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15 2015-01-11   1106

[칼럼] 무상(無償)복지가 무상(無常)하다

무상(無償)복지가 무상(無常)하다

윤찬영 l 전주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2010년 지방선거에서 무상급식 논쟁이 뜨거웠다. 당시 교육감선거에서 김상곤 경기도 교육감 후보로부터 촉발된 무상급식 논쟁의 화력은 대단했다. 그 후로 무상급식의 포연은 가라앉지 않아 급기야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시장직을 걸고 무상급식 반대를 주장하다가 낙마하는 희대의 사건마저 벌어졌다. 이에 따라 2011년 10·26 서울시장 재보궐선거를 하게 되었고 시민운동가 출신 박원순 후보가 정계에 입문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결국 그는 당선되었다. 결국 무상급식이 진보성향의 교육감과 서울시장을 당선시키는 지렛대가 되었던 것이다. 최근에도  복지예산을 둘러싸고 무상복지 논란이 증폭됐었다.

 

무상복지, 부적절한 표현

 

원래 유상(有償)이니 무상(無償)이니 하는 말은 법률 용어이다. 계약에서 계약 당사자가 서로 대가적 의미를 갖는 출연(出捐)을 하는 것이 유상계약이다. 반면에 무상계약은 계약 당사자 한 쪽만이 급부를 이행하거나 쌍방이 급부를 하더라도 그것이 서로 대가적 의존관계에 있지 않은 경우를 말한다. 그래서 일상용어로서 “무상”이라는 말은 공짜로 이해되기도 한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새누리당의 보수적 인사들이 공짜복지를 운위하며 매우 부정적인 언사를 퍼부었다. 이쯤 되면 복지는 잘 해야 선심 쓰는 것이고, 아니면 동냥에 가깝다고 해야 할까?

 

일단, 국가의 사회복지정책에 의한 복지급여나 서비스에 대해 유상이니 무상이니 하는 말을 하는 것이 적절한가? 유상 또는 무상이라는 단어를 붙이려면 법적인 계약관계를 전제해야 한다. 이는 사법(私法)적 계약관계에서 적용할 수 있는 어법이다. 사회복지법에 근거하여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국민에 대한 법적 책임 이행으로 급부를 제공하는 데 유상과 무상을 따지는 것은 성립할 수 없다고 본다. 국가가 국민을 상대로 복지급부를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복지비용을 부담할 때,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어떻게 분담할 것인가를 따진다든가, 서비스 이용자에게 수익자 부담을 어느 정도로 부과할 것인가를 논할 수는 있어도 사회복지 급여나 서비스에 대해 유상, 무상을 말하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비용부담과 책임성의 문제

 

이렇게 무모한 논쟁이 벌어지는 지점은 대개 사회수당의 성격을 갖는 급부들에 대해서이다. 사회보험이나 공공부조에 대해서는 이런 언급이 없는데, 학교급식 또는 보육 등에 관련하여 무상복지 논쟁이 집중되는 것이다. 동일한 인구학적 조건을 가진 대상들에게 무차별적으로 동일한 급부를 제공하는 것이 사회수당의 기본 패턴이다. 학교에서 의무교육을 받고 있는 학생들에게 급식을, 학령 전 아동들에게 보육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다만, 이에 필요한 재정을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어떻게 분담할 것인가 또는 수익자에게 어느 정도의 분담을 요구할 것인가는 정책적 선택사항이 될 수 있다.

 

여기에서 수익자의 부담분을 놓고 유상이냐 무상이냐를 말하는 것은 맥락을 완전히 전환시키는 정치적 화법이다. 급식 또는 보육서비스를 상품으로 둔갑시켜 제값을 받고 팔 것인가 또는 할인판매를 할 것인가를 따지는 꼴이 된다. 그러므로 무상복지는 복지서비스를 공짜로 판매하는 것이 돼버려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복지논쟁 물거품 되나?

 

복지급부나 서비스는 법에 의해 국가 및 자치단체의 책임으로 제공되는 것이다. 그것을 받는 사람은 권리에 의해 받는 것이다. 국가와 자치단체가 책임 또는 의무가 있는데, 그 상대방인 국민에게 권리가 없다면 이것은 자연채무가 되어버린다. 그래서 의무이지만 의무를 이행하지 않아도 그만인 것이다. 한발 더 나아가 복지서비스를 상품으로 둔갑시킨다면 제공자는 당연히 제 값을 받고 팔아야 할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무상복지를 생각한다면 그것은 사회주의식이거나 인기영합주의에 지나지 않는다고 할 것이다.

 

애초 잘 못 된 용어 선택으로 무상복지는 오히려 복지에 대한 국가의 책임보다 그것을 주장하거나 받는 자의 도덕성을 비난하는 약점이 되어 버렸다. 되치기를 당한 것이다.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들도 은근 슬쩍 무상복지가 자신들과 무관하다고 피하는 실정이다.

 

복지국가 건설을 위해 증세를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증세없는 복지증진이라는 허구를 정당화하기 위해 “무상복지”라는 말꼬투리를 잡아 복지를 위축시키려는 음모가 대대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복지에 대해 유상·무상의 프레임을 걸면 정말 답이 없다. 그 꼬투리의 시작은 무상급식이었다. “무상(無償)이라는 말 때문에 돈 주고 사 먹어야 밥을 공짜로 먹자고 한다는 뜻으로 왜곡당한 것이다. 보편적 복지를 확대하자고 내세운 정치적 히트상품인 무상급식이 무상보육 등으로 확대되면서 복지증진은 물거품이 될 위기에 처했다. 오히려 복지가 무상(無常)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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