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19 2019-06-03   8630

[기획3] 부정의(不正義)한 노동환경! 하청 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몰고 있다

부정의(不正義)한 노동환경! 하청 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몰고 있다

 

이윤근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소장

 

노동자들을 위한 ‘환경 정의’는 존재하는가?

환경정의(Environmental Justice)란 ‘모든 주민이 평등하고 공정하게 건강한 환경을 누리도록 하는 것’을 의미한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에서는 ‘환경정의는 모든 시민의 기본적 권리로서 환경위험과 피해에 불공평하게 노출되지 않고, 적절한 정보를 제공받아 정책결정 과정에 실질적으로 참여할 수 있어야 하고, 발생된 피해에 대해 공정하게 구제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조건을 권고하고 있다. 즉, 이 조건에는 ‘평등과 배려’, ‘참여와 소통’, ‘책임과 보상’ 이라는 함축적인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필자는 환경정의 문제를 일하는 사람 즉, 노동자들의 문제인 노동환경 측면에서 생각해보고자 한다.

 

지난 2018년 12월 11일, 화력발전소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했던 꿈 많은 한 청년이 소중한 목숨을 잃었다. 故 김용균 님이다. 그가 죽임을 당할 수밖에 없었던 환경을 보면 정의가 철저히 무시된 이른바 노동환경의 부정의(不正義), 불평등 문제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그는 최소한의 안전도구인 랜턴도 없이 깜깜한 어둠 속에서 휴대폰 불빛에 의지한 채 (인원부족으로) 홀로 일하다가 참변을 당했다. 위급한 상황일 때 작동되어야 할 최후의 생명줄인 안전스위치는 무용지물이었고, 이러다간 죽을 수 있겠다며 수차례 대책을 요구했던 노동자들의 목소리는 무시된 채 죽음의 일터인줄 뻔히 알면서도 그는 사지로 내몰렸던 것이다. 즉, 그는 사고를 당한 게 아니라 죽임을 당한 것이다. 왜냐하면 ‘만약 2인 1조로 일을 했다면’, ‘안전스위치만 제대로 작동되었다면’, ‘노동자들의 개선 요구가 받아드렸더라면’ 최소한 목숨만은 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죽음은 노동환경의 부정의(不正義)가 낳은 명백한 살인이다.

이와 같은 노동환경에서 정의에 반하는 부정의 혹은 불평등 문제가 일어날 때마다 많은 사람들이 분노했고, 추모했으며, 개선을 요구했다. 그러나 그 것으로 끝이었다. 근본 원인이 해결되지 않은 채 후진적 재해는 반복되었고, 그 희생의 중심에는 항상 비정규직과 하청 노동자들이 있었다. 지금도 ‘사랑하는 부모님’, ‘사랑하는 남편’, ‘사랑하는 내 자식’이 죽음의 현장에서 소중한 생명을 담보로 일하고 있는 노동환경의 부정의는 거의 개선되지 않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죽음에도 불평등이 존재하는 사회, 하청노동자가 먼저 죽는다!

노동계와 시민단체는 ‘포스코건설’을 2019년 최악의 살인기업으로 선정됐다. 이 사업장에서는 지난 1년 동안 10명의 노동자가 사망했으며, 사망자 모두가 하청 노동자였다. 故 김용균 님이 일했던 발전사의 산재사망 실태를 보면 더 충격이다. 최근 5년간 국내 5대 발전사(한국남동발전·서부발전·중부발전·남부발전·동서발전)에서는 20명의 산재 사망자가 발생하였다. 이 또한 모두가 하청 노동자들이다. 발전사의 산업재해 실태를 사상자(부상자+사망자)로 확대해서 보면 재해자의 90% 이상은 모두 하청 노동자들이다. 최근 국회에 제출된 자료를 보면 5년(2014~2018년) 동안 한전의 총 재해자가 562명이었는데 이 중에서 협력사 소속 재해자는 538명으로 95.7%를 보였고, 여타의 발전사들도 협력사 재해자 비율이 89.8~100%에 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하다가 다치거나 죽는 사람은 대부분이 하청 노동자다(표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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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청 노동자의 산재 문제는 비단 특정 사업장의 문제만은 아니다. 2016년에 약 40만 명을 대상으로 조사된 안전보건공단의 보고서를 보면 하청 노동자의 산재사망 만인율(노동자 1만 명당 산재사고로 사망할 확률)은 0.39로, 원청 노동자(0.05)보다 무려 8배 정도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그림1). 노동자들의 산업재해, 특히 산재사망 부분에는 환경정의에 반하는 심각한 부정의(不正義)가 존재한다는 것을 많은 통계들이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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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환경정의를 위해서는 ‘위험의 외주화’가 금지되어야 한다

