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05 2005-10-10   480

양극화 해소 위해 운동 역량 결집해야

최근 들어 사회적 양극화 현상의 심각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실업은 제외하고라도 취업자들의 소득불평등을 나타내는 지니계수를 보더라도 우리나라는 외환위기 이후 급등하여 OECD 국가들의 지니계수를 훨씬 상회하고 있다. 신자유주의 나라인 미국보다 훨씬 높은 불평등도를 나타내고 있다. 여기에다 재산을 포함한 불평등도를 나타낸다면 그 수치는 훨씬 심각할 것이다.

이에 지난 9월 22일에는 133개의 노동ㆍ시민ㆍ민중단체들이 모여서 사회양극화해소국민연대를 발족하였다. 현시점에서 우리 사회의 가장 핵심적인 문제로 사회양극화가 인식된 것이며, 그런가하면 정부와 열린 우리당은 고위당정회의를 통해 양극화에 대응하여 사회안전망 개혁에 본격적으로 나서기로 하여 ‘희망한국21-함께하는 복지’ 대책안을 발표하였다. 사회적 양극화의 문제가 몇 개의 복지정책의 모음으로 해소되는 것은 아니지만, 정부와 여당은 복지정책의 개선안을 그 대안으로 제시하였다.

사회적 양극화는 오늘 날 갑자기 문제가 되는 것인가? 그렇지는 않다. 이미 오래 전부터 산업화와 경제성장 드라이브 정책을 시작한 이래 지속되어 온 문제이다. 물론, 1970년대와 1980년대의 지니계수는 대개 0.34x~0.35x 사이에 있었으나 외환위기 이후부터 현재는 0.38x~0.39x 정도를 나타내고 있다. 즉, 경제개발을 시작한 이래 불평등은 심화되었고 최근 들어 악화된 상태에 있는 것이다. 이것은 고질적인 경제성장 지상주의에 일차적인 혐의를 둘 수밖에 없다.

박정희 정권의 고도 경제성장의 신화(?)는 우리 사회에 많은 폐해를 남겼다. 군사 쿠데타, 장기집권 등 정당성 없는 정권의 유지를 위해 박정희 정권은 가시적 성과에 매몰되었으며, 경제성장은 가장 좋은 선택수단이었다. 그리하여 외형적인 성장에 치중한 나머지 경제구조의 건강성은 매우 취약했다. 저임금-저곡가 정책을 기조로 하는 성장정책은 기본적으로 극심한 불평등을 가져왔다. 이 둘의 관계는 속도와 강도에 따라 비례한다. 따라서 분배를 둘러싼 갈등은 필연적이었다. 그러나 박정희 정권은 극단적인 물리적 폭력과 정보조작정치, 지역차별 등을 통해 저항을 억압했다.

이러한 박정희체제의 유산은 전두환 정권과 노태우 정권을 통해 지속적으로 재생산되었으며, 국가권력의 구조와 성격을 성장이데올로기 기반 위에 구축하게 하였다. 이것은 사회 전반적으로도 성장을 절대시하는 이데올로기로 자리 잡았다. 관료와 정치인은 물론 언론, 학계마저 성장이데올로기를 금과옥조로 여기게 되었으며 일반 국민들의 의식 속에도 확고하게 자리잡게 되었다. 게다가 경제성장의 폐단을 지적하거나 비판하는 것은 좌경 또는 용공이라는 이데올로기의 덫을 씌워 억압 또는 제거하는 폭력으로 억압하곤 하였다. 식민지 유산을 떠안은 채 일본과 미국에 예속된 경제체제를 구축하면서 그 안에서 성장 일변도의 정책을 추구한 것이 군사독재 기간 동안 지속되면서 민중의 생활과 의식은 마치 파시즘의 분재처럼 양육되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이미 세계적인 대세가 되어 가고 있었던 신자유주의를 김영삼 정권 때부터 본격적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1993년 문민정부 초기에 발표된 ‘신경제 5개년 계획’은 바로 경제정책을 중심으로 사회 제반 분야의 정책을 신자유주의적으로 개혁(?)한다는 것이었다. 김영삼 정권 말기에 발생한 외환위기는 김대중 정권, 노무현 정권 모두 신자유주의에 철저하게 예속되도록 하였다. 국내적으로 민주주의의 진전에 힘입어 과거 집권세력이었던 공화당, 민정당, 민자당, 신한국당, 한나라당으로 이어지는 정치세력에 비해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정권이 집권하게 되었지만,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모두 미국과 초국적 자본 앞에서 신자유주의 정책을 선택하게 되었다. 그 결과 실업자, 신용불량자, 노숙자, 해체된 가족 등이 양산되었다. 재산 소유자들과 고소득층의 수입은 크게 증가하였으나 대다수의 중산층은 서민층으로 전락하였고 빈민들의 삶은 더욱 가혹하게 바뀌었다. 상위계층의 상승과 하위계층의 하강은 중산층을 분해시켜 사회적으로 양극화 현상을 가져오게 하였다.

양극화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정책의 담당자인 국가 자신이 우선 이 문제의 심각성에 대해서 자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정부는 이에 ‘희망한국21’이라는 희망사항을 발표한 것이다. 양극화 해소를 위한 국민연대가 제시한 정책방향에는 못 미치는 미흡한 수준의 내용이다. 양극화는 복지정책 그것도 공공부조의 보완으로 해소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여기에다 희망을 거는 것은 무망한 짓이다. 노동정책, 조세정책, 부동산 및 주택정책, 금융정책, 교육정책 등을 망라하여 포괄적이고 획기적인 경제적 판갈이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정부의 정책을 견인해내기 위해서 이제 우리의 운동도 더욱 치열해져야 한다. 운동진영의 조직과 구성도 양극화 해소에 초점을 두고 재편돼야한다. 과거 군사독재에 대항하여 민주주의를 쟁취하고자 했던 것처럼, 지금은 양극화 해소를 위해 운동의 방향이 맞춰져야 한다. 다양하게 흩어져 있던 시민사회운동은 양극화된 사회를 통합하기 위한 방향으로 각을 세워야 할 것이다. 환경, 여성, 노동, 언론, 문화, 교육운동 등 다양한 영역의 시민운동은 각자 고유한 사업과 정책을 전개하면서도 양극화 해소를 위한 방향으로 역량을 모아야 한다. 과거 군사독재 시대의 투쟁이 권투와 레슬링 정도였다면, 신자유주의 시대의 양극화 해소 투쟁은 K-1 수준이어야 할 것이다.

윤찬영 / 전주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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