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00 2000-06-10   549

수급권운동의 과제와 지역운동모델

우리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시행에 즈음한 정부의 태도에 대하여 크나 큰 실망감을 갖고 있다. 결과적으로 우리가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의 제정에 너무 큰 기대를 걸었던 셈이다. 이제 기초생활보장제도는 우리 사회를 시험대 위에 올려놓았다. 우리 사회는 이 제도를 수용할 능력이 진정 없는 것인가, 다양한 계층간의 갈등 속에서 우리 사회가 어느 선까지 “나눔”을 허용하고 “연대성”을 보여줄 것인가, 빈곤층의 이해와 요구를 대변하는 세력은 어느 정도의 힘을 발휘할 수 있을까, 빈곤층은 자신의 권리를 자각하고 이 제도를 자신들의 것으로 만들 수 있을까. 우리는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을 만들어 가야하는 상황에 있다.

바로 수요자인 빈곤층의 결집된 힘에 의하여서만이 그들의 정당한 “몫”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은 이미 역사적으로 검증된 바이다. 기초생활보장법은 빈곤층의 투쟁의 산물이라기 보다는 소수 엘리트 집단에 의한 입법운동과 “경제위기”라는 상황에 큰 도움을 얻은 것이다. 따라서, 제도 시행에 관하여 우리 사회의 저변을 형성하고 있는 대다수의 빈곤층의 힘을 배경으로 하지 못하고 있다. 사정이 이러하기에 정부는 현재와 같은 제도의 파행적인 운영을 스스럼없이 드러내 보이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10월까지의 싸움이 바로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안착을 위한 첫걸음 또는 1라운드의 시작이나 마찬가지이다. 쉽게 얘기해서 ‘이번에 밀리면 계속 밀린다’는 긴박감을 갖지 않으면 안 되고, 그것이 바로 현실이다. 안일한 자세로 지금까지 얻어온 것을 지키고 있으려 한다면 지킬 것조차 남지 않게 될 것이고, 치열한 싸움판에서 전략 없는 투쟁만 선언한다고 해서 될 일도 없다.

우리는 수급권운동을 펼쳐나가는 데에 필요한 무기를 제공해 나갈 것이다. 이 무기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이용할 것인지는 운동을 벌여나갈 지역의 이론과 실무,현장성으로 무장된 활동가들에게 달려있다.

지역내 연대의 모색

수급권운동을 진행하고자 한다면 가장 먼저 지역 내의 연대를 모색하여야 한다. 현재까지 대구, 부산, 충북, 광주, 서울의 관악과 강동송파, 춘천, 경기 성남 등 여러 지역에서 국민기초생활보장법시행에 따른 대응기구를 이미 마련하였거나 지역내 공동 대책을 마련해 나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수급권운동의 범위와 내용을 고려한다면 정책역량, 대중 활동역량, 빈곤층과의 직접 접촉이 있는 단위 등을 고려한 폭넓은 연대가 필요하며, 이를 위해 현재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쟁점과 수급권운동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의 폭을 넓혀나가는 데에 주력해야 한다.

수급권신청캠페인

수급권운동의 1단계는 “신청”단계이다. 수급자 선정기준에 계속적인 보완사항이 발생하고 있고, 필요한 경우 기준에서 벗어난 수급자 선정도 가능하므로 우선 급여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사람들의 “신청”을 독려하고, 현행 생활보호제도의 기준에 적용되는 사람은 반드시 생활보호신청도 함께 하도록 한다. 이 과정에서 현장활동가들은 기초생활보장제도 신청서를 반드시 복사하여 이후 지역의 빈곤운동의 실증적인 자료로 활용함과 동시에 향후 작성될 지역단위, 전국 단위의 빈곤실태보고서 작성 등에 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급여신청을 함에 있어서 담당공무원이 과중한 업무 등으로 신청 접수를 거부할 수 있으므로 활동가들은 가능한 한 신청자와 동행하여 접수 자체를 거부할 수 없다는 것을 설명하고 거부시 거부사유를 신청서에 기재할 것과, 담당공무원의 서명날인을 요구하여야 한다. 이것은 향후 접수 거부행위에 대한 소송을 위한 준비 단계이다. 이러한 모습을 보이면 담당 공무원들이 적어도 접수를 거부하는 행위를 하지는 못할 것이다. 생활보호신청은 현재 생활보호제도에서 배제되어 있는 사람을 적극적으로 생활보호제도 안으로 끌어들여 기초생활보장예산 추계시 예산에 반영되도록 한다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따라서 생활보호신청과 더불어 14일 이내에 처분을 하지 않은 경우에는 서면으로 생활보호대상여부에 대한 결정을 촉구하는 탄원서를 접수하는 등의 사후작업을 진행하여야 한다.

