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위원회 빈곤정책 2003-03-11   1332

“누구를 위한 주거환경개선이냐”

거리노숙 234일을 맞는 대전 용두동 철거민들의 고난









▲용두동 주민들이 시청 앞에 모여 있다. 이들은 저녁이 되면 다시 중구청 앞에서 비닐천막을 치고 노숙을 한다. 사진 장흥배.


3월 7일 오후 3시 대전광역시청 앞. 삼삼오오 모여 추위와 싸우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첫눈에도 ‘힘겨운 사람들’이었다. 뒤에서 “안녕하십니까?” 하고 다가서자 한 할머니가 화들짝 놀랐다. 할머니는 “아이구 깜짝이야. 중구청 직원일 줄 알았네.” 하면서 가슴을 쓸어 내린다.

이날로서 234일을 맞는 대전 용두동 주민들의 거리노숙 싸움은 보도에 나부끼는 ‘대전지역 철거민공동대책위원회’의 깃발처럼 비바람을 맞고 있었다. 주거환경개선사업이라는 합법의 이름으로 거리로 내쫓긴 이들은 지금까지 스티로폴, 라면박스, 비닐천막 등으로 생존을 유지해왔다.

중구청과 시청을 오가는 그 힘겨운 생존마저도 관계당국이 가장 선호하는 수사 ‘합법적으로’는 존재할 수 없었다. 지난 2월 27일 중구청 앞에 철거민들의 마지막 은신처였던 움막이 철거된 이후 중구청 직원들의 ‘합법적인’ 비닐천막 제거는 지금도 매일 반복되고 있다. 철거부터 지금까지 관계당국의 ‘합법’은 주민들의 생존 자체를 불법으로 몰고 있는 것이다.

“내가 이북 출신인데, 피난 때도 이런 고생은 안했어”

234일의 거리노숙은 평균 연령이 60대 이상인 철거민들의 건강을 온전케 놔두질 않았다. 기자의 인사에 깜짝 놀랐던 박상순(여.54세) 씨는 이렇게 말했다.

“여기 있는 사람들 전부 병원 다니지. 스티로폴 한 장 깔고 자는데 병이 안나고 배겨? 비닐천막 걷어내는 중구청 직원들이 깡패보다 더 폭력적이야. 그놈들한테 두들겨 맞아서 병원 다니는 사람도 많어.”

2월 27일 경찰 350명과 중구청 직원 300여명이 총 동원된 움막 철거는 이에 맞서는 주민들의 저항과 함께 순식간에 중구청 앞을 아수라장으로 만들며 15분만에 끝났다. 이 과정에서 경찰 연행에 저항하다 김화순 할머니는 허리를 다쳤다. 김동중 대전지역 철거민 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 위원장은 “경찰들은 허리 통증으로 시멘트바닥에 누워있는 김화순 할머니를 4시간 동안 방치하면서 조사를 강행했다”고 울분을 토했다. 김화순 할머니는 그 때 이후 더 이상 노숙투쟁에 나오지 못하고 결혼한 딸집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이정자(여, 73세) 할머니와 이판석(여, 63세) 할머니도 위장병과 관절염을 몸에 달고 산다. ‘식사는 어떻게 해결하고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판순(여, 66세) 씨는 “빈들교회 목사님이 매일 식사를 가져다주는데, 미안한 마음을 말로 다 못하겠네요” 라고 말한다.

주민들이 이동수단으로 이용하는 버스 안을 들여다보니 이불과 그릇, 컵라면박스 등으로 가득했다.

기자 주변을 떠나지 못하고 하늘만 올려다보고 있는 임명산(남, 77세) 할아버지에게 다가가 ‘당국에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이북 출신의 임명산 할아버지. 철거 전에는 운전을 했었다. 사진 장흥배.


“살게만 해달라는 거지. 지금 당국이 공탁 걸어놓은 보상가로는 새로 생길 건물에 들어갈 수도 없고, 어디 가서 살 수도 없어. 이렇게 엉터리같은 보상가를 일방적으로 결정해 놓고, 이게 민주주의 나라 맞어? 내가 이북 출신이야. 사변 때 피난 다니면서도 이런 고생은 안 했어.”

주민 5% 입주율도 보장 못한 보상가

424가구, 744세대 주민들이 살았던 용두동 주거환경개선사업은 1994년 지구지정이 이뤄지고, 2000년 사업시행과 보상가가 책정되었다. 대전 중구청은 시행관청으로, 주택공사는 시행업자로, 그리고 시청은 최종 승인기관으로 이 사업에 참여했다.

용두동 주거환경개선사업은 절차적 필수 요건인 주민 3분의 2 이상 동의 과정부터 꼬여있다. 조아연 공대위 주민대표는 “동의서를 받아내기 위해 온갖 거짓말을 동원했고, 주거 사실을 확인하는 증명서가 사업동의서로 둔갑했다”고 주장했다. 주민들은 동의서에 대해 문제제기를 했지만 중구청의 답변은 “정당한 방법으로 주민 74%의 동의를 받았다”는 것.

그러나 무엇보다 철거민들을 분노케 한 것은 주택공사의 보상가격 책정이다. 용두동은 대전의 구시가지에 속한 노른자위 지역으로 보상 당시 인근지역의 토지가격은 평당 400∼600만원 선이었다. 그러나 주민들에게 책정된 보상가격은 지작물(건물) 가격을 합해 평당 100만원 대. 4배에서 6배의 차이가 난 것이다.

