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위원회 칼럼(sw) 2003-12-18   584

<김창엽의 건강세상만들기> 의료보장의 글로벌 스탠더드

얼굴을 아주 못보는 것도 아니면서 이렇게 새삼 글을 쓰려니 쑥스럽군요. 그러나 아무리 흔해졌다지만 일주일이나마 외국 출장이 가져다 주는 이국적 감흥이 아주 없는 것도 아니니 그 힘을 빌어봅니다. 학창시절 이후 스쳐 지나가면서 잠간씩 나눈 이야기는 있지만, 제대로 가슴을 열고 이야기를 해 본적이 별로 없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습니다. 따지고 보면 살아가는 것이 유별날 것도 없는데, 왜 그렇게 정신 없이 살아왔고, 또 아직도 그러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지금 오스트레일리아의 시드니에서 이 글을 씁니다. 아시겠지만, 여기는 한여름입니다. 수영복을 입은 사람이 여기 저기 보이는 호텔 로비에서 성탄절을 축하하는 캐롤이 울려나오는 것이 조금은 낯선 풍경입니다. 그래도 여기 사람들은 항상 그렇게 살아왔을 터이니 그걸 이상하게 보는 우리가 그네들이 보기에는 오히려 이상하겠지요. 그러고 보니 북반구에 속하는 나라들이 많고, 우리에게 익숙한 국가들이 모두 우리와 같은 시기에 같은 계절을 맞으니, 우리의 계절감각이 도전(?)을 받을 일이 많지는 않았던 셈입니다.

그러나 어디 계절만 그렇겠습니까.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이곳 사람들이 상식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우리에겐 너무 이상한 것도 있고 그 반대도 적지 않겠지요. 제 경험을 하나 말씀 드릴까요. 아주 어릴 때부터 교통신호를 잘 지켜야 한다는 교육을 귀에 못이 박히게 들어온 제가(저희 세대가 다 그렇지요) 처음 외국에 가보고 사람들이 아무렇게나 찻길을 건너는 것을 보고 얼마나 놀랐던지요.

철석같이 믿고 있었던 것이 틀렸다는 배신감이랄까요. 알고 보니 사람이 차보다 우선이기 때문에 교통신호는 사람에 대한 규율이 아니라 차에 대한 규율이라고 하더군요. 다른 신호일 때도 차는 보행자를 조심해야 하고, 보행신호일 때는 절대 진입해서는 안되는 것 말입니다. 하여간 그걸 문화적 충격이라고 해야 할지 혹은 다양성이라고 해야 할지 아직도 완전히 명쾌하지는 않습니다.

사실은 이곳에서 잊어버렸던 문화적 충격의 경험이 되살아난 것은 꼭 반대로 돌아가는 계절 탓은 아닙니다. 직업의식이 어디 가겠습니까. 몇 군데 노인보건복지 관련기관을 방문하면서, 의료와 복지 보장의 수준이 우리나라의 형편과 저절로 비교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와는 너무나 다른 출발점과 전제를 가진 것을 보면서, 여기가 옳은 건지 우리가 옳은 건지, 혹은 그냥 차이일 뿐인지, 차이의 이유는 무엇인지, 충격이랄 것까지는 아니지만 다시 머리가 복잡해집니다.

K형이 아시는 것처럼 오스트레일리아의 의료체계는 영국식의 국가보건의료체계를 택하고 있습니다. 영어로 National Health Service라고 하고 약자로 NHS라고 하지요. 이곳 제도가 영국과 꼭 같지는 않지만, 몇 가지 점에서 NHS체계라고 해도 크게 틀리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대표적인 특징은 이 체계 안에서 진료를 받으면 의원이든 병원이든 전혀 돈을 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공짜라는 소리지요. K형은 쉽게 상상이 되십니까? 어떻게 제도가 운영될 수 있는지, 돈은 어떻게 마련하는지 쉽게 상상이 안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번에 안 것이지만, 노인에 대한 요양서비스(수발이라고도 합니다)도 마찬가지랍니다. 정부가 판정팀을 운영하는데 그 팀이 이런저런 서비스가 필요하다고 결정하면 자기부담이 거의 없이 생활지원이나 복지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

이런 체계에서 생각보다 민간보험의 비중이 아주 적은 것도 놀랍습니다. 전체 재정의 10% 정도라니까 다들 큰 추가부담 없이 제도를 운영하고 있는 셈입니다. 원칙적으로 기본적인 서비스말고 추가적인 서비스, 혹은 급하지 않을 것을 다른 사람보다 앞서서 받으려면 스스로 부담을 해야 하는데, 이것이 10% 정도의 비중이라니 듣는 것에 비하면 미미합니다.

