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03 2003-03-10   1533

본인부담총액상한제의 필요성과 구상

건강할 권리와 본인부담

건강할 권리는 모든 국민이 보편적으로 누려야 할 기본권에 해당한다. 그러나 현실은 사회경제적 수준에 따라 건강할 권리가 다르게 적용됨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특히 IMF 이후 소득의 집중 현상이 심화되면서 그러한 경향이 강화되고 있다. 손미아 교수의 연구에 의하면 1993-1997년 사이의 사회계급간 건강수준의 차이가 1970년대 영국의 사회계급간 건강수준의 차이보다 더 큰 것으로 보고하고 있다. 더욱이 이러한 건강수준의 불평등은 다시 빈곤의 악순환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큰 문제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악순환을 끊을 수 있는 주요한 고리 중 하나가 의료이용의 문턱을 낮추는 사회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의료(건강)보험의 도입이다. 그런데 제3자 지불방식의 의료보험은 의료이용자가 직접적인 부담으로부터 자유롭기 때문에 의료비용을 덜 의식하고 의료서비스를 남용할 가능성이 존재한다. 이러한 의료이용자의 과다한 서비스 이용을 억제하기 위해 제안된 것이 본인부담제도이다.

그런데 도덕적 해이에 의한 서비스 남용을 막는다는 취지로 본인부담제도가 도입되었지만, 실제로 그러한 효과보다 본인부담 수준이 높아져서 의료 이용의 접근성에 문제가 발생하는 등 그 부작용이 훨씬 크다는 점이다. 그 과정에서 개인의 건강할 권리가 심각하게 침해받는 경우가 많다. 또한 본인부담의 증가에 따른 접근성의 장애 정도는 사회계급별로 차별적으로 작용하게 되는데, 저소득층의 경우 필수적인 의료이용 자체가 급속하게 줄어들 가능성이 존재하기 때문에 본인부담제도는 매우 제한적으로 운용되어야 하며, 의료의 문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작동하지 않도록 주의가 요구된다.

의료보험제도를 안정적으로 운용하고 있는 선진외국의 경우도 국민의 권리를 제한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본인부담제도가 제한적으로만 사용되고 있음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더욱이 입원서비스의 경우 선택의 주체가 환자에 있지 않기 때문에 입원서비스에 본인부담을 두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 또한 대부분의 입원서비스가 임상적 특성과 진료의 내용을 볼 때 필수적인 성격의 의료서비스라는 점에서 본인부담제도를 도입하더라도 외래에 국한하여 제한적으로 도입하는 것이 타당하다.

과도한 본인부담과 본인부담총액상한제도의 필요성

우리 나라에서 입원 서비스를 제공받기 위해 공식적으로 본인이 지불해야 하는 부담금을 보면, 건강보험의 경우 급여가 인정되는 진료비의 20% 이상을 본인이 부담해야 할 정도로 본인부담금 수준이 매우 높다. 뿐만 아니라 상급병실료차액, 식대, 지정진료료, MRI검사료, 간병료 등 주요한 서비스 분야가 건강보험의 급여 대상에서 제외되어 있기 때문에 이러한 부분을 모두 포함할 경우 실제 환자 개인이 지불하는 본인부담 수준은 매우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 1998년 의료보험공단에서 실행한 조사를 보더라도 총진료비에서 본인이 부담해야 할 비용 중 공식적인 본인부담금이 46% 정도에 불과할 정도로 비급여의 비율이 높은 실정이다. 이러한 몇 가지 사례만 보더라도 현재 우리 나라에서 운용되고 있는 본인부담제도가 환자의 의료서비스 남용을 방지하기 위해 실시되는 것이 아닌 다른 목적에서 실시되고 있음을 이해할 수 있다.

우리 나라의 건강보험은 질병의 위험으로부터 사회적 보장을 달성하기 보다 그 책임의 일부를 분담한다는 시각이 지배적이고 여전히 질병의 위험으로부터 발생하는 책임의 상당부분을 개인이 져야 한다는 자유주의적 시각이 주요한 흐름으로 자리잡고 있다. 본인부담제도의 경우 이러한 시각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우리 나라의 본인부담제도는 의료서비스 남용을 방지한다는 명분으로 실제는 질병의 위험으로부터 발생하는 사회적 책임을 국민에게 떠넘기기 위한 제도적 장치 또는 기전에 다름 아니다.

그 결과 가계의 구성원 중 한 명이 중한 질병에 걸리게 될 경우 개인 및 가계가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는 경우가 많으며, 다행히 “사랑의 리퀘스트” 등과 같은 도움의 손길을 받는다면 모를까 대부분 가계의 파탄을 경험하거나 직면하게 된다. 본인부담이 너무 많은 경우 건강보험공단에서 그 일부를 보상해주는 제도가 있지만, 공식적인 본인부담에 국한되어 있고, 본인부담금이 30일 동안 120만원을 초과할 경우에 그 초과분의 50%만을 지원하고 있기 때문에 실효성이 있는지조차 의문시될 정도로 보상의 수준이 미약하다. 따라서 질병의 발생으로부터 가계의 파탄을 막기 위해 최소한 본인부담의 상한을 정하여 그 이상에 대해선 건강보험이 보장해주는 제도적 장치가 요구된다.

