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위원회 칼럼(sw) 2007-07-03   770

<안국동窓> 국민연금개혁, 문제는 정치야!

노무현 정부 욕심으로 흥정거리된 국민연금

최근에 급박하게 진행되는 연금개혁 상황은 걱정스럽다. 이에 대해 두 가지 점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하나는 연금개혁안 자체에 대한 것이며, 다른 하나는 연금개혁의 정치과정에 관한 것이다.

삭감계획은 구체적인데 보충계획은 매우 불안정

먼저 연금개혁 내용이 가지는 문제점을 살펴보자.

국회 본회의 통과를 눈앞에 둔 국민연금 개혁안은 한국의 공적 노후소득보장 안전망을 얕고 넓게 깔아주는 방안이다. 국민연금의 ‘적절한(adequate) 수준의 보장 기능’을 포기하면서 중간층 이상은 퇴직연금, 개인연금 등의 사적연금을 통해 낮은 국민연금을 보완하도록 유도하고, 낮은 소득계층은 기초연금을 통해 국민연금을 어느 정도 보완하는 것을 의도하고 있다.

국민연금(소득비례연금)에서 평균소득 40년 가입자 기준 소득대체율 60%였던 급여수준은 당장 내년에 50%로, 이후부터 2028년까지 0.5%씩 낮춰 최종적으로 2028년에 40%로 조정되도록 하고 있다. 기초노령연금 수준은 A값(국민연금가입자 평균 월소득액)의 5%에서 2028년까지 무려 20년에 걸쳐 5% 포인트 올라가도록 되어 있다.

즉 현재보다 국민연금 급여를 1/3(소득계층에 따라 1/3 이상)로 낮추되, 앞으로도 꽤 오래 동안 낮은 수준에 머무를 기초연금을 부가하는 것이 열린우리당, 통합민주당, 한나라당이 합의한 방안이다.

일례로 월소득 180만 원 근로자가 국민연금에 30년 가입하는 상황을 가정한다면 약 90만원 정도였던 연금급여액은 58만 원에 불과하게 된다(2038년 수급 가정, 현재가치 기준). 이 노인이 하위소득자 60%에 속해 기초연금을 받는 경우, 전체 연금액은 74만원이 되지만, 기초연금을 받지 못하는 경우에 전체 연금액은 58만원이 된다. 어느 경우든 연금급여의 하락은 명확하다.

문제는 국민연금의 대폭적인 삭감 계획은 구체적이며 사실상 실행에 별다른 장애가 없지만, 이를 보완할 기초노령연금의 급여상향 계획, 재원조달 방안은 매우 불안정하다는 것이다.

정치인들의 2028년 약속을 믿을 수 있을까

이합집산을 거듭하는 이들 정치인들에게 2028년은 먼 미래이며 기초노령연금 10%를 지급하겠다는 약속은 별다른 구속력을 가지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소위 ‘연금제도개선위원회’를 만들어 국민연금이 아닌, 기초노령연금의 재원마련 대책과 급여조정 시기를 다루자고 합의하였는데 이는 정부가 재정부담 등을 근거로 기초노령연금 지급범위와 지급수준을 낮추는 공식적인 근거를 제공하는 기능을 할 것으로 보인다. 연금제도개선위원회의 논의 범위에 국민연금의 삭감 폭과 삭감 속도는 제외되어 있다.

다시 말하면 주요 정당들이 합의한 국민연금 개혁안은 낮은 수준의 기초연금과 낮은 수준의 국민연금(소득비례연금)이 결합된 안이며, 이 중 국민연금의 삭감계획은 충격적일 정도로 큰 폭이며 구체적인데 반해 이를 보완할 기초연금 확충 및 재정계획은 모호하다. 결국 기초연금이 국민연금 삭감을 충분히 보완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재정안정성’을 지고의 목적으로 하여 한국 연금제도 개혁을 주도한 정부와 주류 연금학자들이 여태까지 보인 행태로 미루어 본다면 소위 ‘연금제도 개선위원회’는 오히려 재정부담을 근거로 기초연금 수준 인상을 가능한 한 미룰 가능성이 높다. 어떠한 복잡한 방식으로 이야기 하더라도 현 연금개혁안의 핵심은 이미 있었던 교통수당, 경로연금 등을 약간 확대시키는 대신에 정부가 오랜 동안 추구해 온 대폭적인 국민연금 삭감을 달성하는 것이다.

