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위원회 빈곤정책 2004-07-28   813

[희망UP 캠페인] “최저생계비 한달만 체험해 봐”

건강한 삶을 보장하는 최저생계비는 얼마인가. 최저생계비의 적정수준에 대한 사회적 합의나 실증적 검증을 통한 논쟁보다는 ‘살 수 있다, 없다’는 식으로 좁혀지지 않는 공방만 있는게 현실이다. 이런 탁상공론식 공방에 일대전환을 가져올 캠페인이 진행 중이다. 참여연대와 아름다운 재단이 공동으로 추진하는 ‘최저생계비로 한달나기, 희망UP’ 캠페인이 그것이다. 최저생계비가 실제 어느 수준의 삶을 보장하는지, 직접 체험을 통해 보여주겠다는 것이다.

참여연대와 아름다운 재단이 이러한 캠페인을 시도하는 것은 최저생계비가 사회안전망의 얼개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우리사회의 대표적인 빈곤대책이라고 할 수 있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혜택을 받기 위해서는 수급자가 되어야 한다. 수급자가 되기 위해서는 부양의무자 기준과 최저생계비 기준에 부합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최저생계비는 사회복지의 밑그림과 같은 것이다. 참여연대는 이번 캠페인을 통해 최저생계비의 현실을 제대로 알려, 개선을 위한 공론을 형성하려고 한다. 특히 올해는 5년만에 최저생계비가 실제 계측되는 해다. 이번 체험의 결과는 정부 측 실계측 자료에 대한 판단근거로 활용될 예정이다.

이에 따라 7월 1일부터 31일까지 한달 간, 11명의 체험자가 서울시 성북구 하월곡동 산2번지에 머물며 직접 체험하는 중이다. 최저생계비가 가구별로 책정되는 것에 따라 이들 체험단도 1인에서 4인까지의 가구를 구성해 생활하고 있다. 특히 이들 중 4인 가구는 실제 하월곡동에 거주하는 3인 가구에 체험단 1인이 결합해 체험하는 등, 실증적인 체험을 위한 시도가 다방면으로 펼쳐지고 있다. 또한 하월곡동은 실제로 주민의 40% 이상이 수급자라는 점에서 주거공간도 최대한 비슷한 수준으로 맞췄다고 볼 수 있다.

문혜진 참여연대 사회인권팀장은 “최저생계비로 주거비를 내야하는데, 서울에서 그 금액으로 집을 얻을 수 있는 곳은 하월곡동 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하월곡동 체험단은 2채의 집을 구했다. 3인 가구 ‘민상-정혜-진희네’가 방이 두 개인 집을 얻었고, 나머지 체험단이 방 3개짜리 집을 얻었다. 2인 가구 ‘정섭-미애네’가 방 하나를, 1인 가구인 얼큰이네와 현정이네가 각각 방하나씩 써서 한지붕 세 가구를 이뤘다. 재래식 화장실에, 폭우가 내리면 천장에서 비가 새는 등의 조건이지만 방 하나에 15만 원 가량의 월세가 든다.

각 가구별 최저생계비는 1인 가구 36만8026원, 2인 가구 60만9842원, 3인 가구 83만8797원, 4인 가구 105만5090원이다. 다들 이 금액으로 7월 한달 간의 ‘의식주’ 모두를 해결해야 한다. 체험단이 지켜야할 원칙은 한두가지가 아니다. 캠페인 실무진은 “체험은 한달이라는 한정된 기간만 이뤄지지만, 실제 최저생계비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이니만큼 평상을 유지하는 것”을 무엇보다 강조한다. 최저생계비 체험은 극기훈련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하루 3끼를 먹는 것’을 가장 기본적인 원칙으로 삼았다. 여기에 체험단은 가계부 작성 및 개인 체험을 온라인으로 공개해야 한다. 또한 체험기간 중 지인으로부터 물품이나 현금 등의 지원도 일체 허용되지 않는다. 유일한 직장인 체험자인 이대원 씨를 제외하면 나머지 체험단들은 놀이방, 공부방, 국 배달 서비스 등의 봉사활동으로 하루를 보낸다.

