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09 2009-10-01   1847

[심층분석1] 주택정책과 주거복지정책

주택정책과 주거복지정책 :
여전히 ‘주거복지’는 유효한가?






남원석
토지주택연구원 선임연구원
wipeout21@naver.com



1.


2000년대 들어 ‘주거복지’는 더 이상 ‘재야’에서 부르짖는 구호나 시민단체들의 성명서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문구에 머무르지 않았다. 국민의 정부를 지나 참여정부가 들어서면서 ‘주거복지’라는 용어는 정책의 영역으로 깊숙이 들어오게 되었다. 2003년 5월 참여정부는 저소득층을 중심으로 소득계층별 주거복지 지원방안을 발표하였고, 이를 전담하도록 건설교통부 내 주거복지과, 주거복지본부 등 관련 직제를 새로이 정비하였다. 최저주거기준의 법제화, 국민임대주택 100만호 공급계획 발표, 기존주택 매입임대・전세임대 공급 등은 모두 이 시기에 추진된 주거복지정책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2008년 이후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면서 주거복지라는 용어는 그 쓰임새가 많이 위축된 것이 사실이다. 2009년 주택종합계획에서는 여전히 ‘주거복지 지원계획’이라는 제목으로 저소득층 주거지원과 관련한 여러 정책들을 망라하고 있으나, 현 정부의 대표적인 주택정책이라 할 수 있는 보금자리주택공급계획에서는 ‘주거복지’보다는 ‘저소득층의 주거안정 및 무주택서민의 내집마련 촉진’이라는 표현이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보금자리주택공급계획의 실내용을 따져보면, 이전 정부에서 사용하던 주거복지의 의미와 크게 다르다고는 보기 어렵다.


다소 비약일 수도 있겠지만, 필자는 이 대목에서 ‘주거복지’라는 개념이 여전히 우리에게 유효한 함의를 가지고 있는지 묻고 싶다. ‘저소득층의 주거안정 지원’이나 ‘무주택서민의 내집마련 촉진’을 대체할 만큼 ‘주거복지’가 명징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게 아니라면 굳이 ‘주거복지’라는 개념을 계속 붙들고 있어야 할 필요가 있을까? 그런데 필자가 이러한 의문을 갖게 된 원인을 계속 추적하다보면, 결국은 애초부터 ‘주거복지’의 개념을 명확히 하지 않은 데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까지 미치게 된다.



2.


주택정책의 정의를 한마디로 표현하기는 매우 어려우나, ‘사회적으로 존재하는 주거소요(housing needs)와 주택공급의 불일치를 해결하기 위한 정부의 제반활동’으로 정의한다면 크게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주거복지(정책)’가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그 어떤 논의도 제대로 이뤄진 바가 없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대개 포괄적인 의미에서 저소득층을 위해 저렴한 임대주택을 공급하는 정책 정도로 이해하는 경우가 일반적으로, 이에 대해 정부관계자나 각종 공사, 시민단체들은 반론을 달지 않는다.


그런데 주거복지(정책)가 저소득층을 위한 주택공급정책과 동일시된다면, 주택정책과의 차별성 문제가 나타난다. 즉 기존의 주거복지정책은 저렴주택정책(affordable housing policy), 저소득층을 위한 주택정책(housing policy for low income households)으로 표현해도 손색이 없을진대, 굳이 ‘주택정책’ 대신 ‘주거복지정책’이라는 용어를 사용해야 하는 당위를 찾기 어려워지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그동안 우리가 무심코 이야기해오고 당위적・규범적으로 그 필요성을 주장해 온 주거복지(정책)는 사실상 그 존립근거가 매우 취약한 상태라고 할 수밖에 없다.



3.


잠시 화제를 돌려서, 왜 근자에 우리나라에서 주거복지라는 용어가 정책영역에서 활발히 논의되었으며, 그럼에도 왜 주거복지의 존립근거가 취약하게 되었는지를 간략히 검토해보고자 한다. 필자는 그 배경을 우리나라 주택정책의 역사적 성격에서 찾고 싶다. 서구의 경우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정부주도의 공공임대주택 공급을 중심으로 다양한 계층의 주거소요에 대응해왔으나, 우리나라의 경우 1990년대 들어 공공임대주택 공급이 시작될 정도로 주택정책의 저발전을 경험해왔으며 주로 최저소득계층을 대상으로 하는 잔여적인 성격을 띠었다. 그리하여 저소득층의 주거문제는 꽤 오랜 기간 대정부 요구사항의 중심을 이뤄왔다. 그 과정에서 시민사회는 주거권 또는 주거복지를 슬로건으로 삼아 정부대책을 줄곧 요구해왔다.


다행히 2000년대에 들어서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는 이러한 시민사회의 요구를 수용함으로써, 전세계가 이미 주택정책의 축소 또는 정체가 진행되고 있던 시기에 공공임대주택의 대량공급 정책 등을 추진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이 때 이들 정부가 채택한 개념이 주거복지였다. 그러나 이 당시 주거복지에 대한 분명한 개념정립을 시도하기보다는 이전 정부와 차별화되는 새로운 정책기조를 수사적으로 표현하고 국민에게 어필할 수 있는 도구로서 주거복지를 차용하였다고 보는 편이 타당할 것 같다.


