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06 2006-10-11   616

‘배타적’ 우리에서 ‘열린’ 우리로

인권대화 ‘국제결혼 이주여성의 한국살이’ 후기

인권대화 ‘국제결혼 이주여성의 한국살이’ 세미나

단일민족이라는 근거 없는 통념이 지배적인 한국사회에 국제결혼이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 특히 결혼 중개사를 통한 한국 농촌 남성과 동남아시아 또는 중국 여성들의 국제결혼 유형이 그 대부분을 차지한다. 이로 인해 결혼 중개 과정에서 드러나는 문제점들과, 국제결혼 가정과 그 자녀들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 등이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다. 우리가 풀어야 할 이러한 과제에 실마리를 제공하고자 한국인권재단은 ‘국제결혼 이주여성의 한국살이’라는 주제로 월례 인권대화를 열었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 8월 31일 오후 2시에 시작해 뜨거운 열기 속에 오후 6시까지 진행된 이번 인권대화는 양영미 한국인권재단 상임이사가 사회를 진행했다. 김민정 이주여성인권연대 정책국장, 고현웅 국제이주기구 서울사무소장, 소라미 아름다운재단 공익변호사그룹 ‘공감’ 변호사의 발제로 이루어졌다. 그리고 결혼 중개사를 통해 결혼한 오기철, 베벌리 엠마퀼링 부부가 인권대화에 직접 참여하여 국제결혼 부부가 겪는 사회적 편견과 불편함에 대해 생생히 전달하였다. 2부 토론회에는 교육인적자원부 정책조정과 임준희 과장, 법무부 체류정책과 이규홍 사무관, 보건복지부 인구여성정책팀 정경덕 사무관, 여성가족부 가족문화팀 조신숙 사무관이 참석하였다.

이주여성이 국제결혼과 한국살이에서 겪는 어려움

첫 번째 발제자로 나선 김민정 이주여성인권연대 정책국장은 한국 남성과 국제결혼을 한 이주여성이 겪는 어려움을 유형화하였다. 우선 이주여성은 가정폭력에 심각하게 노출되어 있으며, 결혼중개사를 통해 거액의 중개료를 지불한 한국 남성측이 이주여성을 하나의 상품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크다고 진단했다. 한 남성은 한 달여 동안 함께 결혼 생활을 한 여성을 중개업자 집으로 돌려보내고 자신이 지불한 중개료를 돌려받고 싶다며 소비자 보호원에 진정서를 제출한 예도 있다고 한다. 잘못된 가부장적 의식은 성관계 강요와 폭력이라는 형태로 표출된다. 그리고 ‘위장 결혼, 돈 벌러 온 여성’이라는 편견과 신뢰 없는 결혼 생활은 이주여성의 여권을 숨기거나 이주여성을 가족은 물론 외부 세계로부터 차단하며, 돈을 주지 않는 등 반인간적 행동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가정 내 문제점들이 ‘이주여성의 가정생활은 의사소통의 어려움, 지지집단(가족, 친구 등)의 부재 등으로 힘의 역학 관계가 기울어진 상태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라고 김민정 정책국장은 진단했다.

김 정책국장의 주장에 따르면 이주여성이 가정 내에서 겪는 어려움 외에도 정부의 지원 정책도 사회적 편견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며, 국제결혼에 관한 편견을 확대·재생산하고 있는듯하다. 국제결혼을 한 가정의 자녀들을 ‘코시안’이라 구분하며 이들이 한국말을 잘 못하고 학습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특별한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일부의 주장은 과학적 통계 자료를 바탕으로 한 것이 아니라 편견에서 비롯된 것이며, 이른바 ‘찾아가는 서비스’라는 정책은 충분히 다문화 감수성 향상 교육과 인권 교육을 이수하지 않은 자원봉사자들이 멘토링을 함으로써 사생활을 침해할 소지가 높다는 입장이다. 무엇보다도 관련 정책들이 시혜적인 차원이 아니라, 이들을 다양화되고 있는 현 사회의 구성원으로써 당연히 누려야 할 기본권리로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제결혼중개시스템의 문제점

