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아동복지의 회고와 평가 (표누락)

아동복지관련 법제적 측면

우리나라의 아동복지법은 1961년 아동복리법으로 처음 제정되어, 그뒤 1981년에 아동복지법으로 명칭이 바뀌어 전문개정되었으며 이후 수차례에 걸쳐 부분개정되어 왔다. 그러한 흐름은 1990년대에 부분적으로 지속되어

O 1993.8.30

1991.1.14 '영유아보육법'이 제정되어 6세 미만의 탁아아동에 대한 법률이 생기자 다시 일부 개정

O 1997.8.22

'사회복지사업법' 개정에 따른 일부 개정

O 1997.12.13

'행정절차법의 시행에 따른 공인회계사법 등의 정비에 관한 법률' 등의 개정에 따른 일부 개정

등의 움직임이 있었다.

그러나 전면개정된 뒤 18년이 흐르도록 변모한 사회환경과 아동환경을 담아내지 못한 아동복지법에 대하여 전면적인 수정을 염원하는 아동복지계의 바람과 노력은 마침내 2000년대가 오기 전에 결실을 맺었다.

이 전면개정안은 새천년 시작을 불과 며칠 앞두고 지난 12월 7일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되었다. 만일 이마저 없었다면 한국의 아동복지에 대한 10년간의 회고는 빈약함 그 자체였을 것이다. 1996년 11월 복지부 보육아동과에서 '보건복지제도 개혁과제 실무소위원회'를 구성하여 아동복지법 개정안을 마련하기 시작한 것으로부터 3년여, 1998년 9월 16일 아동복지법과 관련있는 8개 학회 및 단체가 '아동복지법 개정 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구체적인 시안을 만들어 동년 10월 13일 국민회의 및 다른 당의 보건복지위 관련 국회의원들을 만나 개정시안을 전달한 뒤로 만 1년이 넘은 시점에서 거둔 성과였다.

개정되는 아동복지법은 애초 추진위원회가 생각한 만큼 전향적인 내용을 고스란히 유지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점에서 이전에 비해 어느 정도 진일보한 의미를 획득한 것으로 평가된다.

먼저, 아동의 권리와 안전 등 보편주의적 성격을 강화하였다. 아동권리에 관한 국제협약 등을 고려하여 아동복지의 기본이념 조문을 신설하고 '요보호아동'을 '보호아동'으로 개칭하여 용어를 순화시키며 보호아동의 조치시에 아동의 의사를 존중한다는 구절도 포함되어 있다. 한편 아동의 안전의식을 꾀하기 위하여 아동용품 및 시설에 대한 안전기준을 설정하고 아동관련시설은 안전교육을 실시토록 규정하였다.

둘째, 시설보호양식의 전문화·다기화를 꾀하였다. 종래 시행령에 규정되었던 시설의 종류를 법조항에 명시하게 되어 타법과의 균형을 맞추면서, 동시에 아동복지관, 아동단기보호시설 등 다양한 시설종류의 인정, 나아가 시설보다 더 유연한 적용력을 지닌 아동복지사업의 형태로서 공동생활가정사업, 방과후아동지도사업 등이 규정되었다.

셋째, 이번 전면개정안의 가장 두드러진 내용의 하나로서 아동학대 관련조문들이 체계적으로 마련되었다. 아동학대의 정의 및 신고의 의무화, 나아가 '신고-접수-조치' 등에서 전문적 체계를 수립하며 학대아동 전문보호기관이 인정되고 또한 그 벌칙이 강화되는 등의 내용이 그것이다.

넷째, 국가에 의한 비용부담의 범위를 확대·강화하여 시설의 프로그램 운용비 및 아동권리신장에 관한 사업까지도 비용부담의 범위로 끌어들인 점도 인정된다.