김동중 위원장은 “주거환경개선사업으로 인한 주민들의 평균 입주율이 10%인데, 용두동 424가구 중에서 새로운 건물에 입주할 만한 가구는 50가구도 채 안된다”고 말했다. 입주율이 5% 안팎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이렇게 책정된 보상가에 대해 강현용 중구청 도시개발과 계장은 “보상은 사업 시행자인 주택공사가 공인기관의 감정평가를 받아 한 일로 우리와는 무관하다”고 말했다. 주민들이 지금까지 주택공사로부터 들은 답변 역시 “공인기관의 평가대로 보상가를 책정했으니, 알아서 하라”는 것이다. 협상과정에서 주택공사의 한 직원은 “돈이 부족하면 산골에 가서 살든지, 오지에서 살든지 하면 되지 않느냐?”는 말을 해 주민들의 분노를 샀다.

보상을 거부하는 주민들에 대해 당국은 보상가를 법원에 공탁하고, 강제철거에 들어갔다. 철거는 지난해 3월과 7월 3차례에 걸쳐 진행됐다. 350명의 용역철거반이 동원된 강제철거는 주민의 저항과 철거반의 무차별 폭력으로 말 그대로 처참했다. 모든 것을 뺏긴 주민들이 대전지역 26개 시민사회단체와 함께 공대위를 구성하고, 중구청 앞 노숙투쟁에 들어간 것이 그때부터다.

용두동 주민들의 싸움이 대전은 물론 전국적으로 알려지면서 관계당국도 어쩔 수 없이 공대위와 협상에 임했다. 그 결과 지난해 9월 사업지구 현장에 가수용단지 설치가 합의되기도 했지만, 이 역시 입장 차이로 무산되고 말았다.

김동중 위원장은 “남은 주민의 절반도 안되는 18명을 수용할 수 있는 6M 길이의 컨테이너 3개를 갖다놓고 가수용단지를 설치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다른 지역과 비슷한 수준의 단지를 요구했을 뿐이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강현용 계장은 “협상이라는 것은 하나라도 해결해나가야 되는데, 모든 것을 일괄타결하려고 한다면 협상이 어렵다”면서 협상 결렬의 책임이 공대위의 강경일변도 전략임을 주장했다.

가수용단지 설치가 무산된 이후 중구청은 임대아파트를 제안했다. 조아연 대표는 “보증금 2000만원에 사용료 15만원, 관리비는 별도의 임대아파트로 들어가라고 한다. 우리가 지금 왜 여기서 싸우고 있는 줄 모른단 말인가?”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지난해 42가구로 출발했던 거리노숙 투쟁은 생활고와 병환에 지쳐 9가구가 나가고 지금은 33가구가 남았다. 남은 주민들에 대해 강현용 계장은 이렇게 말했다.

“774명 중 24명이 남았다. 잠자는 사람들은 15명으로 노인네들만 고생시키고 있다. 언론사에서 자꾸 떠드니까 법에 안맞는 것도 버티면 된다는 기대심리가 생긴 것이다. 어떻게 24명만 불만이 있을 수 있나?”

그러면서 강 계장은 “(사업지구 내에) 국공유지가 8억원 정도 되는데, 그 돈을 하나도 수입으로 잡지 않고 주민들에게 주고, 보상가도 조금 인상해 보겠다”고 말했다. 시종일관 합법을 강조한 강 계장은 모든 것을 ‘합법적으로’ 추진해온 중구청이 이런 협상안을 제시하는 이유는 밝히지 않았다.

보상 문제에서 인권과 제도개선으로







▲주민들과 234일의 거리노숙을 함께한 ‘용두동 철거민대책위원회’ 깃발. 사진 장흥배.


모든 철거민 투쟁이 그렇듯이 용두동 주민들의 싸움도 보상의 문제로 시작됐다. 김동중 위원장은 “사실 철거민 싸움은 보상가 싸움으로 시작해 언제나 극소수 남은 사람들에게 돈 주는 방식으로 해결됐다”면서 “그러나 용두동 싸움의 과정에서 주민들은 주거환경개선사업이라는 제도 자체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게 됐다”고 밝혔다.

현재 주민들이 내걸고 있는 요구조건은 “주거환경개선사업의 취지에 따라 주민에게 실평수만큼의 아파트를 분양하고, 추가 평수는 건설원가대로 분양하라는 것”이 핵심이다. 김동중 위원장은 “이렇게해도 예상되는 정착률은 50% 수준이다”고 주장한다.

용두동 주민들의 싸움은 실제로 대전지역의 다른 20여 주거환경개선사업에도 영향을 미쳤다. 중구청은 일부 사업을 현지개량 방식으로 전환하거나, 사업 시행을 예정보다 수년 연기하고 있다. 이는 당국이 용두동 문제를 해결하기 전에는 다른 사업을 실시하기 어렵다는 판단과 함께, 용두동 주민들의 싸움을 통해 다른 지역 주민들이 공사 시행당국의 주장을 신뢰하지 않게 된 까닭이 크다.

한 할머니는 “동구 천동, 신흥동 사람들이 찾아와서 ‘용두동 무너지면 다 무너진다’는 얘기를 하고 간다”고 말했다. 235일의 거리노숙 투쟁을 통해 용두동 주민들은 자신들의 싸움이 자신들만의 것이 아님을, 철거민의 문제가 단지 보상가가 아니라 인권의 문제임을 고단한 몸으로 익혀가고 있었다. 중구청에 대한 요구조건이 보상 차원을 넘어 정주권 보장으로 넘어간 것이다.

용두동 주민들은 10일부터 상경 투쟁을 준비하고 있다. 청와대와 건교부 앞 1인 시위, 시민사회단체가 참여하는 전국토론회 개최 등 다양한 싸움을 전개할 계획이다. 용두동 주민들의 234일 거리노숙은 철거민 투쟁의 역사에 깃발로 남을 것이지만, 그 깃발은 국가와 시민사회의 부끄러움의 표상은 아닐까.
장흥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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