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03 2003-05-02   1170

월차휴가 쓰려다가 식칼테러 당한 노동자

목숨 건 월차쓰기

참으로 기막힌 일이 벌어졌다. 월차휴가를 쓰려던 비정규 노동자가 회사 관리자한테 “식칼테러를 당한 사건이 일어났다. 사건의 개요는 이렇다. 지난 3월 19일 현대자동차 아산공장의 한 사내하청업체에서 일하는 송성훈씨가 월차를 신청했다. 사내하청업체의 임모과장은 송씨를 불러 이를 철회할 것을 요구했다. 송씨는 월차휴가는 당연한 권리라며 이를 거부했다. 이 과정에서 임모과장과 송씨를 넘어뜨려 타박상을 입혔다. 송씨는 이일로 병원에 입원했는데 임모과장 등이 그날로 병원에 입원한 송씨를 찾아가 칼로 송씨의 아킬레스건을 두 차례에 걸쳐 찔렀다. 송씨의 아킬레스건은 60%나 손상을 입었다. 수술을 했으나 4개월의 치료와 이후 재활치료를 받아할 정도의 중상을 입었다.

사건발생 이후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파업과 잔업 거부로 거센 항의를 표현했다. 현대자동차 노동조합 아산지부와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비상대책위를 꾸리고 현대자동차와 협상을 벌여 지난 3월24일 △피해자 치료비 전액 배상 △해당 사내하청업체 도급계약 해지 △해당 사내하청업체 노동자 조건 없는 고용승계 △후생복리비 정규직·비정규직 동일 적용 △아산공장 생산직 신규인원 채용시 사내 협력업체 노동자 40%이상 채용 △사내 협력업체 사업주 변경 때 변경 사업주를 통한 하청업체 노동자 고용승계 △대표이사의 공개 서면 사과와 폭행사태에 대한 재발방지 약속 등에 합의했다.

이렇게 해서 일단 사건은 덮어졌지만 이 사건으로 계기로 나타난 비정규 노동자의 문제는 그대로 남아있다. 무엇보다 당사자인 송씨가 받았을 정신적 충격은 엄청나다. 당연한 월차신청 요구가 왜 이 같은 엄청난 보복으로 돌아왔는지 상황을 제대로 가늠하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 사건은 단순히 개인간 보복 폭행사건이 아니다. 조직폭력을 연상시키는 범행의 잔혹함에만 주목할 일도 아니다. 이 사건이 보여주고 있는 것은 오히려 이 땅 800만 비정규노동자들이 당하고 있는 “일상적인 대접”이다.

차별과 비인간적 대우 아래 살다

우선 비정규 노동자에 대한 차별과 비인간적 대우이다.

송씨를 비롯한 대부분의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노동법에 보장된 월차조차 마음대로 쓰지 못한다. 평소 이 사내하청업체는 자유로운 사용이 보장된 월차휴가에 대하여 대체인력 문제를 이유로 5일전에 사전 신고한 후 사용하토록 했다. 이 때문에 관리자와 노동자간에 사소한 시비가 잦았다. 월차휴가 문제만이 아니다. 이들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몸이 좋지 않아도 출근을 강요당한다. 조퇴도 힘들다. 사람이 없다는 이유로 잔업특근 빼기도 어렵다. 같은 생산라인을 타고 더 힘든 일을 해도 임금은 정규 노동자의 절반 수준이다.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포함하여 비정규 노동자에 대한 차별과 비인간적인 대우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 같은 차별은 바로 생존권의 문제이자 인권의 문제이다. 노동법에 보장된 휴가 사용에 목숨을 걸어야 하고,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만으로 임금을 절반밖에 못 받고, 사회적 약자를 위한 제도인 사회보험조차 외면 당하고 있는 것이 이들 비정규 노동자들이 살아가는 현실이다.

문제의 뿌리, 불편파견과 파견제도

“차별”이 현실적으로 드러나는 것이라면 그 근저에는 불법파견과 파견제도가 있다. 사건이 일어난 사내하청업체는 이른바 도급용역업체이다. 형식상은 독립적인 도급용역업체이지만 사실상은 사용사업체의 노동자와 똑같이 일한다. 현대자동차 아산공장의 경우도 의장 부서에 수많은 도급용역업체 노동자들이 들어와서 일한다. 정규 노동자와 같은 라인에서 일하고 같은 사용사업체 관리자에게 작업지휘와 감독을 받는다. 이런 점에서 이들은 모두 파견노동자들이다. 그러나 현행 “근로자파견법”은 제조업의 직접생산공정에의 노동자 파견을 금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 사건이 일어난 사내하청업체처럼 도급으로 위장한 업체는 부지기수이다. 노동부가 파악한 파견업체 노동자는 5만 명이지만, 통계청 조사에서 나타나는 실제 파견노동자는 최소 45만명 이상이다. 40만명 이상이 불법파견업체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라는 결론이다. 따라서 용역이나 도급계약으로 위장한 불법파견업체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극심한 고용불안과 차별에 내몰릴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법을 감시·감독해야할 정부는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오히려 불법파견이 늘어나고 있으니, 파견을 전 업종으로 확대해야 한다는 무책임한 주장을 펴고 있다. 언제 용역(도급)계약이 해지되어 일자리를 잃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노동자로서의 기본적인 권리나마 지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보다 근본적인 것은 파견노동자를 양산하고 불법파견을 낳는 파견제도이다. 사람장사(인력파견)만을 하는 파견회사가 중간에 끼어서 노동자에게 가야 할 임금을 중간에서 가로채는 제도가 파견제도이다. 결국 이러한 파견제도가 이번 사건을 낳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제해결은 비정규노동자 스스로 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비정규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고 자신의 권리를 지킬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현대 자동차 아산공장 사내하청의 경우 그 사건 이후에 바로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조합”을 만들었다. 하지만 이 과정이 결코 순탄한 것은 아니었다. 하청업체 사장이 사내하청 노동자들에게 노동조합 탈퇴를 강요하는가 하면, 관리자가 노조 가입원서를 찢어버리고, 노조 홍보물을 배포하려던 노조간부의 공장출입도 막았다. 결국은 노동조합이 만들어져 일단 이후 차별 해소와 비정규 노동자 권리보장을 위한 발판이 마련되었다. 하지만 다른 공장, 다른 기업의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여전히 무권리 상태에 처해있다. “이런 사건”이라도 계기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조금이라도 노동조합 결성 움직임만 보여도 계약을 해지 당한다. 노동조합을 만들어 가입해도 집요한 협박으로 오래 버티기가 쉽지 않다. 헌법상 권리인 노동3권, 노동조합 결성권이 현장에서 부정당하고 있는 것이다. 부끄럽게도 정규직 노동조합의 적극적인 연대도 부족했다.

1970년 노동자 전태일은 ‘근로기준법을 지켜라’고 외치며 분신했다. 1987년 노동자 대투쟁 때 수백만의 노동자들은 파업현장에서 ‘인간답게 살고 싶다’고 외쳤다. 오늘 전태일은, 인간답게 살고 싶다고 절절하게 외치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바로 사내하청노동자들이고, 비정규노동자들이다. 노동조합, 그리고 인권과 진보를 소중한 가치로 내걸고 있는 모든 사회단체들이 주목해야할 사람들이다. 우리가 힘을 합해 지켜야 하는 것은 그렇게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의 권리이다. “월차쓰려다 식칼테러 당한 사내하청 노동자 사건”에서 우리가 확인해야 할 점은 이것이다.

주진우 / 민주노총 비정규사업실장, joojw@nodo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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