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05 2005-03-10   646

참여정부 2주년, 복지정책 평가

무엇을 평가할 것인가?

참여정부 출범 2주년에 즈음하여 사회복지정책에 대한 중간 평가를 해보고자 한다. 평가의 대상은 지난 2년간 현 정부의 사회복지정책이다. 현 정부의 사회복지정책을 “참여복지”라 부른다. 그러나 2004년 1월 발표된 사회보장장기발전방향(사회보장기본법 제20조 근거)의 명칭이 “참여복지 5개년 계획”이며, 여기에 “참여복지”의 비전이 담겨 있다. 따라서 이 글의 분석 대상이 되는 것은 참여정부가 2년간 실시한 사회복지정책과 2차 년도에 발표한 참여복지 5개년 계획이다. 참여정부 첫 해인 2003년의 사회복지정책은 국민의 정부에서 1999년부터 추진해오던 제1차 사회보장장기발정방향의 마지막 실행이었으며, 2004년부터 제2차 사회보장장기발전방향이 참여복지의 요체인 것이다.

아직은 참여복지정책이 담론과 계획의 단계이기 때문에 참여정부의 사회복지정책을 총체적으로 평가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에서는 총론적이거나 대략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따라서 정책의 구체적인 부분들을 평가하는 다른 글들과 평가의 방향이 다를 수도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총론적 분석이 항상 각론적 분석과 일치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구체적인 정책들을 살펴보는 것이 아니라 참여복지의 철학과 비전을 담고 있는 참여복지 전반에 걸친 이데올로기적 특성을 확인해보고자 한다. 이를 통해 잠여복지의 성격을 좀 더 분명하게 하고자 한다. 또한 참여정부의 복지정책을 견인해온 보건복지부장관의 정책적 입장과 대응을 검토해보며 참여복지의 실행이 어떻게 이루어졌는가를 보고자 한다. 이것으로 참여복지의 총론적 평가에 갈음하고자 한다.

참여복지는 신자유주의의 보완인가 대안인가?

정부가 제시하는 참여복지의 목표는 첫째 복지의 보편성을 추구한다. 저소득층 위주의 지원을 탈피하여 전국민을 사회복지의 대상자로 한다는 것이다. 둘째, 사회복지에 대하여 1차적인 책임의 주체를 국가로 규정한다. 셋째, 사회복지정책의 형성과정에 국민이 주체로서 참여하고 사회복지서비스 이용자의 참여를 보장하는 국민참여를 목적으로 한다.

이러한 참여복지의 이념 또는 정신은 사회민주주의적 지향으로 보일 수 있다. 보편적 복지, 국가책임, 국민참여 등의 이념은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에 대하여 비시장적, 공익적 내지 국가적 개입과 조정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국민들이 기본적으로 국가책임하에 사회복지 급여 및 서비스를 향유하고 또한 정책을 수립하고 실행하는 과정에 국민들이 참여한다면, 이는 최소한 유럽의 복지국가 정도의 이념적 지향과 기본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물론, 그 목표가 평등이냐 효율이냐, 공평한 분배냐 생산성 향상이냐에 따라 이념적인 방향과 평가는 달라질 것이다.

이와 같이 사회적, 정치적인 가치나 이데올로기는 그 표현의 정도가 추상적일수록 사회적 합의가 쉽지만 얼마든지 상이한 해석과 적용이 가능하여 불분명하고 모호한 특성을 갖게 된다. 우리나라의 보수적인 정파들도 국민들에게 보편적인 복지를 제공하고 국민참여를 보장한다는 가치 내지 이념에 대해 크게 반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엄연히 구체적인 제도와 실천의 선택에서는 판이하게 나타난다. 추상적인 이데올로기가 구체적인 행동지침이나 기준 수준으로 표현되면 명확한 이념적 위치의 파악은 쉬우나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생산적 복지” 이데올로기는 모호한 정치적 수사

국민의 정부가 주창했던 “생산적 복지”의 이데올로기는 모호한 정치적 수사로 사회복지를 옹호하는 세력과 반대하는 세력을 교묘하게 균형적으로 통제했었다. 사회복지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강조한 것은 사회복지 옹호자들에게는 환영할 만한 것이었다. 그러나 잔여적 복지 이념을 가지고 있는 집단에게 “생산적”이라는 전제조건은 매우 매력적인 것이었다. IMF의 신자유주의적 이념과 질서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국민의 정부는 “생산적”인 것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었으며, 이를 위해서는 너무 보수적이고 취약한 복지제도를 일정 수준까지는 강화하지 않을 수 없었다.