따라서 국민연금 급여가 줄더라도 기초노령연금 도입으로 노인빈곤 문제가 상당히 완화될 것이라는 정부의 전망은 근거가 없다. 점차 주요한 노후소득보장원이 되고 있는 국민연금 급여를 용돈연금 수준으로 상당히 줄인 채, 기초보장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기초연금으로 과연 노인빈곤을 줄일 수 있을까?

국가부담은 가볍게 가볍게, 개인부담은 무겁게 무겁게

한편 국민연금 소득의 대폭적인 하락을 겪을 중상위 소득계층은 지금보다 사연금제도에 훨씬 더 많이 의존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퇴직금이 자영업자에게는 해당사항이 아닌 데에다 근로자의 절반 정도만 포괄하는 상황, 그나마 중간정산제가 일반화되고 일시금이 아닌 연금형태의 퇴직연금은 매우 드문 상황(퇴직금의 퇴직연금으로의 전환률은 5%가 채 안 된다)에서 이들 계층은 더욱 더 금융회사와 은행이 판매하는 개인연금에 의지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즉 이번 개혁안은 중상위계층을 공적보장체계에서 적극적으로 내몰고, 지금보다 사연금제도가 훨씬 큰 역할을 하도록 하는 방향을 지향하고 있다. 공적노후보장제도의 연대적 기능, 사회 통합기능의 약화는 물론 노후보장에 대한 국가의 책임은 훨씬 가벼워진 대신 금융시장의 변동과 금융회사의 이윤을 위한 개인의 부담은 더욱 커진다.

노무현 정부 욕심으로 정치적 흥정거리된 국민연금개혁

또 이번 연금개혁의 정치과정을 지켜보며 과연 한국 복지정치에서 민주주의 원칙이 작동하고 있는가라는 근본적인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2007년 현재 한국에서 진행되고는 국민연금 개혁의 정치는 철저히 정당간 타협과 거래를 중심으로 한다. 그 동안 주요 원내정당들은 연금재정과 노후보장 문제에 대해 진지한 고려를 하기보다는 연금과 관련된 대선 이후의 정치적 부담을 저울질하기에 바쁜 모습을 보였다. 과연 기초연금 대상층이 전체노인이어야 할지, 절반이어야 할지 혹은 70%이어야 할지의 문제가, 그리고 국민연금 기준 급여 수준이 40%여야 할지 50%여야 할지의 문제가 물건값 흥정하는 것 마냥 정치적 흥정거리가 되어야 하는 것인가? 기초연금 보장 수준을 A값의 5%로 할지, 10%로 할지, 15%로 할지, 그렇게 5% 단위로 끊어서 거래할 사안인가?

한나라당, 열린우리당, 통합민주당의 흥정의 결과로 마련된 타협안은 현재 연금보험료율만 고정시킨다면 어떤 선택을 해도 당장 유권자들을 자극하지 않으므로 정치적으로 크게 타격받을 것이 없다는 정략적 계산의 산물이다.

게다가 국민연금법에 대한 정치적 거래는 국민연금법 내용 안에서의 거래로 끝나지 않고, 사학법 등과 함께 패키지(?)로 이루어지고 있다. 노무현 정부는 재임기간 개혁의 성과로 국민연금 개혁을 확보하고자 하는 욕심에 사학법 수정까지 감행하고 있다. 반면에 한국 연금정치에서 노동조합을 비롯한 시민사회는 의도적으로 배제되었다. 소위 ‘참여’를 표방한 정부는 정당간 거래에 매진한 채 시민사회의 참여는 철저하게 차단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원내정당들의 이번 합의 절차는 한편으로는 민의의 체화와 전달이라는 정당의 역할을 포기하였다는 점에서 민주주의의 부재로, 다른 한편으로는 개혁안이 노인빈곤에 미치는 영향이나 연기금과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아무런 예측과 평가가 없다는 점에서 전문적 검토의 부재로 특징지을 수 있다.