노동환경정의를 위한 첫 번째 필수조건은 ‘평등과 배려’이다. 즉, 혜택과 배려, 책임 등은 공정하고 공평해야 한다. 사회경제적, 생물학적 약자는 물론이고, 취약계층(비정규직, 하청 노동자, 영세 사업장 노동자, 이주 노동자 등)에 대한 배려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그 동안 우리 사회는 이러한 조건들을 모두 외면해 왔다. 바로 ‘위험의 외주화’ 문제다. 힘들고 위험한 작업은 대부분 하청 노동들의 몫이 된지 오래다. 위에서 설명한 하청 노동자들의 처참한 산재 발생 실태는 이러한 위험의 외주화가 낳은 슬픈 산물이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노동계에서는 위험의 ‘외주화 금지’와 이를 위한 ‘원청의 책임성 강화’를 끊임없이 주장해왔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개선된 것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2018년 12월에 전면 개정된 산업안전보건법(일명 김용균법)을 보면 안전관리를 위한 원청의 책임성 강화는 다소 발전된 측면이 있지만 위험의 외주화 문제는 거의 개선되지 않았다. 위험의 외주화 금지 논의를 촉발했던 구의역 참사 작업(궤도사업장의 점검 및 설비 보수작업), 고 김용균 님의 작업(전기사업 설비 운전 및 점검·정비·긴급 복구업무)은 도급제한은 물론이고 도급승인 대상에도 포함되지 않았다. 그 동안 노동계가 원청 책임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던 위험작업 대부분이 승인 대상에서 제외됐다.

 

여전히 힘없는 하청 노동자들이 위험한 노동 현장에 내몰릴 수밖에 없는 노동환경의 불평등 문제는 계속되고 있다.

 

알권리를 통한 진정한 ‘참여권’이 보장되어야 한다

노동환경과 관련된 정책을 만들고 이를 시행하고, 관리 감독하는 모든 과정에 노동자들이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완전한 참여권 보장을 위해서는 정보의 접근성과 소통할 수 있는 알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국제노동기구(ILO)에서는 1981년부터 ‘노동자 안전위원이 작업장 점검을 할 수 있고, 안전보건문제에 대한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등 활동을 보장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유럽연합에서는 지침(EU Directive, 1989)에 의해 사업장 안전보건에의 노동자 참여 규정을 명시하고 있으며, 스웨덴, 독일, 영국, 핀란드 등에서는 이러한 노동자 참여권 보장을 통해 많은 산재 예방효과를 거두고 있다.

 

물론 우리나라도 ‘산업안전보건위원회’나 ‘명예산업안전감독관’ 제도를 통해 어느 정도 참여권을 보장하고 있다. 그러나 권한이 거의 없는 참여가 아닌 수동적 참관에 불과하여 실효성이 거의 없는 제도로 전락한지 오래다. 진정한 참여권 보장을 위해서는 노동자 참여 당사자의 임명 기준과 대상 사업장이 확대되어야 하고, 참여자의 활동시간 보장은 물론이고 실질적 책임과 권한이 보장되어야 한다. 스웨덴 사례를 보면 5명 이상 모든 작업장에 노동자 측의 안전위원을 선임하도록 하고 있으며, 이들에게는 교육. 훈련을 받을 수 있는 권리, 활동시간에 대한 임금을 보상 받을 권리, 정보 접근에 대한 권리, 고통과 차별로부터의 보호되는 권리, 위험한 작업을 멈출 수 있는 권리(작업중지권) 등 실질적 권한이 주어져 있다.      

