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위원회 복지국가 2010-11-25   2441

[복지국가 강좌후기⑤] 건강보장의 정치경제학 : 무상의료에서 의료민영화까지


1977년 처음으로 500인 이상을 고용하는 대기업에서 먼저 실시되었던 의료보험제도는 전체 인구의 고작 8.6%만 혜택을 받았다. 병원 한 번 가려면 대기업 다니는 아버지를 둔 옆집에서 보험증을 빌려 와 가짜 이름을 대고 가야만 했다는 이야기가 나올 만큼 대부분의 국민들은 의료서비스에서 소외되었다.      

하지만 1987년 민주항쟁을 거치면서 시민사회가 성장하고 진보세력의 투쟁으로 1989년 ‘전 국민 의료보험’이 달성되었다. 90년대 내내 ‘통합의료보험’을 위한 10년간의 기나긴 투쟁의 결과, 결국 2000년 7월에 ‘국민건강보험’이 출범하게 된다. 그 후에도 계속된 시민사회의 노력으로 지금의 약 60%정도의 보장성을 확보하게 되었다.


별 생각 없이 다달이 내고 있던 1인당 3만 3000원(가구 당 8만 2000원)의 국민건강보험료는 시민사회의 피땀 어린 투쟁의 열매였던 것이다. 이 사실을 몰랐던 나는 건강보험료 올린다는 소리에 정부를 믿느니 친절한 보험설계사를 믿겠다고 생각해왔다. 신자유주의 흐름을 타고 ‘정부’의 역할을 줄이고 ‘시장’의 영역을 넓히는 분위기 속에 공공의료는 제자리걸음인 반면, 민간의료는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선택의 여지가 없는데도 ‘선택 진료’라며 ‘비급여’, 6인용 병실에 자리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상급병실에 갔더니 또 ‘비급여’, 의료 서비스 하나하나에 가격을 매긴 ‘행위별수가제’로 골반수술이나 뇌수술에나 적합한 최첨단의 로봇수술로 당신의 생명을 지켜줄 거라는 의사의 일방적인 권유까지, ‘비급여’ 항목은 지속적으로 늘어났다.

그래서 병원비에 간병까지 맡아야만 하는 나머지 가족들까지도 점점 골병이 들고, 그런 가족 앞에서 고개 들지 못하던 환자는 마침내 병원의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자의 퇴원서를 쓰고 자신의 집에 도착하기도 전에 구급차에서 숨을 거두기도 한다. 이것은 어떤 콩가루 집안의 얘기가 아니라 언제 닥칠지 모를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기에 사람들은 민간의료보험에 가입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사전에 약정된 보험금을 지급받는 ‘정액’형 민간의료보험 뿐이었지만, 보험업법이 개정되어 본인부담금의 크기에 비례해서 보험금을 지급받는 ‘실손’형 민간의료보험이 허용되었다. 그리고 실손형 보험은 현재 민간의료보험 시장 확대에 가장 큰 역할을 하며 국민건강보험의 위협요소이자, 의료민영화의 기수로 자리 잡게 되었다.



그렇게 우리는 1인당 국민건강보험료 33,000원을 내고도 불안해서 민간 보험료로 120,000원 이상을 이중부담하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다 보장받을 수 있을까? 겉으로는 보험사기방지라면서 속으로는 사람들 분류해서 받으려는 속셈으로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질병정보까지 넘겨달라는 보험사를 믿을 수 있을까? 2008년을 기준으로 의료비의 총액은 15조 5천억 원이고 그 중 민간의료보험료는 12조원이라고 한다. 민간의료보험료로 지출 될 12조원을 건강보험재정으로 확충할 수 있다면, 본인부담상한제를 연간 100만원이 넘지 않도록 할 수 있고, 환자 간병, 노인 틀니를 무상으로 할 수 있다. 또 최하위5%는 보험료 면제, 하위 15%까지는 무이자로 보험료를 대출할 수 있고 중소 영세사업장에도 사용자 부담 보험료 지원 등 사실상의 무상의료가 가능하다.  


그렇다면 12조원을 어떻게 확충할 수 있을까? 이 부분이 제일 궁금했는데, 우리에겐 훌륭한 국민건강보험법이 있었다. 기업은 직장가입자 보험료의 절반을, 정부는 전체 보험료수입액의 20%를 지원해야하고, 국민 부담 보험료가 올라가면 기업과 국가의 부담금도 자동 증액된다고 하니 국민들 1인당 1만 1천원 더 내서 6.2조원 마련하면, 기업은 3.6조원, 국가는 2.7조원 증액되고 결국 건강보험 보장률 90%가 가능해지는 12조원이 마련된다.    


그동안 침묵을 지키던 정부와 기업이 미워진다. 그래서 더욱 ‘국민건강보험 하나로’의 풀뿌리 시민운동이 참 값지게 느껴진다. 위에서 아래로가 아닌 시민 하나하나의 힘을 모아 무상의료에서 나아가 복지국가로의 발판을 마련하겠다는 전략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나도 일단 가족과 친구들에게 얘기를 꺼내보려고 한다. 이건 꿈이 아니라, 우리가 만들어야 할 현실이라고.


* 작성 : 김은경 (복지국가 강좌 수강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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