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와 노동개혁

IMF신탁통치, 노동자의 삶

60년대 이래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구가하던 한국경제는 97년말 아시아 금융위기라는 높은 파고에 밀려 좌초하였다. 고금리와 긴축정책, 구조조정으로 인한 기업의 도산과 대량정리해고, 경기후퇴와 국민소득 감소, IMF 신탁통치의 어두운 그림자가 우리사회 곳곳에 파고들었다. 후퇴를 경험해 보지못한 한국경제는 혼란에 빠졌으며 땀흘려 열심히 일한 결실을 기다리던 다수의 국민들은 스스로 죄인이 된 양 체념에 빠지게 되었다. 한편 50년만의 수평적 정권교체로 등장했다고 자처한 김대중 정부는 IMF 경제위기를 전임 김영삼 정권의 경제정책실패로 그 책임을 전가하면서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정부의 고통분담 정책에 전국민이 동참해 줄 것을 호소하였다. 정부는 외환보유고 증가와 외채규모축소, 주식시장 활성화, 금리와 물가안정, 수출증대와 내수시장 활성화, 재벌과 정치개혁, 고용창출과 사회안전망 구축 등 총체적인 개혁을 선언하였다.

지난 1년 반 동안 노동자들의 정리해고와 임금삭감으로 대표된 고통분담 결과 빈부격차 확대 와 중산층 축소라는 새로운 사회문제로 귀결되었다. 정부발표로 거의 완전고용에 가까운 실업률 2% 수준은 10%대(거의 200만)로 육박하였고, 민주노총이 분석한 실망실업자, 신규실업자, 건설일용노동자 등을 포함하면 20%대(거의 400만)에 이르게 되었다. 최근 부분적인 경기회복과 공공근로사업, 노동시장 유연화(임시, 계약, 파트타임 종사 등)로 인한 취업증가로 실업률이 감소하고 있으나 도시지역의 실업률과 장기실업자는 증가하고 있는 실정이다.

외자유치를 통한 투자활성화(자본시장개방)를 위해서는 구조조정이 필수적이고 그 중에서도 정리해고는 불가피하다는 것을 대통령이 '국민과의 대화'를 통해 공개적으로 밝히면서 정리해고는 단행되었고 노사, 노정간 대립과 긴장이 가속화되었다. 구조조정을 통한 생산성(경쟁력)제고, 이에 따른 경기회복이야말로 경제위기를 극복할 수 있으며 고용창출을 통한 실업문제 해소를 국정의 주요지표로 설정하였다. 그러나 정부정책 어디에도 IMF로 대표되는 초국적 금융자본, 특히 단기투기 자본에 대한 문제제기는 없었다.

경쟁과 효율을 기본이념으로 하는 자본주의 생산체제는 주기적 경기변동을 경험하면서 신자유주의로 대표되는 초국적 자본의 이윤축적을 위해 각국 경제를 개방화, 세계화의 이름으로 단일한 규범과 기준으로 통합해 가고 있다. 따라서 생산체제 뿐만이 아니라 각국의 사회복지체제 또한 후퇴시키고 사회적 부문의 축소와 사적부문 확대 즉, 시장경제에 내맡기도록 몰아가고 있다.

한국형 사회 복지모형

오늘날의 선진국의 복지국가 이념은 경제성보다는 삶의 질을 우선으로 하고 있다. 20세기 초까지의 공민권(civil rights)과 정치적 권리(political rights)로부터 2차대전후 사회적 권리(social rights) 즉,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복지사회를 추구하고 있다. 복지국가는 모든 국민의 최저생활을 국가가 보장한다. 복지국가 모델은 ①복지위해 성장을 강조하는 적극적 국가(positive state)로서의 미국 ②경제성장과 사회정책결합의 사회보장국가(social security state) 로서의 영국 ③계급, 집단간 평등과 시장의존 축소의 사회복지국가(social welfare state)로서의 스웨덴을 비롯한 스칸디나비아반도 국가로 나눌 수 있다. 이러한 구분에 의한다면 우리의 경우는 미국식 모델에 입각하고 있으며 그것도 80년대 미국의 레이건 행정부의 신보수주의 복지정책 기준이다. 즉, 정부의 복지비 지출과 역할의 최저수준, 수혜대상은 '지극히 궁핍한 자'로 제한, 단기적원조 등이다.