참여정부 역시 신자유주의적 정책기조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사회복지에 대한 국가의 책임보다는 민간과 가정, 개인의 책임을 동시에 강조하고, 사회복지에 있어서 평등이나 공동체성보다는 효율성을 강조한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분배, 대상의 보편화, 국가의 책임을 강조한다. 이것은 좋게 말해서, 신자유주의적 현실에 굴복할 수밖에 없지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국가복지를 강화해야 한다는 희망과 비전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고, 좀 더 현실적으로 말한다면, 신자유주의 정책기조를 감추거나 정당화하는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실제로 생산적 복지는 workfare를 강조하며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특히 “조건부 수급”)를 생산적 복지의 꽃이라고 내세웠다. 그러나 참여복지를 상징할 만한 어떤 제도도 아직 제시되고 있지 못하다. 최근 들어, 심화되는 빈부격차에 대하여 저소득층의 자활 지원을 강화하겠다는 정책의지가 표출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뭔가 나올 것 같기도 하다. 올 해가 UN이 정한 Micro Credit의 해이므로 소액대출 사업을 통해 저소득층 및 실업자의 창업을 지원하는 자활정책이 제기될지도 모르겠다. 또는 지난 결식아동 도시락 파동에 따라 2월 22일 전달체계를 강화하는 정책대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한 것으로 보아 사회복지서비스 대상자들에게 밀착해가는 복지모형을 추구하고 있는 것 같다. 또한 고령사회를 대비한 정책 대안 마련에 몰두하고 있는 참여정부가 그 동안 간헐적으로 보여준 이부분에 대한 정책 역시 뾰족한 대안보다는 문제해결의 당위성과 정책 대안의 시장적 종속성 사이에서 방황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결론적으로, 생산적 복지가 신자유주의 틀 속에서 공공부조를 강화하는 것이었다면, 참여복지는 이러한 기조를 전제로 하면서 보편적 복지체계를 구축하고자 하는 이념을 가지고 있다. 그러면서도 경제주의자들과 보수주의자들의 동의를 구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신자유주의적 이념을 동반하고 있어, 참여복지는 잡동사니의 묶음, 이질적인 것들의 뒤섞음, 일관성 없는 땜질로 나타나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참여복지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대안적 정책인양 표현되는 면이 있으나 실제로는 그것을 오히려 보완해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참여정부 초대 보건복지부장관은 적절한 인물이었나?

정책 수립과 시행에서 해당부서 장관의 역할은 중요하다. 일반적으로 정책과 관련하여 중요한 개인을 들자면 장관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사회복지정책의 수립과 시행에 있어 보건복지부장관이 어떠한 인물이냐 하는 것은 중요한 관건이 된다. 참여정부 초대 보건복지부장관이었던 김화중 장관은 민간 사회복지계와 대립하며, 보육정책의 여성부이관, 대학의 가정학과 졸업생들을 활용하는 가정복지사제도를 도입하고자 건강가정육성법 제정을 추진하였다. 전자는 그대로 추진되어 정부조직법이 개정되면서 아동복지의 일부인 보육정책과 사업은 여성부가 관장부서가 되었다. 앞으로 여성복지 및 아동복지, 가족복지 등 사회복지서비스의 상당 부분이 여성부로 이관될 전망이어서 사회복지계의 반대와 저항이 예상된다. 후자는 가정의 건강성에 대한 편향적 관점과 가정을 육성한다는 부분에 대한 가부장적 관점이 문제가 되어 사회복지계와 여성계의 반대에 부딪쳐 논란 끝에 건강가정기본법으로 낙착되었다. 하지만, 여성계가 이 법률의 대체법안을 준비 중에 있어 건강가정기본법은 한국 사회복지 역사상 해프닝으로 끌날 가능성이 있다.