여론조작정치로 유명한 베를루스코니도 못한 일을…

이렇게 큰 폭의 연금개혁을 실시하면서 어떻게 그 영향을 전문적으로 검토하고 민의를 수렴하는 절차를 빠뜨릴 수 있을까? 정치적 선동주의와 여론조작정치로 유명한 이탈리아의 베를루스코니도 지난 2003년 연금개혁을 위해 국민투표를 거쳤다. 국민투표를 거치지 않는 다른 나라의 경우에도 정부가 가입자, 수급자 등을 대표하는 조직과 사회적 대화를 거쳐 개혁안을 결정하는 것이 통상적인 예이다. 사회적 대화가 아닌 정당정치가 중심이 되었다고 할지라도 정당간 합의를 위한 ‘거래’는 연금제도 전문가의 자문을 거치고 합의안에 대한 시민사회단체들의 의견을 수렴한다. 지금 진행되는 것처럼 어제 합의하고 오늘 표결을 통해 모든 것을 마무리 짓는 방식은 유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물론 정부는 연금개혁이 오랫동안 국회에서 난항을 겪은 사안으로 논의시간이 짧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그동안은 연금개혁에 대해 논의하기 보다는 정당들끼리 정세에 따라 가끔 거래와 타협을 하는 시간이었다. 그동안 정부와 정당들이 국민들과 연금개혁을 위해 어떤 소통을 했으며, 민의를 수렴하기 위해 무엇을 했는가?

대표성과 참여가 없는 왜곡된 연금정치 상황, 정부의 일방주의로 점철된 이러한 일그러진 연금개혁의 정치상황은 ‘대안’에 대한 진지한 사고와 사회적 공론화를 차단했다. 정부에게 노조와 시민사회단체, 이해관계 단체 대표자들은 정책형성 및 집행의 파트너가 아니라 정치테크닉을 통해 극복해야 할 장애물에 다름 아니다. 정부와 일부 정당이 사회보장제도 개혁에 관한 논의를 독점하는 것은 민주주의라는 가치에 비춰볼 때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다. 또 이는 연금개혁에 대한 다양한 관점의 검토를 어렵게 하여 연금개혁 결과를 편향되게 만든다.

연금개혁의 정치적 중심이동을 도모한다는 의미에서 연금개혁의 정치에 사회적 대화를 복원시키는 것이 필요하다.(국회특위와 같은 형식은 정당이 논의의 중심을 장악하고 시민사회단체는 들러리 역할을 하도록 하는 결과를 낳을 가능성이 높아 곤란하다.) 연금개혁의 정치과정에서 정부와 정당의 역할은 지금보다 축소되어야 한다. 연금개혁이 전국민의 노후의 삶의 질을 좌우하는 기본적인 문제이기에 이에 관한 의사결정에는 사회적 참여를 핵심으로 하는 민주주의의 복원이 반드시 필요하다.

물론 이러한 연금정치의 전환에 한국 시민사회의 발전수준과 역량에 대한 회의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적어도 연금개혁이 정당간 야합과 거래의 대상이 되는 사태보다 논의가 더디 진전되더라도 차라리 한국 시민사회의 역량 강화와 연금개혁이 함께 진행되는 것이 더 낫다. 이런 의미에서 제대로 된 연금개혁만큼 제대로 된 연금정치의 개혁 또한 필요하다.

* 본 칼럼은 7월 3일자 프레시안(http://www.pressian.com)에 실린 글입니다.

주은선(연금제도정상화 연대회의 정책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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