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02 2002-05-03   517

홀로서기인가, 연대인가


대통령의 아들들이 관련된 부패 사건들로 나라가 시끄럽다. 최근에 제정된 부패방지법이 무색할 지경으로 각종 언론은 하루도 거르지 않고 부패 실상을 토해 내고 있다. 하지만 그 원인을 분석하고 없애기 위한 방안과 대책에 관한 기사는 찾기 어렵다. 부패를 알리는 일에는 열심이지만 그것을 예방하고 없애기 위해서는 별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것이다. 이와 같은 언론은 우리 사회의 허술한 사회복지제도로 고통받는 구성원들의 현실을 알리는 일에는 인색한 편이다. 당연히 사회복지제도의 개선을 위한 방안과 대책에 관련된 기사는 찾아보기 어렵다. 하긴 언론만 탓할 수도 없다. 부패 까발리기에 비해 사회복지 문제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고 심적 부담만 안겨줄 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무리 언론이 부패를 파헤친다고 해도 물질 만능의 가치관이 사회를 지배하는 한, 부패 척결은 기대하기 어렵다. 물질 만능주의 사회에서는 맑은 정신을 가진 사람보다 탁한 정신을 가진 사람일수록 권력에 가까이 가게될 뿐만 아니라 크건 작건 권력을 누리는 자리가 곧 부패를 생산하는 온상이 되기 때문이다. 이는 권력을 누리는 사람들에게 자기 성찰을 요구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는 단계가 지났음을 말해준다.

부패와 방향은 반대이지만 사회복지도 사회를 지배하는 가치관에 의해 영향받는다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다. 더불어 사는 인간성을 갖고 있는가 아닌가가 아니라, 물질 소유 여부에 의해 사회구성원들에 대한 가치 평가가 이루어지고 있는 사회에서 연대 의식은 싹틀 수 없고 따라서 올바른 사회복지제도를 구현하기 어렵다. 제도를 만드는 것은 의식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한 나라의 사회복지제도는 그 사회에 어떤 정신이 지배하는가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한국사회에서 오랜 동안 사회복지의 발전을 가로막아온 것은 경제지상주의였다. 예컨대, 인간적인 노동조건과 환경, 그리고 분배 정의를 요구하는 노동운동을 탄압하기 위해서 7,80년대 내내 동원되었던 것이 “선 경제성장” 논리였다. 생존권과 분배 정의 주장이 성장주의에 밀려났던 것인데, 그런 사회에서 구성원 사이의 연대의식은 기대할 수 없었고 따라서 사회복지도 자리잡기 어려웠다. 그 후에도 “사회”에 대한 “경제”의 우위는 계속되었고, 사회복지 제도에 약간의 진전이 있다고 말해지는 오늘날에도 김대중 정권의 “생산적 복지”는 구호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성장 중심 기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것이다. 특히 신자유주의를 수용하여 경쟁과 효율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 현 상황에서 연대 의식은 설자리가 없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점은 교육 현실에서 발견된다. “국가경쟁력”을 앞세워 “인적유대”보다 “인적자원”을 강조하는 교육의 장은 연대 의식의 불모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어디보다도 연대 의식을 강조해야할 교육이건만 경쟁 의식을 가르치고 부추기는 장이 된지 오래이다. 나라 전체가 사교육의 천국이 되었고, “선행 학습”이니 “영어 조기교육”이니 “자립형 사립고”니 하는 등의 교육 현실은 더불어 사는 사회구성원을 형성하기 위한 교육과는 동떨어져 있는 게 분명하다. 천문학적인 사교육비를 지출하면서도 무료공교육의 확충에 사회적 합의를 모색하는 일은 시도조차 되지 않고 있다.

만 세 살 때 무료공교육을 시작하는 프랑스의 유치학교(“유치원”이 아니다)에서 학생들은 3년 동안 산수나, 글쓰기, 읽기를 전혀 배우지 않는다. 동무들과 함께 말하고 듣고 그림 그리면서 놀뿐이다. 그렇게 어린 나이부터 더불어 사는 인간이 형성된다. 어린 사회구성원들에게 일찍부터 경쟁에서 승리하라고 부추기면서 각종 과외를 시키고 심지어는 영어를 잘하기 위해 혀를 늘이는 수술을 하는 사회와 서글픈 대조를 이룬다. 이 차이는 연대 의식을 가진 개인들과, 이기주의로 무장한 집단 속의 개인들의 차이로 나아가게 한다. 프랑스의 사회복지 제도가 비교적 잘 되어 있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소득이 높은 데 있는 게 아니라 인구의 65% 이상이 자신의 소득의 일부로 가난한 사람의 복지를 위해 사용하는 것에 동의한다는 점에 있다. 이에 비하면, 의약분업에서 나타난 집단이기주의나 의료 통합에 관련되어 표출된 집단이기주의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 사회는 각 개인이 자신의 이기주의를 집단이기주의에 의탁하는 사회인지 모른다. 이것이 한국사회의 패거리주의와 무관하지 않은 게 아닐까.

어쩌면 우리의 허술하기 짝이 없는 사회복지제도를 비판하고 있는 우리 자신도 사회복지에 관한 정신적 결핍증을 앓고 있는지 모른다. 의식으로는 연대 의식을 강조하기도 하지만 일상을 지배하는 무의식에 연대 의식이 담겨있는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그만큼 교육 과정과 사회 환경은 구성원들에게 “홀로 서기”인가 “연대인가”를 결정케 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 되는 것이다.


홍세화(한겨레신문사 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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