40가구가 약 50억 원의 체비지 변상금이 누적되어 있으며, 이는 가구당 1억 정도씩에 해당한다. 이것은 결국 비닐하우스촌을 벗어나고 싶어도 벗어날 수 없게 만드는 족쇄와도 같다. 과천의 꿀벌마을은 수십 명의 지주가 도지세도 거부하면서 명도소송을 진행하여, 강제 철거를 당할 위기에 있다. 또 서울시는 당장 내년부터 강남․서초지역의 시유지인 비닐하우스촌을 철거하고, 그곳이 살고 있던 주민들이 살 수 있는 저렴한 임대주택이 아닌, 강남서초지역 전세가의 80%인 장기전세주택(SHFT)를 건설하겠다고 한다.



사람이 공식적으로 살아가는 마을임을 인정한다는 것은 점유지로서의 안전성과 주거지로서의 적절성 등이 뒷받침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비닐하우스촌 주민들이 열악한 주거환경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들의 경제적 여건 그리고 정부의 저소득층 주거정책의 실패에 기인한다. 이제 저소득층을 위한 주거대책 마련이 단순한 최저주거기준에 적합한 물리적인 공간을 제공한다는 의미를 넘어 비닐하우스 주민들이 스스로 부담 가능한 주거를 제공함과 동시에 스스로 적절한 주거상태를 지속할 수 있게 하는 정책이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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