본인부담총액상한제도의 구상

건강보험에서 보장해주지 못하고 있는 비급여 의료서비스에 지출하고 있는 본인부담이 공식적인 본인부담보다 더 큰 상황에서 공식적인 본인부담만 보전해주는 방식으로는 제대로된 효과를 발휘하기 어렵다. 따라서 본인부담총액상한제도를 도입할 경우 우선적으로 비급여 부분을 모두 진료비에 포함해야 한다. 물론 미용수술 등과 같은 일부 비급여 의료서비스를 모두 포함하기는 어렵겠지만, 질병으로부터 파생한 의료의 필요 부분에 대해선 현 건강보험의 급여 범위를 벗어나더라도 모두 포함해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본인부담총액상한제도를 도입할 경우 지금처럼 본인부담 상한액의 초과분 중 일부만을 보전해주는 방식이 아니라 전체를 보전해주는 방식으로 제도가 운용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일부만 보전될 경우 고액진료비가 들어가는 질병에 걸릴 환자의 경우 가계의 파탄 내지 치료의 중단 등과 같은 동일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본인부담의 상한을 두는 의미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세 번째로 본인부담에 대한 재정적 부담을 느끼는 정도가 소득계층에 따라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본인부담의 상한을 두는 것이 아니라 계층에 따라 접근방식을 다르게 할 필요성도 존재한다. 예를 들어 보험료와 연동하여 본인부담상한을 두는 방법도 고려해볼 수 있다. 보험료를 적게 내는 가입자의 경우 소액의 본인부담도 매우 큰 접근성의 장애로 느낄 수 있기 때문에 본인부담 상한을 낮게 설정하고, 보험료를 많이 내는 가입자의 경우 본인부담에 대한 수용성이 상대적으로 크기 때문에 본인부담 상한을 높게 설정하는 등 가입자의 조건에 따라 차등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질병으로 인하여 발생하는 본인부담을 개인단위로 설정하지 않고 가계 단위 또는 세대 단위로 둘 필요가 있다. 본인부담을 현재와 같이 개인단위로 둘 경우 가계에서 2인 이상 발생하는 본인부담의 경우 그 합이 본인부담 상한을 통과하더라도 개인별로 상한에 이르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고 보상을 받기 어려워질 수 있다는 점에서 세대 단위별 접근이 필요하다.

재정부담과 제도의 도입

2000년 의료보험관리공단에서 발간한 연구보고서에 의하면 개인을 단위로 본인부담총액 상한을 100만으로 설정할 경우 2000년 공단이 추가로 부담해야 할 부담금은 2957억 원 정도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한 세대 단위로 200만원을 본인부담총액상한으로 설정하고 이 초과분 전액을 보상해준다고 했을 때 공단이 추가로 부담해야 될 금액은 1,807억 원 정도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런데 공단의 조사연구가 비급여 의료서비스를 대상에 포함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과소 추계되었을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공단의 연구결과를 토대로 공식적인 본인부담금과 비급여에 따른 본인부담금의 비율이 1:1이라는 가정 하에 재구성해보면, 개인을 단위로 본인부담총액 상한을 100만으로 설정할 경우 2000년 공단이 추가로 부담해야 할 부담금은 9398억 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수가에 따른 영향을 고려하지 않고 2003년까지 자연증가만 일어난다고 가정하더라도 2003년 현재 부담금이 1조 1642억 원 정도인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세대 단위로 200만원을 상한으로 설정한 경우 2000년 현재 6661억 원 정도가 공단이 추가로 부담해야 할 부분이고, 수가에 따른 영향을 고려하지 않고 2003년까지 자연증가만 일어난다고 가정할 때 2003년 현재 부담금이 8252억 원 정도일 것으로 추정된다.

이처럼 본인부담총액상한제도가 도입될 경우 적게는 8000억 원에서 많게는 1조 원 정도의 건강보험의 재정부담이 신규로 발생하기 때문에 건강보험의 재정위기가 이어져 오는 상황에서 제도의 도입 자체가 쉽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본인부담총액상한제도의 도입을 통해 신규 재정부담 이상의 사회적 가치를 창출할 수 있고, 건강에 대한 개인의 권리가 비약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할 제도라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중증도가 높은 환자가 진료비를 감당할 수가 없어서 치료를 일시 중단하거나, 영구적으로 치료를 중지하게 될 경우 질병의 악화로 인하여 더 큰 사회적 비용을 초래할 수 있는데, 만약 본인부담총액상한제도가 도입된다면 이러한 문제를 미연에 예방할 수 있을 것이다.

노무현정부가 등장함에 따라 보건의료의 공공성에 관한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고, 공공의료기관 확대 등 구체적인 정책이 입안되고 있다. 이러한 공공성 강화 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건강보험의 보장성 강화다. 진료비 할인제도라는 오명을 씻고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보호하고 보장하는 제도로 거듭나기 위해선 급여의 대폭적 확대가 요구된다. 가장 우선적으로 수행해야 할 정책과제가 본인부담총액상한제도의 도입이다. 이러한 제도의 도입과 정착은 보건의료에 대한 노무현 정부의 태도와 내용을 평가하는 중요한 시금석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정부의 전향적인 태도 전환이 요구된다.

참고문헌

김용익, 이평수, 조홍준 등. 건강보험 재정설계 연구. 국민의료보험관리공단. 2000.

손미아. 직업, 교육수준 및 물질적 결핍이 사망률에 미치는 영향. 예방의학회지 2002;35(1):76-82

임준 / 한국보건산업진흥원 책임연구원, yim996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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