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위원회 일반(sw) 2002-08-22   708

“더이상 죽고 싶지 않다” 외치는 장애인, 귀막는 서울시

장애인이동권연대, 단식농성 11일째

국가인권위원회 11층의 엘리베이터문이 열리면 “단식농성”을 알리는 큼지막한 문구가 한눈에 들어온다. 이곳에서는 장애인이동권쟁취를위한연대회의(이하, 장애인이동권연대)의 박경석 대표를 비롯한 중증장애인들이 지난 12일부터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다. 이들은 지난 5월 발생한 발산역리프트 장애인 추락사에 대한 서울시의 공개사과와 장애인이동권 확보에 대한 근본적 개선을 촉구하고 있다.

장애인이동권연대는 지난해 2월 오이도역 리프트추락참사 이후 2년여동안 정부에게 대해 장애인들이 비장애인들과 마찬가지로 ‘마음놓고’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지속적으로 요구해왔다. 이들은 그동안 지하철선로, 시내버스 점거와 함께 서울시청의 구내식당 점거농성을 펼쳐왔다.

하지만 서울시는 귀를 막고 있고 경찰 역시 이들에 대해 무력진압으로 일관했다. 지난 7월 말 광화문 역에서 천막농성을 시도하던 장애인이동권연대 38여명도 경찰에 의해 일체 강제연행 당하여 48시간만에 풀려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부상자가 나온 것은 당연했다. 당시 경찰들은 휠체어에 앉아있던 장애인들의 사지를 붙들고 버스로 ‘실어날랐다’.

“서울시 공개사과 촉구 및 장애인 이동권 쟁취를 위한 온라인 행동 참여”

목숨을 담보로 한 단식농성에 돌입한 장애인이동권연대는 “서울시의 공개사과 없이는 결코 살아서 나가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이들은 단식농성을 하는 동안에 매일 늦은 2시와 7시, 두 차례에 걸쳐 시청 앞에서 1인 시위와 선전전을 병행하고 있다.

“가장 기본적인 권리다”

▲ 박경석 대표

이곳에서 만난 박경석(노들장애인야학 교장)대표의 얼굴은 예전에 비해 훨씬 수척했다. 시청 점거농성에 이어 인권위를 점거하게 된 배경에 대해 그는 “우리는 인간으로서 자유롭게 움직일 권리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가장 기본적인 권리다. 하지만 사회는 시혜와 동정의 차원에서 장애인문제를 다루려 한다. 지금 사안에 대해 서울시와 정부가 일차적으로 대답해야 하지만 인권위 역시 서울시와 우리가 대화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까지 이명박 서울시장은 “파업중인 노동자나 농성중인 상대와는 대화를 하지 않기로 결정했”으며 발산역 사건에 대해서도 “어떠한 잘못도, 책임도 없다”는 입장이다. 이날 서울시의 한 관계자는 “사고 자체가 본인의 부주의로 발생했다는 검찰의 조사결과가 나온만큼 공개사과는 어렵지 않겠느냐”며 ‘법대로’식의 말만 되풀이 할 뿐이었다. 지난 오이도역 사건 이후 서울시에서 잠정적으로 약속한 ‘2006년도까지 엘리베이터 설치’는 “계획안만 나와있는 상태”라는 것이 서울시의 답변이다.

▲ 농성장 벽에 붙어있는 포스터들. 장애인들의 바램은 큰 것이 아니다.

현재 전국 338개 지하철 역사 중 휠체어리프트가 설치된 곳은 168곳이다. 하지만 휠체어리프트는 고장이 잦고 심지어 전동 휠체어보다 좁기까지 해서 언제 떨어질지 몰라 긴장속에서 ‘곡예’를 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이용자들의 공통적인 지적이다. 사고가 발생한 발산역 리프트의 경우 사고 전 4개월 동안 30번의 고장이 있었다. 장애인이동권연대가 엘리베이터의 시급한 설치를 요구하는 까닭이다. 그들의 목숨 역시 비장애인들과 마찬가지로 두 개가 아니기 때문이다. 현재 엘리베이터 설치된 곳은 78곳에 불과하다.

장애인들이 자유롭게 움직이는 것조차 어려운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무엇일까. 박경석 대표는 “장애인들을 위해 돈을 쓰려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장애인들은 사회적 소수라며 우리들만을 위해 엘리베이터나 저상버스(출입구의 문턱이 낮아 휠체어가 올라갈 수 있는 발판이 설치가능한 버스)에 돈을 쓰는 것을 망설인다. 하지만 결코 장애인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노인, 임산부, 아동등 이동약자들을 위한 장치다.”라며 “보편적인 사람들을 위한 것인데도 불구하고 평등한 사회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차가 너무 크다”고 안타까워했다.

현재 서울시에서는 장애인용순환버스 10여대 정도를 운행하고 있다. 하지만 장애인주거지역과 복지관, 관공서 사이만 운행하는 이상한 버스다. 박경석 대표는 “장애인들이 복지관과 관공서만 다니는 사람들인가”라며 이 버스 역시 시혜차원의 생색내기용이라고 비난했다. 우리나라에는 저상버스가 아예없다.

외국의 경우 1980년대부터 저상버스가 보편화되었지만 한국 사회에서는 아직 ‘그림의 떡’이다. 97년 서울시가 저상버스 도입을 약속했지만 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감감 무소식. 저상버스도입을위한추진본부(가칭) 설치도 장애인이동권연대의 요구사항 중 하나이다. 박경석 대표는 “9년마다 폐차하는 버스들을 저상버스로 만드는 구체적인 실천조항들이 나와야 한다”고 말한다.

한편, 이날 정오께는 심재철(한나라당)의원이 농성장을 방문했다. 심의원은 “농성단이 주장하는 요구사항들과 문제들을 검토한 후 서울시에 건의할 예정”이라며 농성장을 둘러보았다.

가뜩이나 몸도 불편한 장애인들은 지금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다. 이들의 바람은 큰 것이 아니다. 그저 ‘사람답게 사는 것’이다. 서울시는 당장 귀를 열어야 할 것이다.

김선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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