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위원회 연금정책 2003-11-13   627

<경제프리즘> 국민연금법개정 논란, 302인 성명서의 함정

얼마 전 경제학자들을 중심으로 한 302명의 교수, 연구원들이 국민연금의 급여수준 인하를 담은 복지부의 국민연금법개정안을 지지하는 성명을 발표하면서 정부의 개정안에 비판적 입장을 보여 온 노동계와 ‘일부’ 시민단체를 비판한적 있다.

시민단체의 이름을 직접적으로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이 성명서가 참여연대, 특히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가 그동안 취해 온 연금개혁노선을 비판한 것이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인기영합주의’니 ‘단순논리로 국민을 현혹’한다는 등의 학자들의 성명서치고는 매우 거슬리는 표현들을 논외로 한다면 시민단체의 노선에 대해 비중있는 학자들이 문제를 제기한 것은 입장의 차이를 떠나 우리 사회의 성숙한 토론문화를 위해 의미있는 일로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다.

연금개혁에 대한 입장의 차이는 비단 우리나라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다. 세계은행을 중심으로 한 신자유주의 노선과 국제노동기구 사이에 벌어졌던 논쟁이 이미 전세계적 차원의 논쟁으로 전화된지 오래이며, 이를 세계적 규모의 ‘신냉전’으로 부르기까지 한다.

최근 국제적으로 벌어졌던 연금개혁논쟁을 근원까지 들어가 보면 결국 ‘시장’과 ‘국가’를 어떻게 볼것인가 하는 세계관의 차이로 이어진다. 한쪽에서는 ‘국가의 실패’와 ‘시장의 효율성’에 기반한 개혁논리를 펴는 반면, 다른 한쪽에서는 ‘시장의 실패’를 전제로 한 연금개혁의 논리를 전개한다. 국민연금 개혁에 대한 입장의 차이도 크게 보면 이러한 맥락과 연결되어 있다.

근본적인 입장의 차이를 접어둘 경우 302인 성명서가 가장 크게 문제제기를 한 것은 현행 국민연금제도가 잘못된 ‘현 세대의 이기주의’에 빠져있으며 참여연대 역시 그런 입장을 옹호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국민연금의 내는 돈과 받게되는 연금액을 세대별로 비교해 보면 경제학자들의 주장이 틀린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런 시각은 너무 협소하고 단순한 논리이다. 노인부양은 연금제도 뿐만 아니라 가족구성원의 소득이전 등 다양한 방식을 통해 이루어진다. 현 세대가 가족간의 사적이전을 통해 부모를 부양하는 비용을 감안하고, 적립방식의 속성을 갖고 있는 국민연금제도의 특징, 그리고 98년에 연금급여수준을 10%나 낮춘 것을 감안한다면 현 세대 이기주의라는 논리는 성립하지 않는다. 국민연금이 현세대 이기주의라는 주장은 단지 사물의 한 측면만을 본 것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다양한 측면에서의 성찰이 필요하다.

재정추계를 보는 시각에 대해서도 비판이 제기되었다. 참여연대가 재정추계에 의문을 제기한 근본적인 점은 구체적인 경제사회적 가정치라기 보다 재정추계 결과 자체를 ‘절대시’하는 시각과 그 의미였다.

50년 뒤에 일어날 일을 현재의 기법으로 추정할 수는 있다(!). 문제는 그 결과를 어느 정도 신뢰할 것이고, 어느 정도 정책에 반영할 것이냐 하는 시각의 차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수십년 뒤의 재정추계의 결과를 ‘절대시’하여 현재의 급여, 기여수준을 소수점 아래까지 조정하는 것은 넌센스에 가깝다는 것이다.

또 다른 문제는 재정추계 결과의 의미이다. 재정추계에 따르면 2070년에 우리 나라의 생산가능인구는 현재의 54%로 떨어진다. 노동가능인구가 70년에 걸쳐 현재보다 절반으로 떨어지게 되면 도대체 한국사회가 어떻게 될 것인가? 한마디로 노동력부족으로 30년도 지나지 않아 경제 자체가 쑥대밭이 될 것이며 한국사회는 멸망의 길로 가게되어 있다. 이런 의미를 갖는 재정추계 결과를 연금개혁에만 적용하여 타당하다고 누가 감히 주장할 수 있는가?

경제학자들이 자주 언급하는 것 중에 하나가 국민연금 하나갖고 모든 노후문제를 책임지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연금문제로 수많은 토론을 해봤지만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위원 중에 그런 시각을 갖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또한 국민연금 보험료를 9%에서 동결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아무도 없다. 선입견으로 사물을 재단하는 것은 올바른 비판이 아니다.

경제학자들의 상당수는 기초연금제도의 도입을 주장하고 있다. 문제는 재원조달방식에 있다. 조세방식에 의한 기초연금을 도입해야 한다는 경제학자들을 필자는 거의 보지 못했다. 다 아는 것처럼 보험방식에 의한 기초연금제도는 현 제도보다 나을 것이 없다.

적어도 기초연금의 재원조달에 관한 한 경제학자들은 대단히 ‘애매모호’하고 ‘이중적인’ 태도를 보여 왔다. 이러한 태도가 오히려 ‘국민을 현혹’하는 것이 아닌가 묻고 싶다. 기초연금의 재원조달에 관한 한 확실한 입장을 표명해야 한다.

덧붙여 연금의 급여수준과 보험료수준이 중요한 만큼 기금관리체계의 개편도 매우 중요하다. 기금관리체계에 관한 한 정부의 법안은 그야말로 개악에 가깝다. 302인 성명서에는 이 내용이 빠져있다. 국민연금을 걱정하는 마음이 그렇게 크다면 당연히 기금관리체계에 대한 입장도 밝혀야 균형을 잡는 것이다.

김연명 (사회복지위원회 위원장, 중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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