전문요원 확충에 대한 요구

이러한 신청과정에서 전문요원과의 마찰은 금물이다. 이미 일부 지역에서는 전문요원과 원활한 관계를 유지하고 상호간의 입장에 대한 이해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제도를 직접 시행하는 전문요원의 역할에 따라 큰 차이를 보일 수 있다. 따라서 지역별로 역량이 되는 곳은 현재 일반직으로 전직되면서 강임된 지역의 경우 원직급으로 전환시키는 운동을 병행하여 전문요원의 사기를 북돋는 노력도 함께 전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조례제정운동

기초단체에서 부담해야 하는 기초생활보장예산은 법률 제43조에 따라 서울시의 경우 25%이하, 나머지는 10% 이하이다. 따라서 특별시를 제외한 시·군·구의 경우 기초생활보장예산의 90% 이상을 광역단체와 중앙 정부의 교부금으로 지급받을 수 있다. 다시 말해 상대적으로 적은 예산으로 지역 주민들의 복지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기존의 생활보호제도처럼 중앙 정부에서 나눠준 예산에 머릿수를 맞춰 대상자를 선정하는 것이 아니고 기준에 맞는 대상자를 적극적으로 인정하여 예산을 편성, 집행하는 것이 지역 주민의 복지를 증진시킬 수 있고 민선 시·군·구의 의원과 단체장들에게도 유리하다는 것을 설득해야 하고, 충분히 설득될 가능성이 있다. 민선 자치단체장들이나 기초단체의원들이 이와 같은 예산편성에 대한 노력을 할 경우 이는 곧 빈곤층으로부터의 적극적인 지지로 연결된다는 점을 그들 스스로 깨닫게 될 때, 그들 역시 전술적으로 우리와 연대할 수 있는 충분한 현실적 필요성을 갖게 된다.

기초생활보장예산이 기초단체의 예산에 반영되기 위하여는 중앙정부 및 광역단체의 교부금이 하달되지 않더라도 이를 예산안 편성에 반영, 법정 보조금이 올 때까지는 우선적으로 자치예산에서 기초생활보장예산을 집행하도록 하고 나중에 정부 및 광역단체의 보조금으로 보충하는 식의 유연한 예산운용을 내용으로 하는 ‘예산편성기본조례’가 필요하다. 이러한 예산편성우선을 내용으로 하는 조례제정이 가능한 법적인 근거는 바로 기초단체가 갖고있는 중앙정부 및 광역단체에 대한 실정법상의 기초생활보장예산에 관한 보조금 청구권이 법률 제43조에 의하여 보장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예산편성기본조례제정의 실험은 향후 지방자치단체의 복지조례 제정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발자취를 남기게 되는 기념비적인 사업이 될 것이다.

또한 생활보장위원회의 기능을 활성화하고, 재정자립도를 고려한 부가급여나 자활프로그램에 대한 기준을 담은 ‘기초생활보장조례’ 제정운동도 펼칠 수 있다. 주민들과 시·군·구 의원 및 단체장이 기초생활보장제도에 대해 이해하고, 자치예산의 운용에 따라 지역주민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설득하는 지역별 시민로비단의 결성도 미리 고려해 볼만하다. 지역에 따라서는 수급권운동본부에서 제공된 조례안을 지역에 적합한 내용으로 만들어내는 과정에서부터 기초의원들과 공동작업을 수행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조례의 제정은 복지운동의 새로운 지평을 열 수 있다. 지금까지 중앙에서의 총량중심의 복지예산확보운동은 이미 그 한계를 보이고 있다. 따라서 예산확보운동의 방식을 지역에서 중앙으로 향하게 하는 새로운 접근을 시도하는 것은 향후 타 분야의 예산확보운동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조례제정 과정에서 지역의 복지단체와 시민사회단체 간의 다양한 연대활동을 시도함으로써 복지운동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줄 것이다.

법률구조활동

지역활동가들은 신청과정에서부터 함께 한 주민들을 지속적으로 모니터하여 급여거부처분을 받은 사람들에 대해서는 제외사유가 무엇인지, 그 구체적인 산출근거나 적용기준은 무엇인지 자료를 입수해야 한다. 이를 통해 사례별 유형을 분석하고 대표적인 피해사례에 대한 법률구조 결정과 소송진행을 위한 준비에 들어가야 한다. 물론 신청 자체가 거부된 경우 등 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사례는 급여거부처분이 없더라도 사례검토를 통해 소송에 착수할 수 있으므로 미리 소송을 담당할 수 있는 변호사를 확보하는 것이 필요하다. 여기서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법률 전문가 내지 변호사와의 결합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된다. 이러한 현장을 갖고 있는 지역 넷트웤에서의 전문가의 결합(그것은 일단 자원활동가적인 결합이 될 것이고, 더욱 발전할 경우 운동 조직의 중요한 일원으로 결합될 것이다.)은 지역운동의 양과 질을 폭발적으로 발전시킬 것이다. 또한, 이를 통하여 지역에서도 대안제시가 가능한 기초단체의 카운터파트로서의 지역운동조직을 자력으로 꾸려 나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앞서 신청단계에서부터 보관된 신청서와 급여처분에 대한 기록은 최초의 우리 사회의 빈곤실태보고서로서 역할할 수 있다. 따라서 급여지급결정이 되는 사례도 기록으로 반드시 남겨야 한다.

참여연대 수급권운동본부에서는 이 글에서 언급된 운동방법에 대한 내용적인 지원을 해 나갈 것입니다. http://wnet.pspd.org에서 운동에 필요한 정보를 얻어가시기 바랍니다.

이찬진 / 수급권찾기운동본부 법률구조단장,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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