물론 세상에 어디 공짜가 있겠습니까. 이런 것이 가능하려면 당연히 세금을 많이 내야 하겠지요. 또 그러다 보니 돈이 모자라, 대기하는 환자가 많은 문제도 엄연히 있습니다. 나라마다 다른 제도를 택하고 있으니 문제도 다르고 해결방법도 다른 것이 당연합니다. 그러나 오늘은 그 말씀을 드리려고 한 건 아니고, 의료서비스나 노인요양 서비스에 대한 이 사회의 인식과 태도를 말씀드려보고 싶습니다.

제도가 먼저인지, 혹은 사람들의 의식이 먼저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건강이든 요양이든 이 사회는 전체 사회구성원이 그것을 당연한 권리로 생각하고 있고 정부가 완전하게 책임져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일단은 필요한 사람은 경제적 부담이 전혀 혹은 거의 없이 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하는 것이지요.

이런 것을 보면서 우리를 돌아보게 됩니다. 안타깝지만 우리나라는 너무 다릅니다. 의료서비스를 보장하는 건강보험은 각자가 거의 반은 부담해야 하는 반쪽인데다, 노인에 대한 장기요양서비스는 아직 출발도 못하고 있습니다. 그냥 쉽게 생각하면 사회발전, 경제발전의 차이다 싶습니다. 그런데 과연 이런 차이가 경제수준의 차이 때문일까요. 현재 오스트레일리아의 일인당 국민소득이 2만4000달러 정도 된다니까 우리보다 잘 사는 것은 사실입니다만, 우리도 2만 달러 시대가 멀지 않았다니까 생각보다 큰 차이는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보건의료정책을 공부하고 있는 제가 제도의 내용이야 아주 처음 듣는 것은 아닙니다만, 이곳에서 머리를 짓누르는 것은 이런 차이가 왜 생기는 것일까 하는 새삼스러운 질문들입니다. 지금 같아서는, 제 혼자 생각이지만, 우리는 현재 이 나라의 경제수준 정도에 이르더라도 이 정도의 의료보장, 장기요양보장제도를 가지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과연 어느 것이 옳은 것일까요. 이쪽이 너무 낭비가 심한 ‘복지병’이 걸려 있을지도 모릅니다. 경제의 활력을 좀먹고 있을지도 알 수 없습니다. 그럼 우리가 맞는 것일까요? 아니면 그 사이에 어디쯤 답이 있나요?

K형, 저도 형도 건강과 요양에 대한 권리는 어느 정도나 인정되어야 하고, 국가와 사회의 책임은 어디까지인지 각자 생각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저나 K형의 개인 생각이 아니라, ‘답’입니다. 혹 이 문제는 정답이 있을 수 없다고 말씀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럴지도 모르지요. 그러나 과연 글로벌 스탠더드도 없을까요? 글로벌 스탠더드라고 해서 무슨 거창한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소박하게 표현하자면, 야만의 얼굴이 아니라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가 가져야 할 최소한의 수준 같은 것 말입니다. K형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우리 사회가 과연 이 글로벌 스탠더드를 알고 있을까, 혹은 이를 의식하고 있을까 하는 제 의문을?

답도 없으면서 심각한 듯 글을 드려 민망합니다. 그나마 자주 소식을 전하는 처지도 아니면서 이런 자리를 빌려 불편하게 해 드린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명민하지 못한 처지라 외국의 체계를 그나마 피상적으로 보면서도 심사가 어지러워진 때문이라고 널리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한겨울로 접어들면서 날씨가 사납다고 들었습니다. 부디 건강에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또 기회가 되면 소식 올리겠습니다.

2003년 12월 16일

오스트레일리아에서 김창엽 올림

김창엽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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