두 번째 발제자 고현웅 국제이주기구 서울사무소장은 결혼중개시스템의 문제점을 집중 분석했다. 국제결혼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남성과 여성을 모집하는 과정에서부터 문제가 있다. 한국 남성 고객을 유치하기 위한 현수막에 쓰여진 문구들은 여성의 인권을 상당히 침해한다. 여성들은 농촌 등지에서 모집되어 대도시에서 합숙생활을 하며, 대부분 선택이 될 때까지의 생활비를 충당하지 못해 상당한 빚을 지게 되며, 그 기간 동안 변심하여 도망가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이동의 자유가 제한되기도 한다. ‘선택’될 때까지 ‘관광형 맞선’을 보러 온 남성과 지속적으로 만남을 가지며 성혼하기로 결정된 바로 그 다음날 합방을 한다. 베트남의 경우 호텔 투숙 시 결혼증명서를 제출하여야만 하는데 결혼 전 합방을 강요함으로써 편법을 사용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남성은 상품처럼 수십 명, 수백 명의 여성들 가운데 선택을 하게 되며, 반면 여성들은 최종 선택될 때까지 남성에 대한 정보를 전혀 얻지 못하며, 그 정보 또한 허위일 가능성이 높다. ‘처녀성이나 출산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산부인과 검진이나 합방을 공식적인 중개과정으로 하는 관행은 인권침해적인 요소를 가진다.’ 결국 결혼중개 과정에서 이러한 편법과 인신매매적 속성이 상당히 표출되어 국내 문제일 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이슈가 되고 있다. 이러한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송출 국가와의 긴밀한 협력이 강화되어야 한다. 그리고 국제결혼 이주여성의 증가가 단기적 현상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구조적 변화임을 인식해야 하며, 이에 맞게 법적, 제도적, 사회적, 문화적 개선의 노력이 폭넓게 이루어져야 한다고 고현웅 사무소장은 주장했다.

이주여성의 인권과 복지를 위한 법적·제도적 노력의 필요

마지막으로 소라미 아름다운재단 공익변호사그룹 ‘공감’ 변호사는 결혼 중개업과 이주여성의 한국 내 지위를 법적·제도적 관점에서 주로 분석했다. 현재 한국에서 결혼중개업은 ‘세무서 신고만으로 영업이 가능한 자유업이며 1,000여 개 이상’이 난립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인신매매와 이주의 경계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인권 침해적인 중개행위를 규제·적발하여 강력한 행정·형사 처벌을 부과함으로써 국제결혼 중개과정을 보다 투명하고 인권적인 절차로 만들어 나갈 수 있다’고 소변호사는 주장했다. 또한 송출국가와의 긴밀한 협조를 위해 일부 여성단체는 ‘인신매매방지 관련 국제협약을 국내 비준하고 이에 근거한 국내 인신매매방지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고 전했다.

2002년 광주여성개발원에서 광주, 전남지역의 국제 결혼을 한 여성 1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30%가 남편의 폭력에 시달리지만 이 중 64%가 ‘그냥 참는다’라고 대답했다. 이들이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이유로는 ‘결혼생활을 유지하기 위해(20%), 신고하는 방법을 몰라서(14%), 경찰이 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할 것 같아서(13%), 체류자격 불안정에 대한 두려움(10%)’ 등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이에 대응해 몇 가지 개선책을 시도하고 있어 상당히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예를 들어 한국인 배우자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신원보증을 할 수 있도록 하여 한국인 배우자가 임의로 신원보증을 철회했을 때의 문제점을 막을 수 있게 되었다.

‘한국 문화, 한국 사회’의 재확립 필요

많은 사람들이 4시간여에 걸친 이번 인권대화에 참석하여 국제결혼과 이주여성의 인권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음을 확인할 수 있었으며, 정부도 제도 개선을 위해 상당히 노력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이주여성과 그 자녀들에 대한 한국어 교육을 비롯한 문화적·사회적 접근에 있어서는 상당히 한국문화 중심적인, 타 문화에 배타적인 관점이 드러나 장기적 문제해결에 큰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주여성들은 단지 한국에서 생활하는 것 이상으로 그들의 문화를 한국 사회에 알리는 역할도 동시에 하게 된다. 그들의 자녀들은 한국 문화뿐만 아니라 어머니 측의 문화와 언어에도 노출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 문화가 우월하다는 식의 한국어 교육은 2개 국어 이상이 가능한 잠재성을 억누르게 되어 큰 손실이 될 것이다.

그리고 토론에서도 지적 되었듯이 국제결혼이 계층문제와도 연계되어 있다. 국제결혼을 한 가정의 자녀들이 학습능력이 일반 학생들에 비해 떨어진다는 편견이 있다. 하지만 이것은 그들이 상대적으로 개발이 미흡하거나 소득 수준이 낮은 지역에 거주하기 때문이지 그들의 능력의 문제는 아니다. 그러므로 국제결혼 가정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회 양극화 문제나 지역 불균형 문제의 관점에서 이 문제를 다룰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국제결혼 가정과 이주여성에 대한 관심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지만, 좀 더 열린 마음과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본다.

김희순 / 참여연대 사회인권팀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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