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01 2001-02-10   756

노동조합의 사회복지 정책과제

비정규 노동자 문제를 중심으로

요란하게 열렸던 2000년이 절망과 함께 저물어 갔다. IMF 경제위기를 빠져 나온 것도 잠깐, 또 다시 닥친 경제위기 앞에 노동자 서민들의 고통과 시름은 갈수록 깊어가고 있다.

2000년은 한편에서는 개혁이, 다른 편에서는 사회복지의 확대를 통한 노동자 서민들의 삶의 질 보장이라는 과제가 주어졌던 한 해였다. 그러나 정작 필요한 개혁은 실종되고, 구조조정이라는 이름 아래 노동자들은 고용불안과 노동조건의 후퇴를 겪고 있다. 사회복지의 확대는 구두선에 그쳐 실제로 개선된 것은 미미하다. 오히려 소득분배의 불평등은 악화되어 부익부 빈익빈의 골이 더욱 깊어졌다.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비정규 노동자 문제이다. 정부의 유연화 정책과 기업주의 무분별한 채용으로 비정규 노동자는 이미 전체 노동자의 53%에 이른다. 비정규 노동자들이 처한 현실은 더욱 심각하다. 언제 해고될지 모르는 고용불안, 턱없이 낮은 임금과 노동조건, 유형 무형의 차별과 인권침해가 일상화되어 있다. 사회적 보호의 최후선인 사회보험마저 이들을 외면하고 있다. 현실이 이러한데도 비정규노동자의 확산을 막고, 노동권을 보장하기 위한 정책은 입안조차 되지 않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노동진영은 비정규 노동자 권리 보장과 사회복지의 확대를 내걸고 많은 노력을 전개했으나 아직까지 성과는 그다지 크지 않다. 관심을 가지고 시작했으나.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더욱 많은 형국이다.

비정규 노동자의 노동권 이슈화

2000년 노동진영은 사람자르기 중심의 구조조정 정책을 반대하고, 사회통합적이고 민주적인 구조개혁을 요구해 싸우는 한편, 사회보장 예산 확대와 조세개혁 등을 제기했다. 전체 노동자의 삶의 질을 확대하기 위한 주5일 근무제도 적극적으로 제기하여 상당한 성과를 거 두었다. 그러나 이전의 활동과 구별되는, 가장 특징적인 것은 비정규 노동자 문제이다.

비정규 노동자와 관련해서는 크게 두 가지 차원에서 사업이 진행되었다.

첫째는, 비정규 노동자의 조직화와 투쟁이다.

비정규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으로 뭉쳐 단결하는 것은 비정규 노동자 문제 해결의 가장 기본적인 전제이자 거스르기 힘든 흐름이다. 한국통신계약직, 방송사 비정규운전직, 재능교사, 보험모집인, 골프장 경기보조원, 레미콘 지입차주 등의 노조 건설이 줄을 이었다. 나아가 학교와 지방자치단체의 비정규직, 지역차원의 영세사업장 비정규직들의 조직화 운동도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비정규노동자들이 이처럼 스스로 노동조합을 조직해 투쟁했는가 하면 기존 정규직 노동조합에서도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와 노동조건 보장을 위한 노력도 있었다. 롯데호텔이나, 이랜드 노동조합, 보건의료노조 등이 그 대표적 사례이다. 이 같은 조직화는 바로 권리보장을 위한 투쟁으로 이어져, 2000년 한해 언론의 무관심 속에서도 권리보장을 위한 치열한 투쟁을 전개했다.

그 결과 민주노총만으로 봐도 미조직된 비정규노동자 4만 명이 새로이 노동조합으로 조직되었다. 수나 양이 문제가 아니라, 비정규 노동자들 스스로가 권리를 지키기 위해 집단적으로 나섰다는 점, 기존 정규직 노동조합의 활동 방식에 근본적인 문제를 던져주었다는 점에서 커다란 의의가 있다. 그러나 아직도 기존 정규직 노동조합의 관심과 지원은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이는 앞으로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둘째는, 비정규 노동자 노동권 보장을 위한 법 제도 개선 사업

이다.

법 제도 개선의 방향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와 차별철폐”를 기본 방향으로 하여 법 제도 개선안을 마련하고 요구했다. 파견제도의 폐지와 법의 실효성 확보 방안도 제시되었다. 개별 노동, 여성, 시민단체 등이 나름대로 법 제도 개선 운동을 벌였고, 나아가 26개 노동·사회·시민·여성·종교 단체가 망라된 “비정규직공대위”가 각 개별 단체의 공동의 요구를 모아 법 개정 운동을 전개했다. 이 사업을 통해서 법 제도 개선의 기본 방향과 법 개정의 방향을 확정하고, 국회 청원 활동을 전개했다. 이러한 활동은 내부적인 공감대를 바탕으로 법 제도 개선의 방향을 마련했다는 데에 의의가 있으나, 이를 전 사회적으로 여론화하고 이를 바탕으로 실질적인 법 개정으로 나아가지 못했다는 한계를 드러냈다.

사회보험 예산 확대나 의료보험, 국민연금 제도 개선도 주요한 과제였으나 충분한 활동이 이루어지지 못했다. 주로 시민, 사회단체나 농민단체들과의 연대틀을 형성하여 공동대응하였다.

차별철폐와 노동권 보장

2001년은 경제상황이 더욱 악화되고 현 정부의 정치적 기반이 흔들리면서, 개혁 정책 전반에서 후퇴와 보수화가 예견되고 있다. 반면에 실업 문제나 비정규 노동자 문제는 더욱 심각해지고 사회가 더욱 양극화되면서 사회복지 확대에 대한 대중들의 요구도 크게 증대할 것이다.