이러한 내용의 개정법안은 아동의 권리신장, 아동발달권의 보장, 아동수당제의 도입, 아동연령에 대한 타법규와의 불일치, 가정중심아동보호사업의 명료화 및 확대, 국가비용부담조항의 기속재량화 등의 풀리지 못한 숙제를 다음 개정으로 이월한 측면은 인정되지만 현재 아동복지계의 미진함을 부분적으로 해소할 수 있는 개정안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1990년대 아동복지계의 법제적인 측면의 변화는 1991년 1월 제정·공포되고 같은년 8월 제정·시행된 영유아보육법에서 비롯되었다. 이는 그때까지 '탁아'사업으로 불리며 유아교육진흥법에 의해 기존의 어린이집, 새마을 협동유아원 및 새마을 유아원 등이 설치, 운영되었고 남녀고용평등법에 근거해 직장탁아제도가 도입되었으나, 이들의 보육기능은 1990년만 해도 47.0%에 이른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에 따른 취업여성의 자녀양육문제를 해소하기 어려웠다. 따라서 각 부처에서 독자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영유아보육사업을 일원화·체계화하여 '보육'사업으로서 자리매김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1991년에 '아동권리에 관한 국제협약'에 가입하여 UN에서 권고하는 아동의 제권리를 한국의 아동에게도 확보케 한다는 정부의지를 천명하기도 하였다. 물론 그 이후 제1차 보고서를 제출하는 과정과 현재 준비중인 제2차 보고서에서 정부의 의지가 실제로 얼마나 표방되며, 더욱이 현실세계에서 그러한 조약의 내용성이 얼마나 구현되고 있느냐는 또 하나의 논란거리가 될 수 있다.

아동복지예산의 측면

1990년대 들어 사회복지부문 예산은 괄목할 만큼 증대되었다.

〈표 1〉과 같이 보건복지부 예산은 1990년대 연평균 15.2%로 증가하였다. 이는 특히 외환위기 전과 후가 구분되어,

<표>

1997년까지는 연평균 13.8%로 증가하였으나 이후에는 연 18.6%로 증가하였다.

이렇게 1990년대 보건복지부문에 대한 예산이 증가되는 와중에, 아동부문에는 어떻게 예산이 배분되었을까? 아동복지부문은 1990년 331억원의 예산에서 1992년 보육부문의 예산이 추가되면서 상대적으로 예산이 대폭 증가되었고 1999년 아동복지부문 472억원, 보육부문 1,252억원 합계 1,724억원으로 증대되었다. 이 부문의 예산은 2000년에 각기 527억원, 1,435억원, 합계 1,962억원으로 책정되었다.

이는 아동부문 전체가 1990년대 연평균 19.5 %로 증가한 것을 말하므로 보건복지부 예산의 연평균 증가율에 비하여 더 높은 증가추세를 보여준다. 즉, 상대적으로 아동복지부문에 대한 더 많은 예산이 할애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수치는 두가지 점에서 다른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첫째, 아동부문의 예산증가 추이는 사실 보육부문이 독자적으로 형성된 1992년부터 급증하여 2000년의 경우 1,435억원 정도에 이르기까지 책정된 바에 힘입은 것이고 사실 보육사업을 제외한 일반아동복지부문으로의 예산할애는 매우 미미하여 1990년 331억원에서 2000년 527억원 정도로 머무는 등 연평균 4.7%정도의 증가율에 그친 것을 음미해 보아야 한다.