이러한 고난(?)에도 불구하고 체험단의 얼굴에는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대부분 사회복지 관련 공부나 일을 하는 체험단들은 “빈곤정책의 골간이 되는 최저생계비 문제를 바로 잡는데 도움이 된다는 것이 무엇보다 즐겁다”는 것이다. 체험이 중반을 넘어가면서는 ‘우리집’이라는 표현이 자연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체험이 아니라 실제로 하월곡동에 살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3인 가구인 유민상 씨는 폭우 때문에 재래식 화장실이 넘칠까봐 걱정이 많다는 이야기를 하면서도 태연하기만 하다.

하지만 이들에게 고충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생면부지의 사람들과 가구를 이뤄 한 공간에 산다는 것부터가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체험단들은 최저생계비 문제만이 아닌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법’을 스스로 깨쳐가고 있었다. 16일 중간점검회의를 하면서 체험자들에게 가장 많이 나온 이야기는 ‘편견’이었다. 보름간의 체험만으로도 스스로가 빈곤계층과 정책에 대해 어떤 편견을 갖고 있었는지 알게 되었다고 털어놓았다. 무엇보다 직접 체험해보니 “책상머리에 앉아 수치로 계산하는 최저생계비와 실제 체감하는 생활수준은 천지 차이”라고 전한다.

체험단들은 가능하면 실제처럼 지출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2인 가구인 ‘정섭-미애네’는 “가능하면 실제 피복비, 문화비 등 책정된 대로 쓰려고 한다. 딱 한달이라면 밥만 먹고 살겠지만, 실제 이렇게 살아간다면 옷이랑 신발도 사야하고 책도 사야하지 않겠나”라는 것이다.

이들은 ‘계획대로’ 지출할 수 있을까? 가계부를 맡은 미애 씨는 솔직한 고백을 한다. “그런데 돈이 줄어드는 것을 보니 장난이 아니다. 살아야하는 날짜는 많이 남았는데, 돈은 없는 상황에서 애초 결심대로 식료품비 이외에 돈을 쓸 수 있을지 모르겠다. 수급자 대부분이 이런 어려움을 겪을 것 같다.”

최저생계비의 적정수준을 증명하기 위한 ‘희망UP’ 캠페인단의 노력은 계속될 예정이다. 실제 수급자들을 대상으로 최저생계비가 보장하는 실제 생활수준을 조사하는 작업이 병행되고 있다. 20여 명의 자원활동가들과 체험단이 함께 10여 가구를 선정해 이들의 가계부를 통해 실제 지출규모와 패턴을 조사하고 있다. 동시에 수급자들의 의견을 묻는 설문조사도 진행되고 있다. 이 캠페인은 하월곡동 주민들에 대한 지원 프로그램도 담고 있다. ‘복날 복나누기’ 행사를 열어 독거노인과 수급자 400여 명과 삼계탕 잔치를 열고, 무료 법률상담과 무료 집고치기 등을 지원한다. 독거노인 등 20가구에는 주 3회, 2끼분의 국을 배달하는 국서비스도 하고 있다.

체험자로, 실무자로, 자원활동가로 참여하는 모든 이들의 소망은 이번 캠페인을 통해 최저생계비의 현실화는 물론, 우리사회가 빈곤계층이라는 사회적 약자와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을 찾아가는 것이다.

1인 가구 체험자인 김현정 씨는 “우린 같은 하늘 아래 살아가고 있는 같은 사람들”이라고 강변한다.

“최저생계비… 밥만 먹고 살라구요? 그냥 자는 곳만 있으면 되는 것 아니냐구요? 수급자이기 때문에 어떠해야 한다는 조건을 걸기보다 자신만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라고 있는 그대로 수용하게 된다면, 사람과 사람 사이의 벽은 조금은 낮아질 것 같습니다. 삶의 질, 내가 만족하는 삶은 그렇게 큰게 아닌데.. 우린 너무나 크게 생각하고, 벽을 쌓고 있는 것 같아요.. 수급자이기 때문에 영양제를 사먹는 건 사치라는 생각.. 무심코 집어든 물건을 어떤 이는 몇날 몇일을 고민하며 산다고 생각한다면… 그 다름은 도대체 누가 선택한 것일까요?”

최현주 기자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


참여연대 NOW

실시간 활동 SNS

텔레그램 채널에 가장 빠르게 게시되고,

더 많은 채널로 소통합니다. 지금 팔로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