 

책임은 엄격해야 하고, 보상은 공정해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의 법률 체계에서는 사업주가 산업안전보건법을 위반해 노동자가 숨지는 중대 재해가 발생하더라도 대부분 집행유예 또는 약간의 벌금형에 그치는 게 현실이다. 고용노동부 통계를 보면 2007년부터 2016년까지 10년간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피의자의 형사재판 건수 중 징역형을 선고받은 경우는 0.5%에 불과하며, 2016년에 발생한 사망사고에 대한 평균 벌금액도 432만원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심지어 2008년 40명의 목숨을 앗아간 경기도 이천 냉동창고 화재사건 결과를 보면 시공사 대표에게는 집행유예가 선고되었으며, 부과된 벌금은 2천만 원이 고작이었다. 소중한 노동자 한 명의 목숨이 50만원에 불과한 셈이다.

 

많아야 수천만 원에 불과한 벌금이 투자비용에 비해 훨씬 경제적인데 누가 안전보건 문제에 책임감을 갖고 투자하겠는가? 기업들로서는 안전보건에 투자하는 것보다 벌금을 내는 게 훨씬 경제적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동계의 요구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일명 기업살인법)’ 제정이다. 실제 외국의 연구를 결과를 보면 산재사망을 일으킨 기업의 고위 임원을 강력하게 처벌하는 것이 산재 사망을 줄이는 가장 효과적인 정책 수단으로 알려져 있다. 영국은 2007년에 ‘기업 과실치사 및 살인법’을 제정하여 기업 등이 주의 의무를 위반해 노동자가 숨지면, 이를 범죄로 규정하고 상한이 없는 엄청난 벌금을 부과하고 있다. 이 법이 시행된 2008년 이후 영국의 산재 사망률은 계속해서 줄고 있다. 우리나라도 하루 빨리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제정되어야 할 이유이다.

 

노동환경 정의를 위한 기본적 권리성이 인정되어야 한다

우리나라는 아직 환경정의를 국민의 권리로 규정하고 있지 않다. 다만 헌법 제35조에 ‘ 모든 국민은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를 가지며, 국가와 국민은 환경보전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로 국민의 ‘환경권’을 규정하고 있다. 이마저도 구체적인 내용과 행사에 관한 사항을 법률에 유보하고 있어 헌법상 기본권인 환경권의 구체적 권리성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노동자들의 환경정의라 할 수 있는 노동환경도 마찬가지다. 근로기준법 제6조(균등한 처우)를 보면 ‘사용자는 근로자에 대하여 남녀의 성(性)을 이유로 차별적 대우를 하지 못하고, 국적·신앙 또는 사회적 신분을 이유로 근로조건에 대한 차별적 처우를 하지 못한다.’ 정도로 신분과 성, 신앙으로 인한 근로조건의 차별만을 금지하고 있다. 물론 근로기준법 제65조(사용 금지)를 보면 임산부를 보건상 유해·위험한 작업으로 보호할 수 있는 규정만 있을 뿐 노동환경에 대한 노동자들의 기본적 권리성은 인정하지 않고 있다.

 

노동자들의 헌법이라 할 수 있는 근로기준법에 다음과 같은 노동환경의 권리성을 규정하는 것을 제안해본다.

①모든 노동자는 위험에 노출되지 않고, 평등하고 공정하고 안전하게 일할 수 있어야 한다.

②노동으로 인해 발생된 안전보건 피해에 대해서는 공정한 보상을 받을 수 있어야 하며, 피해의 원인에 대해서는 합당한 책임을 물을 수 있어야 한다.

 

③노동안전보건과 관련된 모든 정보는 소통되어야 하고, 노동자는 안전보건 정책 결정과 실행 과정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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