또한 2004년을 휩쓸었던 사건으로 국민연금 파동을 들 수 있겠다. 소위 “국민연금의 8대 비밀”이라는 네티즌을 통한 국민연금에 대한 불신과 문제기가 거세게 일어났었다. 안티 국민연금이라는 사이트가 인기를 끌 정도로 퍼져나갔었다. 사실, 네티즌들의 문제제기는 사회보장제도로서 국민연금에 대한 무지와 비이성적일 정도의 불합리한 주장들이 많았다. 야당인 민주노동당이 오히려 안티 국민연금의 문제를 제기하고 국민연금제도를 지켜내기 위해 안티 안티 국민연금을 제기할 정도였다. 그러나 당시 김화중 장관은 국민연금제도의 본질적인 문제에 접근하기보다는 강제징수를 완화하는 정도의 미봉책으로 대응하는 등 무지와 무책임의 전형을 보여줬다.

처음부터 잘못된 장관 인선

결국, 참여복지를 정책에 담아내고 국민들에게 보여주고 제공할 책임자로서 보건복지부장관 인선이 처음부터 잘 못 된 것이다. 물론, 사회복지정책에 대해 문외한이 장관이 될 수는 있다. 그러나 적어도 참여정부 내지 참여복지의 이념을 잘 반영하고 표출할 수 있는 장관이어야 한다. 처음부터 복지와 무관하고 무지한 인사가 장관이 되어 복지이념과 철학도 없이 복지개혁이나 국가책임 강화보다는 갈등과 해체만 야기하였다. 오히려 현재의 김근태 장관이 정권 초기부터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취임하여 개혁과 복지의 코드를 맞춰나갔다면 오히려 좀 더 참여복지의 색깔과 성과가 생산되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김근태 장관 역시 사회복지와 무관하고 정치인이지만, 그 동안의 정책수행 과정과 자세를 보면 전임자에 비해 사회적 정의감이나 형평성, 인권에 대한 인식의 면에서 훨씬 다 나은 것 같다. 특히 뉴딜정책에 대해 반대의견을 제시했던 대목은 해프닝으로 끝나기는 했지만, 복지정책의 경제적 종속성에 대한 이념적 입장을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그리고 도시락 파동 등 문제가 발생했을 때 비교적 문제의 핵심을 잘 파악하고 대안마련에 진지하게 고민하는 것으로 보인다.

경제정책 통제하는 복지정책을 기대하며

참여정부는 스스로 탈권위와 개혁을 위한 정부로 주장하고 있으나 우파에서는 좌파정부라는 터무니없는 막무가내식 저항을 하고 있고, 좌파에서는 오히려 신자유주의의 대변자로 보고 있다. 그것은 경제정책과 노동정책, 교육 및 의료정책 등 거의 모든 면에서 시장친화적인 정책이 진행되고 있으면서도 입으로는 개혁과 분배를 강조하기 때문이다. 전자 때문에 보수우경화된 신자유주의의 친위정권으로 공격당하고 후자 때문에 보수정당 및 재벌들로부터 좌파정권 운운하는 비난을 받고 있는 것이다.

참여정부의 기본적인 이데올로기와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실용적 실력을 동시에 보여줄 수 있는 부분이 바로 보건복지정책이라 하겠다. 그러나 참여정부의 사회복지정책은 불분명한 이념적 색채와 부적절한 장관의 정책수행이 빚어낸 문제점들이 산적하게 되었다.

이제 3년이 채 안되는 기간 동안 참여정부는 참여복지정책의 색깔을 분명하게 정립할 필요가 있다. 사회의 양극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분배격차와 빈곤을 심화시키는 참여정부의 경제, 노동정책의 문제점을 돌아보고 참여복지를 어떻게 강화할 것인지 고민하고 결정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경제정책을 통제하고 견인할 수 있는 리더쉽이 필요하다. 결코 우왕좌왕하며 섣부른 땜질 정책이 아닌 정확한 현실 인식과 개혁적 정부로서의 면모에 걸맞는 복지정책을 기대해본다.

윤찬영 / 전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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