이처럼 주거복지에 대한 실체적 개념화 없이 도구적인 차용에 머무르다보니 주거복지는 수사적 성격이 강하였을 뿐만 아니라 특정 정권의 전유물로 인식되는 결과를 낳지 않았나 싶다. 그에 따라 주거복지는 정권의 변화와 무관하게 연속성을 갖는 정책개념으로서 우리사회에 뿌리내리지 못하고 정부의 성격이나 정책기조에 따라 취사선택할 수 있는 개념으로 전락했다고 볼 수 있다.



4.


주거복지의 개념을 둘러싼 저간의 상황이 이러하다면, 현 시점에서 우리는 시민사회의 선언적 주장, 정부의 정책적 수사로부터 벗어나 주거복지의 개념을 새로이 정립할 필요가 있을까? 이에 대해 다양한 견해들이 있을 것 같다. 주거복지 개념의 모호성으로 인해 정책적인 혼선만 부추길 수 있으므로 개념 자체를 폐기하자는 회의론이 있을 수 있다. 반면, 개념정립 여부와 무관하게 그동안 주거복지라는 용어가 사회전반적으로 확산되었고 정부정책뿐만 아니라 다양한 시민사회단체들이 고유의 활동영역으로 상정하고 있는 만큼 용어를 살리되 보다 체계적인 개념으로 탈바꿈시켜야 한다는 긍정론도 있을 수 있다.


솔직히 필자는 회의론보다는 긍정론의 입장에 가깝다. 주택정책만으로도 기존 주거복지정책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를 충분히 담아낼 수 있을 것이므로 회의론 역시 나름대로 설득력이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주거복지 개념이 정책영역으로 들어오면서 저소득층의 주거문제와 관련하여 정부 등 공공부문의 태도변화가 나타났고 그 변화는 저소득층의 주거안정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주거복지 개념을 한층 발전시키려는 노력이 뒷받침된다면 이전보다 더욱 긍정적인 효과를 산출할 수 있다고 본다.


그렇다면, 주거복지의 개념은 어떻게 재정립되어야 할까? 주거복지정책과 주택정책의 중복성을 피하면서 주거복지 개념의 독자성을 구축하는 방법으로 크게 두 가지를 생각해볼 수 있다.


하나는 주거복지를 특정 계층을 대상으로 하는 정책영역으로 한정하지 않고 주택정책의 운용원리 또는 지향점으로 그 위상을 ‘격상’시키는 것이다. 이 경우 주거복지는 저소득층의 주거지원을 의미하는 개념이라기보다는 모든 소득계층에 공히 적용될 수 있는 개념으로 변화하게 된다. 예를 들면 주택정책의 혜택이 소득계층별로 형평성있게 고르게 돌아가야 한다든가 누구나 적정한 주거수준을 충족시키는 주택에서 거주해야 한다든지, 모든 사람들이 주거에 대한 권리를 보장받아야 한다는 등의 기본원리로서 주거복지의 개념이 재구성될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자가촉진 또는 임대주택 공급 중 어느 하나에 치우치지 않고 균형된 예산배분을 통해 다양한 주거소요에 대응해야 하며, 각종 부동산 규제완화나 관련 과세 역시 계층간 형평성을 감안해야 한다. 또한 평균적인 주거수준을 제시하고 이에 미달하는 가구의 주거수준 향상을 위해 노력해야 하며, 도시계획이나 개발사업 등에 의해 원거주민들의 주거권이 침해받지 않도록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 이와 같은 보편적 논리로서 주거복지 개념을 재구성한다면 주택정책은 국민의 주거복지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자리매김될 것이다.


다른 하나는 주거복지정책을 저소득층의 주거안정을 위한 정책으로 특화하되, 그 지평을 확대하여 주택정책의 틀에 가두지 않는 방식으로 주거복지의 개념을 재구성하는 방안이 있을 수 있다. 현재 주거복지정책은 주택정책 내에서 저렴한 주택을 공급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는데, 물리적인 주택을 공급한다고 해서 저소득가구의 주거안정이 곧바로 실현되는 것은 아니다. 해당 가구가 지역사회에 온전하게 정착할 수 있도록 복지, 교육, 고용 등 다양한 인적 서비스와 지역사회 차원의 마을만들기 등 다양한 ‘거주지원’이 주택공급과 병행되어 추진될 필요가 있다. 이처럼 주택공급과 거주지원을 아우르는 종합적 개념으로서 주거복지(정책)를 정의한다면, 주거복지는 단순히 주택정책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복지정책, 고용정책, 도시계획 등 다양한 정책영역에 걸쳐 있는 개념이 된다. 그에 따라 주거복지정책은 여러 분야의 공공정책이 상호 연계되는 방식으로 추진될 수밖에 없으며, 주택정책은 주거복지정책을 구성하는 하나의 요소에 지나지 않게 된다.



5.


이상에서 주거복지 개념의 취약함을 발전적으로 극복하고자 하는 방안으로서 크게 두 가지를 검토하였다. 두 가지 대안 중 어떠한 방향으로 주거복지 개념을 재구성하는 것이 바람직한지에 대해 필자 개인적으로 판단하고 제안하기에는 여러모로 한계가 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현행과 같이 주택정책과의 관계에 있어서 주거복지(정책)의 위상을 모호한 채로 남겨둔다면, 주거복지는 자칫 정부정책을 정당화하는 도구적 개념으로서만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따라서 지금부터라도 주거복지의 실체적 개념을 사회적으로 구성하려는 노력이 필요할 텐데, 이는 현장활동가들과 정책담당자, 연구자들 상호간의 협력에 기반한 공동의 숙제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이 글이 그 출발점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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