김영삼정부는 신경제 5개년 계획에서 ①성장과 복지의 조화 ②한국적 특수성의 반영 ③생산적, 예방적 복지의 강화 ④복지공급주체의 다원화 ⑤물질적 만족과 정신적 행복의 추구 등 '한국형복지모형'을 제시하였다. 그러나 사회복지에 시장논리를 도입하고 정부의 부담을 최소화 함으로써 경제성장이나 규모에 걸 맞는 복지정책을 펼치지 못했다. 도리어 경제위기를 초래하였고 그나마의 절대적 수준의 복지조차도 후퇴시키고 말았다. 김대중정부는 IMF 금융위기의 한국경제를 떠안은 상태에서 경제회생과 실업문제 해결을 최우선 정책에 둠으로써 사회복지정책은 엄두도 내기 어려운 형평이었다. 집권 초기에는 내각을 '실업대책 내각', 여당을 '실업대책당'으로 성격 규정하고 '실업에 대한 전쟁(war on unemployment)'을 선포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IMF식민통치와 신자유주의 정책의 강행에 따른 대량실업과 불평등 심화로 노동자, 서민의 저항이 강화되고 권력의 위기가 발생하면서 정책적 전환을 모색하고 있다. 물론 이는 권력재편과 관련하여 내년 총선을 앞둔 정치적 의미도 담고 있다.

지난 6월 말 재정경제부는 대통령 업무보고를 통해서 '생산적 복지'를 내용으로 하는 ①일자리 창출 ②직업교육강화 ③소득계층간 공평과세실현 ④국민의 기본생활보장 ⑤삶의 질 향상을 발표하였다. 이어 7월에는 대통령비서실 직속기구로 『삶의 질』기획단을 설치하여 노동, 환경, 복지, 서민생활에 대한 심층프로그램작성에 돌입하였다.

생산적 복지정책의 핵심적 과제는 ①국민생활보호기본법(노동시민 단체의 '국민기초생활 보장법')제정 ②비정규직 근로자의 근로조건 보호와 능력개발 ③지식기반산업에 적합한 직업훈련강화 ④제3섹터 방식의 일자리 창출 방안 ⑤노점상 등 도시자활부문의 제도정비등이다.

그러나 김영삼정부의 '성장과 복지의 조화'와 전세계로 확대되고 있는 신자유주의 복지모델과 무엇이 다른지 생산적 복지의 개념이 아직은 불투명하다.

노동계의 사회개혁투쟁

복지국가의 수준을 말할 때 제일 많이 쓰이는 지표가 'GNP 대비 사회복지비 지출'인데 유럽의 경우 20%내외이고 우리나라는 5%수준(실제는 훨씬 적음)이다. 이것은 바로 노동운동의 역사와 관련되는데 노동복지(worker welfare) 즉, 시장에서 노동력을 판매하여 생활을 영위하는 임금생활자에게 제공되는 모든 종류의 제도적 복지혜택은 국가에 의해 시혜적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노동자들의 투쟁의 산물이다. 자유주의 국가의 복지는 공적부조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노동복지의 3대구성요소인 국가 : 기업 : 노동조합으로 혜택의 크기를 측정하면 유럽의 경우는 80 : 15 : 5인데 비해 우리나라는 30 : 75 : 5로서 기업복지가 압도적이다. 따라서 노동자들 내부에서도 직장에 따라 특히 대기업과 중소, 하청업체에 따라 임금은 거의 배나 차이가 난다. 주로 기업복지부문의 차이다. 이러한 문제가 바로 대기업중심의 조직화된 노동자투쟁이 전체노동자들의 요구와 괴리되고 전사회적인 복지혜택의 제도적인 토대를 만드는데 기여하지 못하고 있는 이유다.

노동운동에 대한 사회보장의 의미는 ①시장임금외에 시회적 임금(social wage) 제공 ②사회보험제도의 위험분산(pooling risks)기능 ③노동계급과 여타 계급·계층과의 연대성이다. 민주노총은 1980년후반부터 산발적으로 정리되었던 사회보장, 교육 등의 요구를 95년부터 '임단투와 사회개혁투쟁'으로 묶어 세우기 시작했다. 당시 집중해야 할 사회개혁요구로 ①의료보험 통합 일원화와 보험적용확대 ②국민연금의 민주적 관리운영 ③세제와 재정개혁 ④재벌 경제력 집중규제 ⑤교육개혁으로 정하고 산하조직은 이중 한가지 이상 선정하여 구체적인 사업을 전개하기로 하였다. 이를위해 가능한 조직은 임단투교섭때 '제도개선 요구서(노사쌍방 동의에 의한 국회와 관계부처에 공동으로 법개정청원)'를 사측에 제시하고 교섭키로 하였다. 이러한 제도개선 요구의 예상되는 효과로 첫째, 조합원의 사회·정치적 의식고양 둘째, 임금인상의 유리한 조건 셋째, 제도개선요구에 회사측과 함께 함으로써 법개정의 유리한 조건형성을 상정하였다. 그 결과 기대 이상의 성과도 있었으나 투쟁역량 집중, 교육·선전부족, 집행부의 업무과중, 관련 시민단체와의 연대취약 등의 문제가 드러났다. 또 한편으로 민주노총 내외적으로 운동노선(사회개혁을 둘러싼 개량화 논쟁)에 대한 논쟁점이 형성되었고 오늘에 이르고 있다.

