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위원회 일반(sw) 2003-10-06   1377

보호감호소에서 잃어버린 두 귀

부산참여자치시민연대, 청송감호소 인권보호를 위한 소송제기 승소

2003년 8월 29일 부산참여자치시민연대 사무실, 두 사람이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한 사람은 귀가 들리지 않아 아주 큰 소리로 말하고 있고 다른 한 사람은 종이에 글을 적어가며 조용히 설명하고 있다. 귀가 잘 들리지 않는 사람은 청송보호감호소 수용생활 중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해 청력을 거의 손실한 정민주(가명) 씨다. 이 날은 부산참여자치시민연대가 정민주 씨가 입은 육체적 정신적 고통에 대해 감호소와 대한민국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청구소송 2심에서 일부 승소 판결을 받은 날이었다. 편집자 주

정민주(가명) 씨는 1995년 청송에 있는 목욕탕에 갔다가 열려 있는 옷장에 있는 신용카드와 현금을 훔치다가 현장에서 체포돼 징역 2년형과 보호감호처분을 선고받고 안동교도소에서 2년간 복역한 뒤 1997년 7월 청송제1감호소로 이감됐다.

정민주 씨가 감호소에서 아프기 시작한 것은 1997년 10월부터였다. 세수를 하면서 귀에 물이 들어갔는지 왼쪽 귀가 계속 아파 감호소 의무실에서 처방해 준 약을 복용하기 시작했다. 그 당시 정씨는 사회에 나가서 할 일을 찾기 위해 전기기능사 2급 자격을 취득하기로 하고, 공공직업훈련실에서 실습하던 시기였다. 약을 복용하면서 통증이 조금 괜찮아지는 듯 하더니 1998년 1월에 다시 아프기 시작했다.

정씨는 도저히 참을 수 없어 감호소 내 의무과장에게 진료신청을 했고 의무과장은 “귓속에 솜부스러기가 있어 그것이 움직일 때마다 자극이 되어 통증이 생기는 것 같으니 진통제 주사를 맞고 약을 복용하라”고 했다. 정씨는 “귓속에 들어 있는 솜부스러기를 뽑아내는 치료를 해달라”고 부탁했으나 “이곳에서는 시설이 갖춰져 있지 않으므로 지시대로 따르라”고만 해 계속 약만 복용할 수밖에 없었다.

치료 요구하자 독거사옥에 수용 약을 복용해도 더 이상 진통이 가라앉지 않아 다시 공익의사에게 진료해 줄 것을 요구하자 정씨의 왼쪽 귓속에 핀셋을 넣고 솜부스러기로 보이는 물질을 뽑는 수술을 해주었다.

청송보호감호소의 진료 과오, 악화되는 병세

그러나 정씨는 생살이 찢겨 나가는 고통과 함께 귀에서 많은 양의 피가 쏟아져 나왔고, 공익의사는 “솜이 아니고 살덩어리 아냐?” 하면서 급히 지혈을 시키고 진통제 주사를 놓는 등 응급조치를 해서 한참만에야 출혈을 멈출 수 있게 하였다. 이에 정씨는 정밀검사와 치료를 위해 실무자에게 입원치료를 부탁했으나 치료시설이 갖춰져 있지 않다는 이유로 번번이 거절당했고, 외진 또한 “의무과에도 예산이 없어서 비용을 지원해 줄 수 없다”면서 자비로 치료를 받으라고 하였다. 할 수 없이 정씨는 외진을 받아보기 위하여 공공직업훈련생 과정에서 지급받은 두 달치 훈련비 10만 원을 모아 1998년 4월 안동병원에서 외진을 받은 결과 병명은 좌이화농성만성중이염으로 나왔다.