노동진영은 무엇보다 비정규 노동자의 노동권을 보장하기 위한 과제를 안고 있다. 특히 정규직 노동자들이 직접 나서 비정규 노동자를 정규직화하고 차별을 철폐하는 투쟁에 앞장서야 한다.

2000년이 비정규 노동자 문제 제기와 조직화에 첫발을 내딛은 해라면 2001년은 조직노동자가 앞장서서 비정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투쟁하고 조직하는 해로 자리매김될 것이다. 민주노총은 이와 관련 정규직 중심에서 비정규직으로 확대하도록 조직전략을 전환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노동조합 내 조직혁신과 의식의 변화가 선행이 되어야 하고, 비정규 노동자 관련 사업에 인력과 재정을 집중시키는 일이 중요하다. 이를 전제로 하여 노동조합 규약과 단체협약에 비정규 노동자의 조합원 자격을 명시하도록 하고, 비정규 노동자에게 단체협약을 동일하게 적용하도록 할 것이다.

비정규 노동자 조직화 사업도 대대적으로 전개할 계획이다.

법 제도 개선 사업은 또 다른 중요한 축이다. 현행 법은 비정규노동자들을 양산하고 있고, 차별에도 속수무책이다. 따라서 관련 법의 개정으로 비정규직화 추세를 막아내고, 비정규 노동자의 노동조건, 노동권을 동등하게 보장하도록 해야 한다. 특히 아예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부정당하고 있는 보험모집인, 캐디, 학습지 교사, 지입차주 등 특수고용형태 노동자들의 노동권이 완전하게 보장되도록 법 개정이 이루어져야 한다.

즉, ▶출산, 질병, 계절적 고용 등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사유가 있는 경우를 제외한 비정규직(임시직) 고용 금지 ▶비정규노동자에 대한 균등 대우 원칙 명시 ▶보험모집인, 캐디, 학습지 교사, 지입차주 등 독립사업자 형태의 노동자 근로기준법 완전 적용 ▶파견제도의 철폐 등을 주요한 요구로 제기해야 한다.

김대중 정부는 국정 후반기 개혁 과제로 비정규노동자 보호를 위한 법 제도 개선을 명시적으로 언급하고 있고, 2001년 2월까지의 추진과제로 설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를 위한 정부 차원의 노력은 거의 없다시피하다. 2월 임시국회에서 비정규 관련 법 개정안이 통과되도록 집중적인 사업을 펼칠 것이다. 이러한 법 제도 개선에서는 비정규 노동자, 노동조합 등 노동진영 뿐 만 아니라, 여성, 시민, 종교 등 모든 진영의 역량을 함께 모아 대응해나가야 한다.

사회보험, 교육, 의료 등의 사회복지의 확대도 매우 절실한 과제이다. 고용구조의 악화와 실업률 상승,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격차 악화, 빈부 격차의 확대 등 삶의 질이 전반적으로 악화되고 있지만 정부의 복지 정책은 수사에 불과하여 실업, 비정규 관련 사업과 예산이 이를 뒷받침하지 못하고 있다. 아울러 공공의료의 민영화, 의료보험료 인상, 공·사 연금의 개악과 더불어 사회보험의 민영화를 지속적으로 추진할 것으로 보여, 사회복지는 정착되기도 전에 노동자, 서민에게만 부담이 가중되고, 부자들을 위한 시장 논리에 내맡겨질 운명이다.

반면에 더욱 심화될 사회적 양극화의 폐해를 극복하기 위한 복지 확충의 목소리도 드높을 것이다. 노동진영은 무너지는 민중의 생활을 유지 보호하기 위해 사회복지의 확대를 적극적으로 제기해야 한다. 의무교육을 확대하는 한편 공교육을 강화하고, 의료보험제도를 개혁하여 공공의료체계를 정착시키고, 조세개혁으로 조세의 형평성을 이룩하고, 소득재분배로 부익부빈익빈을 막아내야 한다. 나아가 남북간 평화와 화해가 진전되고 있는 상황에서 군비를 대폭 축소하고 이를 바탕으로 사회보장 예산과 지출을 확대해야 한다.

개혁이냐 후퇴냐의 분기점

2001년은 경기 악화와 정권 후반기라는 정치 상황 때문에 비정규 노동자 문제와 사회복지 확대 등의 개혁 정책 전반이 실종될 우려가 제기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실업자 확대, 사회양극화와 빈곤, 비정규노동자 확산에 따른 고용 불안과 비인간화가 등이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비정규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하고 사회복지를 확대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과제이다. 더욱이 기득권층과 가진 자들의 저항을 물리치고, 노동자 서민의 생존권과 권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노동자 민중, 시민사회의 힘있는 투쟁과 대응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우리의 대응이 성과를 거두지 못해 정부의 정책기조가 전반적으로 후퇴한다면 우리사회에서 비정규 노동자 권리보장과 사회복지의 정착은 난망하거나, 상당기간 동안 유보해야 할 것이다.

결국 2001년은 매우 중요한 한 해이다. 비정규 노동자의 비인간화가 심화되고 사회복지가 형해화될 것이냐, 비정규 노동자의 권리보장과 사회복지가 확대될 것이냐의 분기점이 될 것이다. 노동진영을 포함한 전체 진보 진영의 분발이 요구되고 있다.

주진우 /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정책2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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