99년은 IMF 금융환란이후 1년간의 대량실업과 빈부격차 등 고통분담의 일방적 노동자전담과 사회복지후퇴에 대응하여 민주노총의 4대 투쟁요구 첫째, 생존권 박탈하는 구조조정, 정리해고중단 둘째, 노동시간 단축으로 고용보장 셋째, 사회안전망 구축 넷째, 임금·단체협약 안정과 산업별교섭체제 보장이며 더하여 재벌, 정치체제 개혁등 지속적인 과제를 설정하였다. 특히 사회안전망 구축(social safty net)의 내용으로는 ①고용보험확대와 실업부조실시 ②공공투자증대, 건설사업활성화를 통한 일자리창출 ③사회보장예산 확충과 4대 사회보험의 개혁, 확충 ④최저임금제 현실화 ⑤국민기초생활보장법 제정과 조세개혁을 통한 소득재분배 등을 제시하였다.

민주노총의 사회개혁투쟁은 서구노동운동이 이룩한 사회보장제도의 초보적 수준을 구축하는데도 역부족인 상황이다. 또한 사회보장운동과 노동운동의 관련성에 대한 전략적 사고의 부족과 일부 노동세력의 이익집단적 행태가 현실화되고 있다. 이에 더하여 자본주의의 세계화 진전에 따른 신자유주의 공세로 복지국가가 해체되고 있다. 복지국가를 건설해 온 주요 세력인 노동운동의 약화가 전세계적으로 일반화 됨에 따라 사회복지 실현을 위한 노동자들의 사회개혁투쟁은 엄청난 시련에 직면하고 있다.

사회복지개혁의 방향

'고성장·저실업' 구조에서 형성된 낙후한 사회복지공급체계는 IMF체제와 복지여건의 변화에 따라 '저성장·고실업'구조하에서 새로운 개혁이 요구되고 있다. 사회복지 실현을 위한 사회보장의 대표적 제도는 4대 사회보험제도다. 의료보험이 20여년간의 논쟁 끝에 금년 1월 재정은 2년 유보 조건의 통합법으로 제정되었고, 4대보험 역시 작년말부터 국무총리실 산하 '4대보험통합추진기획단'이 구성되어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최근 일부 노동세력과 신분, 지위, 직업의 차이에 따른 조합주의적 사회보험 방식을 주장하는 집단들의 요구에 밀려 통합의료보험법의 후퇴와 4대보험제도의 개혁이 좌초할 위기에 처해 있다. 나아가 노동자를 개별적으로 자유시장에 내맡겨 연대를 약화시키는 사보험(private insurance)제도의 도입을 노리고 있다. 이는 작금의 사회현실에서 사회적 통합력을 높여야 하는 개혁과제에 역행하는 일임에 틀림없다.

자영자 소득파악이 미비한 상태에서 의료보험을 포함한 4대사회보험의 통합은 100%소득이 노출되는 노동자에게 불리하다는 것이 통합 반대론자들의 주장이다. 일견 적극적으로 노동자의 입장에 서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오늘날 국가권력이 국민을 현미경 들여다보듯 관리, 통제하고 있는 상황에서 세제 개혁에 대한 적극적 대책을 강구하지 않고 있다는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특히 자영자 소득파악이 80%될 때까지 통합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주장은 내심으로는 통합을 항구적으로 반대하는 주장에 다름 아니다. 지난 6월 재경부의 생산적 복지정책에 대한 업무보고시 대통령 지시사항 역시 자산/근로소득자간 과세형평제고, 과세특례제도 개선, 상속·증여세제도 개선등 세제개혁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실현될지는 미자수다.

4대 사회보장제도가 제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공정한 보험료 부과가 필요하다. 이를 위한 소득파악의 기초를 마련하고 형평성과 사회정의 실현을 위해 조세제를 개혁해야 한다.그리고 교육, 토지, 주택 정책도 공공성을 확대해야 한다. 이러한 기초위에 명실상부한 사회보험제도를 갖추었을 때 만이 현재 기업복지를 둘러싼 노사간 임금협상의 첨예한 갈 등을 완화할 수 있고 노사안정을 이룩할 수 있다. 이를위해 포괄적 위험분산망의 구축, 국민복지 기본선 확립, 사회복지예산확충, 4대보험 통합관리 등 효율적 행정체계구축, 사회복지제도 운영의 민주주의 확립 등 민주노총을 비롯한 시민, 사회단체의 사회복지개혁 기본 시각에 대해 정부가 이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것이 생산적 복지를 분명하게 하는 지름길이다.

<참고문헌>

민주노총(준), 『1995년 임단투와 사회개혁투쟁지침』, 1995.2

민주노총, 『1996년 투쟁방침과 요구해설』, 1996.3

——-, 『대의원 대회의 자료』, 각년도

크리스챤 아카데미, 『노동정책과사회보장제도』, 1999.1

——-, 『한국사회 복지정책의 실태』, 1999.1

참여연대, 『IMF 시대와 한국사회복지』, 1998.10

허영구 / 민주노총 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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