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위원회 복지국가 2010-11-18   2603

[복지국가 강좌후기④] 복지국가 재정,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


강연을 해주신 오건호 선생님이 강의 도입부에 질문 하나를 던지셨다. ‘우리가 환갑의 나이가 될 때 즈음에는 한국이 복지 국가가 되어 있을까’라는 질문. 머뭇거리다가 아직은 먼 미래의 이야기인 것 같아 주위만 둘러보았고, 결국 수강생의 20%만 손을 들었다. 나뿐 아니라 대다수가 그렇게 생각할 만큼 복지국가 한국의 미래가 비관적인가 싶어 표정이 심각해졌다. 하지만 오건호 선생님은 손을 드는 수강생이 없었던 때도 있었다며, 복지 국가에 대한 확신이 증가하고 있는 추세라는 긍정적인 해석을 해주셨다.


이렇듯 모두들 복지국가를 꿈꾸면서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세금이나 국민연금, 건강보험 보험료는 내기 아까워하고 사보험과 기업복지에 의존해 온 것이 한국의 현실이다. 다행스럽게도, 우리는 지난 지방 선거 이후 무상급식 논쟁을 통해 ‘보편복지’라는 의제가 형성됨으로써 한국에서도 복지국가의 가능성을 볼 수 있었다. 그렇다면 복지국가를 ‘어떻게’ 만들 것인지를 고민해보는 것이 급선무일 것이다. 복지를 하기 위해서는 불가피하게 돈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돈을 누구에게서 걷을 것인가의 문제는 매우 민감하고도 중요한 문제이다. 오건호 선생님도 복지국가를 만들어 나가는 데 있어, 가치를 공유하는 복지주체의 형성과 복지재정의 확충이라는 두 과제에 집중해야 함을 역설하셨다.


먼저, 복지 재정 확보를 위해서는 재정 전략을 잘 짜야한다. 막연하게 ‘돈이 많이 모이면 좋지’라고 생각하기보다는 구체적인 수치를 알고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황을 잘 알아야 하기 때문에 한국의 현 복지 분야 지출은 얼마인지를 알아볼 필요가 있다. 2011년의 정부 예산안을 보면, 복지 지출은 86.3조원으로, 역대 최고 수준이다. 그렇다면 어떠한 지출이 ‘복지 지출’로 정의되는 것일까. 한국에서는 부처별로 구분을 하지 않고 국정과제 중심으로 16개 분야를 구분하여 정책목표가 유사한 사업들을 한 분야로 묶는 프로그램예산제도를 취한다. 그리고 그 16개의 분야 중 8번 사회복지분야와 9번 보건 분야를 합쳐 복지지출로 정의하고 있다. 이는 2006년 국가재정법 제정 이후 국가재정에 ‘전략’ 개념을 도입하여 거시적으로 분야별 지출규모를 정하고 이 한도 내에서 세부 사업들의 지출을 조정해 나가는 Top-down 방식으로 예산편성체계를 변경한 결과라고 한다.


다음으로는 객관적인 비교 대상이 필요하기 때문에 국제 기준으로 한국의 공공복지지출 규모는 어떤 수준인지를 알아보았다. 공식적인 수치는 아니지만 복지재정 규모를 정리해 본 결과, 한국은 2009년 기준으로 GDP의 약 9%를 복지 부문에 사용하고 있다. 2009년 GDP를 1000조라고 보면 약 90조원 정도를 지출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한편 OECD국가들은 평균적으로 GDP의 20% 정도를 복지에 쓰고 있는데, 그에 비해 한국의 경우 약 GDP의 11% 포인트, 즉 110조원 정도가 부족하다. 2009년 한국의 국가재정 규모도 OECD 기준으로 약 11% 더 작았음을 고려한다면 공교롭게도 국가재정 부족분 110조원이 곧 복지 지출의 부족분과 같음을 알 수 있다. 즉, 한국이 앞으로 충당해야 할 복지 재정의 목표는 110조원이라는 것이다.