둘째,〈표 1〉에 나타난 것처럼 보건복지부문 가운데 사회복지서비스의 예산변화는 1990년 1,196억원에서 1999년 5,689억원, 2000년 7,138억원으로 나타났지만, 10년간 연평균 50.5%의 증가율을 보인다. 따라서 이는 사회복지서비스분야내의 여러 부문에 비하여 보육사업을 제외한 나머지 아동복지부문의 예산비중은 사실 매우 미미하게 증가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결국 1990년대 아동복지부문의 내실을 기하고 다양한 아동복지사업을 전개하기에는 매우 부족한 예산이 편성되었고, 그나마 보육사업에 대한 공적 재원의 할애만이 꾸준하였다. 그러나 이는 아동복지부문의 균형잡힌 예산편성, 나아가 사회복지서비스분야의 조화로운 부문간 발달을 위한 예산편성과는 거리가 있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아동복지제도의 측면

한국의 아동복지제도는 1990년대 어떠한 발달을 보여왔는가? 단적으로 A. Kadushin의 지지적 서비스(supportive service), 보완적 서비스(supplementary service) 및 대리적 서비스(substitute service) 체계를 따를 때, 한국의 아동복지정책의 핵심은 대리적 서비스요, 그 가운데에서도 가장 최종적인 선택수단인 시설보호와 입양에 초점이 맞추어졌다.

아동복지의 가장 기본적인 원리는 가정내 보호이며 가급적 원가정에서 보호되는 것이 중요하나 여의치 않을 경우 원가정과 가장 가까운 대리가정에서 보호된다는 것은 새삼 들먹일 필요가 없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아동복지현실에서는 이러한 기본원리가 구두선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런 점에서 1990년대 한국의 아동복지수준은 매우 일천하다는 평가를 벗어날 수 없다.

먼저 현행 아동복지제도에서 가장 중추적인 위치를 점하는 것이 사회복지시설이라고 할 때, 시설 수용아동은 1980년대에 비하여 현격히 줄어든 숫자여서 1980년 303개의 아동입소시설에 약 28,000명의 아동이 보호되고 있던 것에서 1998년 시점에서 272개의 시설에 전체 아동의 0.14%인 약 18,000여명만이 보호되고 있다(〈표 2〉참조). 그러나 요보호아동 발생수는 계속 늘어나는 추세로 1998년에는 무려 9,300여명에 이른다.

그렇다면 늘어나는 요보호아동과 줄어드는 시설보호아동 사이에 중간대응책이 강화될 수밖에 없었을 터임에도 불구하고 현재 우리의 아동복지제도 현실에서는 구체적인 중간대응책을 찾아보기 어렵다. 즉, 아동상담소나 가족상담소의 기능을 강화한다든지, 아동수당의 도입, 가정봉사원 제도의 활용, 가정위탁제도의 활성화 및 공동생활가정(일명 그룹홈)의 확산 등 어느 것 하나 그 기능이나 정책적 배려가 확연히 것이 없다.〈표 3〉에서는 1997년 현재 아동복지정책의 주요대상이 되는 아동들의 수를 추적해 보았는데 결국 요보호아동들로서 주요 정책대상이 되는 아동은 전체 아동의 0.58%에 불과하고, 아동일반에게 적용되는 보육사업의 경우 4.1%에 해당하여 18세 미만아동 중 아동복지정책상의 수혜자는 5%를 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표> <표>

2000년대 아동복지의 미래는?

결국 1990년대 한국의 아동복지를 돌아볼 때 20세기 후반에 걸맞은 우리의 아동문제수준이나 아동욕구의 충족수준에 못미치는, 매우 미미한 사회적 대응양식의 형태를 벗지 못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바로 지금 이 시각 우리 사회내에 13만명의 결식아동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모든 것을 압축적으로 대변하고 있다 하겠다.

따라서 2000년대 한국사회에서는 아동의 사회적 양육권이 적극 수용되어 아동양육수당이 도입되는 가운데, 가정에서 유기되기 전 예방적 차원에서의 아동상담 및 가정상담 기능이 활성화되고, 부득이 가정에서 유기된 아동에게는 최대한 가정과 가까운 환경에서 양육되는 사회적 보호양식이 정착하는 사회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아동들이 건강하고 건전하게 자라나서 다시 우리 사회의 민주시민으로서 한국의 미래를 설계하는 모습이 구현되어야 한다.

이태수 / 꽃동네현도사회복지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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