염증부위가 시신경, 내신경 청각부분에서 생겨났기 때문에 단층촬영(CT)과 하루빨리 수술을 해야 한다는 의사소견이었다. 정씨는 감호소로 돌아와 병원에 입원시켜달라고 요구하였지만 오히려 계속 조르고 따진다는 이유로 독거사동(독거사동은 감호소 내에서도 가장 수용여건이 열악하다)에 수용되면서 증세는 계속 악화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2000년 7월 제2감호소로 이감된 후에는 공장에 나가 일을 하면서 번 돈으로 외래병원으로 외진을 나갔다. “현재 오른쪽 귀는 상고실이 파괴된 상태, 왼쪽 귀는 자가유양 등이 파괴된 상태로 수술을 받아야 하는데 수술이 상당히 지연돼 현재 진주종이 골 왼쪽, 오른쪽, 뼈쪽으로 파고들어 뇌염, 뇌막염, 골뼈 속에 고름 주머니가 생길 수 있으니 하루 빨리 대학병원에서 수술을 해야 한다”는 진단결과가 나왔고, 이 사실을 교도관에게 주지시키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 후에도 정씨의 수술, 외부병원으로의 진료는 번번이 묵살되고 이뤄지지 않았다. 결국 정씨는 감호소에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상태가 악화되어 외래 수술을 받기 위해 2001년 가출소하였다. 출소 후 신발밑창을 생산하는 공장에 취업하여 성실히 살았으나 귀의 통증 때문에 더 이상 근무할 수 없을 정도로 건강상태가 악화되면서 지금은 청각장애 4급 판정을 받은 상태이다. 사회에 나와서도 친인척이 전혀 없어 한국갱생보호소에 거주하면서 결국 시민단체에 도움을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감호소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 진행

지난 2003년 8월 29일. 부산지방법원 민사3부(판사 우성만·노호성·이현곤)는 국가가 정씨에게 500만 원의 손해를 배상하라는 판결을 하였다. 부산지방법원은 판결문에서 “원고의 수술에 필요한 비용은 200만 원으로 국가예산상 큰 부담이 된다고 보기 어려운 데 비해, 감호소측이 두 차례에 걸친 외진 결과 수술적 치료가 필요한 사정이 드러났음에도 원고의 요청을 거부한 채 장기간 약물치료만 계속한 것은 수용자에 대한 적절한 치료를 다한 것으로 볼 수 없고, 원고에 대한 치료의무를 게을리 한 직무집행상의 과실로 원고가 입게 된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기술하였다.

이런 결과를 얻기까지 어려움이 많았다. 2001년 5월 당시 부산참여자치시민연대는 감호소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진행하기로 하고, 관련 자료를 입수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하지만 곧 어려움이 시작되었다.

당시 감호소측에서 수용자인 정씨에게 행했던 진료기록, 투약기록부, 진단서(소견서) 등 소송을 진행하기 위한 기본적인 자료조차 입수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당시 소송을 맡았던 감덕령 부산참여지지시민연대 작은권리찾기운동본부 실행위원장은 “교정시설을 국가보안시설로 규정한 채 사소한 것까지 무조건 공개를 거부하는 교정 당국의 폐쇄적인 태도는 반드시 바뀌어야 합니다. 심지어 당사자가 자신의 정보를 달라고 하는데도 개인 프라이버시 침해 운운하는 것을 보니 기가 막혔습니다. 그야말로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보안사항이 아니면 공개하는 것이 교정 행정의 후진성을 벗어나는 첫걸음이라고 생각합니다”라며 당시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또 감 변호사는 “현재 원고 상태는 청력상실로 인해 도시일용노동자로서의 노동력을 43% 정도 상실한 상태이고, 병원 수술을 받았으나 청력개선의 가능성이 적은 형편임을 고려할 때 500만 원의 위자료는 적은 금액입니다. 하지만 법원이 감호소측의 수용자에 대한 직무집행상의 과실을 일부 인정한 것은 향후 관행화된 인권침해를 방지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상당한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또 이번 판결로 감호소(교도소) 수용자들의 질병에 대한 진료와 적절한 치료에 대해 국가 부담 의무를 명확히 해야 어려움에 직면해 있는 다수의 수용자들에게도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라고 말하며 이번 소송의 의미를 부여했다.

이번 판결이 있은 후 정씨는 작은 기대에 부풀어 있다. 수술은 힘들더라도 보청기는 마련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전히 감호소에 대한 정씨의 화는 풀리지 않은 상태이다. 정씨가 던진 한 마디는 현재 감호행정의 실태를 여실히 반영해준다. “감호소가 ‘흉악범으로부터 사회보호’를 내세우지만 이는 대단히 위험한 발상입니다. 상습범에 대해 ‘가중처벌’이란 제도가 있는데도, 보호감호처분을 내리는 것은 교도행정 자체가 잘못되어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입니다. 또 감호기관이 수형자들을 수용관리하는 곳인 만큼 엄격한 준법기관이어야 하지만 여전히 탈법과 편법이 관행으로 굳어진 채 되풀이되고 있습니다.”

* 이 기사는 월간<참여사회> 10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강석권 부산참여자치시민연대 시민권리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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