복지 재정 110조원을 마련할 방법에 대해, 사회보장기여금과 조세라는 두 가지 통로를 통해서 확보할 수 있다는 설명을 들었다. 한국의 조세제도는 재분배적인 성격을 띠는 직접세와 사회보장기여금, 즉 총직접세의 수입이 너무 적다는 것이 문제라고 한다. 그리고 직접세가 부족한 결정적인 원인은 소득세의 낮은 수입에 있었다. 이는 법인세의 세수가 낮은 것이 직접세 부족의 원인이며, 역진적 성격의 간접세 비중이 높다는 것이 조세제도의 가장 큰 문제일 것이라고 꼽은 우리의 예상을 뒤집는 것이었다. 우리가 높다고만 생각했던 사회보장기여금도 외국에 비하면 매우 낮은 수준이라는 사실도 흥미로웠다. 따라서 총직접세를 높이는 것이 재원을 마련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방안임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증세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복지 지출 구조에 대한 불신으로 인해 조세 저항이 불가피하다. 이에 세금이 어떤 사업에 쓰이게 될 것이라는 ‘꼬리표’를 붙이는 목적세, 즉 사회복지세를 도입하는 것이 한 방안이 될 수 있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그리고 무상급식 논쟁과 같이 진보 진영 내에서 복지연계 증세 방안을 계속 제기해야 한다고 했다. 예를 들어 소득세를 증세하는 데 있어 과세 대상을 누구로 지정하느냐에 따라 두 가지 방식이 있는데, 어떤 방식을 채택할 것인가에 대한 논쟁을 표면화함으로써 국민적인 이슈로 만들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일단 부유세 방식은 부유층과 상위 기업을 과세 대상으로 하며, 소득재분배 기능이 크다. 그에 반해 일반직접세 방식은 직접세를 내는 모든 사람들이 과세 대상이다. 오건호 선생님은 전자는 ‘너희들이 내라’고 말하는 것이고, 후자는 ‘나도 최소한은 낼 테니 내라, 즉 다 같이 더 내자’는 식이기 때문에 사회연대감과 사회재분배를 증진시키는 효과를 위해 후자를 강조하셨다. 그리고 그와 같은 ‘참여 재정 방식’의 사회운동적 효과를 높게 평가하셨다.


사회보장기여금인 건강보험의 보험료도 전통적으로는 기업과 국가의 부담만을 요구해왔으나, 가입자 모두가 보험료를 조금씩 더 내자는 ‘건강보험 하나로’ 운동과 같은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복지 운동의 주체가 허약하니까 아무리 좋은 복지 재정 정책이라도 공론화가 되지 않고 현실화가 되지 않는다는 인식에서 비롯된 운동이라고 한다. 그리고 나서 오건호 선생님은 위의 두 경우와 같이 일반 시민들이 재정을 마련하고 복지 운동을 하는 주체가 되는 ‘참여 재정 운동’이 중심이 된 진보 ‘모델’을 정립하는 일이 중요함을 역설하셨다. 그렇게 되면 시민들도 권리의식을 가지고 납세자가 곧 수혜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 아래 복지에 대한 굳은 믿음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세금을 많이 내봤자 무상보육 및 교육, 무상의료, 적정 수준의 노후보장이 나에게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불신은 아직도 널리 퍼져있다. 하지만 이번 강의를 통해 참여 재정 운동으로 복지재원을 마련함과 동시에 국민들이 복지 체험을 통해 인식을 달리하게 될 기회를 만들면 된다는 낙관적인 미래를 보았다. 이러한 복지 체험이 만들 수 있는 정치적 도약 효과는 매우 크며, ‘내자’고 말하는 복지 동맹이 필요하다는 강의의 마무리는 뇌리에 강하게 남았다. 사실 강의를 들으면서 숫자가 많아 머리가 복잡했다. 하지만 이제껏 재정을 확보해야 한다는 막연하고 당위적인 주장만을 보아왔는데, 그와는 달리 복지 지출 규모와 예산 구조를 정확하게 알 수 있어서 흥미롭고 유익했다. 이렇게 이념적이고 추상적인 문제를 떠나 현실적인 문제를 짚고, 그 대안을 생각해보고 나니 복지국가로 한발 다가선 느낌이었다. 아마 강의가 끝난 후에 강의 도입부의 질문을 다시 던졌다면 나는 분명 손을 번쩍 들었을 것이다. 그렇게 국민 모두가 복지국가에의 가능성을 믿고 함께 힘을 모으는 날을 상상해본다. 그리고 그 상상이 곧 현실이 되기를 소망해본다.


* 작성 / 성가진(수강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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